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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수필세계 2015년 상반기 신인상
직단(織斷) 외4편
채정순
우리 교회는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한다. 그날은 수감자들의 생일잔치 열어 주는 날이라 서둘렀다. 미사를 마치고 불당에 올라와 교자상에 음식을 차리려다 화들짝 놀랐다. 꿈에나 보던 그리운 얼굴이 이마에 녹아 있는 마음까지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우리 사이에 세월의 강이 많이 흘렀건만 그녀의 외모와 표정에는 시간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찰나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려는데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그녀의 뒤꿈치가 문턱을 넘어 버렸다.
잔치는 불상의 미소까지 합세해 화기애애하지만 내 의식의 분위기는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어떤 죄목으로 왔으며 원인은 뭘까?란 의문스런 단어들로 머릿속이 벌처럼 잉잉거렸다. 그런 큰집에서는 받기 힘든 진수성찬을 나 때문에 외면한 듯해 죄를 지은 것 같아 앞에 있는 음료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고개를 문 쪽으로 자꾸 외셨으나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육촌이지만 청상과부가 된 아주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어 자식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살다시피 했기에 우리는 친자매처럼 붙어 다녔다.
그전에도 그녀는 교도소 생활을 했다. 무능한 어머니와 두 동생의 건사를 위해 일찍 생활 전선에 나간 탓이다. 천성이 일을 찾아 하는 근면 성실한 타입이라 퇴근 시간 후까지 사건이 난 옆방에 머물었다가 살인죄의 누명을 썼다. 몇 달간 피 말리는 생활을 견디던 아주머니가 누옥이라도 팔아 변호사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 다행히 범인이 잡혔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당한 분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힘없는 백성이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사 측에서 사과를 하고 봉급도 올려 준다며 그녀는 그 자리에 복귀를 했다. 주위에서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염증도 나지 않느냐고 다그쳐도 그 일이 적성에 맞다고만 했다.
그녀는, 눈앞의 옷감은 어떤 것이라도 일일이 분석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집이나 기차, 버스의 커튼이나 방석들은 물론 사람을 대할 때도 옷차림부터 유심히 봤다. 상대방이 옷에 뭐가 묻었나? 하고 당황할 때야 시선을 거두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안을 당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하다고 놀림을 받아도 그 짓을 버리지 못했다.
음력 설 무렵이었다. 벽에 걸린 내 코트를 본 그녀가 의미 있는 웃음을 물었다. 벼르고 별러서 산 설빔이라 이유를 알려고 슬슬 구슬렸더니 평소에는 입이 없는 위인이 그날은 옷에 대해 꽤나 많은 상식을 가르쳐 주었다.
옷의 질감은 염색 빛깔의 농도로 표시가 난다. 좋은 순서는 흰색, 옅은 색, 중간 색, 진한 색, 나염이며, 가장 나쁜 것은 짙은 염색을 해서 자수 처리를 한다. 또 대체적으론 질감이 좋은 옷이 가격도 비싸지만 그와 무관할 수도 있다.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손과 눈은 내 코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입으로는 좋다고 하면서도 얼굴 표정은 시원찮아 납득이 가게 설명하라고 졸랐더니 자기 회사에 가서 옷감들을 한번 구경해 보자고 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첫 출근일인데도 회사는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회랑처럼 놓인 공장 안엔 국수 같은 원사들이 기계에 매달려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발은 어느새 볕뉘만 몇 군데 앉아 있는 어두컴컴하고 적막한 실내에 따라와 두리번거렸다. 하얀 피륙이 수북이 쌓여 있는 그곳엔 투명 유리가 끼워진 큰 이젤 모양의 쇠 기계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천장에 달려진 말코에서 원단이 펼쳐져 내려와 맨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에 감겨 있었다.
그녀가 기계 옆에 붙박인 단추 모양의 스위치를 누르니 주위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이 좇기는 짐승처럼 달아났다. 또 다른 스위치에 손을 대자 천이 두루마리에 스르르 감겼다. 그녀가 기계를 세워 놓고 검단 과정이라며 흠들을 고르라고 했다.
코앞의 보풀과 얼이 이처럼 반갑다며 웃었더니 더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다. 씨줄이 뭉쳐 짜져서 뽀얀 띠가 음악 노트의 오선지처럼 나타난 게 있어 그것을 지적하자 고개를 끄떡이며 반전의 직단이라고 했다. 다른 흠들은 직수의 잘못에 있지만 이 직단만큼은 기계의 잘못이라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직단을 내포한 원단은 폭풍에 노출된 민달팽이처럼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다. 띠와 띠 사이가 엉성하게 짜져 심한 부분은 잠자리 날개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흠들을 찾느라 그 말코는 물론 다른 기계의 베들도 마구 두루마리에 감았다.
베틀에서 뽑아져 나오는 베도 우리네 삶처럼 각양각색이다. 순조로운 인생처럼 깨끗한 것, 보편적인 삶처럼 흠이 적당이 있는 것, 연속적인 고난과 역경 같은 집단적인 흠으로 영 절망적인 상태 등이다. 내 삶의 베는 과연 어디소속인지 숙연히 가늠해 보았다. 살얼음판 같았던 지난 많은 날들의 투병 생활, 중년도 되기 전에 맞은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와 그의 취음으로 치열하게 치른 부부 싸움, 이들은 면적이 좁게 빠져 짜깁기를 한 얼 모양 지나간 생활들 속에 묻혔지만 자칫했으면 잘라 버리는 파경에 이를 뻔했다.
나는 절대자의 눈이 되어 심판을 하듯 보풀을 조각가위로 뒤쪽에 감쪽같이 보내 버렸다. 이것도 적당하면 나염이나 자수용으로 처리하지만 너무 많으면 쓰레기통 신세가 된다고 했다. 자기 의지로 되지 않는, 운명에 휘둘린 자 같은 직단 베는 둘둘 감아 놓았다가 어느 정도 모이면 한꺼번에 짙은 염색을 해서 자수를 빽빽이 넣고 일류 양재사의 손을 거치게 한단다. 그러면 중후한 멋이 나서 절로 명품이 된다며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의 흠 없는 베들은 여기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고, 그들은 조그마한 상처도 받아들이지 않는 속성을 가진 완벽주의자처럼 깨끗한 만큼 때도 쉽게 타 생명이 짧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눈이 열리어 살펴본 내 코트는 진자주 바탕에 오색 빛이 나는 달팽이 모양의 자수가 빽빽이 놓여 있었다. 자수들을 일부러 비집어 보니 보풀과 직단은 물론 짜깁기한 얼의 흔적까지 숨어 있었다. 하지만 누가 옷을 그렇게 속속들이 헤집어 볼 것인가. 요즈음 옷은 유행과 싫증 차원이지 떨어져 못 입지는 않는다며 나는 그 자리에서 문득 생각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를 그녀의 별명으로 지어 주었다. 그녀의 행위를 보고 있으면 신도 아니면서 신들의 행실까지 일일이 무늬로 짜낸 아라크네의 열정이 시․공간을 넘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녀의 별명을 제대로 한 번 불러 줄 여가도 없이 나는 취직을 해서 객지 생활에 바빴다. 계절이 몇 번 갈마든 어느 날 그녀가 차 사고를 내어 또 감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면회를 갔더니 운전 미숙으로 브레이크를 건다는 게 액셀러레이터를 잘못 밟아서 사람을 죽였다며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 후 서로 결혼을 해서인지 우린 도통 만나지지가 않았다. 집안 대사 때 잠깐 본 건 너무 오래 전이고 그녀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끔 만나러 온다고 하나 나와는 석산의 꽃과 잎처럼 항상 엇갈렸다.
하필의 해후가 교도소라니, 그녀가 이런 저런 사유로 이곳에 왔노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그 말을 전폭적으로 믿고 위로를 해 줬을 텐데,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거듭된 교도소행으로 변명도 구차할 자에게 죄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깜짝 놀랐으니 자격지심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나 보다.
그녀의 마음의 베는 지금 심한 상처로 많은 부위가 갓 태어난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하늘할 것이다. 그 시련은 모든 상처를 껴안은 짙은 나염이나 자수 처리용으로 만드는 과정인 신의 가호라 믿고 싶다. 무교였던 사람이 종교에 귀의해 오늘의 상봉을 만든 것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너무 맑고 밝아 고생도 모르는 연한 색 베의 팔자로 남는 자보다는 고통을 당하고 고생을 해도 남을 배려하고 웬만한 흠은 다 보듬을 줄 아는 진국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편이 낫다.
유행도 타지 않고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 왔던 그때 내 코트처럼 그녀는 과거의 아픈 부분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형을 다 마칠 때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이해와 배려, 포용력을 갖춘 달관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못 말리는 위선에 조그마한 싫은 소리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격의 소유자가 남의 걱정, 공연한 기우를 하고 있다.
갱죽
숨 가쁘게 달려온 불자동차 소리가 내 엉덩이를 힘껏 걷어찬다. 입맛이 없어 저녁 걱정으로 뭉그적거리던 마음이 먼저 놀라 벌떡 일어난다. 얼른 밖을 보니 대문가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글 뭉글 피어오른다. 그러나 불자동차는 소리만 요란할 뿐 뒤에 구급차를 매단 채 요지부동이다. 여기까지 오려면 이면 도로 가에 대어져 있는 차들이 비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기는 점점 많이 나고 앞집 아줌마는 정신이 나간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소식을 들은 아저씨가 달려와서 물수건으로 입을 막고는 불 속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이러다 자칫하면 인명 피해도 있겠다 싶어 사람들이 한사코 말린다. 문명이 발달된 요즈음 불이 나도 이웃들이 도울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온 마을이 일어나 불을 껐던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여름밤이었다. 불이야, 불이야. 옆 밭 할아버지가 우리 원두막으로 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은 뒤에 남동생을 보라고 언니는 대불이, 나는 깜불이로 아명을 불렀다. 산마루에 있는 개구리참외밭에서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원두막을 지키던 나와 언니는 우리를 부르는 줄 알고 불이야 소리가 반갑기만 했다. 밭 아래 오리나무 숲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귀신을 경계하느라 오는 잠도 쫓고 있던 참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소리가 먹혀들지 않은 줄 그제야 깨달은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야들아, 연기 나는 곳을 봐라. 너거 집에 불난 것이 틀림없다. 너 아부지도 밭에 안 왔제?
그제야 나와 언니는 조금 전까지 꼬부랑 참외를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던 감정은 어디 가고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고샅에서 이미 양철통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뛰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집에 도착하니 집 주위는 온통 연기로 덮여 있었고 마당엔 동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여 있는 무리 속에 가족들의 얼굴이 다 들어 있어 일단 안심은 했다.
물을 담을 만한 크고 작은 그릇들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 동네의 쓸 만한 것들은 다 모였나 보았다.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어 보니 퇴비가 있는 바깥마당에서 불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뜨뜻한 재를 쳐서 퇴비에 갖다 놓은 것이 강한 바람에 불씨가 살아나서 나뭇단으로 옮겨 붙었다고 했다. 언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저녁에 엄마가 누른 국수를 마당에 있는 옹달솥에다 끓여 주었는데 그날따라 아궁이에 짚불을 때었기에 국수 꼬리를 구우려고 넣어 둔 것이 보이지 않아 삼태기로 재를 쳐내고 찾아낸 탓이다.
불은 심하게 부는 샛바람을 타고 돌담을 경계로 태산같이 쌓아 두었던 보리 짚단을 다 삼키고 차곡차곡 쟁여 둔 장작을 태우며 아래채로 건너가려는 중이었다. 아래채와 나뭇단 사이에 초가지붕으로 된 돼지우리가 있는데 큰 검은 돼지는 아닌 밤중 홍두깨에 마당에 쫓겨 나와 꿀꿀대고 있었다. 집안의 젊은 아저씨 몇 명은 그 지붕에 올라앉아 활활 타는 나뭇단 불은 쳐다보지도 않고 돌담에만 동네 사람들이 들어다 주는 물을 퍼붓느라 정신이 없었다. 돼지우리는 모를 내기 직전에 썰어야 할 무논 같았다. 우물물이 있는 집은 대문을 대낮처럼 활짝 열어 놓았고 장정들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그릇에 담아 주면 아무나 닥치는 대로 갖다 날랐다. 손이 많아서 도랑물을 떠 오는 사람, 앞 들에 있는 둠벙 물을 떠 나르는 사람, 큰 드럼통에다 아예 강물을 실어 오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 나도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부지런히 물을 날랐다.
그러길 얼마나 됐을까?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시커멓게 피어오르던 연기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바깥마당의 태산 같던 나뭇단은 거의 다 사라진 뒤였다.
여름밤이어서인지 사람들은 멍석과 평상, 마루 등에 모여 앉아서 그만하기 다행인 진화 얘기로 날을 새웠다. 아버지는 고마움의 표시로 장에 가 팔려고 따 놓은 참외와 청 밑에 숨겨 놓은 농주를 단지채 꺼내 놓았고, 엄마는 큰 가마솥에다 갱죽을 한 솥 끓여서 대접을 했다. 힘을 쓴 뒤여서인지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특히 죽은 두 그릇을 받는 사람이 많았다. 언니와 나는 죽을 쑤기 위해서 필요한 시루의 콩나물, 텃밭의 애호박, 창고에 있는 국수 등을 부지런히 날랐다. 엄마와 아버지는 불을 낸 장본인이 불이들이라면서도 우리를 꾸중하시지는 않았다. 불낸 사람을 꾸중하면 정신이 돌아 버린다는 전언의 덕인 것 같다.
드디어 집집의 수탉들이 목청을 뽑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들고 온 물통을 찾아서 엉덩이를 들기 시작했다. 큰 과수원 집 일꾼이 자기 집 뒷간 통이 없다며 엄마와 내가 있는 부엌으로 왔다. 부뚜막엔 낯선 새 양철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라며 들고 갔다. 그를 본 마루에 있던 젊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왝왝하며 욕지기를 하자 엄마도 속이 불편한 인상을 했다. 죽을 끓일 때 그 통에다 물을 길어다가 솥에 부은 모양이었다. 얼른 양철통 속을 들여다보니 깨끗한 밖의 외모와는 달리 가장자리에 인분을 너덜너덜 달고 있었다. 나도 토하려고 거름통으로 달려갔는데 어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찌 죽 맛이 환상적이었다며 토하는 시늉만 했지 태연했다. 그 후 동네에서는 불을 끄고는 똥갱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한참 동안 회자되었다.
갱죽은 경상도에서 주로 먹을 것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쑤어 먹는 죽이다. 특히 보릿고개 때는 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달랬다니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물에 불린 쌀이나 보리쌀에 멸치를 우려낸 물을 붓고 거기다가 여러 가지 거섶과 고구마, 수제비, 국수, 겨울철에는 골무떡 썬 것도 넣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풀어 간을 해 끓인다. 위생적인 것을 빼면 꿀꿀이죽과 비슷하니 전깃불도 없던 밤이라 더 몰랐을 것이다. 식구가 많고 가난한 사람들은 곡식의 양이 적어서 국물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멀겋게 끓였지만 그마저도 자식들 때문에 양껏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날도 산비탈에 있는 윗동네에서는 움직이면 배가 꺼진다고 누워 있다가 불이 났다는 마을 고자의 외침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자들이 많았다. 멸치국물 속으로 들어가서 갱죽이 되어 기아란 불을 꺼 인간의 목숨을 살리는 음식 재료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일처럼 나서 주는 거룩한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저변에는 접하는 음식이나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집에 우환이라도 생기면 다투어 문병을 하고 그예 초상이 나면 장례 전까지는 어떤 집도 빨래를 하지 않고 하나같이 무색옷을 입었다. 그렇게 애도에 동참하는 동네 풍속은 어쩌면 그 당시의 동네는 또 다른 하나의 가정이며 갱죽을 끓이는 가마솥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 사람들은 사정에 따라서 갱죽의 재료나 양념으로 죽의 일원처럼 됐으니 그때 쌀, 콩나물, 국수 역할을 한 인상 깊은 얼굴들을 하나씩 하나씩 떠올려 본다.
겨우 불자동차가 들어가자 불은 금방 꺼졌다. 그러나 부엌에 있는 가전제품과 싱크대, 천장이 못 쓸 정도로 그을려 있고 바닥은 온통 물 천지다.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라 앞집 아줌마에게 위로를 하니 오징어튀김을 하다가 팬의 기름이 끓어 넘쳐 떨어진 벽지에 붙더니 불로 변하더라고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그리고 처음 불길이 솟을 때 쌀독의 쌀을 퍼부을까 하다가 아까워서 그만두었는데 가래로 막을 것을 삽으로도 막지 못할 짓을 했다며 후회를 했다. 쌀 얘기를 들으니 또다시 그때의 죽이 생각이 난다. 나도 이제 그때 먹었던 갱죽을 먹고도 토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나 보다. 저녁은 정말로 갱죽을 끓여 먹어야겠다. 된장으로 간을 하면 그때의 죽이 재현되려나, 어쨌든 오늘은 된장 덩이를 넣어야 잘 넘어갈 것 같다.
양파
옷고름이 풀린 저고리 섶처럼 잘 열리던 옆집 대문이 오늘은 꿈쩍을 않는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생긴 각진 구멍으로 들여다본다. 대문띠부터 빗장까지 양파 자루가 삐뚜름하게 기대어 있다. 속에 썩거나 잘린 부분이 있는지 맵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갑자기 내 어깨에 힘이 쑥 빠지며 가슴 자리도 쿵쿵 방망이질을 한다. 낮술을 흠씬 걸치고 포획된 짐승처럼 대문간에 웅크리고 있는 남편이 연상되어서다.
남편은 한심하게도 점점 양파를 닮아 간다. 겉옷에 온통 흙을 묻히고 감 삭는 냄새로 집의 공기를 흐려 놓기 일쑤다. 중년도 보내기 전에 맞은 실직이란 암담한 현실 때문이다.
양파는 까다롭지 않은 땅에서 큰 대파 모양이 될 때까지는 쑥쑥 잘 자란다. 그러기에 얼마간은 대파와 잘 구별되지 않는다. 대파를 뽑아야 되겠다고 모르는 사람이 생각할 때쯤 꼿꼿하던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는 땅속에 동그란 덩이줄기만 계속 쟁인다. 남편도 얼마 동안은 사회의 성실한 일꾼,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물론 가정에서도 든든한 지아비, 자상한 아빠로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머잖아 우리의 목표 하나쯤 달성하겠다 싶은 어느 날 얼빠진 얼굴로 와서는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중얼거렸다. 반기를 들어 쫓겨난 것인지 명예롭게 퇴직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운명이 그를 실직 쪽에 손을 들게 했다.
가족의 삶의 무게를 어깨에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남편은 회사 밖으로 내몰린 순간부터 구직을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렸다. 누비는 횟수와 대문 빗장 거는 차갑고 매정한 소리가 정비례했다. 차츰차츰 골목을 전전하는 발걸음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급기야 자세가 낮아지더니 제 재능을 마음의 땅속에 묻어 버렸다.
만물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더니 인간 역시 적응의 동물이 맞구나. 백수 생활에 이력이 났다 싶은 어느 날, 남편은 집 안의 술을 바닥을 내고도 모자라 바깥에 나가 술추렴을 하고 와서는 가족에게 제 존재를 알아 달라며 부르짖었다. 땅속에 묻었던 재능을 도로 꺼내어 잘나갔던 왕년을 반추했다. 지나간 화려한 순간들은 물론 평범한 일상들도 아름답게 치장되어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행복했던 날들이다.
그때부터 남편은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처럼 카타르시스가 끝날 즘 어김없이 기억의 서랍장을 뒤지고 술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몸은 자양분을 뺏겨 점점 초췌해지더니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양파의 동그란 덩이줄기가 한 꺼풀 생길 때마다 잎 하나가 마르고 또 하나 생길 때마다 잎 하나를 말리듯이 가족들의 영혼도 비늘 쪽의 마른 잎처럼 남편의 부르짖음 사이에서 버석거린다.
그런 날이면 나는 대문간에 퍼져 있는 우람한 덩치를 끌고 와서 옷을 갈아입혀 놓고는 양파에게 화풀이한다. 우선 양파를 깨끗이 씻어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난도질을 하다가 한 꺼풀 한 꺼풀 하얀 비늘을 깐다. 내 비루한 생활의 면면을 양파 조각에 묻혀 떼 내기라도 하듯이……. 불쑥 찾아오는 손님으로부터 알리바이도 조성이 되기에 이젠 아예 버릇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런 날 우리 집 밥상은 몹시 맵거나 아니면 들쩍지근한 음식들로 가득하다.
어떤 인연에서 비롯되었는지 몰라도 양파는 인간에게 조상 받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건 틀림없다. 도마 위에 올라앉기만 하면 눈물을 요구하니까. 양파에 얼큰히 취해 얼굴이 물 범벅이 되어 있으면 고추장을 먹은 수탉같이 꼬박꼬박 졸던 그가 왜 우냐며 다그친다. 가뜩이나 울렁거리는 내 안으로 주사의 똬리를 슬며시 푼다는 신호다. 듣기 싫은 요설의 시작이라 내 속이 절로 몸 밖으로 터져 나와 좁은 공간을 황망히 돌아다닌다. 텅 비어 뒹구는 술병 같아진 내 내면은 이내 가물대는 썩은 동태눈과 마주한다.
양파가 매워서 눈물이 난다.
다른 반찬을 하면 되지 그것밖에 없느냐?
말도 미처 다 못하고 동태눈은 스르르 감겨 버린다.
양파는 죽음을 목전에 둘 때 정당방위로 나를 울리지만 남편은 턱도 아닌 조그마한 바가지 소리도 흘려버리지 않고 있다가 예고도 없이 불쑥 지독한 냄새로 내 마음을 젖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몸을 벗겨 봐도 한모양으로 이어지고 이어진 신비의 몸처럼 속은커녕 허점 하나 보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신랑 시집살이는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보기엔 무골호인처럼 온통 긍정만을 표하는 인상이면서 한 켜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사람을 울리고 또 한 켜가 떨어질 때마다 사람을 못살게 구는 양파 조각 같다.
그 와중에도 흐르는 시간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시간은 망각도 자정 작용도 하지만 무엇보다 생명력의 원천인 희망을 품고 있어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존재한다는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유물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속에 바라보는 하나의 오아시스다.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양파를 동반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매운 향으로 나의 두 눈의 물기를 뽑지만 결국엔 내 손에 절단 나는 양파다. 가끔 술 바람으로 나를 울리지만 남편도 우리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의 자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정과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양파와 생을 걷다 보면 그의 가슴에도 희망의 새싹 하나쯤 삐져나오리라 믿는다.
기근(氣根)
따비밭 사이로 난 길은 슬쩍 밟힌 뱀처럼 구불텅하다. 산봉우리는 뽀얀 안개 너울을 쓰고 있어 신비감을 준다. 한발 한발 가풀막을 오르는 내 발자국 소리에 잠자던 나무들이 부스스 일어난다. 코끝에 닿는 공기가 삽상하다.
한줄기 바람이 저만치 우거진 덤불을 헤집어 실루엣 하나를 들추어낸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 쪽박을 찼다던 이웃 여자다. 등산복 차림으로 오도카니 앉아 있는 폼이 시름을 달래려고 산행을 했나 보다. 볼이 낮달처럼 해쓱하고 눈빛마저 망각의 늪을 헤매다 온 듯 흐릿하다. 흘러오는 물을 보듬은 웅덩이를 망연히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초로 때의 나를 보는 것 같다.
그 무렵, 일자리를 잃은 남편이 집에 들앉아 있어서 집 안엔 찌든 궁기만 가득했다. 나 역시 뭔가 모색할 궁리는 못하고 스스로 무지렁이라 단정 지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를 안 친척이 동업을 하자며 뭉칫돈을 채 가서는 소식이 두절되었다. 눈앞이 캄캄해 그를 사방팔방 찾아다녔지만 헛수고만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은 화면 속의 풍경 같았다. 눈만 뜨면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던 보잘것없는 자격지심이 친척도, 친구도, 이웃도 마다했다. 여태껏 마음이 질척거릴 때마다 찾은 산마저 그들과 마주친다며 가지 마라 엄포를 놓았다. 안식처였던 집은 발이 묶이니 담장이 낮은 감옥으로 변했다. 샘솟는 욕망을 누르며 침묵을 일삼는 감옥에도 유일하게 찾아드는 손이 있었다. 자칫하면 단물 뒤에 우러나는 껌처럼 우울을 불러들이는 고독이다. 이 고독을 음미하다 뜨거운 국물처럼 황급히 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팔다리를 부단히 움직이면 생각이 순해진다고 한다. 맨손 체조를 하며 창으로 들어오는 산을 마주한 기억뿐인데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산비탈에 쫓기는 짐승처럼 헉헉대고 있었다. 그제야 억눌린 의식이 무의식이 된다고 한 한 정신분석학자가 떠오르며 내 무의식이 발로했다는 생각에 강한 전율이 일어났다. 산으로 몸을 데려다 놓은 무의식은 그새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산봉우리가 어서 오라고 손짓했지만 헐렁한 원피스 차림이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점이 범죄를 유발시킨다기에 발이 절로 덤벙대며 좁다란 산길을 툭툭 차며 내려왔다. 발밑으로 잔돌 구르는 소리가 자그러웠다.
주위를 얼핏 둘러보았다. 저만치에 물비늘을 일으키는 웅덩이가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물고기와 물풀을 나름대로 거두는 소박한 연못이다. 높지 않은 산역에 와 있다고 느끼는 순간 어깨에 맴돌던 불안감이 주춤 물러났다. 못가에는 우람한 낙우송이 푸른 팔을 제멋대로 내젓고 있었다.
예의 웅덩이는 하늘의 막 생기기 시작한 낙조를 담기에 바빴다. 불그레한 낙조가 상처의 고름 같아 어서 지나치려고 마음 먼저 내닫는데 내 그림자에 웬 그림자가 포개졌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남정네 둘이도 살풍경을 연출하는 웅덩이가 보기 싫은지 나처럼 하산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낙우송 주위에 혹이 듬성듬성 나 있는 것을 보고 기근이라고 했다. 여느 나무들은 물을 찾아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는데 낙우송은 공기를 마시러 땅 위로 혹을 낸다고 했다. 난초나 옥수수의 기근은 바위 사이로 내놓은 노근(露根)처럼 이슬이나 빗물을 받아먹기도 하지만 물이 질펀한 장소에 생장하는 낙우송은 그럴 필요는 없다는 부언도 잊지 않았다.
나무는 대부분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듯이 얼마 전까지 우리네 사회 역시 남자들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가계를 이끌었다. 척박한 땅이라 노근으로 연명해도 여자들은 팔자려니 치부하고 부엌에만 매달렸다. 우리 가정 역시 남편이 자아올린 자양분으로만 지탱했기에 내가 나서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도 맞벌이를 하는 여장부도 많았는데 왜 내 눈엔 그들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남자를 제치고 겁나게 돈을 주무르며 인간 승리를 이룬 여걸들이 고금을 통해 지면에 나오는데 말이다. 어쨌든 어떤 전문 기술도 없을 뿐 아니라 대가족 살림에 병약했던 나는 그쪽으론 언감생심이었다.
산을 내려오는데 물을 저버리지 않고 잘 살아가는 낙우송처럼 우리 살림 역시 남편의 노근뿐 아니라 나의 기근으로도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샘처럼 솟아났다. 산소 같은 돈을 집 안에서 만드는 계획이 새록새록 운명처럼 떠올랐다.
우리 집 아래층에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조그만 점방이 있다. 아버님이 젊었을 땐 장사가 잘되어 집을 두 채나 장만했고 우리 애들이 어릴 때까지도 짭짤하게 수입을 올린 효자 점포였다. 하지만 인근에 같은 업종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또 아버님이 연세가 드셔서 공사를 나가지 못해 사실상 죽어 있었다. 그곳을 손봐서 팔리지 않으면 우리가 써도 되는 생필품 가게를 차렸다. 집안 형편이 밖의 일터는 그림의 떡인 내게 안성맞춤인 일터가 되었다. 밖에서 보면 파리만 날리는 것 같지만 첫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영업을 하기에 문을 닫고 수익을 보면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지금이야 자식들이 다 자라서 그들 밑 닦기도 바쁘지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허우적거렸던 그 당시를 뒤돌아보면 내겐 낙우송이 희망의 화신으로 다가왔다.
내 발걸음 소리에 여자도 고개를 들어 본다. 이마를 약간 숙이고 군빗질을 하며 벌써 하산하는 길이냐며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물가의 풍경을 보던 시선을 거두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이는 여자도 어쩌면 기근이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화창한 햇살에 빛바랜 접대용 미소가 애처롭다.
많은 산길을 두고 하필 이쪽으로 오른 것은 나만의 절절한 기억 때문이다. 기억은 습관과 버릇을 만들기도 하니까. 곰살가운 햇살이 어느새 골짜기를 감싼다. 자욱하던 산봉우리 안개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채정순
대구 출생
『울산문학』신인상 수상(2014)
카톨릭 대구대교구 빛 잡지 수기공모전 대상
농촌사랑 주부글잔치 공모전 우수상
동서문학상, 경북문화체험, 산림문학상 등 다수 입상
첫댓글 채선배님, 수필집 출간과 더불어 경사가 겹쳐 오네요. 축하도 두 배로 드립니다.
수필세계로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채샘, 수필세계 등단 축하합니다.
한 식구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이제야 채작가님의 등단작을 읽어 보았습니다.
어쩜 이렇게 생경맞고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을 품으실 수 있는지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늦게나마 진심으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