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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공화국 통계 자료
국명 : 니카라과 공화국(Republic of Nicaragua)
면적 : 129,494 sq km
인구 : 4,275,000 (인구성장율 3.4%)
수도 : 마나과 (Managua, 인구 933,600)
(니카라과의 수도는 마나과로 전체 인구의 25%인 933,600명이 살고)
인종 : 69% 메스티조, 17% 유럽인 후손, 9% 아프리카인 후손, 5% 토착주민
언어 : 스페인어, 크리올 영어, 미스키토
종교 : 90% 카톨릭, 10% 개신교
정체 : 공화국
대통령 : 아르놀도 알레만 (
Arnoldo Aleman
지리 및 기후
니카라과는 중미에서 가장 큰 나라로 북쪽에는 온두라스 남쪽에는 코스타리카, 동쪽은 카리브해, 그리고 서쪽은 태평양에 면해 있다. 이 나라는 크게 세 지리학적 지역으로 구분되며 태평양 저지대와 중앙 북쪽의 산악지역, 모스키토 연안 또는 모스키티아(Mosquitia)로도 불리는 카리브 저지대가 그것이다. 비옥한 태평양 저지대는 40개 정도의 화산이 있으며 중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라고 데 니카라과(Lago de Nicaragua)고 턱하니 버티고 있다. 모스키티아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열대 우림 지역으로 중앙 산맥에서 시작된 여러 큰 강들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라고 데 니카라과는 신기한 물고기들이 많이 있는데 이 중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담수 상어도 있으며 아주 다양한 종류의 조류들도 산다. 북서부의 구름과 우림에는 표범, 멧돼지, 푸마, 재규어, 나무늘보, 거미 원숭이 같은 야생동물들도 다양하게 살고 있다. 산림 내에서 사는 조류는 특히 다양해서 검은 벌새, 붉은 딱따구리, 가슴에 줄이 있는 굴뚝새, 우아한 트로곤, 매, 그리고 심지어 마야의 신성한 새인 케찰 등도 눈에 띤다. 카리브해 연안의 정글에는 거의 60m까지 자라는 나무들도 있으며 보아뱀, 아나콘다, 재규어, 사슴, 짖는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니카라과의 기후는 고도에 따라 변한다. 태평양 저지대는 언제나 극단적으로 덥지만 공기는 상쾌하며 시골은 우기(5월에서 11월)에 푸르다. 건기(12월에서 4월)는 갈색 먼지를 평원으로 날려보내는 바람이 불어온다. 카리브해 연안은 덥고 습해서 짧은 건기(3월에서 5월)
라 해도 많은 비가 내린다. 북쪽의 산악 지형은 저지대보다 훨씬 시원하다.니카라과는 1998년 11월에 온 금세기 최대 태풍 중 하나인 허리케인 미치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었다.
역사
니카라과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흔적은 아카왈린카(Acahualinca)에서 10,000년전의 발자국을 통해 알 수 있다 - 발자국은 라고 데 마나과로 흐르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화산재 층 밑에 보존되었다. AD 10세기 경에 멕시코에서 토착민들이 태평양 저지대로 이주해 왔으며 아즈텍인들이 15세기 동안 무역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남향해 가는 동안 아즈텍 문명도 여러 토착민들에게 전파되었다.최초의 유럽인은 1502년 콜럼부스가 카리브해 연안을 항해해 내려오면서 들어오게 되었다. 1522년 스페인 탐험대는 라고 데 니카라과의 남부 해안에 도달했다. 몇 년 뒤에 스페인은 이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원주민을 정복한 뒤에 그라나다(Granada)와 레온(Leon)
을 세웠다. 그라나다는 비교적 부유한 식민지 도시, 레온은 자유주의의 온실이 되었다. 마나과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지역에서는 스페인인 침략자에 거세게 대항하였고 그들의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리고 다음 세 세기 동안 마나과는 그저 하나의 마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중미 국가들과 함께 니카라과는 1821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잠시 멕시코의 일부였으며 다음에는 중미 연합의 일부, 그리고 마침내 1838년에 완전한 독립을 성취했다. 곧 이어 영국과 미국은 니카라과와 전략적으로 중요하며 라고 데 니카라과에서 카리브해 연안까지 항행이 가능한 산 후안 강에 굉장한 흥미를 보였다. 1848년에 영국은 카리브해의 산 후안 강 입구에 있는 항구를 점령하고 그레이타운(Greytown)
으로 바꿔 불렀다. 이곳은 캘리포니아의 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던 많은 무리들에게 중요한 통과장소가 되었다.
1855년 레온의 자유주의자들은 중미의 영역을 정복하는데 여념이 없던 자칭 불법 침입자 윌리엄 워커를 방문하여 그라나다에 본거지를 가지고 있던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권력을 뺏는데 도움을 주려했다. 워커와 그의 용병 일당은 그라나다를 손쉽게 장악하고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곧 그는 이 나라에서 쫓겨났지만(그의 첫 번째 움직임은 노예제를 제도화하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침략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것들은 미국이 니카라과 내정에 줄곧 간섭해 온 선례가 되었다.1934년 미국에 의해 훈련을 받은 국가 경비대 우두머리인 소모사(Somoza) 장군은 반대파인 자유주의의 아우구스토 C 산디노(Augusto C Sandino) 암살을 공작하고 뒤이어 부정선거를 통해 1937년 대통령이 되었다. 소모사는 이후 20년 동안 독재자로 니카라과를 지배했고 엘살바도르 만한 크기의 토지와 엄청난 개인 재산을 부정 축재했다. 비록 1956년 소모사 장군은 사살당했지만 그의 아들은 1979년까지 소모사 왕조의 지배를 이어갔다. 이러한 압제에 대한 반대가 오랫동안 널리 퍼져 있었지만 니카라과의 전 계층에 걸쳐 반대가 확산된 것은 1972년 지진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더 구체적으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죽어 가는데도 이 재난에 대한 국제 원조가 소모사 가족의 호주머니로 모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소모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세워진 단체는 두 가지로 FSLN(Frente Sandinista de Liberaceon Nacional, 산디니스타로도 알려짐)과 독재 정권에 비판적이던 신문인 라 프렌사의 편집인 페드로 호아퀸 챠모로(Pedro Joaquin Chamorro)가 이끌던 UDEL이다. 챠모로가 1978년 암살을 당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폭력적으로 번졌고 전체 파업을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혁명이 번지고 예전 중도주의자들이 소모사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FSLN에 합류하였다. 산디니스타들은 1979년 7월 19일 마나과로 승리를 거두며 입성하였다. 그들은 수많은 집 없는 사람들과 문맹, 열악한 보건 환경에 가난으로 찌든 이 나라를 이어받았다. 새로운 정부는 소모사의 토지를 국유화하고 농업 조합을 설립했다. 엄청난 규모로 수행된 교육 캠페인으로 문맹율은 50%에서 13%까지 낮아졌으며 면역 예방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소아마비를 없애고 유아 사망률도 혁명 전보다 1/3 수준으로 낮추었다.그러나 북쪽에 있는 '좋은 이웃' 미국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미국 정부는 끝까지 소모사정권을 지원했으며 니카라과가 이 지역에서 위험한 예를 남길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성공적인 대중 혁명은 미국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1981년 취임한 후 3개월 뒤에 미국은 니카라과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고 콘트라 반군으로 알려진 반혁명 그룹의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1000만 US$를 배당했다. 산디니스타는 미국이 자금을 대는 반란에 대항하기 위해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1984년 선거에서 산디니스타 지도자인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가 67% 지지로 승리했지만 미국은 니카라과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1985년 미국은 5년 동안 계속되면서 니카라과 경제를 어렵게 만든 무역 제재를 발효했다. 이때부터 미국이 CIA를 통해 암암리에 콘트라 반군에 자금을 지원해 온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의회는 자금 지원을 끝내려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소위 이란게이트로 알려진 사건으로 CIA가 이란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비싼 값에 팔고 그 이익으로 반군을 지원했다는 것이 알려질 때까지 콘트라 반군을 비밀리에 지원하였다.1990년 니카라과는 선거를 치르고 라 프렌사의 편집자로 구정권에 의해 희생되었던 페드로 챠모로의 미망인이며 야당 UNO의 지도자인 비올레타 챠모로(Violeta Chamorro)가 승리하였다. 챠모로의 경제 부흥 실패와 그녀가 과도하게 산디니스타 지원에 의존하는 것 때문에 미국은 원조를 멈추겠다고 위협했지만 내전은 마침내 끝이 나게 되었다. 다니엘 오르테가는 1996년 10월 다시 선거에 출마했으며 다니엘 오르테가는 산디니스타의 월권에 대해 사과하면서 스스로 중도주의자로 자처하였으나 마나과의 전 시장이며 반공산주의의 자유연합 후보인 아르놀도 알레만에게 패배했다. 알레만 대통령은 1997년 1월 10일에 취임했다.1998년 11월 허리케인 미치는 중미의 대서양 연안을 강타하여 지나간 곳마다 엄청난 재해를 남겼다. 허리케인은 최고조일 때 5급에 달하였으며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자메이카,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를 쓸고 지나가 진흙사태와 홍수, 도로 유실, 교량 파괴 등이 벌어졌다. 니카라과는 태풍이 지나가면서 내린 많은 비로 카시타(Casita)
화산의 진흙 사태를 유발하였고 몇 곳의 마을을 덮쳤다. 이번 세기에서 가장 강하고 심했던 허리케인 중 하나인 이 허리케인으로 10,000명이 넘게 죽었다.
경제
GDP: 13억US$
1인당 GDP: US$410
인플레이션: 11%
주요 산업: 커피, 목화, 설탕, 육류, 바나나
주요 교역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립국가 연합, 일본, 독일, 쿠바, 미국
문화
레온에는 아직도 많은 옛 건축물들이 남아있지만 지진과 전쟁이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 같은 니카라과의 문화 유산의 상당부분을 앗아갔다. 시는 니카라과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이며 다른 어떤 중미 국가들보다도 많은 문학 작품을 배출했다. 루벤 다리오(Ruben Dario, 1867-1916)는 중남미 문학의 왕자로 알려져 있으며 니카라과의 시인, 소설가, 에세이 작가들의 최근 작품들은 대부분의 서점에서 볼 수 있다.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블루필즈(Bluefields)는 대체로 영어가 사용되는 곳으로 레게 음악의 중심지이다. 라고 데 니카라과에 있는 솔렌티나메(Solentiname) 군도는 예술가, 시인, 공예가들의 안식처로 유명하다. 산디니스타 거리 예술은 현대 무랄의 형태로 남아 특히 레온의 대학가에서 눈에 띈다. 니카라과의 언어는 스페인어이지만 영어와 다른 여러 인디언 언어도 카리브해에서 사용된다. 주요 종교는 카톨릭이지만 성령 강림교나 침례교 같은 개신교 분파도 많이 존재한다. 영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모라비아교도 카리브해에서는 중요한 종교이다.니카라과의 전형적인 음식은 계란이나 고기, 콩, 쌀, 샐러드(양배추와 토마토), 또르띠야, 그리고 철에 따른 과일이 주로 사용된다. 모든 니카라과 음식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쌀과 콩을 섞은 갈로 핀토로 콩으로부터 나온 물이 쌀의 색을 변하게 한다. 다른 전통적인 음식에는 소고기, 녹색의 잘 익은 바나나, 유카(카사바 녹말)
를 섞은 바호와 볶은 돼지 껍데기, 양배추 샐러드와 유카를 함께 내오는 비고론이 있다. 거리 노점상에서는 카카오와 옥수수로 만드는 티스테와 옥수수와 우유로 만든 포솔 콘 레체 같이 재미있는 음료수를 많이 판다. 니카라과는 중미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와 럼을 자랑한다.
축제 및 행사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는 매년 수호 성인의 날을 축하한다. 이들 축제들은 토로 과코(Toro Guaco)로도 알려져 있으며 독특한 가면 행렬과 스페인인 침략자들을 희화화한 민속 인형이 등장하는 가짜 싸움이 벌어진다. 가장 유명한 수호성인의 날은 산 세바스티안(1월)과 산티아고(7월)
를 기리는 날이다.
여행자 정보
비자: 영국, 미국, 네덜란드, 헝가리, 벨기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그리스, 스위스, 스페인,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국민들은 비자가 필요 없으며 입국시에 30일짜리 여행자 카드가 발행된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비자가 필요하며 30일간 체재가 가능하다.
보건 위생: 콜레라, 뎅구열, 간염, 말라리아, 광견병, 장티푸스
시간: 한국보다 15시간 늦다
전압: 110V, 60 Hz
도량형: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석유의 경우는 갤런을 사용한다(도량형 환산표)
경비 및 환전
통화: 뉴 코르도바
일반경비:
저렴한 숙소: US$3-5
중급 호텔: US$5-15
고급호텔: US$15 이상
저렴한 현지 식사: US$2-4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 US$5-15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US$15이상
니카라과에서 편안하게 여행하려면 US$30-50정도 든다. 적당히 검소한 생활을 하고 가끔 차를 빌릴 경우 US$10-30으로 생활할 수 있다. 검소한 배낭여행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US$5에서 US$10사이로 여행할 수 있다. 카리브 연안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비싸다.최근 몇 년간 시중 은행이 많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마나과와 국경 지역을 제외하고는 여행자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 힘들다. 피놀레로(Pinolero)나 물티캄비오스(Multicambios)
와 같은 환전소에서 환전할 수 있지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은 찾아보기 힘들다. 니카라과 전역에 걸쳐 적절한 가격대의 많은 호텔들과 레스토랑들이 신용카드를 받아주며 몇몇 지역에서는 싼 곳들에서도 신용카드가 통용된다. 니카라과 코르도바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니카라과인들은 싼 식당에서 팁을 남기지 않는다. 좋은 식당에서는 계산서의 10%정도를 남긴다.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계산서에 서비스 차지를 포함시키며 보통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다. 각 계산서에 표시되는 15%의 부가가치세와 팁을 혼동하지 않도록 하자. 야외 시장에서는 흥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여행 시기
니카라과는 두 가지 계절을 가지고 있으며 연안에 따라 시기가 틀리다. 가장 쾌적한 여행시키는 태평양과 중부 지역의 경우 건기의 초기(12월과 1월)로 온도도 서늘하며 나뭇잎들도 많은 시기이다. 특별히 메마른 땅과 먼지로 가득한 공기의 건기 마지막 달(보통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을 제외하고는 여행에 안 좋은 시기란 없다.니카라과인들은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를 해변에서 보내므로 모든 방은 몇 주나 심지어 몇 달 전에 예약이 차버리기도 한다.
주요 여행지
마나과(Managua)
니카라과의 수도인 마나과는 라고 데 마나과의 남쪽 연안 너머에 펼쳐져 있으며 전체 인구의 25%가 넘게 몰려 산다. 이번 세기에 일어난 두 번의 지진과 다른 자연 재해들에 심각하게 피해를 입었으며 1972년 지진 이후로 이 도시는 시내가 없게 되었다. 예전의 시내 중심이었던 곳들은 대부분 아직도 공터로 남아있으며 어떤 곳에는 맨바닥에 양철과 판자때기로 집을 지어 놓은 곳도 있다. 마나과의 볼거리 중 몇 곳은 플라사 데 라 레푸블리카(Plaza de la Republica)에 몰려있으며 그중 하나로 한때 인상적인 건축물이었으나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는 호수변의 시 성당이 있다. 성당 근처에 있는 팔라시오 나시오날(Palacio Nacional)은 아우구스토 산디노(Augusto Sandino)와 카를로스 폰세카(Carlos Fonseca)의 거대한 초상이 입구에 걸려 있다. 우엘라스 데 아카왈린카(Huellas de Acahualinca) 박물관은 화산 폭발을 피해 호수로 달아나는 고대 사람들과 동물들의 발자국을 전시해 놓고 있다. 혁명 박물관은 이번 세기의 혁명 투쟁에 초점을 맞춘 역사적이며 흥미로운 전시물들을 가지고 있다. 또 이 도시에는 수영장소로 애용되는 몇몇 석호나 화산 분화구 호수들이 있다.바리오 마르타 케사다(Barrio Martha Quezada)는 싸고 간소한 게스트하우스들과 식당들이 많이 있는 주택가이다. 이곳은 주로 배낭여행자들이 모여든다. 주말에는 플라사 19 에 훌리오(Plaza 19 de Julio)
근처가 춤과 파티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마나과 근처
마사야(Masaya)화산 국립 공원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화산은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으며 작은 화산들과 온천 탕들로 둘러싸여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인디언들이 불의 여신인 챠시우티케(Chaciutique)를 진정시키기 위해 끓어오르는 용암에 젊은 여자를 던져 넣었다고 한다. 스페인인들은 이 곳이 악마가 사는 지옥으로 가는 입구라고 믿었다. 공원 입구는 마나과에서 남동쪽으로 겨우 23km 떨어져 있다. 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깜짝 놀랄만한 분화구 화산인 라구나 데 실로아(Laguna de Xiloa)는 수영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시 남동쪽 17km에 있는 엘 트라피체(El Trapiche)
에는 자연 샘에서 솟아 나온 물이 흘러나오는 커다란 야외 풀장이 있고 주위에는 정원과 식당들이 있다.
레온(Leon)
레온은 전통적으로 니카라과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이며 진보적이고 지적인 중심지로서의 면을 간직하고 있다. 대담한 산디니스타 무랄을 포함한 혁명 유적들은 시 도처에서 볼 수 있으며 많은 건축물들은 총탄 자국으로 뒤덮여 있다. 지진과 전쟁으로 얼룩졌지만 이 도시는 많은 훌륭한 식민지 시대 성당과 관공서들로 빛나는 곳이다. 거리에는 하얀 어도비 벽과 붉은 타일의 지붕, 두꺼운 나무 문, 시원한 정원을 가진 유서 깊은 스페인 풍의 집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다. 이곳의 성당은 중미에서 가장 큰 것이며 안토니아 사리아(Antonio Sarria)가 그린 거대한 회화, '십자가의 길'이나 시인 루벤 다리오(Ruben Dario)
의 무덤 등을 볼 수 있다. '영웅과 순교자의 갤러리'에서는 1978-79년 혁명 동안 FSLN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비롯한 여러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카리브해 연안
니카라과의 다른 곳들과 다르게 카리브해 연안은 식민지화 된 적이 없으며 1800년대후반까지 영국의 보호령으로 남아있었다. 주로 여행자들이 찾는 유일한 열대우림 해안은 블루필즈이지만 몇몇 여행자들은 마이스(Maiz) 군도로도 향한다. 마나과에서 블루필즈까지는 에스콘디도(Escondido) 강을 따라 배로 다섯시간 내려간다. 블루필즈에는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 인디언(미스키토, 라마, 수모), 흑인, 다른 니카라과 지역에서 온 메스티조 등 - 이로 인해 이곳은 더욱 흥미로운 모습을 띠며 이곳 주민들의 성향은 확실히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말에는 레게 클럽과 댄스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여럿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카리브해 섬들과 마찬가지로 목가적인 이슬라tm 델 마이스(Islas del Maiz)
는 한때 해적들의 피신처가 되었던 곳이다. 가장 큰 두 섬은 연안에서 70km 떨어져 있으며 현재 인기 있는 휴가 장소가 되었다. 이곳은 물은 깨끗한 청록색에 하얀 모래 해변이 코코넛 야자수와 산호초를 따라 펼쳐져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라스 이슬레타스(Las Isletas)
라스 이슬레타스는 라고 데 나카라과의 그라나다 앞 바다에 있는 356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지인들은 어업과 망고나 코코넛 등의 열대 과일을 재배하며 살고 있고 여러 종류의 새들을 볼 수 있다. 산 파블로(San Pablo)섬은 18세기에 영국의 해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작은 성채가 있다. 이슬라 사파테라(Isla Zapatera)는 국립공원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니카라과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 중 한 곳이다. 콜럼부스 이전 시대에 인디언에 의해 세워진 거대한 석상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아직도 다른 고대 무덤이나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이슬라 델 무에르토(Isla del Muerto)
에서는 더 많은 무덤이나 다른 흥미로운 바위 조각이 있다.
솔렌티나메(Solentiname)
군도
솔렌티나메 군도는 라고 데 니카라과의 남부에 있으며 시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Ernesto Cardenal)에 의해 예술가들을 위한 공동 사회가 건설된 곳이다. 이 군도는 화려하고 원시적인 회화를 가르치는 그들의 독특한 학교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은 하이킹, 낚시, 휴식을 위한 훌륭한 장소이다. 솔렌티나메 군도로 가는 배는 호수의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산 카를로스(San Carlos)
에서 출발한다.
레저스포츠
북부 산맥인 마타갈파(Matagalpa) 근처에 있는 셀바 네그라(Selva Negra) 산림과 라고 데 니카라과에 있는 섬들은 하이킹 장소로 좋다. 등반가의 흥미를 끌만한 여러 장엄한 화산들로는 마사야 화산과 이슬라 데 오메테페(Isla de Ometepe)의 두 화산이 있으며 라고 데 니카라과는 환상적인 낚시 기회를 제공한다. 서핑은 레온 근처의 포넬로야(Poneloya) 해변과 리바스(Rivas) 근처의 포포요(Popoyo)
해변이 인기 있다
니카라과로 가는 길
니카라과의 항공사인 Nica는 몇몇 국제 노선만을 운행하지만 중남미, 유럽, 북미 항공사들은 마나과로 오가는 비행기들을 여럿 운행하고 있다.온두라스로 넘어가는 국경 통과소는 라스 마노스(Las Manos), 엘 에스피노(El Espino), 과술레(Guasule) 등 세 곳이고 코스타리카는 사포아(Sapoa) 한곳이 있다.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를 강으로 건너는 것은 로스 칠레스(Los Chiles)에서 가능한데 이곳까지는 산 카를로스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카리브해의 블루필즈나 푸에르토 카베사스(Puerto Cabezas)
에서는 낚싯배나 화물선이 항상 오가므로 다른 중남미 국가의 항구나 섬으로 배를 얻어타고 갈 수도 있다.
국내 교통편
니카라과에는 세 개의 국내선 항공사가 있으며 주로 마나과와 블루필즈, 푸에르토 카베사스로 운행된다. 현지 버스는 정기적으로 운행되면 잦은 편이지만 매우 혼잡하다. 니카라과의 버스는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으므로 주의를 요하며 항상 짐에서 눈을 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배는 몇몇 지역으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특히 카리브해 연안이나 라고 데 니카라과의 경우가 그렇다. 산 후안 강을 내려가 엘 카스티이요(El Castillo)와 산 후안 델 노르테(San Juan del Norte)
로 가는 여행은 싸지 않다.
첫댓글 넘 길었나?
내가 20대 말이나 30대 초반이라면 앞으로는 100살까지 사는 것은 보통이라니 나라면 젊을 땐 영어권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 영어가 세계 공통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