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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ㅐ의 수필작가
초인 연습 외 5편
강 기 석
산에 가야 한다. 절망이 녹물처럼 흘러내리면 산에 가야 한다. 장마 한고비에 비 그치기만 기다릴 수 없다. 빗줄기가 잦아진 틈을 타서 서둘러 집을 나선다. 산은 산에서 내 절망을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 꿈에 송장을 지고 진회색 조립식 성당을 서성거리던 초로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성당 벽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의 흔적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낡은 그림자를 뒤적거리던 남자는 혼자 히죽거리다가 산을 향해 웃었다. 송장의 눈에는 세상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도로와 맞닿은 풀숲에는 탯줄같이 좁은 길이 장마에 너덜거린다. 나는 젖은 신발을 끌어 굴참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숲은 나무 젖는 소리로 나를 맞이한다. 가까운 데 나무 젖는 소리가 나고, 먼 데 나무 젖는 소리가 난다. 산은 나무 젖는 소리로 더욱 고요하고 내 절망은 혼자 외롭다.
가빠진 숨을 고르면서 칡덩굴이 소나무의 멱을 노리고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소나무는 칡덩굴의 부드러운 미감이 자신의 푸른 삶을 붉게 산화시킨다는 것을 모른다. 슬금슬금 감겨 오고 죄어 오는 감미로운 유혹을 차라리 연모한다. 내 절망도 칡덩굴의 유혹처럼 달콤하고 사악할지도 모른다.
절망이 내게 말한다. 절망하는 일은 불행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절망은 삶의 의지일 뿐 굴종이 아니라고 말한다. 절망하는 사람은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며 창조를 고뇌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산모롱이를 돌아서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강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주검처럼 누워 처연히 비를 맞고 있다. 아무도 그들을 세우려 하지 않고 그들 역시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녹색 이끼가 부패하는 굴피의 홈을 따라 기도처럼 번지고 있을 뿐이다. 삶과 죽음의 무한한 간극을 내 절망이 메우고 있다.
길은 계곡을 따라 계속된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내려왔다가 또 올라간다. 지루한 길섶 저편에 참나리 한 송이가 초연하다. 다가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후줄근한 장마 속이라 더욱 순결하고 녹색과 대비되어 더욱 존엄하다. 나는 여전히 산나리처럼 붉고 싶다. 초월과 자유를 열망하며 붉게 절망하고 싶다.
계곡이 높아질수록 물은 더욱 투명하다.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돌벼랑을 지나온 물줄기는 여울에서 금방 평상심으로 돌아와 한없이 여유롭다. 한 올 구김도 없고 한 가닥 흐트러짐도 없는 절대 무심이다. 하늘도 거기 머물지 못하고, 산도 거기 머물지 못하고, 나도 거기 머물지 못한다. 나는 텅 빈 물속에서 초로의 남자가 더듬거리던 기호의 의미를 찾는다.
산으로 올라간 초로의 남자가 잡초가 덥수룩한 무덤 앞에 불쑥 나타났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피더니 시커멓게 말라 죽은 느티나무에 송장을 걸쳐 놓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자유로운 하늘로 올라가려 했다. 나의 영혼은 별나라를 갈망했다. 나는 창조를 위해 몰락을 갈망했다. 자유의 번개를 그리다가 끝내 절망하고 말았다. 절망의 무덤이여! 나에게 부활을 가져 다오. 뼈와 살이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나기 전에 나를 불러 생명을 다오. 아침 햇살과 같은 용기를 다오’
건넛산에서 안개가 오른다. 안개는 온갖 형상을 만들면서 산을 희롱한다. 내 절망은 어쩌면 허영인지도 모른다. 절망의 카타르시스로 삶을 연명하려는 또 다른 존재 양식인지도 모른다. 혼란이 머릿속에서 오래 지속된다.
길은 좁아져서 희미해지고 나뭇가지를 엮고 뿌리를 얽어 만든 공간은 칙칙하다. 빗물은 아랫도리가 벌겋게 드러난 소나무 뿌리 사이를 쉼없이 드나들다가 오리나무 이파리 위를 하얗게 지나간다. 질펀한 풀숲을 지그시 밟으니 물이 신을 넘어 발을 적신다. 서늘한 기운이 발목을 지나 종아리를 거쳐 허벅지를 타고 등을 기어올라 목 줄기를 따라 머리끝에 닿는다.
빗물에 팬 길을 한참 오르니 소나무 숲 사이에 공터가 보인다. 붉은 소나무 줄기들의 옹골찬 용틀임을 따라 하늘이 내려와 앉아 있다. 숲은 하늘을 지향하는 경배 의식으로 충만하다. 나는 두 손을 단정히 모으고 깊고 긴 호흡에 빠진다.
숨을 길게 내쉬니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추악한 제단을 쌓던 욕망이 숲의 복음에 굴복하여 좁은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다. 허영의 그림자가 가소롭다. 절망의 사치가 매스껍다. 초로의 남자는 송장 앞에서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물이 떨어진 송장에서 털이 숭숭 돋은 흉측한 애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온 산을 뒤덮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잠을 깼다.
골짜기에서 한 줄기 엷은 바람이 일어난다. 나는 코와 귀를 활짝 열어 허기진 영혼을 채운다.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살 냄새 같기도 하고, 내 이전의 내가 존재했던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전하는 원형의 언어 같기도 하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각질을 벗겨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각사각 어둠이 잘려 나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가늘어진 빗줄기가 멎는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암벽은 가파르고 길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일이 쉽지 않다. 허공으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숨이 차 오르고 현기증이 난다. 눈이 초점을 잃어 하늘을 한 바퀴 빙글 도는데, 날갯짓이 서툰 하얀 나비가 어른거린다.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수천 수만 마리가 되더니 다시 한 마리로 돌아온다. 날개 빛이 찬란한 금방 우화한 나비이다.
후미진 곳에서 처절하고 고독하게 몸부림쳤으리라. 나무 젖는 소리에 외로워하고, 녹색 이끼의 기도를 두려워하며 어둡고 긴 기다림을 감내했으리라. 칡덩굴의 유혹에 허우적거리면서 참나리의 꿈을 잃지 않았으리라. 애벌레의 굴욕과 번데기의 적막을 인종하면서 날개를 꿈꾸었으리라. 마침내 보았을 파란 번개의 희열을 떨리는 몸으로 맞이했으리라. 나는 나비의 비행을 따라 산을 오른다.
함지산 꼭대기에 도달한 나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장마가 짙게 남아 있는 검붉은 석양 속으로 날아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나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나비가 날아간 하늘을 바라본다. 초로의 남자가 더듬거리던 암호의 의미가 희미하게 현상된다.
‘인간도 날 수 있다’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래, 신이 아닌 인간도 날 수 있다. 절망은 날개를 위한 노래이다. 나는 날기 위해 내일도 오늘처럼 절망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산을 내려간다.
이별 준비
우리 집 거실에 돌 세 덩어리가 있다. 모두 호피석이다. 호랑이 털색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화 고선계곡에서 일 년을 살면서 제법 많이 모았는데 이래저래 없어지고 세 덩어리만 남았다.
호피석에는 검은색, 흰색, 누런색 그리고 보라색 등이 적당하게 모이고 흩어져서 만든 소박한 무늬가 있다. 단단한 곳은 불거져 나오고 무른 곳은 패어서 생긴 음영이 투박하다. 물에 씻기고 돌에 닳은 표면은 달빛처럼 은은한 윤이 난다. 그것뿐이다. 강이나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처음 보는 사람이 심드렁해하기 십상이다.
호피석은 물을 만나면 달라진다. 투명한 물속에 담그면 숨어 있던 온갖 색상이 발현되고 명도와 채도가 고양되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돌이 아름답게 변한다. 주변의 물빛도 돌 빛깔을 닮아 칠보의 향연이 된다. 호피석의 매력은 바로 물빛이다.
좁은 아파트 거실에서 돌을 물에 담아 두기는 어렵다. 궁여지책으로 수반에 앉혀 놓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 가면서 감상한다. 물기가 마르면서 만들어내는 얼룩의 조화가 또한 볼만하다.
비스듬히 누워 호피석을 바라보면 고선계곡이 거기 있다. 높은 산 푸른 바람과 낮은 하늘이 보인다. 느티나무 집 정도사의 텁수룩한 수염 사이로 터져 나오는 컹컹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짠돌이 애숙이 아버지가 건네주는 옥수수 술은 마시기 전에 벌써 취한다. 수정처럼 맑은 물속에는 피라미 떼가 발등을 간질이며 지나가고, 점박이 산천어가 제 잘난 맛에 거드름을 피우며 느릿느릿 시간을 즐긴다.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사계절이 거기 있다. 겨울에는 검은 바위벽에 대항하는 눈보라의 차디찬 이성을 볼 수 있다. 봄에는 연보라색 산등성이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는 산복사꽃을 만날 수 있다. 여름에는 청록색 계곡을 잠행하는 투명한 물줄기가 싱그럽다. 그리고 가을에는 낡은 사랑 타령으로 목이 쉬어버린 억새꽃의 난무가 있다.
더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 삶의 온갖 메타포가 거기 있다. 무늬 하나하나와 색깔 하나하나에 이 생각 저 생각을 매고 풀다 보면 삼라만상의 생멸과 천지 만물의 근원이 거기 있다. 괘사와 효사가 되기도 하고, 상형문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화가 된다. 혹은 컴퓨터 아이콘이 되고, 혹은 절제된 추상화가 된다.
어떤 날은 호피석을 베고 누워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돌의 느낌을 즐긴다. 적막을 앓고 난 선승의 장삼자락 같은 허허로움이 찾아들기도 한다. 오래된 대청마루에 다소곳이 들어선 아침 햇살 같은 소박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에는 십여 년 만에 고선계곡에 갔다. 아내에게는 살던 곳에 다시 가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속셈은 호피석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호피석을 줍는 기쁨을 맛보고 싶었다. 거실에 멋진 호피석 한 개쯤 더 갖다 놓고 싶었다.
내가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돌 징검다리가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다. 느티나무 집 정 도사의 너털웃음은 녹이 슬고, 짠돌이 애숙이 아버지의 눈빛에는 그늘이 생겼다. 아내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나는 슬그머니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흐르는 물은 여전히 맑고 투명했다. 물고기는 여유롭고 바람은 향기로웠다. 물을 밟고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에 계곡을 지키던 고요가 부서졌다. 나는 물속과 돌 틈을 샅샅이 살폈다.
한참을 올라가니 깊은 물속에서 어른 머리 크기보다 조금 작은 호피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숱한 사람과 눈 맞추기를 거부하면서 온전히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 빛에 놀란 가슴은 사정없이 방망이질을 했다. 나는 흥분을 억누르면서 천천히 아주 담담하게 호피석을 향해 다가갔다.
생기 넘치는 휘황찬란한 광채가 나를 사로잡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느껴 보지 못한 황홀감이 거기 있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거기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호피석 곁에 있으면서 처음 본 것처럼 즐거웠다. 거실에 있는 호피석을 보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거실에 있는 호피석도 처음에는 이 호피석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낯선 거실에서 호피석의 영혼은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호피석에는 내 생각의 편린들만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낡은 의미의 부스러기만 쓰레기 더미처럼 수북이 쌓였다. 호피석은 죽고 나만 살아 있었다.
나는 감히 물속의 호피석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살아 숨 쉬는 호피석을 거실에 옮겨 놓고 생명을 앗아 가는 고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호피석의 고향은 고선계곡이며, 호피석이 편히 쉴 곳도 고선계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피석은 지금 이 자리, 고선계곡에서 호피석의 삶을 살 수 있어야 가장 멋있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피석을 집으로 가져가겠다는 내 소유욕은 차츰 죄의식으로 바뀌었다. 지나간 세월 동안 거실에 있는 호피석에게 내가 지은 죄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더 이상 죄를 짓기 전에 고선계곡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호피석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양심인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호피석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호피석에 덕지덕지 붙은 기호와 언어 그리고 역사와 신앙을 하나씩 벗겨냈다. 내가 불렀던 노래, 내가 보냈던 눈길 그리고 내가 내밀었던 손길을 하나씩 거두었다. 호피석에서 나를 지워내고, 나에게서 호피석을 지워냈다.
멀지 않아 호피석은 호피석이 되고 나는 내가 될 것이다. 고선계곡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호피석에는 더 이상 세상의 메타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호피석은 고선계곡으로 가고, 거실에는 나 혼자 남을 것이다.
우리는 본래 그냥 거기 있었을 뿐 누구의 누구, 누구의 무엇, 무엇의 무엇이 아니었다. 그냥 거기 그렇게 있어 존재가 되고 삶이 될 뿐이다.
이발 소묘
거실 바닥에 사각형 신문지 두 장을 깐다. 긴 쪽이 겹치도록 깔아 놓으니 또 다른 사각형이 된다. 나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가 앉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새벽이라 으슬으슬하다. 온몸에 좁쌀 같은 소름이 돋는다.
두어 달마다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제는 그만 끝낼 때도 된 것 같은데, 오늘도 같은 의식을 치러야 하는 내가 한심하다. 괜히 화가 나려고 한다. 입에서 욕이 나오려다 말고 들어간다. 내가 좀 특별하게 생긴 탓이다.
얼굴빛은 꺼무레하다. 얼굴 모양은 길쭉하고 비뚤하다. 윤곽은 울퉁불퉁하다. 눈은 작고 눈썹은 있는 둥 마는 둥 싱겁다. 입술은 두껍고 짧아서 입이 항상 벌어져 있다. 사진 속에서는 못생긴 얼굴이 훨씬 돋보인다.
세상에는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이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잘생긴 사람은 잘생긴 대로 살고 못생긴 사람은 못생긴 대로 살면 된다. 나는 내 외모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사람들도 내 외모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내 머리 모양이 변하기까지 그랬다.
70년대에는 긴 머리가 유행이었다. 나도 다른 사람 따라 머리를 길렀다. 짝 달라붙어 야만스러워 보이던 곱슬머리가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는 머리카락에 굵은 웨이브가 생겼다. 귀를 덮을 정도가 되니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날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멋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생겼다. 내가 봐도 얼굴 생긴 것과 머리 모양이 딱 떨어지게 어울렸다. 나는 긴 머리 덕에 차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내 마음도 그만큼 부풀어 올랐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오른손에 주방용 가위를 들고 있다. 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신문지 가운데 앉으라고 나무란다. 나는 엉덩이를 미적거려 가운데로 옮긴다. 다시 왼쪽으로 조금 돌아앉으라고 한다. 왼쪽으로 조금 돌아앉는다.
이발소에는 안 갔다. 내 머리는 내가 잘랐다. 거울을 보고 적당히 잘랐다. 왼손에 빗을 들고 오른손으로 가위질을 했다. 빗이 없을 때는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을 끼워서 자르기도 했다. 시간 나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잘랐다. 뒷머리를 자를 때에는 거울을 두 개 사용했다. 오른쪽과 왼쪽이 헷갈려 도통 애를 먹었다.
처음부터 이발소에 안 간 것은 아니었다. 이발소에서 나를 이발소에 못 가도록 했다. 이발사는 내가 게으르거나 아니면 이발비가 없어서 머리를 자주 안 자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긴 머리를 보면 기어코 잘라버려야겠다는 이발사 특유의 강박관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위질 소리가 불안하여 너무 자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으나 듣지 않았다. 못생긴 내 얼굴이 다 드러나도록 마음껏 가위질을 해 버렸다. 결국 이발사는 내가 내 머리를 자르도록 강요해 버렸다.
아내는 등 뒤로 가더니 머리를 빗겨 내린다. 헝클어진 머리가 노란 플라스틱 빗살에 걸려 멈칫한다. 아내는 빗에다 한 번 더 힘을 준다. 머리가 뒤로 젖혀지면서 머리카락이 뽑히는 것처럼 따갑다. 소리를 치려다 그만둔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릴 때는 양지바른 툇마루에서 머리를 깎았다. 두 손을 사용하는 이발 기계였다. 벌겋게 녹슨 이발 기계의 윗날을 숫돌에 갈아서 아랫날 위에 얹고 나사를 조여서 사용했다. 형님이 앞에서 머리를 꽉 잡아 주면 아버지께서 깎기 시작하셨다. 이발 기계를 뒷머리에 대는 순간부터 머리가 뽑히는 아픔이 시작되었다. 머리카락이 잘려지지 않고 아랫날과 윗날 사이에 끼어 버렸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여러 번 애를 쓰셨지만 머리카락은 도무지 잘리지도 빠져나오지도 않았다. 너무나 따가워서 소리를 지르고 싶고 달아나고도 싶었지만 눈물만 줄줄 흘릴 뿐 꼼짝도 못했다. 머리를 잡은 형님 손의 힘이 세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정해 놓은 범위를 이탈할 수 없었다. 내 행동의 범위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사각형 신문지보다 좁았다. 아버지는 조임 나사를 풀어서 끼어 버린 머리카락을 빼내고 다시 조여서 머리를 깎으셨다. 머리를 다 깎을 때까지 이러한 일은 여러 번 되풀이되었다. 머리를 깎을 때마다 이러한 일은 되풀이되었다. 내 눈물도 되풀이되었다.
사람들은 내 못생긴 얼굴과 곱슬곱슬한 긴 머리를 보고 교과서에 나오는 서양의 유명한 예술가 누구 혹은 철학자 누군가를 닮았다고 말했다. 나아가 예술가 혹은 철학자를 닮은 모습으로 내 삶이 예술적이고 철학적일 것이라고 유추해 버렸다. 낯선 모습이 사람들에게 엉뚱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 것 같았다. 나도 별로 싫지는 않았다. 나는 머리가 길기 전에도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철학적인 삶을 좋아했다. 비로소 내 삶과 사람들의 기대가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을 했다. 유화를 그리면서 살았다. 힘에 버거운 철학책을 읽었다. 어설프게 글도 썼다. 머리가 한두 가닥씩 하얗게 세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멋있다고 말했다. 나는 점점 더 멋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삶이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버렸다.
아내의 시퍼런 가위질 소리와 함께 잘린 머리카락이 목덜미에서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흉측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감촉에 몸서리가 쳐진다. 어금니를 꽉 물어 참는다. 내 머리를 자를 수 있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결혼하고 몇 달 지나서 아내가 내 머리를 잘라 보겠다고 나섰다. 내가 내 머리를 자르는 모습이 아내에게는 그렇게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시쳇말로 그까짓 것 대충 잘라도 음악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는 머리였으니까 아내인들 못 자를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처음 아내가 내 머리를 자를 때에는 옷을 입은 채로 목에 보자기를 단단히 두르고 거울까지 준비했다. 다음에는 내의를 입고 보자기를 적당히 둘렀다. 그다음에는 보자기만 둘렀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없다. 처음에는 거울도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아내에게 이래라저래라 했다. 아내의 가위 소리는 고분고분했다. 지금은 거울이 없다. 아내가 거울이다.
뒷머리를 대충 자른 아내는 내 얼굴 정면으로 온다. 손가락 끝으로 내 턱을 이리저리 돌리고 올렸다 내렸다 하더니 앞머리를 한 가위 자른다. 흰머리가 더 많은 머리카락 뭉치가 시든 목련처럼 힘없이 떨어진다. 나는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사각형 신문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조심을 한다. 내 머리카락은 사각형 신문지 안에 있어야 한다. 머리를 자르는 내 삶은 아내가 정해 준 사각형 안에 있다. 아버지께서 정해 주신 범위보다 좁다.
나는 예술가처럼 되기 위해서, 철학자처럼 되기 위해 사각형 신문지에서 도망가지 못한다. 머리카락이 거뭇거뭇 흩어진 사각형 신문지 위에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가죽 군모
군모는 군인들이 쓰는 모자지만 군인들만 쓰는 모자는 아니다.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그리고 여자도 쓴다. 말만 군모이다.
점심으로 먹은 스파게티의 딱딱한 면발이 허약한 위장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트림을 시도해 보지만 시원치 않다. 가이드는 우리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피렌체의 좁은 골목 끝에 있는 가죽 제품 전문 면세점 안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군모를 만나게 될 줄은 미리 알지 못했다.
가죽 냄새가 지독하다. 부정한 늙은 여자의 성욕같이 질기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시간을 낭비한 노숙자의 구취처럼 지겹다. 냄새가 몸속에 침전되면서 피로가 밀려온다.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귀가 윙윙거린다. 동물의 가죽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악어가죽은 악어가 된다. 양가죽으로 만든 구두는 양으로 변한다. 호랑이도 달려 나오고, 돼지도 보인다. 매장 안은 동물들로 우글거린다. 동물을 학대한 기억은 없지만 괜히 두렵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데 군모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앞줄 가운데 있는 검은색 가죽 군모이다.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군모 중에서 하필이면 그 군모가 그렇게 느껴진다. 걸음을 멈추고 군모로 다가간다. 나에게 우연하게 눈길을 보낸 존재에 대한 답례이기도 하고, 내 오래된 고독을 달래 보겠다는 작은 희망이기도 하다.
군모에만 열중해야 한다. 다른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 나와 관계를 맺은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지독한 가죽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무섭게 달려들던 동물들의 환영도 사라지고 없다. 오직 나와 군모만이 남는다.
내가 보는 군모는 내가 보기 이전의 군모가 아니다. 나에 의해서 존재하는 군모이다. 누구나 보는 보편적인 사물이 아니라 내 사유 안에서 창조되는 세계이다. 군모를 살며시 들어 올린다.
군모와 다른 물건들 사이의 위치가 바뀐다. 군모 위에 있던 물건들이 군모와 가까워져서 수평을 이루다가 군모 아래로 내려간다. 군모 아래 있던 물건은 군모에서 더욱 멀어진다. 팔을 쭉 뻗어 올리니 내 눈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권력처럼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팔을 내리니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온다. 군모는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절대를 추구하지만 절대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에 불과하다.
군모는 모자이다. 머리에 쓰는 물건이다. 물을 담거나 나비를 잡는 데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쓸 수 없는 모자는 이미 모자가 아니고 예술 작품이거나 폐품일 뿐이다. 예술 작품은 존재의 진리가 빛나도록 존재의 세계를 건립해야 한다. 폐품은 이름에서 해방된 존재이다. 모자챙을 잡아 꾹 눌러쓴다.
좀 작다. 뒤쪽에 붙어 있는 끈을 풀어서 머리 크기에 맞게 둘레를 맞추니 훨씬 편안해진다. 눈을 부릅뜨고 입술에 힘을 주어 강한 모습을 해 본다. 나에게 침입한 군모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본능적인 저항이다. 위엄을 부려서 침입자가 굴복을 하기를 기다린다. 군모도 역시 내가 군모에 맞추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의 치열한 투쟁은 서로를 이해하고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서로를 무너뜨리려는 의도일 수는 없다.
어쨌든 군모는 내 일부분이 된다. 나는 군모를 쓴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공연한 존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나도 역시 공연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삶은 필연성이 없는 존재가 필연성을 찾는 부조리한 역사이다. 군모의 의미를 찾는 일도 다만 부조리한 역사의 단편일 뿐이다.
거울로 다가간다. 거울 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묻는 것 같다. 군모를 쓴 엉뚱한 모습을 보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불안해하는 것 같다. 멋쩍게 서서 입술을 실룩대는 모습이 그리 마음이 들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 번도 만족해 보지 못한 모습이 오늘이라고 특별히 다를 바 없다.
군모를 쓰면 군모를 쓰고 사는 사람의 삶이 된다. 군모를 쓴 사람은 전쟁을 하는 삶을 산다. 현대인들은 전쟁의 유혹을 게임으로 극복한다. 군모도 쓰지 않고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서 전쟁을 한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군모의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군모가 번들거린다.
번들거림은 나에게 본능적인 거부 혹은 혐오 같은 것이었다. 물체를 감각하면서부터 번들거림은 역겨웠다. 하얀 무명 저고리에 달린 동그란 검정 단추가 번들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까닭 모르게 몸이 뒤틀렸다. 비굴한 인간의 눈에서, 부패한 부자의 이마에서, 오만한 자의 입술에서, 건방진 자의 뱃살에서 그리고 사치스런 여자의 허벅지에서 반사되는 번들거림을 보면 구토가 느껴졌다. 번들거림에 대한 경멸이 군모를 찢으라고 더욱 부추긴다.
54유로! 군모를 찢으려다가 가격표를 보고 제자리에 놓는다. 가격표는 내가 아직 군모를 찢을 권리가 없음을 경고하는 기호이다. 54유로를 지불하기 전의 군모는 내 소유가 아니다. 내 군모가 되기 전에 찢는 것은 단순히 군모를 찢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를 찢는 부질없는 행위이다.
매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직 가죽에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 여기서는 가죽의 광채, 감촉 그리고 냄새만이 유일한 현실이다. 가죽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가죽이면 그냥 가죽이지 이렇게 질기게 매달리지는 않는 것 같다. 내 별난 습관이 고급스러운 가죽 제품에 억지 상처를 남기고 없는 허물을 씌우는 것 같다. 계산대로 가서 서툰 말로 모자를 산다.
나는 이제 군모를 산 사람이다. 매점에 들어올 때는 군모를 사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군모를 샀다. 처음에는 존재에 대한 배려와 내 고독을 위로하기 위해 군모로 다가갔는데 결국에는 군모를 찢기 위해 군모를 샀다. 뒤죽박죽이다. 살다 보면 이런 황당한 일도 있는가 싶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와서 군모를 찢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에는 틀림없이 군모를 찢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결코 54유로가 아까워서 변심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군모가 너무 멋지다.
존재는 단지 거기 있다. 인간의 존재 이해가 변할 뿐이다. 인간은 변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화상
느닷없이 캔버스를 편다. 내 서툰 그림 솜씨는 세상이 다 알지만 그래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차마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더욱 가관이다. 내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못생겼지만 멋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듣기 좋으라고 한 그 말이 정말 듣기 좋았다. 어리석을 만큼 순진한 나는 그 말에 속아 내가 멋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진짜 멋있는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멋있는 사람이다. 삶의 아름다움이 얼굴에 드러난 사람이다. 나는 그때 그것도 몰랐다. 그만큼 행복했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물감 냄새가 새롭다. 나이프가 팔레트와 캔버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면서 면을 만들어 간다. 아직은 그저 즐겁기만 하다.
모자 그림자에 가린 쌍꺼풀이 없는 작은 눈을 그린다. 작은 코를 그린 다음 비쭉거리는 입도 그린다. 볼과 턱을 마무리하고 귀까지 그려 넣은 다음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본다.
낯선 사람이 거기 있다. 아무리 마음이 받아들이라고 우겨도 눈이 용서하지 않는다. 내 얼굴이 아니다. 금방 링컨이 되었다가 금방 간디가 된다.
눈의 위치를 좀 올리고, 코를 더 줄이고, 입술을 더 밝게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곽을 고친 다음 모자까지 그렸다. 다시 바라본다. 이제는 고향 마을 칠복이 형님 꼴이 되어 버렸다.
손을 댈수록 내 얼굴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내 삶이 살아갈수록 내가 꿈꾸던 멋있는 사람과 달라지는 것과 같았다. 시작은 그럭저럭 볼만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답에서 멀어져 갔다.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음악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학문도 하고, 글도 썼지만 나는 지금 전혀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 삶은 갈수록 궁핍해지고, 옹졸해지고, 무거워졌다.
그림의 양심은 스케치이다. 스케치를 잘하지 못하면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언제나 우연만을 바라게 된다.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무작정 닥치는 대로 살다 보면 삶을 망치게 된다. 인생은 도박이 되어 버린다.
나는 자화상을 그리다 말고 나이프로 긁어서 없애 버렸다. 다음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내 삶은 지울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그것이 50대 후반의 내 슬픔이다.
의자
내 방 책상에는 의자가 없다. 이사 온 지 벌써 아홉 달이 되었는데 의자가 없다. 여태 간이 의자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도 의자를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
아내에게는 의자 사러 간다는 말은 안 했다. 갤러리에 그림 구경 간다고만 했다. 아내는 그림을 좋아해서 따라나섰고 나는 의자를 사기 위해 앞장섰다. 같은 차를 타고 같은 길을 걸어도 가는 곳은 서로 달랐다. 먼저 10층 갤러리에 갔다. K씨의 그림을 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보았다.
K씨의 그림은 수줍고 애매하고 어눌하여 차라리 어수룩해 보였다. 밝은 곳을 밝게 그리지 않고, 어두운 곳을 어둡게 그리지 않고, 곧은 것도 곧게 그리지 않고, 큰 것도 크게 그리지 않았다. 아메바 같은 원형 동물의 무표정한 일렁거림이 있을 뿐 원색의 정열과 대비의 긴장 따위는 도대체 없었다. 덜 그린 그림 같았다. 마저 그려야 하는 그림 같았다. 왜 마저 그리지 않았을까? 무엇이 K씨가 여기에서 멈추도록 하고 말았는가!
K씨는 마저 그리는 것은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끝은 외로움이며 절망이며 허무이다. 마저 그린 나무는 더 클 수도 없고 더 작을 수도 없다. 마저 그린 하늘은 더 높을 수도 없고 더 푸를 수도 없다. 덜 그리는 것은 아직 가능성이며 존재성이며 희망이다. K씨는 천 년을 사는 나무를 그리워하고, 더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갈망했을 것이다.
K씨는 또한 마저 그리는 것은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물과 현상은 이미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는 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규정된 의미는 그가 인식한 진의 세계이며, 그가 확신한 선의 세계이며, 그가 체험한 미의 세계이다. 삼각형은 그의 삼각형이고, 사각형은 그의 사각형이다. 노랑은 그의 노랑이고, 파랑은 그의 파랑이다. 덜 그리는 것은 겸손이다.
K씨는 어쩌면 소외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꿈을 잃어버린다. 이루어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며, 이루어진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마저 그리는 것은 결국 잃어버리는 것이며 대상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K씨는 자기의 의미를 자기 안에 붙들어 두고 싶었는지 모른다. 혹은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을 자기 것에 대한 학대로 왜곡한 것일 수도 있다.
K씨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7층 가구 코너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의자 사는 일을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의자가 없어서 못 샀는지, 사고 싶지 않아서 안 샀는지, 그것도 아니면 일부러 안 샀는지 나에게 물었다. 문이 닫히면서 10층이 9층으로 다시 8층에서 7층으로 바뀌더니 문이 열렸다. 고급 가구의 화려한 반사광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의자가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의자를 사러 와서 의자를 살 수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의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사는 작은 일에서조차 끝의 외로움을, 규정된 의미의 폭력을 그리고 소외의 아픔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한 편의 예술수필을 위하여
강 기 석
글쓰기를 마지막 순서에 두고 살았다. 이리저리 살아 보고 그때 쓰려고 미루었다. 살다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생업에 충실하고 남은 시간에는 열심히 놀았다. 책을 읽고, 음악에 몰두하고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도 놀았다. 참 바빴다. 부족한 능력으로 바쁘게 놀다 보니 남과 어울릴 시간은 많지 않았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웃고 울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외롭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그저 즐거웠다.
쉰을 갓 지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삶의 의미를 깨달은 것도 아닌데 벌써 글을 쓰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 바닥이 허전해지더니 문득, 더 늦으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초조해졌다. 글을 쓰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내가 나에게 변명했다.
마음속에는 늘 ‘나는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유치한 자만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국어 선생님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을 순진한 나는 사실로 굳게 믿었다. 그 덕분에 수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도하는 마음으로 수필을 썼다. 수필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 수필이 상정하는 최고의 가치가 내 삶을 통해 구현되기를 바랐다. 수필과 삶이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아니라 삶이 곧 수필이 되고 수필이 곧 삶이 되는 신화적인 삶을 추구했다. 수필 작품은 그런 내 삶과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었다.
수필로써 내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세계에 함몰해 버리는 위험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이고 폭넓은 사유와 성찰을 얻는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철학수필의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삶을 이야기하기보다 형이상학적인 언어와 논리에 얽매인 글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내 독서 이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교과서만 읽었다. 입시 공부 때문에 책 읽을 시간도 없었지만 도대체 주변에 교과서 이외에 책이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가끔씩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엉뚱하게도 철학이었다. 이야기부터 읽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그런 종류의 책부터 가까이한 것은 삶의 근원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이었다.
나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다. 잘 갖추어진 집안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지도 않았고, 학비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부모 형제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불편 없이 귀하게 자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린 내 가슴에 허무가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에 그것을 숙명이라고 이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삶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책을 읽었다. 독서를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여 허무를 극복하고자 했다.
결국, 나는 수필이 아닌 인생론을 썼던 것이다. 이성적 사유에 치우친 논리적인 글이었다. 딱딱한 논리는 불친절하고 불편했다. 소수의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생각의 끄나풀로는 좋은 수필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은근히 즐겼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글이야말로 차라리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글이 개성이며 존재의 이유라 여겼다.
내 오만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수필을 읽으면서 수필에서 감성적 사유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성 중심의 수필을 고집할 의지가 없어져 버렸다. 생각이 중심이 되는 이성적 수필에서 감성 혹은 정서에 기반을 두는 감성적 수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를 나눌 수 있는 수필이 좋은 수필이 될 것 같았다. 자아가 경험한 구체적이고 진솔한 감성으로 독자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런 변화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내 정신의 지주였다. 나에게 아버지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지엄한 존재였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살아 계실 때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지는 따뜻했다. 둔감한 아들은 엄한 눈길 속에 감추어져 있던 큰 사랑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 이야기를 썼다.
어머니는 내 감성의 고향이었다. 일상에 지친 내 영혼이 편안히 쉴 곳은 어머니의 품이 유일했다. 어머니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고, 원수마저도 용서하는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식을 끝없이 신뢰하고 자식을 위해 무던히 참았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잠들 때가 많았다. 그 이야기도 썼다.
몇 년을 그렇게 쓰면서 수필의 문학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성에서 감성으로 바뀌었다고 좋은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형식이 아름답지 않으면 문학일 수 없었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필요했다. 수필의 예술성은 수필의 형식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음악의 체험을 수필로 가져왔다. 구성의 단조로움과 의미의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음악 구성하는 다양한 형식을 수필에 접목했다. 다양한 리듬과 박자에서 시적 운율과는 다른 산문적 호흡을 찾아보았다. 음악의 조성을 차용하여 수필에서도 분위기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악기의 소리가 전체의 흐름에 조화롭게 스며들 듯이 문장 하나하나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다듬었다.
그림의 이력도 수필로 가져왔다. 그림이 색을 빛나게 하는 일이라면 수필은 언어를 빛나게 하는 일이다. 색을 선택할 때 명도와 채도를 고려하듯이 어휘를 선택할 때는 낱말의 뜻만이 아니라 느낌에 맞는 말을 선택하였다. 그림에서 분명하게 그려야 할 곳과 흐리거나 대범하게 처리할 곳을 구분하듯이 수필에서 세밀한 묘사가 필요한 곳은 분석적으로 나타내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거나 거칠게 다루었다.
글공부의 경험도 수필로 가져왔다. 수필은 결국 지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서를 바탕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수필이지만 글을 조직하는 일은 체계적이고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지적 활동이 필요했다. 논문을 쓰듯이 내적 필연성과 외적 논리성에 바탕을 두고 글을 완성했다.
지금은 시가 서사로 회귀하고, 소설이 서정으로 회귀하는 시대이다. 시와 소설이 변증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나는 그 진화의 방향을 수필이라고 본다. 즉 시와 소설은 수필을 향하여 변증법적 진화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문학이 수필로 수렴되면서 시와 소설에 기생하던 수필이 시와 소설을 포섭하는 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믿음이다.
수필이 시와 소설을 아우르는 보다 문학성이 높은 장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회고적 낭만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필에 혁명이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필에도 소설적 허구에서 발전한 수필적 허구가 필요하고, 시적 메타포가 발전한 수필적 메타포가 절실하다. 수필 스스로 수필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수필이 수필 속에 갇혀 있으면 꽃을 피울 수 있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예술수필을 쓰고 싶다. 소설과 시를 넘어서는 좋은 수필을 쓰고 싶다. 그러나 내 수필은 여전히 진부하다. 이대로 간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서에 글쓰기를 선택한 내 자존심이 지켜지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