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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저는 세이랑 처음만났어요
그때 저는 코카스파니엘 이라는 견종이름도 모르는채
이렇게 생긴 개의 이미지를 검색하고 찾고
혹시몰라 프린트해
동네애견샵에 가서 이렇게 생긴 이런칼라의 코카스파니엘을
구해달라 부탁하고 한번은 맘에안든다고 캔슬하고
그 다음번에 온 두마리의 여아중
누구를 데려갈까 요리조리 살펴보다 고민하는 제게
아줌마는 불러서 오는아이를 데려가라 하시길래
불렀더니 이 아이가 제게로 달려왔죠
그렇게 만났습니다 세이랑 저는요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하던 붉은악마 빨간티를 입은 세이)
이 예쁜아가가 집에 오자마자 어색했는지 앉아서 꿈적도 앉더라구요
어쩌나 보고있었더니 앉은채로 고개를 푹 숙이길래 뭐하나 하고 옆에서 봤더니
그대로 졸더라구요
너무 어색해도 너무 졸리웠나봅니다
그날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어디에 있다 내게로 왔는지
얼마나 배고팠길래 사료만 보면 (몇일동안은)눈이 휘둥그래져 미친듯이 달려들던 아이
(집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길러 입양보내본 적이 있는데 그아이들은 그러지 않았거든요)
우리세이는 집에 오고 일주일도 안되어 홍역판정을 받았답니다
엄청나 게빠른 조기발견과 위에서 말했던 엄청난 식성
먹을것에 대한 집착덕분에
(적절한시기의 치료도 있었지만 제가 주는것은 가리지않고 뭐든 엄청 잘 먹었거든요
항체생성에 도움이 크게 되었을테니까요)
특별한 발병증세를 겪지않고 완치했답니다
그리고 이상한 종기 들의 자질구례한 잔병치례를 두번 겪으며
그럼에도 잘 성장했고
(내게 윙크를 날리던건 아니었는데 사진으론
윙크사진이 꽤나 있어요)
이런깜찍이 소녀과정을 지나왔답니다
(일명 백수삼촌 파란색의 세줄 추리닝을 입고
당시 유행의 미끌리 선그라스로 멋을낸 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사랑이라고
맨날 물고빨고 ^^
그래서 였을까요
우리세이도 제 마음과 같아보였어요
제가 없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양
저를 의지했답니다
우리는 어느덧 서로에게 없으면 안될 존재가 되고
그렇게 언제부턴가 교감을 하고 있었어요
전 세이의 건강상태가 마치 텔레파시처럼 전해져
알게되는듯 세이가 6살 되는해에 유선종양을 좁살 크기에 발견하게 되었고
수술을 하면서
유선제거 수술과는 다르게 개복수술을 하는
중성화수술을 함께 했습니다
중성화 수술후 자궁충농증이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만약 중성화 하지 않았다면 6개월 이내에 발병했을 거라는 소견이 있었어요
그래도 참 다행이었죠..
(참 마음에 들어하던 러브보트)
수술후 우리세이는 바르게 회복했고
또 우리는 별다르지 않은 행복한 나날들을 지내다
다음해에 우리세이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있었어요
부모님집에 갔다가 비오는날 집밖에 혼자 나가 집을 잃어버렸지요
(참고-부모님집은 낮은담의 전원주택인데 쉬아하러 정원에서 놀다
엄마가 잠든사이에 그랬답니다)
만으로 6일을 찾아다녔습니다
도시와는 달라 목격자 제보자 하나를 만나는것조차 힘이 들었고
전단지붙일곳도 많지 않아
제가 타는 자동차에 전단지를 도배해 찾으러 계속 돌아다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등 모든방법을 동원하다
꿈을 꾸고 그날 아침에 찾았었어요
집에서 500m쯤 떨어진 야산에서 저희가족이 세이야~ 하고 부르니 짖으며 응답하더군요
기적같은 상봉을 했어요
온몸에 소진드기가 득실득실해가지고 ...
바로 병원가서 털밀고 약욕하고 프론트라인하고 ...
(첫 외박으로 놀러가던날 휴게소에서 잠이든 세이)
그리고 1년후 우리에겐 또 슬픈일이 생겼어요
일때문에 부모님곁을 떠나 혼자 나와있었는데
그래서 이번만은 세이의 건강을 빠르게 알아채지 못했어요
잃어버렸을때 찾아다니며 기도를 했지요
이렇게 헤어질수 없다..
1년만이라도 더 같이 살게 해달라고
내게서 세이를 이런식으로 빼앗지 말아달라고
인사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이런경우는 없는거라고
그때 제 기도를 정말 그대로 잘 들어주셨는가봅니다
복부에 동그랗게 공처럼 약간 불러온 배를 보곤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 촬영후 종양일지 .. 뭐일지... 라는 애매한 소견을 내놓곤
다음날 원장님 계실때 다시 나와보라는 얘길 듣고
다음날 다시 갔더니 원장이란 사람이 종양이고 아무것도 해줄수 있는 치료가 없으며
더 고통스러워 하면 먹이는약외에 주사제가 있으며 더 고통스러워하면 안락사하라더군요
6개월전 그병원에서 2차유선제거 수술을 받았었는데
6개월만에 손쓸수 없는 병에 대한 소식
해줄게 없다는 소견...
믿을수 없는 빋기싫은 소식으로 이틀간 고민을 하다
해마루에 갔습니다
소견서 써달라니 쭈삣쭈빗 변명도 아닌 기분나쁘다는듯 자기네들 진단이 틀리지 않다는 원장님
그냥 용품이나 열심히 파시죠 싶은 마음이에요
(귀마사지를 좋아하던 세이)
병원 옮기고 다시 모든걸 검사했어요
배에서 불러오는 종양때문에 장기들이 눌리는지 힘들어 했었어요
검사결과 배에있는 종양은 70%가 물이라더군요
빼주었습니다 불렀던 배가 들어가고 세이는 변도 잘보고 심지어 활발하게 뛰놀기까지 했어요
우선은 다시 차오르는 시간이 빠르지 않길 기대해보자 했는데 이틀만에 다시 차올랐고
그럼 이틀후 또 빼주고를 반복하다 주치의 선생님께선 수술을 해보자 하셨어요
위험하지만 시도해보자 했지요
당시 3개의 시나리오가 있었답니다
세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시간이 2시간이 지나가면서 나쁜시나리오 둘중 한개는 아니구나..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제발..잘되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때 세이는 복부에 13.5cm크기의 종양과 폐에 종양이 전이해 있었습니다)
3가지의 시나리오(2가지는 안좋고 1가지만 성공적인)중
성공적인 시나리오로 진행되었고
세이는 수술후 회복기간을 거치고 항암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식이요법을 했고
사료는 일체 먹이지 않으며 갖가지 항암채소들과 무항생제 닭가슴살로 반생식을 해주었습니다
그외 상황버섯부터 후코이단,아마씨&커티즈치즈,스완슨허브 등의
여러식단과 스케줄을 항암치료와 병행했구요
전 카톨릭신자인데 묵주청원기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공을 엄청 좋아하던 세이)
암은 치료도 물론 중요하지만 치료의 목적은 삶의질 향상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덜 고통스럽게 보내줄수 있고 살아있는동안 덜 고통스럽게 해주는데에 있다라고요
그당시 어딘가에서 보았던 글인데..
암세포도 사랑하라 하더군요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몸속의 변이했으나 세포중의 하나이니
그 암세포까지도 사랑하라
저도 그래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암세포들에게 사랑한다 .. 내가 사랑하는 아이니 아프게 하지 말아다오..
부탁한다...
(놀자고 내게 공을 물고오는 세이)
암은 체력싸움이라 하더군요
사실상 암으로인한 사망보다도 심하게 야위고 체력이 떨어져 사망한다고도 하구요
우리 세이는 총 8차의 항암치료를 했어요
그때까지도 컨디션은 많이 좋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보면 아픈.. 더구나 시한부일줄은 상상도 할수없을만큼요
8차 항암후 더이상의 효과가 없어 제 동의후 임상실험치료 (살모넬라 표적치료) 에 들어갔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어떤것이 옳았을지...
컨디션,체력이 받쳐주었기에 치료를 계속했던 것이긴 한데...
그아이를 더 힘들게 했을지.. 그래도 그로인해 생명연장과 삶의질에 도움이 되었던것인지는 ...
치료중 나중에는 전이되었고 뇌로도 전이하며 떠나기 한달반 전쯤부터는 발작증세도 보였습니다
발작중에는(간질환자와 같은 발작) 수건을 입에 물리고 안구를 압박해주며 심장부위를 마사지 해주었어요
그러면 발작중에 이빨에 의해 입안이나 혀에 생기는 상처를 막을수 있고
안구압박은 발작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줄여줄수 있다고 합니다
심장마사지는 발작중 무리가 가지않게 도움이 된다 하네요
저기 복도끝에서 선생님이 안고 나오시면 제게 달려오려고 난리가 나던 아인데
마지막 입원후 퇴원때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두팔벌리고 앉아 부르는 제 옆을 그냥 스쳐지나갈때..
그 아이의 머리까지 전이해버린 암세포들이 참 원망스럽더군요..
(창밖을 즐겨보던 세이..)
(마지막여행 바닷가에서 내게 뽀뽀하는 세이)
우리는 수술에 성공해서 여행을 갈수 있었고
세이랑 했던 약속들중에 바다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킬수 있었습니다
세이는 살아있는동안 잘먹었고 잘 놀고 나와 산책도 했습니다
치료의 과정들이 고통스러웠는지..그것은 우리가 그리고 세이가 누릴수 있었던 것들과 바꿀수 있는것이었는지는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내 관점에서겠지만 세이는 견뎌주었고 그동안 밝았으며 힘차게 생활했었다는 것뿐입니다
사람들마나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느경우는 항암치료가 오히려 안좋다고도 하지요
결과는 되돌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결정할수 있는것이 아니기에 알수 없는거 아닐까요...
보호자 에게는 치료의 방법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그에앞서 병원을 선택하는 지혜또한 필요하다는걸 알았습니다
보호자가 어떤 병원으로 가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 그것이 내 사랑하는 애견을 1개월을 오직 진통제에만 의존하며
고통스럽게 살다가게 하기도
9개월을 뛸수있고 맘껏먹을수 있으며 놀고 즐기며 살수 있게도 해준다는것을
내 애견이 비록 개이지만 그저 동물에만 지나지 않고 들을수 있고 감정을 가진 개체로 존중받느냐 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요 (제 경우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병원앞 차안에서 또 윙크사진)
(날씨 따뜻해지는 봄날 나는 책읽고 너는 잠들었다
엄마가 손수떠준 담요속에서 낮잠에 빠진 세이)
(떠나기 약 2주전의 사진예요
어쩌면 제 사랑이 지나쳐 쉽게 놓아주질 않아
세이는 하루라도 더 버텨내느라 더 힘들지 않았을까 미안함 맘이 들어요)
그렇게 지쳐보이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잘먹고 지냈는데
마지막날은 많이 괴로워했어요 계속 비명같은 신음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보내줘야 할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 연락해서 안락사하려고 병원 도착후 산소호흡기 씌우자 마자 혼수상태로 들어갔어요
나를위해 9개월을 열심히 싸우며 버텨주었던 그 아이의 마지막 배려였는가 봅니다
눈뜨고 있었다면
괴로워하고 있다해도 안락사 하는것은 그리고 안락사후 푹 쓰러져버릴 세이를 보는 제게도 힘든일이었을테니까요
9개월을 준비했는데도 힘든일이예요 이별이란건...
임상실험치료 결과를 위한 조직검사 시신기증에 동의했으므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뒤 화장되어 일주일만에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잉글리쉬 코커스파니엘 세이는
길면 1개월 시한부에서 8차의 항암과 2차의 임상실험치료를 받으며 (당초 주치의선생님께선 좋은체력을 가만해 길면 2차정도의
항암치료를 기대하셨다고 합니다) 만으로 9개월하고 보름을 더 살다 9살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약간 비만견이었던 세이의 몸무게는 가는날까지 13kg을 유지했구요 떠나는 전날까지 식욕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체중유지와 체력유지는 상당히 드문경우라 하더군요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저희때문에 나오셔서
혼수상태로 고요해진(고통스러워 하지 않으니 보내주기 싫어지더군요) 따뜻한 세이를
안고있을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주시고
몇달뒤 저희를 기억하시고 추천하셔서 저희사진을 시계로 만들어 보내주시고
임상실험치료 상담때 세이 듣는다고 처치실로 먼저 보내놓고
사후 시신기증에 대한 동의를 구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시던
해마루 동물병원의 임은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수 있었고 더 많은걸 함께할수 있었습니다
(안녕...... 내 사랑.. 내 아가....
내 젊은날의 가장 따뜻했던 내곁의 생명..)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너를 그렸다...)
아직도 보내주질 못하고있어요
어떤날은 언니는 잘 지내고 있어 ~
우리세이도 잘 지내지? 하고 혼자 앞에서서 얘기해주다가도
어떤날은 어떻게 나를 두고 혼자 갔느냐고
나도 데려가라고 합니다 ^^;
그리고 어떤날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그리움에
저미는 가슴으로 서서 바라만 보기도 하구요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주세요
한번더 안아주세요
지금도 약속해주세요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주세요
추억을 만드세요
할수있다고 해보자고 응원해주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아름답게 이별하세요
만남은 헤어짐이 있기에 소중하고 헤어짐이 있기에 또 만남이 있다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시 만나기위해 지금 잠시 헤어집니다...
그리고 저는 기적을 참 많이도 기도했습니다 ...
그때에도 그리고 이제와서도 기적이라 하기엔 작았을지 모를 그 기적에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착하게 살려고 오늘도 노력합니다
우리 세이를 추억하며 제가 그린 초상화 예요
전요 우리 세이만! 잘그려요^^
내게 소중한것들을 많이 가르켜준 세이
너로인해.. 내 젊고도 어렸던 시절은 따뜻해질수 있었어
무엇을 걸어서라도 지켜주고 싶었고 살리고 싶었단다..
내 앞으로의 삶중 반 그이상을 내놓아 네게 돌릴수 있다면
그러겠다 기도했단다..
내가 기쁠때 함께 기뻐해주고
내가 외로울때 항상 곁에 있어주며
나밖에 모르던 아이
내가 울때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내옆에앉아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며 위로해주던
그렇게 항상 곁을 지켜주던
착한 우리세이
너의표정,너의눈빛,너의몸짖,너의유머에
그동안 나는 참 많이 웃으며 살았구나..
내게 예쁜추억 많이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직도 몰랐을거야 내게 정말 소중한게 무엇이었을지
알게해줘서 고마워
그 옛날 내게로 와줘서 나를 만나줘서 고마워
언제나 너의두눈은 나를 향해 있었지..
나를 그렇게도 많이 사랑해줘서
너무 고마워
사랑한다 세이야
평생 동물을 키우면서 교감할수 있는 반려동물을 만나는건 꽤 어려운 일이라고 해요
교감.. 그거 생각해보면 어려울것도 없는거 같은데 말이죠
그러나 또한 공감하는 바입니다
애완견, 반려견 그 이상의 교감은 특별합니다
만났다면 .. 그런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것은 참 힘든일입니다
누군가는 개일 뿐이라 말하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오랜친구,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것과 다를게 없습니다
교감하는 반려견을 잃는다는 것은요
단순히 내가 키우던 개를 잃는것과는 다릅니다
혹시 비슷한 아픈반려견의 보호자님께서 이글을 보고계시다면
힘내세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수 있다면 나는 그길을 택하고싶어~ 란 가사처럼
짧은 시간일지라도 우리에게 아름다울수 있다면
너무나 소중한 시간..순간들이라면
그것또한 행복이 될수 있지 않을까요?
모르고 흘려보내는 많은 시간들보다는
무언가를 할수있기에는 가장 오랜 시간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네 모든 삶에도 해당할테구요
제 글이 너무 길었네요
여기까지 저와 세이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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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슬프면서도 참 공감가네요.. 다른 사람들은 뭐라할지 몰라도 자식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정말 실감하고 있는중이랍니다. 제가 죽을때까지 못잊을테니 말이죠.. 모든 사람들이 주연님처럼 반려견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의 사랑을 듬뿍받았으니 하늘나라에서도 그 사랑으로 가슴 충만하게 아프지 않고 잘 뛰어놀고 있을꺼에요..
아프지 않고 잘 뛰어놀고 있겠지요 ^^ 중간중간 제가 뭐하고 살아가나 내려다 보기도 하면서 ^^
모든 사람들이 반려견에게 최선을 다해준다면 좋겠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문화때문에 그렇지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참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을 반려견 이상으로 가족처럼 늙고 아프고 볼품없을때에 더 정성을 다하는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 여기 회원님들이나 다른 반려견과 함께하는 까페의 회원님들도 각자의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저와 다르지 않을겁니다 ^^
글을 읽어내려가다..그만..저도 모르게 눈물이나서..그만..펑펑울고말았네요..너무쉽게..포기한건 아니었는지 큰병원으로 가보지도 못하고 못난엄마 때문에 힘들었을..춘하랑 아라생각에 너무 미안한 하루가 될거같네요..마지막까지..세이를 위해서 배려해주고 끝까지 그 마음 포기하지않고 믿어주신 세이엄마님 대단하세요..이별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해도 쉽지는 않죠..지금 곁에 있는 우리아이들 한번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자구요^^ 삼일아~사랑해~♥♥♥♥♥
전.. 지금은 코카를 키우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카가 참 너무 많이 그리워요...
정확히는 우리 세이가 그리운 거지만.. 여기서 다른 회원님들의 아이들을 보면서 세이랑 닮은 아이들 사진을 보면
코카가 그립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된다면 다시 코카를 데려오고 싶어요 .. 그런 그리운 마음에 저와 세이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담아본건데.. 자책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상황이나 사정이 있는거잖아요
어떻게 했느냐보단 그 마음이 더 중요하겠죠.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을 쉽게 할순 없는 거니까요
참 짧다면 짧은 생인데 아이들한테는 더 살고싶은 욕심보다는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클거라 생각되요
...세이의 마지막 잠든 모습이 참 평안 해 보이네요.. 엄마의 사랑을 그대로 품고 평안히 떠난것만 같아요.. 지난 9개월이 물처럼 빠르게 느껴지겠지만 엄마의 지극정성 사랑이 의학을 넘어 이기고 버티게 해 주고, 세이도 엄마곁을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더해 졌겠지요.
무엇보다 말씀하신대로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 약과 수술등으로 힘겹게 병원 생활을 강요 당하지 않고 엄마곁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 였던것이 큰 힘이 되었을거예요. 추억이라는 글자만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세이와 엄마만의 시간과 기억들 모두..."세이야..." 불러줄때마다 살아 함께 하고 세이에게 들리길 바래요. 사랑스런 세이야...수고했어..
가기 얼마전엔 병원신세도 지긴 했는데... 그런 시간들이 아깝고 아쉬워요.. 면회갔다 제가 돌아갈땐 아쉬워하던 녀석이 선하네요 .. 몇번을 가려다 돌아서 다시 안아주고를 하다 진짜간다고 인사하고 벽뒤에 숨어 봤더니 선생님께서 엄마 진짜로갔어 봐봐 하니까 복도를 내다보던 우리 세이 표정... 나중엔 영화에서나오는 그런 복제가 가능한 세상이길...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기적같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참 많이도 바랬는데요 ^^;
얼마전 항암제의 1000배 항암효과가 있다는 나물종류를 알게되었는데 제일먼저 그생각이 납니다 .. 혹시 그때도 이런거 먹였으면 더 살지 않았을까? 나을수 있지 않았을까?..^^: 이젠 보내줘야 할텐데요..
저도 3년전에 저희집 첫째를 병원에서 보냈어요..사실 이 글은 어제 아침 출근길에 보다가 지하철에서 폭풍눈물흘리느라 댓글인사를 못남겨서 오늘 좀 진정하고 다시 들어왔는데..여전히 눈물이 납니다..^^;; 마음 절절해지는 그리움이 전 지금도 그렇고 저희식구들도 그렇더라구요 그만큼 저희가족안에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숨쉬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이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 추억들 고이고이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세이와 저희 웅이는 같은해에 츨생했네요..2002년생.. 그래서 더 와닿은것 같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 생각해서 기운내시고 건강하세요!! (저흰 지금 2녀석 데리고 살고있습니다~^^)
위의 분들도 모두 위로의 댓글 감사해요^^ 아무리 그래도 지하철에서 우시면 어뜨케요~~~
옆에분 놀라셨겠다 ^^ 전 기운내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게도 다른아이들도 있으니까요
세이가 살다간 흔적이 가슴에 남아 저희 부모님들도 아직도 세이이야기를 하고 이야기하다 웃고,그리워하고,아쉬워하고 그런답니다.. 그런 흔적이 추억이 참 감사하고 아주 큰 선물을 받은것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아프기도 해요.. 그리워서 겠죠 ^^: 꼭 눈으로 보아야 보는거겠습니까? 마음으로 보아도 되겠지요 ^^.........
주연님이 들려주신 세이 이야기....
참느라 또 목이 메여오고 한자한자 놓치지않으려 읽고 중간중간 세이사진 넘 이쁘게 잘보았어요
좋은말씀 잊지않으려 기억하고
내옆에 두 녀석과의 약속을 다시한번 해보게되었어요....
너무도 이쁜 세이와 가족분들의 힘들었지만 그래도 서로가 곁에있어 힘이되었을
넘 소중한 이야기....
사진속 세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운명같은 만남과 피할수없는 이별이라지만
그래도.... 그래도 넘 힘든일인것같아요
글 읽으며 삶의 질이란것에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되었어요
세이야~ 늦었지만 잘견뎌주었다고 토닥토닥해주고싶어요
보석같은 세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