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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하늘 뜻(天符)을 져버린 전륜성왕(轉輪聖王).hwp
3-2-1)<하늘뜻(天符)>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따른 <전륜성왕(轉輪聖王)>
*12,000년 전에 제4빙하기(第四氷河期)가 끝나고, 제4간빙기(第四間氷期)에 접어들어 인류(人類)가 늘어나자 나라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의땅(亞細亞)>에 자리 잡은 천손민족(天孫民族)은 <환한나라(桓國)> 12연방(十二聯邦)을 이뤘습니다.
[三聖紀全 下篇(삼성기전 하편)]
昔有桓國衆富且庶焉初桓仁居于天山得道長生擧身無病代天宣化使人無兵人皆作力自無飢寒傳赫胥桓仁 古是利桓仁 朱于襄桓仁 釋提任桓仁 邱乙利桓仁至智爲利桓仁 或曰檀仁
(옛날 환한나라가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였고 또 많았다. 처음 한임께서 천산에 올라 도를 얻으시사 오래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 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한임, 고시리한임, 주우양한임, 석제임한임, 구을리한임에 전하고 지위리한임에 이르더라. 한임은 혹은 단임이라고도 말한다.)
古記云波奈留之山下有桓仁氏之國天海以東之地亦稱波奈留之國其地廣南北五萬里東西二萬餘里 摠言桓國分言則 卑離國養雲國 寇莫汗國 句茶川國一羣國 虞婁國(一云 畢那國) 客賢汗國 句牟額國 賣句餘國(一云 稷臼多國) 斯納阿國 鮮稗國(一稱 豕韋國 或云 通古斯國) 須密爾國合十二國也
(옛글에 말한다. 파나류산밑에 한님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니 통틀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다른 이름 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다른 이름 직구다국), 사납아국, 선패국(달리 불러 시위국, 혹은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합하여 12국이다.)
*<환한나라(桓國)> 말기에 <하늘뜻(天符)>을 받은 <환숫(桓雄)>께서 하늘을 열고(開天) 내려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밝은나라(倍達)>를 세웠습니다.
[三聖紀全 下篇(삼성기전 하편)]
桓國之末安巴堅下視三危太白皆可以弘益人間誰可使之五加僉曰庶子有桓雄勇兼仁智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可遣太白而理之乃授天符印三種仍勅曰如今人物業已造完矣君勿惜厥勞率衆三千而往開天立敎在世理化爲萬世子孫之洪範也
(환국 말기에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 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 할 곳이로다"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한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찌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하니 마침내 천부인 세 가지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 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환숫(桓雄)>께서 받아온 <하늘징표(天符印三個)>는 ○, □, △으로, 하늘, 땅, 사람이었습니다.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 □, △을 <녹도문(鹿圖文)>으로 풀어서 기록하여, [천부경(天符經)]을 남겼습니다.
[녹도문(鹿圖文)천부경(天符經)]
*<밝은 나라(倍達)>가 1,565년이 지나 <하늘뜻(天符)>이 흐려지자, <밝은나라 임금(檀君)>이 <아침의 나라(阿斯達)>을 새로 밝히고, <하늘뜻(天符)>을 <금척(金尺)>에 새겨,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檀君世紀(단국세기)]
開天一千五百六十五年上月三日有神人王儉者五加之魁率徒八百來御于檀木之墟與衆奉祭于三神其至神之德兼聖之仁乃能奉詔繼天巍蕩惟烈九桓之民咸悅誠服推爲天帝化身而帝之是爲檀君王儉復神市舊規立都阿斯達建邦號朝鮮
(개천 1565년 상월3일에 이르러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 잡았다.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님께 제사를 올렸는데 지극한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진 마음을 함께 갖추었더라.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어 그 다스림이 높고 크고 또 맹렬하였으니 구한의 백성들이 모두 마음으로 따르며 천제의 화신이라 하고 그를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이름했다.)
*<밝은나라임금(檀君)>께서는 <검불옛규칙(神市舊規)>을 <금척(金尺)>에 새겨, <하늘의 뜻(天符)>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렸고, <신라(新羅)>에 까지 전해졌다가 일실(逸失)되어 알 수 없으나, <밝고밝고밝은임금(朴赫居世)> 후손(後孫) <박제상(朴堤上)>의 [징심록(澄心錄)]과 <백결선생(百結先生)>의 [금척지(金尺誌)]를 읽어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가 그 모양과 원리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是故 金尺之由來 其源甚遠 其理深遠而其形象則如三台之列 頭含火珠四節而五寸 其虛實之數九而十成 次則天符之數也.
(그러므로 금척의 유래는 그 근원의 매우 멀고 그 이치가 매우 깊다. 그 형상은 삼태성이 늘어 선 것 같으며 머리에는 불구슬을 물고 네 마디로 된 다섯 치이다. 그 허실의 수가 9가 되어 10을 이루니, 이는 천부의 수다.)
以故 能度天地造化之根 能知理世消長之本 至於人間萬事 無不測察而規据 於氣門,心窺,命根 起死回生云 眞可謂神秘之物也.
(그러므로 능히 천지조화의 근본을 재고, 능히 이세소장의 근본을 알고, 인간 만사에 까지 재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숨구멍, 마음, 목숨을 재면 기사회생한다고 하니, 진실로 신비한 물건이라고 할 것이다.)
*<신라(新羅)> 때까지 전해진 <금척(金尺)>은 <경주시건천읍금척리(慶州市乾川邑金尺里)> 고분군(古墳群)에 묻혔다고 전해져 혀, 사적(史蹟) 제43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하늘뜻(天符) 금척(金尺)>을 땅에 묻은 <신라(新羅)>는 <법흥왕(法興王)>이 <불법(佛法)>으로 <왕권(王權)>을 강화했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하고 있지만, <당(唐)>나라의 힘을 빌어 삼국(三國)을 통일(統一)한 것은 <천손민족(天孫民族)>이 사대주의(事大主義)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게 된 빌미를 준 것입니다.
*<신라(新羅)> 말기(末期)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옛 비석의 [녹도문(鹿圖文)천부경(天符經)]을 풀어서 첩(帖)으로 만들어 [81자(八十一字)천부경(天符經)]을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 입니다.
[81자(八十一字) 천부경(天符經)]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無棉化三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萬王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하늘뜻(天符) 금척(金尺)>으로 다스리던 <아침의 나라(阿斯達)>의 <아사(阿斯)>는 시간(時間)으로 말하면 <아침(朝)>, <처음(初)>, <처음(始)>, <비롯(始)>이고, 방위(方位)로 말하면 <새쪽(東)>, <왼쪽(左)>이고, 행위(行爲)로 말하면 <빼앗음(奪取)>, <덜음(不足)>이고, 상태(狀態)로 말하면 <모자람(缺乏)>이고, 숫자(數字)로 말하면 <아홉(九)>입니다.
*<아사달(阿斯達)> 때 열도(列島)로 건너간 사람들은 <아사달(阿斯達)>을 <구다라(くたら=九月)>라고 읽고, <온다라(百濟)> 때 열도(列島)로 건너간 사람도 함께 <구다라(くたら=九月)>로 부르고 있습니다.
뒤에 <나라(奈良=なら)>에 건너간 사람들이 <아스까(あすか飛鳥=날새)> 문화(文化)를 연 것입니다.
*<아침의 나라(阿斯達)>가 2,096년 지나 저물어, 열국(列國)으로 흩어지자 <새밝임금(東明聖王)>이 나와 <뿌리불무리(卒本夫餘)>를 지폈습니다.
[北夫餘紀下(북부여기하)五世檀君高豆莫(5세단군고두막)]
癸酉元年是爲檀君高于婁十三年帝爲人豪俊善用兵嘗見北夫餘衰漢寇熾盛慨然有濟世之志至是卽
位於卒本自號東明或云高列加之後也
(계유 원년, 이 해는 단군 고우루13년이다. 제는 사람됨이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잘 다루었다. 일찍이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연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고열가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불무리(夫餘)> 후예(後裔) <온조(溫祚)>가 <아사달(阿斯達)=아홉달(九月)>을 이어 <열다라(十濟)>를 열었고, <뿌리불무리(卒本夫餘)> 시조(始祖) <새밝임금(東明聖王)>의 후예(後裔) <구태(仇台)>가 <온다라(百濟)>를 열어, <아사달(阿斯達)>의 <하늘 뜻(天符)>을 이어갔습니다.
*<근초고왕(近肖古王)>이 <한반도(韓半島)>를 중심으로 <대륙(大陸)>과 <열도(列島)>에 양 날개를 펴, <해양대제국(海洋大帝國)>으로써 동아시아(東亞細亞)를 밝게 비췄으나, <진사왕(辰斯王)>, <개로왕(蓋鹵王)> 때 큰 위기를 당하고, <무령왕(武寧王)>은 아버지 <개로왕(蓋鹵王)> 때 <고구려(高句麗)>에게 빼앗겼던 <아리울(漢城=지금의 대동강 유역)>을 되찾아 <강국(强國)>이 됐다고 선포했는데, 백성들은 그 뒤를 이은 <성왕(聖王)>에게 <온다라(百濟)> 시조(始祖) <새밝임금(東明聖王)>이 돼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三國史記卷第二十六(삼국사기권제26)百濟本紀第四(백제본기제4)]
○<武寧王>二十一年, 冬十一月, 遣使入<梁>朝貢. 先是, 爲<高句麗>所破, 衰弱累年. 至是上表, 稱: "累破<高句麗>, 始與通好, 而更爲强國." 十二月, <高祖>詔冊王, 曰: "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餘隆>, 守藩海外, 遠修貢職, 誠款到, 朕有嘉焉. 宜率舊章, 授玆榮命, 可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
무령왕 21년(521) 겨울 11월, 양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이에 앞서 고구려에게 격파당하여 나라가 쇠약하여진 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이 때 표문을 올려 "백제가 여러 번 고구려를 격파하고 통호를 시작하여, 이제 다시 강국이 되었다"라고 하였다.12월, 양 고조가 조서를 보내 왕을 책명하여 말하기를 "행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백제왕 여륭은 해외에서 번방을 지키며 멀리 와서 조공을 바치니 그의 정성이 지극하여 나는 이를 가상히 여긴다. 마땅히 옛 법에 따라 이 영광스러운 책명을 보내는 바,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영동대장군으로 봉함이 가하다"라고 하였다.
○二十三年, 春二月, 王幸<漢城>, 命佐平<因友>·達率<沙烏>等, 徵<漢>北州郡民年十五歲已上, 築<雙峴城>. 三月, 至自<漢城>. 夏五月, 王薨. 諡曰<武寧>.
23년(523) 봄 2월, 왕이 한성으로 가서 좌평 인우와 달솔 사오 등에게 명령하여 15세 이상 되는 한수 이북 주, 군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쌍현성을 쌓게 하였다.3월, 왕이 한성에서 돌아왔다.여름 5월, 왕이 사망하였다. 시호를 무녕이라 하였다.
○<聖王>, 諱<明儂>, <武寧王>之子也. 智識英邁, 能斷事. <武寧>薨, 繼位, 國人稱爲<聖王>.
성왕의 이름은 명농이니 무녕왕의 아들이다.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에 결단성이 있었다. 무녕왕이 죽고(523) 왕위에 오르자 백성들이 성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무령왕(武寧王)>이 다시 열어 놓은 <아리물(漢水=지금의 대동강> 하구(河口)를 통해 대륙(大陸)과 수교(修交)한 <성왕(聖王)>은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보내준 <불법(佛法)>에 중독(中毒)되어, <하늘뜻(天符) 금척(金尺)>을 펼칠 <새밝임금(東明聖王)>의 길을 버리고, 스스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됐습니다.
[三國史記卷第二十六(삼국사기권제26)百濟本紀第四(백제본기제4)]
○<聖王>十九年, 王遣使入<梁>朝貢, 兼表請『毛詩』博士·涅槃等經義, 幷工匠·畵師等, 從之.
성왕 19년(541), 왕이 양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아울러 표문을 올려 [모시(毛詩)] 박사와 열반(涅槃) 등의 의미를 풀이한 책과 기술자, 화가 등을 보내 주기를 요청하니, 양 나라에서 이를 허락하였다.
[日本書紀卷等十九(일본서기권제19)天國排開廣庭天皇 欽明天皇(긴메이텐노)]
十三年 冬十月。百濟聖明王〈更名聖王。〉遣西部姬氏達率怒唎斯致契等。獻釋迦佛金銅像一躯。幡盖若干・經論若干卷。別表讃流通禮拜功徳云。是法於諸法中最爲殊勝。難解難入。周公。孔子尚不能知。此法能生無量無邊福徳果報。乃至成辨無上菩提。譬如人懷隨意寶。逐所須用。盡依情。此妙法寶亦復然。祈願依情無所乏。且夫遠自天竺。爰洎三韓。依教奉持。無不尊敬。由是、百濟王臣明、謹遣陪臣怒唎斯致契、奉傳帝國。流通畿内。果佛所記我法東流。▼是日。天皇聞已歡喜踊躍。詔使者云。朕從昔來未曾得聞如是微妙之法。然朕不自决。乃歴問群臣曰。西蕃獻佛相貌端嚴。全未曾看。可禮以不。蘇我大臣稻目宿禰奏曰。西蕃諸國一皆禮之。豐秋日本豈獨背也。物部大連尾輿。中臣連鎌子同奏曰。我國家之王天下者。恒以天地社稷百八十神。春夏秋冬祭拜爲事。方今改拜蕃神。恐致國神之怒。天皇曰。宜付情願人稻目宿禰。試令禮拜。大臣跪受而忻悦安置小墾田家。懃脩出世業爲因。淨捨向原家爲寺。』於後國行疫氣。民致夭殘。久而愈多。不能治療。物部大連尾輿。中臣連鎌子同奏曰。昔日不須臣計致斯病死。今不遠而復。必當有慶。宜早投弃。懃求後福。天皇曰。依奏。有司乃以佛像流弃難波堀江。復縱火於伽藍。燒燼更無餘。於是天無風雲忽炎大殿。
13년(552) 겨울 10월 百濟 聖明王[이름을 고쳐 聖王이라 했다]이 西部의 姬氏 達率 怒唎斯致契 등을 보내어 釋迦佛金銅像 1軀와 幡蓋 약간, 經論 약간 권을 바쳤다. 따로 表를 올려 (佛法을) 유통시키고 예배하는 공덕을 찬양하여, “이 법은 여러 법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우니, 周公과 孔子라도 오히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법은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福德과 果報를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위 없는 菩提를 이루게 하니, 비유하자면 사람이 隨意寶를 품고 있으면 필요한 바에 따라 모두 뜻대로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오묘한 법의 보배도 그러하니 기원한 것이 뜻대로 되어 부족한 바 없습니다. 또 멀리 天竺으로부터 三韓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에 따르고 받들어 지녀 존경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百濟왕 臣 (聖)明은 삼가 陪臣 怒唎斯致契를 보내 황제의 나라에 받들어 전하니, 畿內에 유통하시어 부처가 ‘나의 법이 동쪽으로 흘러갈 것이다’라고 授記한 것을 이루십시오”라고 하였다. 이 날 천황은 표를 보고 뛸듯이 기뻐하며 사신에게 조칙을 내려 “짐이 예로부터 이와 같이 미묘한 법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짐이 혼자 결정할 수 없다”라 이르고, 여러 신하들에게 두루 “서쪽 번국이 바친 불상은 모습이 단아하고 엄숙하다. 일찍이 전혀 없었던 것이니, 예배할 것인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蘇我大臣 稻目宿禰가 “서쪽 번국 여러 나라가 한결같이 모두 예배하는데, 豊秋日本이 어찌 홀로 거스리겠습니까”라고 아뢰었다. 物部 大連尾輿‧中臣連鎌子가 “우리나라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항상 天地 社稷의 180神을 제사지내고 절하여 섬긴 때문인데, 바야흐로 이제 바꾸어 번국의 신을 섬긴다면 國神의 노여움을 부를까 두렵습니다”라고 함께 아뢰었다. 천황이 “원하는 사람인 稻目宿禰에 맡겨 시험삼아 예배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대신이 무릎 꿇고 받아 기뻐하며 小墾田의 집에 안치하고 삼가 出世間의 業을 닦아 因으로 삼았으며, 向原의 집을 깨끗한 마음으로 희사하여 절로 삼았다. 그 후 나라에 돌림병이 돌아 백성들이 죽게 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많아졌으나 치료할 수 없었다. 物部 大連尾輿·中臣連鎌子가 함께 “지난날 臣의 계책을 따르지 않으시더니 이렇게 병들어 죽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오래지 않아 바로 돌이킨다면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불상을) 빨리 던져 버려 삼가 후일의 복을 구해야 합니다”라 아뢰었다. 천황이 “아뢴 대로 하라”고 하였다. 有司가 이에 불상을 難波의 堀江에 던져 버리고, 또 가람에 불을 놓으니, 다 타버려 남은 것이 없었다. 이 때 하늘에는 바람과 구름이 없었는데 갑자기 大殿에서 불이 났다.
是歳。百濟棄漢城與平壤。新羅因此入居漢城。今新羅之牛頭方。尼彌方也。〈地名未詳。〉
*이 해 百濟가 漢城과 平壤을 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新羅가 한성에 들어가 살았으니, 현재 新羅의 牛頭方·尼彌方이다[지명은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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