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깡깡이생활문화센터에서 울 엄마와 함께 영도 깡깡이아지매 100호 2점 기증 작품을 관람하려 봄나들이 산책을 다녀 왔답니다 울 엄마께서 "이렇게 큰 그림을 기증했냐?"며 "잘했다"고 하시며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에 부모님을 기뻐게 해 드려 가슴 뿌듯했답니다.
새 생명을 위한 사투를 버리고 있는 영도 깡깡이아지매 위험을 무럽쓰고 오직 자식. 가족들 생계를 위해 철가루 뿌연 연기 가득 마시며 살아오셨던 질곡의 아리랑. 코를 풀면 시꺼만 먼지들로 가득. 폐까지 망가져가도 오직 엄마라는 이유로 그 험난 삶의 현장에서 사투를 하고 계셨던 우리의 역사. 우리의 어머니. 훌륭하시고 위대하십니다.
80세 안내 어르신께서 자세하게 설명도 해 주셔서 감사했답니다.
깡깡이아지매 따고 올라가셔서 일을 하셨던 그 의자. 의자를 보는 순간 만져보며 과거 속 그 아픔과 순간을 떠올려 보았답니다
깡깡이생활문화센터 박물관에서 영도의 과거의 역사속으로 여행해 보기.
깡깡이생활문화센터가 있던 자리가 원래 대평유치원 자리여서 지금은 이 표말만 걸려 있다고 하심.
그 시절 그 때 사용했었던 깡깡이생활문화센터 박물관 내부 모습입니다
100호 그림속 105 득명이라는 글을 보신 영도 깡깡이생활문화센터의 부회장을 우연히 뵙고 이 배가 고등어 배로 득명이라는 배 주인이 갑부 중 갑부이셨고 그 당시 아마도 제가 그림 스케치했던 시절이 2000년대쯤 되었을까? 그때쯤 영도 조선소에 자주 가서 야외스케치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하여 화실에서 100호를 그렸으니 ᆢ. 그 당시 득명이라는 회사는 배를 7척이나 두신 갑부였다고 하셨답니다.
그 이후로 웃 어르신들 돌아가시고 집안이 몰락하여 전국으로 가족들이 흐틀어져 갔었다는 부회장님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더 저의 그림에 소중함과 위대함. 감동이 느껴졌답니다.
부회장님께서도 그 그림을 보시고 우째 득명이라는 이름을 그림에 넣었는지 매우 궁금해 하시고 있었는데ᆢ.
지난 일요일에 엄마모시고 관람갔다고 우연히 뵙고서는 더 감흥이 와 닿았답니다. 그냥 그림을 그렸었는데ᆢ. 한 지역. 한 회사, 한 가정의 일대기와 그 시대의 영도 발전사항을 알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자리였답니다.
부회장님께서 그 당시 아침 7시가 되면 한 50척의 배 들이 만선을 기대하며 바다를 향해 나갔던 현상이 연상되시는 것인지 . 잠시 말을 잊으시고 과거의 그 시절, 추억의 장면으로 되새김하고 계시는 모습에 저 또한 그 감흥이 느껴졌답니다.
득명의 그 회사. 그 후손들께서 옛 어르신들의 개척정신, 부지런함과 성실. 그때의 그 강한 에너지들 받으셔서 행복힌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105 득명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