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토진주류씨족보> 전문가들과의 만남
토진주류씨 몇 분들은 류의태가 실존했다고 말했다. 류의태가 실존했다는 고문헌 근거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류의태가 실존했다고 말을 하는 그들을 찾아 나섰다.
ㆍ산청 신안의 류근모.
류의태 가묘 묘비문에 류근모가 기록되어 있다. 나는 2012년 4월 18일, 26일, 5월 7일 산청군 신안면에 거주하는 류근모씨에게 세 번의 편지를 보내서 ‘류의태’의 실존 근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류의태’와 관련하여 필자에게 아무런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2012년 12월 31일 나는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에 살고 있던 류근모를 만나기 위하여 산청군 신안면 원지를 방문했다. 원지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의 다방에서 류근모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 진주유씨족보에 ‘류의태’가 등재되어 있는지를 문의하였더니, 그는 2005년에 간행된 토진주유씨족보를 필자에게 제시하였다. 그 족보에는 류의태가 등재되어 있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이 족보에 등재된 ‘류의태’의 실존 근거입니다.”
‘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긴대답을 내놓았다.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전하여 들은 이야기다. 중앙에 가면 관련 근거가 있다. 두 분 자매가 있었는데 한 분은 허준 조부 허혼(許混)에게 시집을 갔고, 다른 한 분도 양천허씨(許琛)에게 시집갔다. 서자는 진주류씨족보에 실리지 않는다. 고(故)김상조, 고(故)권재우, 고(故)강연우의 고증을 받았다.”라고 하였고, 2005년에 발행된 진주류씨족보를 제시하였다. 2013년 12월 31일 류근모와의 대화에서.
어른들로부터 전하여 들은 이야기를 족보에 실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근거는 “중앙에 가면 있다.”라고 했다. 중앙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서울에 가면 근거가 있다는 말인 듯했는데 서울 어디인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 족보에는 왜 ‘류의태’가 실리지 않았습니까?”
나의 질문에 그는
“‘류의태’가 서자이기 때문에 서자는 족보에 올리지 않는 관례에 따라 실리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이제 허구의 인물 ‘류의태’는 서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조선에도 서자는 족보에 등재하였다.
<양천허씨족보>에 허준은 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ㆍ경기도 군포시 류보형
2013년 6월 12일 나는 또 다른 토진주류씨 가문의 한 분을 만났다. 그는 토진주류씨족보 전문가 류보형씨이다. 필자는 군포시 당정동에 있는 음식점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이때 동석한 분은 안동 판관을 지낸 유래 선생의 10세 종손 류민상도 동석했다.
그를 만났던 목적은 류의태에 대한 질문이 아니고 진주류씨 가문의 유래 선생과 유이태와의 인연을 듣고자 함이었다. 한양에 살고 있던 유래 선생은 진사 시절 산음의 유이태에게 편지를 보내신 분이다. 류보형에게 “유래 선생이 남긴 문집이 있는지?” 어떤 인연으로 산청에 편지를 보낸 사연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유래 선생은 이조판서 유명현의 아들로 영조 무신란에 연루되어 장살(杖殺)되었으나, 사후에 신원이 복귀되었고, 문집을 남긴 것이 없으며, 토진주류씨 족보 기초를 만든 분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류보형씨에게 그가 조선일보 인터뷰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물었다.
“류의태가 진주유씨 가문의 실존 인물입니까?
그에 관련된 기록 문헌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류의태에 대하여 방송에 나오길래 진주류씨 조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2005년 진주류씨족보에 등재했습니다.”
“실존 근거는 있습니까?”
“실존과 관련된 근거는 없습니다.
방송에 나오길래 우리 조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족보에 등재했다.”
“방송에 柳義泰가 나오길래 우리 조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2005년 족보에 등재하였다. 그러나 柳義泰에 관한 관련 근거 자료는 없다.”
2013년 6월 12일. 류보형과의 대화에서.
드라마나 방송에 이름이 나오면 족보에 자기들의 조상으로 등재할까?
ㆍ토진주류씨종친회
매년 산청 한방약초축제 기간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류의태 승모제가 열렸다. 2019년 진주류씨종친회 대종회장이 참석했다. 그가 추모제 종헌관으로 인터넷신문 <산청의 창>에 류의태 관련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 날짜는 2019년 10월 17일이다. 그는 “류의태가 실존 인물이며, 진주류씨 15세이고, 족보나 구전과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고, 업적과 정신이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대대손손 전해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하기는 그가 인터넷신문 <산청의 창> 기사 인터뷰한 내용이다.
- 산청을 방문하신 소감은.
“산자수명하고 모든 분이 인자한, 정이 넘치는 곳이다. '동의보감촌'은 지리산 자락 정기를 받아서인지 세계적인 힐링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이곳에서 우리 조상의 얼을 느끼게 돼 감개무량하다.”
- 선생 출생에 논란이 있다.
“모든 분이 아시지만 우리나라 한의학계 선구자로 진주류씨 시조의 15세 손이다. 우리 족보나 기록에도 증명이 되는 사항이고,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진주류씨 대종회장으로 자신 있게 말씀드리겠다.”
- 선생의 업적에 대해서는.
“의술로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했다는 것은 구전으로나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생이 출생한 산청 (신안면) 정태마을에는 지금까지 살고 계신 원로 어른들이 윗대 어른들에 의해 들었다며 이를 전하고 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신의 류의태 후손인 진주류씨 대종회장으로서 산청군과 산청문화원, 관련 기관에 감사드린다. 지역에서 선생을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는 동상을 제막한데 깊은 감명을 가지고 있다. 류의태 현창사업은 일차적으로 문중에서 나서야 했으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이 있었다. 선생의 업적과 정신이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대대손손 전해졌으면 한다.”
류의태가 실존 인물인지, 실존 근거, 진주류씨 최초 족보 등재 여부, 생몰년도, 허준의 할머니가 진주류씨이고, 산청 신안이 고향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2019년 12월 30일 강동구 길동 진주류씨대종회 사무실로 8개 항목 질문 내용을 적은 편지를 회장에게 우체국 등기(등기번호 : 11329-0565-8208)로 보냈다.
1) 류의태 선생이 실존했는지?
2) 류의태 선생이 실존했다면 실존 근거가 있는지?
3) 류의태 선생이 산청군 신안면 정태에서 태어났는지?
4) 류의태 선생이 진주류씨 최초 족보에 등재되어 있는지?
5) 류의태 선생이 실존했다면 생몰연도는 언제인지?
6) 기록에도 증명된다고 하셨는데 어떤 기록이 있는지?
7) 허준 선생의 할머니가 진주류씨인지?
8) 허준 선생의 할머니 고향이 산청군 신안면인지?
제가 필요한 것은 진주류씨 가문에서 최초로 발행한 진주류씨족보에 류의태 선생이 등재된 부분입니다. 즉, 일제강점기 이전의 고문헌에 기록된 근거가 필요합니다. 또한, 진주류씨 최초 족보에 기록된 류의태 선생의 가계(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그리고 배우자)를 알고자 합니다. 고문헌에 기록된 류의태 선생의 사적을 요청드립니다.
그러나 토진주류씨대종회 회장으로부터 전화 또는 편지로 어떠한 답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