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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승옥
김승옥(金承鈺 1941- )
소설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나 전남 순천에서 유년을 보냄. 바닷가의 체험은 나중에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됨. 대학 시절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김현, 최하림, 이청준, 서정인 등과 교류하였는데, 이 동인들은 이후 우리 문학의 주된 산맥이 되었다. 그 선두 주자는 물론 그였는데,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생명 연습(生命連習)"이 당선되면서 등단함. 그는 1960년대를 한국 소설의 한 혁명기로 이끌었던 자로, 감수성 짙은 지성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산문의 길을 열었다.
이 문체의 확립으로 한국 소설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도시적 삶에 적응하려는 서민들의 애환, 1960년대의 지적 우울 등을 감각적 터치로 그린 작품이 많았는데, 그 대표작이 "서울, 1964년 겨울", "무진기행",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건", "환상 수첩" 등을 잇따라 발표하여 문학적 성과를 쌓았다. 그의 소설은 '섹스' 모티프가 주요한 일면을 가지면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모습을 윤리적 측면과 결부하여 그 내면 의식을 심도 있게 드러내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는 1981년 종교적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기독교의 수도에 몰두하느라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먼지의 방" 연재 중단 이후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면서 절필하였으며, 1995년에 <김승옥소설전집>이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 소설의 언어적 감수성을 세련시킨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자들은 흔히 그를 내성적 기교주의자의 대표적 작가로 내세운다.
최근에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책을 펴냈다.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의 작가 김승옥이 긴 투병생활을 뒤로 하고 신작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 산문집은 1980년 장편 <먼지의 방>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 신군부의 검열에 항의, 절필 선언을 한 후 24년 만에 펴내는 책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17편의 글이 실린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진다. 1부는 갑작스레 하나님을 만나게 된 작가의 체험적 고백, 2부엔 극본 집필차 떠났던 성지순례 이야기가 담겼다. 3부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문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실려있고, 마지막 4부는 김현, 최하림, 김치수, 서정인 등 쟁쟁한 문필가들을 배출한 '산문시대' 동인 이야기이다.
김승옥 작품세계
- 세련된 언어표현 뛰어나-- "6.25이후 혼란 뭔가 정리할 필요" 당시 회상
[서울, 1964년의 겨울]은 65년 [사상계] 6월호에 발표됐다. 당시 김승옥씨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먹물 룸펜]이었다. 그러나 이미그는 60년대 소설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유명 작가였다.훗 날 연극연출가로 이름을 날린 오태석의 신촌 자취방과 이화여대 앞 파리다방을 오가며 65년 봄 완성한 이 소설은 그해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사상계의 청탁을 받은 그는 천박하지 않고, 유머가 있으며, 시니컬한 소설을 쓰기로 했다. 냉소의 대상은 서울. {서울을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보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본 서울은 생존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 논리만 강요하는 인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원생과 병사계직원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도 실은 대화가 아닙니다. 다이얼로그가 아니라 모노로그지요. 자기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그는 대화부재의 근본원인을 공통된 규범의 부족에서 찾고 있다. 동행하던 사람이 죽어도 자신의 불편을 피해 총총히 여관을 떠나는 인물에게 어떤 가치나 질서도 찾을 수 없다. {6.25이후 모든 질서가 사라졌습니다. 어떤 형태의 질서라도 좋으니 혼란을 정리해줄 그 뭔가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6.25이후 무너진 질서의 회복을 꿈꾸고 있었다고 회고했다.[4.19 적경험]이니 하는 부분은 당시 머릿속을 채웠던 질서회복에 비하면 별로 큰 부분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문단에 커다란 감동과 충격을 안겨 주었다. 동세대 평론가 김치수씨는 {기존 가치에 대한 절망감을 엄숙하지 않지만,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김승옥 소설은 오랫동안 문학청년들 사이에서 정전으로 추앙 받았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신경숙씨는 습작시절 김승옥 소설을 대학노트에 그대로 베껴 쓰면서 문장 수업을 했다. 문학의 새 기수로 환영을 받은 그는 그후 영화 [감자]등을 제작하기도 했고, 70년대에는 [겨울여자]등 히트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70년대 말 이후에는 절필과 복귀 등을 거듭하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신앙 생활에 몰두하면서 창작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지난해 [김승옥 전집](전 5권·문학동네)을 출간, 그동안의 작업을 일단 정리하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문단에선 김승옥문학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하고있다. (출처 : 블랙박스 교과서)
김승옥 문학의 문학사적 의미
김승옥은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전후 문학과 인식론적 단절을 이룩하고 스스로 새로운 글쓰기의 영도가 되었다. 이처럼 청신한 감수성과 젊음의 순수함만을 갖고 출발한 그의 문학은 그만큼 훼손되기도 쉬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김승옥의 소설은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급격한 퇴락의 기미를 드러내며,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집단에게 자신이 지켜왔던 자리를 하나씩 물려준 바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통념대로 김승옥의 문학사적 의미는 60년대 후반에 끝나 버렸을까. 한편으로는 그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문학사적 맥락에서 볼 때, 60년대 후반 이후 김승옥이 들어설 자리는 별로 없다. 하지만 김승옥 문학은 문학사적 단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단편 소설의 모방할 수 없는 규범으로 군림해 왔고, 수많은 추종과 모방과 반역의 대상이었다. 이 점이 가장 가장 중요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고 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김승옥은 모든 문학적 출발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학에 뜻을 둔 젊은이라면 누구나 김승옥이 걸어간 파괴와 창조의 행로를 되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승옥은 문학적 젊음의 영원한 표상이다. (출처 : 진정석, '글쓰기의 영도 : 김승옥론')
줄거리
1964년 겨울, 서울의 어느 포장 마차 선술집에서 안씨라는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나'는 우연히 만난다. 우리는 자기 소개를 끝낸 후 얘기를 시작한다. 우선 '파리(Fly)'에 관한 이야기다. 파리를 사랑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우물거렸고, 나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본 것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스스로 답한다. 추위에 저려 드는 발바닥에 신경 쓰이는 나에게 그는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의기양양해져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자 아랫배의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그는 꿈틀거리는 데모를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끊어지고 만다.
다른 얘기를 하자는 그를 골려 주려고 나는 완전히 자신만의 소유인 사실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다. 즉 평화 시장 앞 가로등의 불꺼진 갯수를 이야기하자 그는 서대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의 숫자를 이야기한다.
나는 안형을 이상히 생각한다.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원생인 사람이 추운 밤, 싸구려 술집에 앉아 나같은 친구나 간직할 만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러운 것이다. 안형은 밤에 거리로 나오면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술집에서 나오려 할 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가 우리 쪽을 향해 말을 걸어와 우리와 함께 어울리기를 간청한다. 힘없이 보이는 그 사내는 저녁을 사겠다고 하며 근처의 중국요리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아내가 급성뇌막염으로 죽었고 그녀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직업은 서적 월부 외판원이었다는 것, 옛날에 부인과 재미있게 살았다는 것 등을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며 말을 계속한다.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모두 써버리고 싶어했고, 우리에게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주기를 부탁한다.
중국집에서 나와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가서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사고 귤도 산다. 돈의 일부를 써버렸지만 아직도 얼마의 돈이 남아 있다. 그때 우리 앞에 소방차 두 대가 지나갔고, 사내는 소방차 뒤를 따라 가길 원한다. 택시를 타고 화재가 난 곳에 도착해서 불구경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가 불길을 보고 아내라고 소리친다. 그러곤 남은 돈과 돌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버린다. 결국 그 돈은 다 쓴 셈이 되었고 우리는 약속한 대로 가려 했지만 사내는 우리를 붙잡는다. 혼자 있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밤만 같이 지내길 부탁하며 여관비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 함께 들르길 요청한다. 사내는 남영동의 한 가정집 대문앞에 멈춰 벨을 누른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리며 월부책 값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여관으로 들어간다. 여관에 들어가서 우리는 방을 몇 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약간의 이견을 갖게 되나 각자 방을 정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다. 안과 나는 성급히 거리로 나온다. 안은 그 사내가 죽을 줄 알았다는 것, 그래서 유일한 방법으로 혼자 놓아둔 것이라고 말한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할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이해와 감상 1
이해와 감상 2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승옥씨 <서울 1964년 겨울> -[한겨레신문] 1996. 7. 12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광고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그저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중)
1964년 겨울 서울의 한 포장마차에서 세 남자가 만난다. 김이라는 성을 가진 `나'는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고, 대학원생 `안'은 부잣집 장남으로 두 사람은 모두 스물다섯살이다. 서른대여섯 돼 보이는 또 다른 사내는 서적 외판원. 처음에 말문을 튼 안과 `나'는 학력과 처지의 천양지차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상과는 겉돌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나중에 합류한 제3의 사나이는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숨지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판 뒤 낙담과 죄책감으로 시체 판 돈을 다 써버리자고 스물다섯살짜리들을 유혹한다. 억지로 돈을 쓰러 돌아다니던 세사람은 불자동차 뒤를 쫓아가 불구경을 하는데, 상처한 사나이는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남은 돈을 던져버린다. 세사람은 그날 밤 같은 여관의 서로 다른 방에 투숙하며, 다음날 이른 아침 상처한 사나이가 밤사이 자살한 것을 알게 된 두 젊은이는 몰래 여관을 빠져나와 기약없이 헤어진다….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쓴 것일까.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에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로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 참고 문학이론 <벽(壁)> )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김승옥 소설은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으로써 두드러진다.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감수성은 사물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봄으로써 결국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된다. <무진기행> 중 안개를 묘사한 저 유명한 대목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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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김승옥씨의 소설들이 발아하고 무르익은 곳은 작가가 다니던 서울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일대였다. 작가에게 서울은 전쟁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폐허 같은 도시였다. 서울 토박이라고는 구렁이 같은 복덕방 영감과 앙칼진 목소리의 셋방 주인 아주머니 정도일 뿐 나머지 서울 주민은 월남 피난민들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상경한 이농민들이었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를 펼치는 살풍경이 서울의 모습이었다.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
60년대의 서울이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주었고(`서울 1964년 겨울'), 70년대의 서울은 이상문학상을 주었다(`서울의 달빛 0장'). 그렇다면 96년 여름의 서울 하고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과 대학로는?
1996년 여름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늦은 오후의 그곳은 저마다 세상으로 열린 숨구멍이라도 된다는 듯 허리께에 호출기를 찬 젊은이들로 채워진다. 관악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서울대가 있던 마로니에 공원이 그들의 주요 집결지다. 이 거리의 명물인 아마추어 화가들과 가수들, 엔비에이(NBA)의 환상을 사고[買] 또 사는 [生] 아이들, 새 상품 홍보를 위해 목걸이 볼펜을 나누어주는 언니들, 다른 대책이 서지 않아 하릴없이 앉아 있는 연인들, 나름으로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몇몇 알콜중독자들, 아이스크림 장수, 외국에서 산 장신구와 기념품을 늘어놓고 여행경비를 마련하려는 외국인 배낭여행자…. 이들은 무책임한 구경꾼이자 스스로 남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즐기며 96년 여름 서울의 대학로를 수놓고 있다.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작가가 90년대 소설에 관해 말한다.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강해졌다는 것은 장점이다. 반대로, 싸워야 할 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개조를 위한 욕구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는 결코 민중문학론자도 실천으로서의 문학의 신봉자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그는 4·19와 6·3을― 그 성취와 좌절, 영광과 수치까지를 포함해 ―청춘의 훈장으로 간직한 전투의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3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 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 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에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 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를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 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김승옥 소설은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으로써 두드러진다.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감수성은 사물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봄으로써 결국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된다.
김승옥의 소설들이 발아하고 무르익은 곳은 작가가 다니던 서울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일대였다. 작가에게 서울은 전쟁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폐허 같은 도시였다. 서울 토박이라고는 구렁이 같은 복덕방 영감과 앙칼진 목소리의 셋방 주인아주머니 정도일 뿐 나머지 서울 주민은 월남 피난민들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상경한 이농민들이었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를 펼치는 살풍경이 서울의 모습이었다.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최재봉, (한겨레신문)]
이해와 감상 4
등장인물의 특징
이 소설은 '나'와 '안(安)'이라는 25세 동갑내기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들의 진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共有)할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나'와 '안(安)'에게 그 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해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미를 사내가 눈치챘음일까, 화재(火災)가 난 곳을 찾아가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버리는 행위는,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분노요,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즉,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뇌와 슬픔을 공유(共有)하기를 바라나 '나'와 '안'은 받아 주지 않으며 부담스러워한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서도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나', '안(安)', '사내' 등으로 익명화(匿名化)되어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이 그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 자기 중심주의, 언어 불소통을 암시하는 문학적 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