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경복궁이 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정도전이 궁의 이름을 경복궁으로 지었다. 백악 청운대에서 본 정궁 경복궁이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볼 때 남주작인 남산이 약간 비껴 앉은 게 풍수상의 흠이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인왕산까지의 거리는 낙산까지보다 지나치게 짧다.
두 곳의 거리는 균형이 전혀 맞이 않는다.
조선초기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배치원칙에서는 그 거리는 비슷하다.
매봉에서 창덕궁을 지나 종묘로 빠지는 산줄기가 내청룡이다.

태조가 정도전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양의 주산인 백악을 의지해서
그 아래 남쪽을 향해 경복궁의 자리를 잡았다.
임금은 남쪽을 향해 백성을 바라보면서 바른 정치를 펴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궐내 주요 건물들도 모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광화문 홍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주요 건물들이
일렬로 배치하여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창의문과 윤동주시인언덕을 지나 인왕산 동쪽 자락에서 본 경복궁이다.
인왕산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우백호(右白虎)의 수호신이다.
인왕산의 기세는 한양에서도 가장 드세었다.살기(殺氣)마저 끼고 있다고 했다.
그에 못지 않은 호랑이도 인왕산에서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조선팔도 호랑이치고 인왕산 호랑이를 모르는 호랑이도 있냐!"
조선시대에 호랑이가 얼마나 자주 출몰했는지 이런 속담이 나돌았다고 한다.
경복궁 창건 공사때 인왕산 호랑이가 나타나 인부를 물어 죽이고
쌓아둔 목재까지 쓰러뜨렸다고 태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고궁은 북두칠성이 있는 하늘의 궁궐,
자미궁을 본 따 지은 대궐이다.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교태전과 강녕전은 기본적으로 태극도에 따른 기본적인 배치법을 취하고 있다.
자연과 세계 우주의 운행원리를 성리학에 따라 간단하게 그린 도형이 태극도설이다.


"에헤,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을축 사월 갑자일에 경북궁을 이룩일세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간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구선 갈팡질팡한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조선 여덟도 유명탄 돌은 경북궁 짓는데 주춧돌감이로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근정전을 드높게 짓고 만조 백관이 조하를 드리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경복궁 타령가사이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고쳐 지을 때에 생겨나서
소리꾼들의 손에 차츰 세련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창 부분의 가사가 방아타령의 후렴과 같이 "방아로다"로 끝나는 점이 이채롭다.
이 노래가 생겨난 배경이 경복궁 중건을 원망하는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견해다.
경복궁을 짓는 작업 과정에서 일의 능률을 높이는 '노작가'라는 의견도 있다.
나중의 견해가 더 옳은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