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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예닮교회
 
 
 
카페 게시글
목사와 설교 스크랩 부활절 ?이 고난주간 특별 새벽 기도회 설교
권오수 추천 0 조회 303 12.01.14 17: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첫째날)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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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주일)

본문: 눅19:28-44

찬송: 102, 405


서론 

본문은 예수의 고난 주간 중 첫째 날(주일)에 대한 기사로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즉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가 마침내 자신들에게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주기 위해 승리의 입성을 하셨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자신이 겸손하고 온유하신 평강의 왕이시라는 사실과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써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자 마침내 수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하겠습니다.


교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로부터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찬송하며 영접했습니다. 부활절 특집 첫 번째 시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1.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매인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 하여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슥9:9의 말씀에 대한 응함이었습니다.

겸손의 왕으로,

평화의 상징으로, 순결하고 무경험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거룩한 목적을 위한 일에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2.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나귀 잔등에 옷을 펴거나 땅에 펴는 것은 왕에 대한 존경이나 개선장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윤기가 흐르는 군마를 타고 개선하나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죽음과 죄와 악한 마귀권세를 이기신 분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3. 겸손하신 분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세상의 왕은 말을 타고 입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이 응답되게 하기 위하여

겸손의 왕으로,

섬기는 분으로,

구약의 말씀대로,

사람의 모양으로 오시어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으로 입성하셨습니다.

 

4. 십자가를 지려고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분으로,

죽은 자도 살리신 분으로,

멸시받고 천대받고 미움 받고 십자가까지 달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죽어야 승리가 있고 부활이 있고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어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자가 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묵상

1.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내가 교회와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나 자    신을 희생하며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결단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신앙인의 위치를 주시고 하신 말씀이 ‘세상의 빛이라’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신앙인은 겸손하게 보이려는 경향이 있어서 세상에서 달아나려는 태도를 취할 때가 많습니다.

대개 기독교인은 얌전하고, 근면하며 품행이 좋고,

또한 학업이 우수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회에서의 우등생이 많습니다.

이러한 평가가 결코 나쁘지는 않지만 비교적 매력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단연코 두드러지는 것이며 특히 주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약한 빛이라도 두드러지는 법입니다.

신앙을 가지면 두드러질 것은 당연하고, 그 빛은 인생의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특징은 없더라도 신앙을 가지고 확실하게 인생을 확립하면 반드시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서 당신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둘째날)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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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난 주간 첫째 날 (월요일)

본문: 막11:12-19

찬송: 219, 144


서론

고난주간 둘째날(월요일)에 있었던 이 사건으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타락한 종교인과, 상도덕을 무시한 상인들을 대상으로 종교 질서를 회복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저주받은 이유는 단순히 열매가 없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 철이 아닌데도 무성하게 잎이 자라서 마치 그 속에 열매가 있는 것처럼 보인 무화과의 겉모습이 문제가 되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진 성전숙정 사건과 더불어, 교만으로 외식을 일삼으며 입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패역한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다.


교훈

부활절 특집 두 번째 시간입니다.

춤추며 노래하며 평화의 행렬을 맞은 예루살렘의 그 다음날의 모습입니다.

무화과나무를 보니 열매가 없고,

성전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물건을 파느라고 자기들의 사욕에 눈이 어두웠고,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베다니에서 나와서 시장하신 주님이 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러나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시고 나무를 저주하시니 부리로부터 마른 것을 다음날 아침에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유대교에 열매가 없음도 보셨지만 오늘 우리들에게서도 열매를 찾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성전에 있는 자들을 보십니다.

주님이 보신 성전 안은...

매매하는 자들과,

짐승을 파는 자들과,

돈을 바꾸는 자들로 아우성이었습니다.

이들의 처음 의도는 좋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타락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미명 아래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선량한 성도를 종교의 이름으로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고로 오늘 우리들에게는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3. 기도해야 할 곳임을 보십니다.

성전을 둘러보신 주님의 마음은 어찌 하셨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거룩하게 놓여야 할 곳이, 기도하는 집이 장사꾼들에 의해 북새통을 이루고 강도의 굴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슬픈 연민과 거룩한 분노를 일으키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도 세상 것으로 가득 찬 마음이 아닌 기도해야 할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4. 순종과 믿음을 보십니다.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랐다고 할 때에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믿음 속에 순종 속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열매가 없는 것은 기도가 없고 순종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고 순종하자는 결심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묵상

1. 나는 믿음도 없고, 기도도 없고, 순종도 없는 그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3등 신앙은 아닌    지 생각해 봅시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잠28:26)


우리의 생활은 대부분 감정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웃거나 울거나 화내거나 하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감정에 맡겨져 행동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이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힘은 우리의 감정보다도 또한 이성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입니다.

감정에 지배된 생활은 잘못 된 것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성은 감정처럼 불안정하지 않고 감정보다는 뛰어나지만 부드러움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이치를 따지는 인간이 되어서 재미가 없습니다. 신앙의 힘은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지혜에 의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판단력이 작용합니다.

이 신앙에 의한 생활은 신앙을 갖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므로, 그것이 몸에 베이도록 습관화애서 변할 수 없는 마음가짐으로 다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셋째날)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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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적사역 1.  (화요일)

본문: 눅20:1-6

찬송: 510, 150


서론

본장은 20장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 배경으로 하여 내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편 본 장의 중심 내용은 종말에 대한 내용으로 제자들을 향한 위로와 경계의 말씀이며 죽음을 사흘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공식적으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도들에게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것으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교훈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6절)

예수님의 지상 생활 마지막 때였습니다.

자주 올라가시던 감람산에서 한 제자가 흥분된 어조로 성전을 가리키며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성전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드리 돌을 깎아 세운 예루살렘 성전이 참으로 멋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눅 21:6).

화려한 건물에 도취한 제자의 눈과 멸망의 날이 도래할 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차이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겉사람과 속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육의 몸과 영의 몸이 있다는 것입니다(고전 15:44). 예수님은 당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저희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라고 질책하셨음을 기억하시고 속사람을 깨끗이 하여야 하겠습니다.


2. 미지근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중간 상태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신자들을 향하여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3. 영적인 눈이 밝아지면..........

  죄를 깨닫고 회개의 눈물이 흐르고 마음의 자유와 구원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속사람의 눈이 열려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야 속사람의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속사람의 눈이 열리면,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고 자신 안에도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최대 축복입니다.


묵상

1. 나는 미지근해지지 않고 뜨거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깨어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또한 어떻게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마음의 설레임들이 생활 속에서 일어납니다.

어렸을 때 저는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고서 집에서 꾸지람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 마음을 조이면서 저녁 내내 집 밖에서 서성거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해질 때까지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줄곧 마음이 설레던 일들만 있었던 것같이 생각됩니다.

그것은 약한 성격 때문이라고 덮어둘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리 강해 보일지라도 누구나 마음이 설레일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약한 마음을 확실하게 방어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부탁해 보아도 같은 인간끼리의 일이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할 수 없는 것은 피차일반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작용하여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평안이 마음속을 지배하게 됩니다. 즉, 마음을 옥죄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약속에는 거짓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마음이 설렐 때에 잠깐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마음의 폭풍을 가라앉혀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신앙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습니다.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넷째날)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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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적 사역 2. (수요일)

본문: 눅22:1-23

찬송: 405, 102


서론

예수의 본격적인 수난사가 시작되는 본장은

예수를 죽이라는 산헤드린의 음모와 예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의기 투합, 음모가 구체화 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장에는 공생애의 마지막 공식 행사인 성만찬과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성부 하나님께 마지막 모든 일정을 의뢰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가 기록되어 있으며 마침내 체포당하여 산헤드린공회의 심문을 당하시는 예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훈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21절)”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생활을 유월절을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은 소란으로 가득 찼습니다. 거리는 모여든 성도들과 소 떼 양 떼들로 붐비고, 거룩한 성전 주변은 시장처럼 흥정하는 소리가 드높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다락방에서는 엄숙한 마지막 저녁 식사가 베풀어졌고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에 대한 설교가 조용히 들려졌습니다. 몇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알아듣는 이는 오직 가룟 유다뿐이었습니다.


1. 직분 맡은 자의 헌신입니다.

  주님의 공생애는 제자 선택과 훈련, 그리고 파송하는 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 선택은 신중하였고 정선되었습니다. 특별히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주님은 일약 ‘부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에 감동된 무리들은 모든 것을 바쳐 주께 봉사하였으니, 그 실례가 옥합을 깨어 발에 부은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입니다.


2. 직분 맡은 자의 넘어짐입니다.

  주님께 바쳐진 재물을 가룟 유다가 관리하기 시작하였으니 이 귀한 직책이 그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울 왕은 40세에 왕위에 올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나중에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지배하게 된 이유는 그 찬란한 왕위 때문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 역시 그에게 주어진 자유가 금단의 과실을 따는데 악용되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도들의 설교에 감동하여 순종한 것이 시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행5:3-4)


3. 직분 맡은 자의 깨달음입니다.

  주를 위해 몸 바쳐 일한 것이 시험이 되기 쉬우며 교회의 선한 직분이 오히려 넘어짐이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애당초부터 마귀의 시험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서 ‘가룟 유다, 너는 스승을 파는 사람이 되라.’하고 운명지어 놓은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귀한 그 직책이 오히려 마귀의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새로워지며, 교회의 귀한 직분이 오히려 넘어짐이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묵상

1. 청년 시절엔 하루는 짧고 한 해는 길다고 합니다. 노년 시절엔 하루는 길고 한해는 짧다고 합니    다. 청년은 희망의 그림자를 가졌고 노인은 회상의 그림자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세월이     빠르다고 말하고 청년은 앞길이 창창하다고 말합니다. 앞길이 창창하고 희망에 찬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2. 내가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걸어가는 걸음을 보고 내가 행하는 일들을 보    면 자연히 그리스도인이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고자 고민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6:43)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로 불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뒤에서 쑤근쑤근 함으로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남에게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며, 이것처럼 교만한 일은 없습니다.

은행에 가서 자기 예금보다 많은 돈을 인출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고 남에게 줄 줄을 모른다면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과 사귈 때도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친절이 돌아올 것이고,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에서 예금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에게 바친 기도나 헌금 또는 봉사는 많은 이자가 붙어서 돌아옵니다.

하나님 축복의 원칙은 이 세상의 표준으로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30배, 60배, 100배로 돌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어서 가히 놀랄만합니다.

다만 이 세상은 모두가 계산적으로 행동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굽어보시는 하나님을 위해서는 이해타산을 따져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다섯째날)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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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후 만찬 (목요일)

본문: 요13:1-11

찬송: 285, 186


서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임하였음을 알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십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제자들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을 대야에 담아 일일이 씻어 주심으로서 겸손의 모범을 보이십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그를 배반하여 그를 팔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시며, 아울러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교훈

유월절 전에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을 때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셨지만, 하실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찬의 떡을 나누시고 섬김의 본을 보이셨으며, 사랑과 기도와 순종의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소개합니다.


1.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아낌없이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살과 내 떡을 먹지 않고서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심으로 자신의 살이 찢기심을 말씀하고 잔을 나누시면서 자신이 흘리신 피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2. 섬김을 보여주신 날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러 오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인간은 서로 섬김을 받으려하나 주님은 교만하고 자만한 인간들에게 지도자로서 말도 되지 않는, 희생으로만 되는 교육적인 섬김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기도를 보여주신 날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기도의 본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찬송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갈증 나고 처절하고 애처로운 십자가의 죽음 속에서 기도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4. 순종을 보여주신 날입니다.

  주님은 골고다 산상에서 순종을 보여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오셨고,

말씀대로 사셨고,

말씀대로 죽으시기 위하여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온 인류를 위하여 순종의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잡히셨습니다.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이루셨습니다.


묵상

 

1.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나는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어떤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가 생각해 봅시다.

2.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보    통 어부가 되어버린 경우입니다. 여러분들의 뜨거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4)


자기의 삶을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고 그러한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와 같은 경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비록 작은 빛일지라도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살아나가는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인생을 살며, 예수 안에서 높은 긍지를 가지고 사는 것이 참다운 기독교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참다운 인생을 경험할 때 자기 안에서 영적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상식적인 세계가 아니고 하나님의 상식, 즉 세상 지혜보다 훨씬 높고 존귀한 것이 통용되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인생관에 기초를 둔 삶을 사회에 유행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빛을 발산해 보지 않겠습니까.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여섯째날)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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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에서 (금요일)

본문: 마27:32-36

찬송: 148, 141


서론

금요일 오전 9시경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심한 매질로 인해서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짊어지고 갈 기력조차 없는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는 인간들의 극심한 모욕과 조롱을 다시 한번 겪으심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영적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 순간에 인류 역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십자가에 붙여진 죄패 ‘유대인의 왕 예수’는 예수께서 진정 만왕의 왕, 메시야라는 사실을 사악한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 선포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교훈

주님은 우리 위해 몸 버리시고 피 흘려 우리 죄를 사해 주셨는데,

우리는 주님 위해 무엇을 주었고 드렸습니까?

십자가는 죄로 얼룩진 인생의 길잡이입니다. 구원받는 길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 속에 승리가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

1. “목마르다”고 하십니다(요19:28).

  “내가 목마르다”

가야바 법정에서 갈보리 산까지 가시는 동안에 지치신 몸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십자가상에서 강렬한 태양을 받으신 예수님,

몸의 피를 기도로, 창으로 찔리시어 다 쏟으신 예수님,

우리가 나음을 입기 위해 당하신 고난 속에서 느끼는 갈증으로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세상 속에서 갈증을 느끼는 성도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십니다.


2. “다 이루었다” 하십니다(요19:30).

  인간의 몸으로 오시어 수 많은 고초를 당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구속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낮은 자로 오시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해결하셨습니다.

이를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영혼을 부탁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눅23:46).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두움이 임할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을 당할 때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 가운데 빠진 인생들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4.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가야 합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에 효험이 있음을 알고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로 얼룩진 우리 삶 마음을 씻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묵상

1. 내 주위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에 얼룩진 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들과 어떤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2. 멸망으로 가는 길인 줄 모르고 가는 사람은 알려줘야 되겠지만 멸망으로 가는 길인 것을 알면서    도 가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


회교도 한 사람이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다가 회교도 교사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의문이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어떠한 질문인가?”

“사람이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잃었는데 옆을 보니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산 사람이었습니다. 누구한테 길을 물어보아야 하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

“그런데 왜 당신들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으라 하십니까?”

“아니, 이 사람 누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으라 했나?”

“마호메트는 죽은 사람이요, 예수는 부활해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들이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겠습니까?”

그 교사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입을 열어 열고서.....

“나는 모르겠네, 당신 마음대로 하게.”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터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합니다.



부활절 특집  (고난주간 일곱째날)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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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 (토요일)

본문: 눅23:44-49

찬송: 135, 102


서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 명령을 행하시는 부분입니다.

예수는 여기에서 말씀을 근거로 명령을 행하십니다.

특히 누가는 그 중에서도 말씀의 성취를 부각시키는데, 이러한 말씀의 성취는 누가의 주요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모략에 의해 결코 실패하지 않으셨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교훈

고난주간 속에 주님의 사랑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희생과 우리 인간을 향한 모든 것이 내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속에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아픔과 구속사역이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과 십자가와 보혈이 있습니다.


1. 기도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감람산에서 쓴잔을 놓고 기도하시는 주님은 땀방울과 핏방울과 눈물로 하나님께 심한 통곡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받으신 고난에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영원한 구원이 되시고 멜기세덱을 좇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을 보시고 우신 주님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2.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죄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택하신 성도들을 위하여 가장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기에 사랑이 있고,

구원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3. 보혈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피까지 다 쏟으시고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심장이 파괴되고

머리가 가시 면류관으로 상처가 나고,

손과 발이 대못에 의해서 상처가 나고,

그 속에 남은 피까지 다 흘리시는 보혈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가 죄를 속하게 하시었습니다.


4. 구속사역을 위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신 주님이십니다.

영광의 자리를 버리시고 오신 주님이십니다.

이 모든 것은 구속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 이런 희생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도록,

세상의 종이 아닌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굳은 각오로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묵상

 

1. 나에게 허락하신 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며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흘린 땀방울은 얼마나 되는    지 생각해 봅시다.

2. 당신이 의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언제든지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힘들고 오르막길    이지만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소망임을 기억하시고 좌    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굳굳이 인내하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화감상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독실한 기독교인이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상점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한 폭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그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북받쳐 오르는 감격 속에 그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웬 거지 소년이 나타나서 그 그림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동냥해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십자가 밑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바라보는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십니다.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 분을 저렇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저기 건너편에 있는 무덤에 묻었답니다.”

그 기독교인은 감동을 억제할 길이 없어서 얼른 한 푼을 쥐어 주고는 가던 발걸음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까 누군가 뒤에서 옷자락을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더니 거지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은 헐떡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한 가지 잊고서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것을 다 안다고 할지라도 그의 부활을 알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마치 중요한 공문서에 있어야 할 직인이 빠져버린 것과 같은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특집  (여덟째날 부활주일 아침)                                                      4월 12일

 


제목: 부활의 능력 (주일)

본문: 마28:1-10

찬송: 159, 160


서론

 

이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절망을 뚫고 인류 역사에 새롭고 영원한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이 없었다면 성도들의 삶은 지극히 어리석은 광대놀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한편 예수의 부활에 대해 천사가 여인들에게 일러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두려워 말라: 부활은 인간을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구원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② 그는 여기 계시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 영원히 살아   계신다.

③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2000년 전의 여인들이 보았던 그 무덤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비어 있다.

④ 빨리 가서 말하라: 예수의 부활은 성도들이 땅 끝까지 전파해야 될 메시지이다.


교훈

기독교에는 부활이 있고 그 부활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덤의 문을 여는 능력이 있고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마귀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악의 골리앗과 정욕의 골리앗과 가정을 괴롭히는 문제를 이기고 기쁨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1. 힘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고 힘이 생겼습니다.

의심하던 도마가 주님의 손과 못 자국을 보지 못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으나 그도 보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세상을 복음으로 전도하기 시작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2. 새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가 주의 능력으로 일어났습니다.

들 것에 들려 온 자가 사도들의 그림자가 지나만 가도 일어났습니다.

쓰던 수건을 얼굴에 대기만 하여도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새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능력으로 새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3. 소망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없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만을 바라보던 자들이 믿음의 믿음을 더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란 문을 열고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4. 부활의 능력을 얻으려면......

  예수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그대로를 믿어야 합니다.

주의 부활만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드린 것과 같이 예수님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마른 뼈들에게 명한 것같이 부활을 명해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 하면서 항상 주의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묵상

 

1. 성경에는 믿음으로 인하여 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았는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는 어    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2. 환희의 웃음보다 나은 양약은 없고, 조소의 웃음보아 치명적인 독약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합니다.    부활의 기쁨과 능력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내가 살아있기에


일찍이 세상은 이런 밤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생명의 주님은 무덤 속에 누워 계십니다.

배신자의 입술을 참으시고 죽으셨으니

이 깊은 슬픔, 짙은 어두움 어찌합니까?


왜 그는 잔인한 저들을 막지 않으시고,

저 골고다 언덕 위를 오르셨습니까?

하늘 군대 있으나 말씀으로 사시리라.

주님은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진리와 은혜의 말씀을 전하시고

때론 애통한 자들과 떡을 나누시던 그 분,

죽으셨습니다! 이젠 아무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다리십시오.

부활하시는 승리의 날이 있습니다.

무덤은 결코 주님을 붙잡지 못합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죽음을 이기시고

새로운 생명의 길 활짝 여십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속에서

가장 위대한 말씀을 듣고 있으니,

권위 있는 말씀, 경이로운 말씀,

“내가 다시 살았으니 너희도 살리라.”

그리스도 나의 주님 십자가 지신 후에

이제 나에겐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그 분 죽으셨으나 왕으로 다시 사셨으니

언제나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진실한 나의 친구

살아계신 진실한 내 마음의 친구

그 분이 다시 사셨기에 결코 난 죽지 않고

그분의 성스러운 사랑 속에 영원히 살겠습니다.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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