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초서 / 이동일, 이동춘 옮김,『캔터베리 이야기2』, 민음사, 2023.
제9장
식품 조달인 이야기에서
포이베는 즉시 까마귀에게 달려들어 모든 하얀 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뽑은 뒤, 까마귀를 검은색으로 만들고 그것의 노래하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을 모두 빼앗고, 문밖으로 내던져 악마가 데려가도록 했다. 이에 따라 모든 까마귀가 검은색이 된 것이다.
여러분, 이 예를 통하여 여러분께 바라건데 내가 하려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 평생 누구에게도 다른 남자가 그의 아내와 잤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 틀림없이 그는 당신을 죽도록 미워할 것이다. 지혜로운 스승들이 말하고 있듯이, 솔로몬 왕은 사람들에게 입을 조심하라고 가르쳤는데, 내가 말했듯이,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
“얘야, 정말이지 까마귀의 우화를 기억하여 입을 조심하여 친구를 잃지 않도록 해라. 사악한 입은 악마보다 더 나쁜 것이란다. 얘야, 우리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악마에게서 벗어나 축복받을 수 있단다. 끝없이 선하신 주님께서 이빨과 입술을 가지고서 혀 주위에 담을 쌓아 주신 덕택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먼저 생각하고 말하는 거란다. 얘야, 스승들이 가르쳐주고 있듯이, 많은 사람이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으로 죽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적게 그리고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은 해를 입지 않는 법이란다. 예야, 하느님께 명예를 돌리고 기도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너의 입을 조심해야 한다. 만약 네가 알기를 원한다면 최고의 덕목으로 자기 입을 자제하고 조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어릴 때,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도록 해라-얘야, 생각도 않게 너무 많이 말함으로써 큰 피해가 온단다. 나는 그렇게 들었고 배웠단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죄는 많아지는 법이란다. 성급한 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너는 아느냐? 탈이 팔을 둘로 자르는 것처럼, 얘야, 이와 똑같이 입도 우정을 둘로 벨 수 있는 것이란다. 말이 많은 사람은 하느님이 싫어한단다. 그처럼 현명하고 위대한 솔로모느이 글과 다윗의 『시편』, 그리고 세네카가 말한 내용을 읽어보거라.얘갸, 말은 하지 말고 고개만 끄덕이거라. 수다쟁이가 하는 위험한 말을 듣게 되면 귀먹은 행세를 하거라. 플랑드르 사람들이 말하는 이 말을 잘 배워 두거라, 적게 말함으로써 많은 행복을 누린다고 했다.
예야, 네가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면 배신당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법이란다. 말하건대 말을 잘못해 버리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법이란다. 후회하든 싫든 좋든 간에 한번 말한 것은 말해진 것으로 그만 날아가 버리는 것이란다. 좋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람의 노예가 된단다. 얘야, 조심하거라, 그리고 소식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그 소식을 처음 말하는 사람이 되지 말거라. 어디에 가든 지위가 높은 사람과 혹은 낮은 사람과 함께하든지, 네 입을 조심하고 까마귀가 주는 교훈을 생각하거라.”(274~276쪽)
7대 죄악
이제는 7대 죄악, 즉 죄악 중에서 으뜸가는 죄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 7대 죄악은 모두 한 줄에 꿸 수 있지만 그 내용은 각각 다르다. 이것들을 으뜸가는 죄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모든 죄악보다 중대하며 그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곱 대죄의 부리는 오만 혹은 교만이다. 이것에서 나머지 모든 죄가 파생되기 때문이다. 이 뿌리에서 분노, 질투, 나태, 탐욕, 탐식, 그리고 음란이라는 큰 가지가 싹츤다. 이런 죄악은 각각 또 작은 가지를 갖고 있다. 이제 그것을 차례대로 살펴보겠다.(312쪽)
교만
누구도 교만에서 파생되는 해악의 가지와 싹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그중 몇 개를 먼저 적어보겠다. 그것들은 불순종, 자만, 위선, 경멸, 거만, 몰염치, 무례, 불손, 성급함, 완고함, 자부, 고집, 불경, 허영, 수다 등으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지도자와 영적인 아비들의 계명을 거부하고 경멸하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이 행한 악한 일이나 선한 일은 자랑하는 자도 자만하는 자이다. 위선자는 진실을 숨기고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는 사람이다. 경멸하는 자는 자신의 이웃, 즉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업신여긴다. 거만한 자는 자신에게 있지 않은 자질을 가졌다고 믿거나, 자신이 그런 자질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며, 일을 잘못했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가 자만하는 자이다. 무례는 다른 사람의 가치와 지식과 말솜씨와 행동을 우습게 여긴다. 조급한 자는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참지 못하며, 고의로 진리와 맞서 싸우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손한 사람은 윗사람들이 지닌 권력과 권위에 분노하며 거역한다. 그리고 자부심은 과도한 자기 믿음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불경이란 마땅히 행해야 할 공경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공경받으려 하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에 집착하거나 혹은 자기 생각에 집착하는 것을 고집이라고 한다. 허영은 세속적 지위를 차지하고 우쭐대고 잘난 체하며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수다는 남들 앞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며 방아 찧듯 재잘거리며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가리지 않고 지껄이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 종류의 교만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남에게 인사하기 전에 자신이 그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일지라도 먼저 인사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들보다 먼저 자리에 앉거나 행렬의 맨 앞자리에 서고,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신부의 손에 입을 맞추려고 하고 남보다 먼저 향불을 피우거나 먼저 예물을 바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분수에 지나치게 남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존경받으려는 욕망을 품는 것이다.
또한 두 종류의 교만이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하나는 사람의 마음 밖에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과 다른 무수한 것들이 마음속의 교만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나머지가 마음 밖의 교만에 속한다. 하나의 교만은 다른 교만이 존재한다는 표시이니 그것은 주막 문간에 있는 생기 있는 수목이 그 집 술 창고에 있는 술의 질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말과 행동과 과도하게 치장한 옷차림에서도 알 수 있다. 진실로 옷차림에 죄가 없다면 주님이 복음서에서 부자의 옷차림에 대해 언급하거나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313~314쪽)
이제 교만이 어디에서 파생되는지 알아보자. 때로 교만은 타고난 자연의 혜택이나 운명의 혜택, 또는 은혜 그 자체에서 생겨난다. 자연의 혜택은 육체적인 행복이나 영혼의 풍요함을 말한다. 육체적인 행복은 힘, 활력, 미, 좋은 혈통과 순결 등과 같은 건강과 관련되는 것이다. 영혼과 관련된 자연의 혜택은 기지, 탁월한 이해력, 영리함, 미덕과 뛰어난 기억력 등이다. 운명의 혜택으로는 부(富), 높은 지위와 사람들의 칭송 등이 있다. 그리고 은혜가 주는 혜택으로는 지식, 영적인 고통을 견딜 힘, 온유함, 덕스러운 사색과 유혹에 저항할 능력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 중 어떤 한 가지의 혜택을 입었다고 오만해진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연의 혜택이 우리에게 이로운만큼이나 해롭다는 것을 하느님이 아신다. 건강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더욱이 영혼을 사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육체는 영혼의 거대한 적이며 육체가 건강할수록 우리는 죄에 빠질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또한 육신의 힘을 자랑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육체는 영혼에 치명적인 것을 탐하고, 육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영혼은 점점 비참하게 된다. 무엇보다 육체의 힘과 세속적인 세력은 사람을 불행의 위험에 빠지게 한다. 또한 자신의 고귀한 태생을 자랑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종종 육신의 고귀함이 정신의 고귀함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를 두었으며 그래서 우리 모두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썩고 부패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나의 고귀함만이 진실로 고위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덕성과 도덕으로 치장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다. 진실로 죄는 어떠한 사람이든 지배하여 그를 노예로 만든다.
고귀한 품성의 징후는 다름과 같다. 악과 성스럽게 말하는 것을 피하고 말과 행동으로 죄짓지 않는다. 덕성을 지니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순수하게 행하며 도를 넘지 않는 관대함을 행한다. 관대함이 도에 지나치면 어리석은 것이며 죄를 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징후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아랫사람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세네카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 중에서 친절과 정중함과 연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가 벌이라고 부르는 날벌레도 왕을 뽑을 때 침이 없는 벌을 선택한다.” 또 다른 징후를 꼽자면 부지런한 마음을 품고 고귀한 덕성을 얻는 것이다. 자신이 은혜의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자도 아주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레고리우스 성인이 말한 것처럼, 고통의 경감과 선으로 이끌 수 있는 선물이 오히려 사람들을 악과 혼동 속으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혜택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자들도 진실로 어리석은 자임에 분명하다. 아침에는 고관대작이었던 자가 종종 해가 저물기도 전에 죄수나 비루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때로 사람의 부유함이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 괘락이 살마이 죽게 되는 치명적이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의 칭찬도 믿기에는 너무 거짓되고 깨지기 쉬운 것이다. 오늘 칭찬하는 사람들이 내일은 비난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만은 약삭빠른 자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다 멸망했다.(318~320)
교만의 죄에서 구제되는 법
이제 여러분은 교만이 무엇이고 그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교만이 어디에서 파생되었는지 알았을 것이니, 지급부터는 교만의 죄에 대한 치료법, 즉 겸손과 온유에 관해 알아보겠다. 겸손을 통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자신의 공적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의 약점에 대해 계속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겸손에는 세 가지가 있다. 마음의 겸손과 입술의 겸손, 행위의 겸손이다. 마음의 겸손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 자기 자신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로 여기는 것, 아무도 경멸하지 않는 것, 사람들이 자신을 가치 없는 자로 여겨도 그것에 개의치 않는 것, 자신이 굴욕울 당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입술의 겸손함도 네 가지가 있다. 절제 있고 온화하게 말하는 것,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그대로 말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고, 그것에 대해서 깎아내리지 않는 것이다. 행동의 겸손에도 네 가지가 있는데, 남들을 자신보다 앞세우고, 가장 낮은 자리를 자신을 위해 선택하며, 다른 이의 충고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지배자나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의 결정을 기쁘게 따르는 것이다. 이 네 번째가 가장 뛰어난 겸손의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