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관은 12월 2일에 “이들 두 남녀가 조총련계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하며 이들이 공산권을 거쳐 바그다드에 탑승한 점, 사건 후 아부다비에서 바레인으로 황급히 출국한 점, 바레인의 리젼시 호텔에서 짐을 두고 떠난 점 등을 들어 KAL기 사건과 중요한 관견이 있는 범인으로 추정한다”고 발언.
1988년 2월 16일과 17일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규탄결의안을 상정하고 한국 대표로 발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 규탄결의안은
채택이 안되고 부결됨.
18개의 참가국들이 한국 발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고, 증거물도 없는 상태에서 김현희 진술만으로 수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국제사회는 한국의
수사 결과를 거부한 것임.
이웅희 사건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1986.08.27-1988. 02. 24)
출신지 : 경기 용인. 소속 정당 :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사건 발생 이틀 후에 한 발언
12월 2일 이장관은 “대남 교란 책동의 저의는 대통령 선거를 그들의 대남 혁명의 유리한 상황으로 조성해 나가려는 것으로써 우리의 정치 정세 변화를 틈타 국민을 현혹시키는 가운데 민관군으 이간과 국민 분열을 일으키고 나아가 좌경용공세력을 부추켜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유도하려는 것”이라 규정하는 정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함.
사건 발생 3일만에 한 발언
“전 세계에서 북한 만이 할 수 있는 범죄”라고 발언(MBC 뉴스 데스크 12월 3일자)
당시 수색팀들이 조사도 들어가기 전에 전두환 정권의 장관들은 이런 발언들을 언론에 나와서
마구 쏟아냄.
그들에게 여객기사고 조사는 안중에도 없었음 오직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위한
시나리오만 필요했음.
전두환 정권 당시 모든 언론사는 보도 지침에 의하여
문공부에서 언론 검열과 지시와 통제를 받았음.
KAL858기 사건의 보도는 문공부와 안기부에 의해 모두 지시를 받고 쓰여졌음.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를 따르는 언론사들은
KAL858기 사건의 제대로 된 취재와 진실한 보도를 결코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팀에
'월계수회'가 있었음을 살펴보아야 함.
최광수의 근황
(서울 창신초등학교 총동문회 홈페이지의 글로서 까망천사가 2007년 6월 11일에 올린 글)
칼기사건 당시 외무부 장관 최광수는 지금 in u.s 2376 heel st, vermon city, newark 22037 Tell 213-587-466-7575
지금도 국정원 직원들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최광수가 입을 벌리면 국정원 하루아침에 날아갑니다. 뉴왁 빌리지에서 국정원 직원들하고 골프 치면서 감시당하는 최광수 장관은 절대 한국 사람들과 안 만납니다. 오직 국정원직원들하고만 지냅니다.
최광수를 끈질기게 관리하는 국정원 직원들 뭐가 그리 두렵고 감출 것이 많은지 참으로 한심하더군.
최광수는 칼기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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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광수 (崔侊洙) 출생 : 1935년 2월 24일 경기고,서울법대 직업 : 전 정무직공무원, 전 외무공무원 소속 : 전 체신부 장관 제31대, 전 무임소 장관 제30대, 전 외무부 장관 제21대,최규하대통령비서실장
여기 저기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입니다.
김현희의 남자들(2): 정형근과 박철언
정형근
사건 당시 안기부 제 1차장
(1984-1995)
출신지 : 경남 거창
소속 정당 : 한나라당
당시 대공수사국장으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정형근은 2003년 11월 4일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KAL858기 블랙박스를 못찾은 이유는 사고 해역의 수심이 2-3천미터이고 초속 300m의 빠른 물살로 수색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발언
정형근의 발언은 거짓말로 밝혀짐. 사고 지역의 수심은 870m이었다.
안기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고문을 직접 지시하는 등 강압적으로 공안사건을 처리한 경력이 있다.
5공시절 고문기술자로 이근안이
유명했다면 6공 들어서는 정형근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정형근은 고문 혐의로 10건 가까이 피소되었으나 용케 법의 심판을 비켜나갔다.
2012년 6월에 정형근 전 건강보험 공단 이사장은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소송 중이다.
5,6공의 고문기술자들이 KAL858기
사건의 핵심에서 수사하고 간여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박철언
사건 당시 안기부 해외 차장
출신지역 : 경북 성주
소속정당 : 민정당, 민자당
박철언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권 291쪽’에 박철언(안기부 특별보좌관)은 김현희를 특보실로 불러 함께 사진을 촬영.
KAL858기 사건 2달 후인 1988년 2월 5일의 일이다. 안기부 수사 발표 2주 후부터 김현희는 6공의 황태자와의 만남을 가진다.
이 만남 20일후에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식을 가짐.
전두환 신군부 등장하면서 국보위 법사위원(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제 5공화국 헌법 기초 작업에 참여.
1987년 노태우를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박철언의 주도하에 ‘월계수회’가 있었다.
‘월계수회’라는 명칭은 1987년 대선에서 월계관을 쓰자는 데서 비롯됐다.
집권 후 박철언은 ‘6공의 황태자’로 떠올랐고, 월계수회 출신들은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건을 조사해야 수사 책임자들이 테러 혐의자를 불러다가 저렇게 대우하고 사진찍고, 불구속 기소하였다니 어찌 이게 대한민국의 법인가?
저런 짓을 해놓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수사했다는 정형근의 뻔뻔스러움은 KAL858기피해자 어머니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니놈들이 주둥아리로만 '종북주의'를 나불거리면
법을 무시해도 된단 말인가?
노태우 정권은 김현희에게 한번도 수갑을 채운 적이 없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MBC 이상호 기자가 전두환 집앞에서 취재를 위해 갔다가 경찰들에게 잡혀 뒤로 수갑을 채워지는 모습과 너무도 대비가 된다.
115명을 죽였다는 저 여자를 안기부 특보라는 놈이 자기 사무실에 불러다가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특별 대접을 해주었다니 참으로 전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김현희의 남자들 (3) - 강재섭
강재섭
사건 수사 담당 검사
출신지역 : 경북 의성
소속 정당 :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수사 검사가 1988년 2월 5일 안기부 특보실에서 박철언, 김현희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함.
검찰의 공소장 주요 내용의 네가지
-. 김현희 아버지는 앙골라 주재 외교관
김원석.
-. 김정일의 친필 지령에 의해 범행.
-. 남북조절위에서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준 화동 김현희.
-. 콤포지션 4와 액체폭약으로 항공기
폭파.
전두환 신군부의 청와대 비서관.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월계수회의 2인자,
노태우 대통령 법무 비서관, 1992년 이후 국회의원 4선, 민자당 총재 비서실장,
한나라당 원내 대표. 2007년 1월
성적 농담 파문.
강재섭과 박철언
사건을 수사해야 할 인간들이
혐의자와 함께 저토록 다정하게 즐길 수 있나
이 사진 한장이 김현희 수사가 어떠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
검찰의 엉터리 공소장 (1)
김현희 아버지 문제
1987년 12월 사건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은 짐바브웨 대사관을 통하여 앙골라 주재 북한 외교관 수산대표 김원석에 대하여 확인한 결과 그런 이름과 그런 직책도 없음을 확인하였음.
2005년 9월에 국정원도 김원석 경력에 대하여 당시 확인하지 못했음을 시인하였음.
엉터리로 공소장을 만든 강재섭 검사
검찰의 엉터리 공소장 (2)
김정일 친필지령에 의한 범행 문제
현준희(감사원 전 직원)의 반박글
"친필은 없고 말뿐이다. 김정일은 5년짜리 한국 대통령과 비교도 안될 귄위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걸렸다하면 치명적인
테러에 굳이 물적 증거까지 남기면서 지시한다? 헌법상,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은 자백은 무죄다.
예를 들어 조폭두목이 조직원에게 친필로 기록하여 지령을 내리는 놈은 하나도 없다. 증거를 남기면 자기에게 불리한데 어떤 두목이 친필까지 남기면서 지시를 내리는가?
근거도 없는 공소장이다.
검찰의 엉터리 공소장 (3)
장기영에게 준 꽃다발 소녀 문제
이 문제는 이미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지금와서는 이동복이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코메디인가? 장기영이건 이동복이건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검찰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왜?
김현희 귀는 칼귀로서
사진 속의 화동은 복귀였기 때문이다.
검찰이 엉터리 공소장(4)
폭발물 문제
김현희는 폭발물 이름과 종류에 대하여 단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아래는 폭발물에 대한 검찰의 논고이다.
"폭발문 전문가 김문호는 라디오에 사용된 폭약은 컴퍼지션 4(C-4)로 추정되고, 액체 폭약은 테러범들이 통상 사용하는 PLX로 추정되며..."
수사기관은 추정된 물증이 아니라 정확한 증거물을 내놓아야 한다. 115명이 사망한 엄청난 폭파 사건인데 그 폭발물이 무엇인지 테러범이 몰랐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한국 경찰이 대신 그 폭발물의 이름과 양을 추정해주었다니 한국 안기부와 검찰 정말 창피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