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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
3-1. 상재와 도라지 사건
여름이면 오두막집 주위에는 온갖 잡풀이 우거졌다. 그야말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자랐다. 특히 도라지는 지천으로 깔렸다. 일부러 씨를 뿌린 것보다 더 촘촘히 꽃을 피우고 바람에 흔들렸다. 밭으로 개간을 하지 않은 곳이면 어느 밭둑에라도 보라색 꽃을 높이 들고 흔들어댔다.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하고 낮이면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 들에 난 야생화를 뽑아 뿌리를 심심치 않게 먹고는 했다. 잡풀로 우거진 비탈진 산을 밭으로 만드는 일을 할아버지가 중심이 되어 온 가족이 함께하였다. 일하는 중간 중간에 도라지 뿌리는 새참을 대어주는 것 같았다. 뽑아서 껍질을 벗기고 한입씩 베어 먹었다. 나는 별로 먹은 기억이 없는데 상재는 곧잘 먹고는 했다. 밭을 일구다 보면 저절로 뿌리째 나오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죄다 먹지는 않았다. 큰 것으로 골라 먹었다. 큰 것으로 골라 먹는 데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었다. 도라지가 오래 되어 큰 것도 있었지만 오히려 독초일 수 있었다. 그래서 큰 것이라고 얼씨구 먹지 않았다. 의외로 큰 것이 나오면 할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보인 후 먹어도 되는지 물어서 감정(鑑定)을 거친 후에 먹었다. 하루 이틀 물어 본 게 아니었지만 구별이 쉽지 않았다. 그 식별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고, 먹어도 될 만큼 군침이 돌아도 퇴짜를 맞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는 차라리 먹지 않기로 작은 다짐을 한지 오래였다.
상재는 제 또래들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면서 꽤 많은 실력을 갖춘 듯했다. 어지간해서는 묻지 않고 뿌리를 들어 보이고 척척 껍질을 벗겨서 먹고는 했다.
오전에 밭일을 하면서 정말로 기억에 남을 만큼 커다란 도라지뿌리를 밭두렁에서 뽑아 혼자서 먹었다. 손아귀를 벗어날 만큼 큰 것이었다. 이제껏 그렇게 큰 도라지 뿌리는 본적이 없었을 만큼 큰 것이었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괭이와 삽을 그 자리에 놓고 집으로 왔다. 점심을 먹으로 왔다.
어머니가 준비한 점심을 빙 둘러 앉아 꿀을 맛보듯 먹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할아버지와 나는 윗방으로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논어를 외웠다. 나는 하지 못한 숙제를 하려고 책을 펴는데 마당에서 상재가‘꺽 꺼억’연거푸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재야!”대답이 없다.
“상재야! 왜 그래?”다급히 나가면서 불렀다.
벌써 점심 먹은 것을 죄다 엎드린 입 앞에다 쏟아냈다.
“형! 나, 나 ~ 아 ~ 죽을 것 같아 ~”겨우 말을 이었다.
“뭐! 뭐야!”
다급해진 내가 묻는 소리에 가족 모두가 놀라서 마당으로 나왔다.
“상재야! 상재야!”할아버지도 어머니도‘상재야!’를 외쳤지만 엎드려 널 부러진 상재는 손가락 하나 꼼지락 도 못했다. 난 물을 떠다가 상재 입을 헹구게 하고는 얼굴을 닦고 끌어안았다.
몸이 이상했다! 한 톨의 힘도 없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싸늘했다. 몸이 차가웠다. 늘어진 몸을 안아 들기가 이렇게 힘든 줄을 미처 몰랐다. 휘청했다. 겨우 방으로 옮겼다. 죽음의 다리를 조금, 조금씩 기어서 건너가는 느낌이었다. 숨 쉬는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숨쉬기조차 힘들어 점점 시들었다. 호흡이 가늘어졌다. 할아버지는 장독대로 가서 설날에 쓰고 남은 조청 단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상재야! 입을 벌려봐! 입을”
입을 벌릴 턱이 없었다. 꿀처럼 끈적끈적한 조청을 수저로 떴다. 입을 억지로 벌리고 수저를 넣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조청 액이 목을 타고 꿈틀거리며 내려갔다.
너무도 엄청난 일이 갑자기 닥쳤기에 눈물 흘릴 시간조차 없었다. 조청을 몇 모금 넘겼다고 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그마한 움직임도 없었다. 어머니는 상재가 잠들지 않도록 팔 다리를 주물렀다. 정신을 놓지 못하게 흔들듯이 배를 쓰다듬었다. 둥그렇게 쓸듯이 배를 어루만졌다. 한 시간가량 흘렀다. 잘 보이지 않을 만큼이지만 혈색이 돌아왔다. 멀리서 구름이 흘러오듯 아주 멀리서 열 살짜리의 얼굴색이 돌아왔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하다. 약간이나마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쳤다. 꼼짝도 하지 않던 몸을 뒤척거렸다. 고통을 방바닥에 떨어내려는 듯 뒤척거렸다. 한동안 간격이 멀어졌던 호흡을 되찾았다. 따뜻한 물에 휘저은 조청 한 대접을 단숨에 들이켰다.
정신을 되찾은 상재는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바라보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한듯하였다. 다행이었다.
사경에서 헤매던 상재가 온기를 되찾으면서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그제야 눈물을 소리 없이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
혼잣말을 허공에 실성한 듯 날려 보냈다.
‘살려고 했던 일이 죽일 뻔했구나. 어디 죽어도 죽을 곳이 없어서 선산 끝자락을 파먹다가 죽다니……’
밖으로 나와 오전에 일했던 밭으로 갔다.
상재가 죽을 경을 친‘원인을 알아보고자’나왔다. 밭둑을 할릴 없는 사람같이 터벅터벅 맥없이 걸었다. 야생화들은 바람에 꽃을 흔들고 하늘하늘 애교를 부렸다. 간간이 도라지꽃이 눈에 띄었다. 밭에는 두고 간 괭이 삽이 그대로 쉬고 있었다. 상재가 서성였던 자리를 떠올리며 여기저기를 따라다녔다. 특별하게 다른 껍질을 찾을 수 없었다. 도라지 껍질이 아닌 다른 껍질을 찾을 수 없었다. 상재가 걸어 다니며 놀았을 발자국을 찾기로 했다. 고무신 바닥이 달아빠진 가장 작은 발자국을 따라 밭두렁으로 따라 나갔다. 발자국이 없어졌다. 무언가 껍질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반쯤 말라 시득시득한 뿌리껍질을 풀 섶에서 찾았다. 도라지 꽃 한 송이가 시들어있었다. 들추었다. 뿌리까지 고스란히 따라올라 왔다. 이상했다. 도라지를 캐 놓고서 왜 그대로 두었을까? 옆에 버려진 시득시득한 뿌리껍질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수수께끼였다!
반쯤 말라버린 뿌리껍질을 들고 눈앞에 바짝 대었다. 냄새를 맡으려는 게 아니었다. 순간! 코끝이 아릿했다. 뭐인지는 몰라도 도라지는 아니었다. 무심코 눈앞에 댔을 때와는 다르게 냄새에 코를 곤두세웠다. ‘킁킁’거렸다. 재채기를 하며 벌떡 뒤로 일어났다. 그제야 보였다. 상재가 캐냈을 도라지 옆에 뾰족하게 올라오는 장녹(자리공과의 독초) 새순이 보인다. 도라지를 캐려다가 옆에서 자란 장녹의 곁뿌리 하나를 추켜든 게 분명하다고 추측했다. 작은 도라지 뿌리는 눈에 띠지 않고 굵고 큼지막한 독초 뿌리를‘횡재한 마음으로 덥석’물어 버린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뿌리껍질이 도라지 뿌리처럼 매끄럽지는 못했다. 버려진 껍질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몹시 침통한 모습으로 굴뚝 옆 토방에서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불렀다. 껍질을 높이 들면서 할아버지 곁으로 갔다.
“뭐여? 이것이 뭐여?” 할아버지는‘씨잘 데 없는 것으로 부른다.’ 는 눈치로 껍질을 버리려 했다. 나는 얼른 그것을 빼앗듯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상재가 먹은 장녹 껍데기여”라 고했다.
“정말? 네가 그걸 어떻게……” 할아버지는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점심사이렌(우리는‘오포’라 했다. 정오에 울리는 소리이기에 그런 것 같다.) 울리기 전에 큰 것을 캤다며 좋아했었어. 그것이 도라지가 아니고 이것이 분명허당 게. 상재 깨어나면 물어봐요. 그러면 알 것 제? 맞아 맞당 게” 나는 우기듯 할아버지를 설득하였다. 할아버지도
“그려 물어보자. 물어봐”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상재는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사람 쪽으로 와 있었다. 죽음 쪽에서 안간힘을 써서 겨우 기어 나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문제의 껍질을 들어서 상재에게 다가가 앉았다. 상재는 눈을 떠 그 껍질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다.
“ 상재야! 이것 알건야? 이것 알거써?” 할아버지가 물었다.
“ 예, 그거여. 냄새가 지독해”하면서 헛구역질을 했다.
“그래그래 알았다. 이걸 먹었단 말이지?” 할아버지가 물었다.
“예, 먹을 땐 몰랐어. 도라지랑 똑 같았어” 어렵게 입을 뗐다.
“어미야, 녹두 있느냐? 녹두죽을 쑤어야 허것다. 흰쌀 죽을 쑤어서 한 그릇 먹여야 허것다.” 어머니를 향하여 물었다.
“예, 있을 것이요. 죽 쑬 만큼은 있어요.”말을 하면서 일어났다. 장독대 항아리를 여기저기 열어보더니 연초록 색깔의 녹두를 찾아냈다.
녹두죽을 쑤어서 상재가 먹고 있을 때는 뜨거운 태양이 서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상재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몸에 변화가 오고 있었다. 약간이나마 나왔던 아래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척해진 몸으로 기운 없이 돌아다녔다. 그 전처럼 활발하게 놀지 못했다.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했다. 독초의 후유증으로 기력이 빠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아도 밥 먹는 것이 눈에 띨 만큼 시원찮았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상재는 우리 가족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동네 어른들 입에 올랐다. 상재는 우리 가족들 중에 가장 튼실했었다. 나이에 비해서 활달하고 또래 애들과 잘 어울렸던 애가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어울려 놀기를 싫어하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특별한 대책 없이 두어 달 지속되었다. 워낙 말수가 적었던 나에게도 동네 아낙들까지 잠깐씩 붙들고 걱정해주었다. 아버지 친구들이었거나 우리 집 신세를 졌던 나이든 노인들은 산속 오두막까지 할아버지를 찾아와 걱정했다.
‘상재를 저렇게 두고만 있어서는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는 근심이었다. 상재의 독초 사건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팽팽한 심리전으로 변하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고분고분하던 며느리의 태도에서 할아버지와 대등하게 토론하는 실력자로 나섰다. 의견을 충분히 내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의견을 토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얼마가지 않아서 어머니 의견에 따랐다. 의견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다.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스스로 자책했다.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다고 할아버지 스스로 책망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최후의 방법으로 이 오두막으로 이사를 결정 하였는데 어머니는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따랐을 뿐 말을 못했었다. 남편 잡아먹은 아낙이 되어버린 자신을 누가 뭐라 해도 할 말을 참아야했다. 아버지가 선산 끝에 자리 잡은 지 삼년이 지났다. 어머니도 과부의 행색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과부가 얼마나 독해야 살 수 있는지 스스로 터득했다. 이제껏 시아버지가 살림해온 것을 죄다 보았다. 겪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이제는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애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애들을 데리고 들어오지 말았어야했다’고 책망했다. 어머니는 상재나 계재 현순이를 보면서‘욕을 배우려 해도 사람 사는 곳이라야 한다.’고 하였다.
사방이 소나무로 둘러싸인 오두막은 죽음 보다 더 적막하였다. 한참 말을 배우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또래들과 놀아야할 고사리같이 여리 디 여린 애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이곳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선비가 역적으로 몰려 가족이 참살 당하고 고향 사람들과 생이별하고 적막강산으로 귀양 온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상재의 몸에만 변화가 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네에 아낙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일이 없으면 동네로 마실 나가는 일이 잦았다. 가까운 양지 동네가 아닌 그전에 살았던 거야로 원거리 마실 나갔다. 마실 뿐이 아니었다. 호락질로 하던 밭일을 거야 아낙들과 품앗이를 하게 되었다. 세상과 교류를 시도하였다.
이렇게 교류가 이루어진 후에 우리 집은 엄청남 변화를 예고하였다.
상재의 도라지 사건은 여름방학 이전에 일어났는데 어머니의 세상과의 교류가 얼마나 절실하였고 그 결과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에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해 여름, 충청도 어느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양창선’이라는 광부가 16일 동안 지하 갱도에서 갇혀 있다가 구출 된 사건이 일어났다.
(* 양창선은 1967년 8월22일 12시 40분에 충청남도 청양군 사양면 구봉광산 지하 125m 갱도에 매몰 되었다가 9월 6일 21시 15분에 구출됨)
세상 사람들이, 그야말로 귀가 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을 우리 집 식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방학 중에 등교 하라는 날에 나갔다가,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오후에 어머니와 밭을 매면서 이야기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참 동안을 멍하니 호미를 놓고 앉아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재미있는 사건을 들려주는 것인데 어머니는 놀란 듯 멍했다.
어머니의 결심은 이때를 고비로 확실히 굳어졌다.
어머니는‘인형의 집’에서 벗어나기로 결심을 하셨다. 오두막에 살았다가는 우리 식구가 무슨 일을 당하든 누가 알까?
막말로 죽어도 동네 사람인들 누가 죽는 줄을 알까?
두려운 생각을 하면서 멍하신 것이었다.
“명재야! 너는 무섭지 않냐?” 물었다.
“뭣이 무서운데?” 알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두막이 무섭지 않냐?”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별로 무서운 것 없는데……” 말끝을 흐렸다.
“말 귀를 못 알아먹네!” 목소리를 높여 되묻듯 물었다.
“그러면 먼 뜻이여?”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어머니의 숨은 뜻을 찾아 낼 수 없었다.
“명재야, 우리가 오두막에 갇혀 살다가 공비들에게 뭔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한단 말이냐? 당할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드는 겨. 어머니는……”
“어머니도, 공비는 해안이나 산간에서 나타나는데 어머니는.... 참”
“해안이나 산간에 공비들이 침투 했다가 외딴집이나 민가에 나타난다지. 안혀?” 어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외딴 집이 공비들의 은신처로써 안성맞춤 아니냐?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을 우리는 오두막에 갇혀 살면서 까맣게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일을 세상 사람들도 모를 것 아니냐? 죄다 죽어도 말이여.”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공비 출몰 사건을 잊을만하면 다시 듣고는 했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어머니는 상재 사건과 시국의 흐름이 뒤엉켜 맘이 편하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을 동네 아낙들과 품앗이를 하면서 풀어 나갔다. 시간이 가면서 어머니는‘어떻게 하면 이 오두막을 벗어날까?’노심초사 하였다.
한편으로 아낙들과의 수다 같은 대화는 무거운 심경에서 조금이나마 헤어날 수 있게 해주는 삶의 활력소라고 생각했다. 잦은 동네 외출을 마음속으로 반겼다. 다소나마 환해지는 어머니의 표정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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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4 장록을 먹어서 그때 배가 올레토록 아팟는지 모르겠네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4학년때까지 학교에서 오면서 배가 아파 20미터쯤 걷다가 논둑에 누어있다 다시 그러길 반복하여 집에 오면 해가 넘어갓던 기역이 여러번 있엇는데 그여파였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싹을 티우기위한 몸부림을 그것이 약초였으면 정말 약이였으텐데 독초라서 그렇게 사경을 헤매셨군요.
자식들 먼저보낸 심정을 익히 아시는분이 얼마나 애간장이 녹아 내렸을까를 생각하니 애잖합니다.
위 사진의 식물이 뭔지 알겠지.
우리는 장녹이라고 부르지만,
글을 제대로 쓰기위해 책을 뒤적이다보니
자리공과에 속하는 식물로 수십가지가 지구상에 존재하는데,
한방에서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으로, '장유'라고 하더라.
장유라 부르는 우리나라 자생종은 모양이 아주 다르더라고.
상재가 먹은 장유라는 식물은 미국산 자리공과 식물로 약초가 아니라,
순전히 독초로만 기록되었고,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붉은 잉크로 밖에 다른 용도로는 전혀 사용 할 수 없다고 책에 나왔더더라고.
나도 잉크로 만들어 팬촉으로 찍어썼던 기억이 난다.
이 미국산 식물이 어떻게 우리 산기슭, 밭두렁에서 자리를 잡고 자랄수 있었는지 생각해봐.
이것은 외가에서 미국산 원조물자인 비료를 실어 오면서 우리집에 오지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맞을거여.
다른집에서는 이 식물을 구경하지 못했으니까.
유독 우리집이나 우리 밭에서 이 식물이 여기저기 무성하게 자랐어.
지금도 밭에, 아니 산소 논두렁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있지않은가.
어려워던 방죽골 시절이 양지골로 변하며 한을 싯으려는 듯이 그동안의 노력과 정성이 헛되지안고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는걸 보면 방주골을 통하여 우리들이 준비한 결과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