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에서 북쪽을 보면 불교 태고종 본산인 봉원사를 품고있는 안산(鞍山: 295.5m)이
보인다.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에서 살고있지만 이 산을 오른 적은 53년 전인 중학교 2학년 때,
무악재 부근의 영천 자락에 살던 동무와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딱 한 번 올랐었다.
그러나 인왕산과 북악산이 김영삼과 노무현 정부 때 풀린 후, 서울 성곽 돌기가 서서이
유행하는(?) 요즈음 나도 시간이 나면 안산으로 올라가 인왕산, 북악산, 낙산을 거쳐
동대문(東大門 : 興仁之門)까지 걸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세브란스병원 치과에
들릴 일이 생겼다. 그래, 오늘 가보자.
치료를 마치고 이 곳 치과대학에 있는 동생 방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니 09시 40분.
안산을 겨냥하고 무조건 병원 북쪽길로 올라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봉원사에 다다르다.
이곳에서 안산은 잠시이다.
통신시설이 있는 군부대를 우회하여 봉수대가 있는 안산 정상에(?) 10시 30쯤 도착.
잠시 숨을 고르며 앞에 보이는 인왕산 오름길을 가늠해 보나 아파트 군락 사이에서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마침 동네분이 계시기에 길을 물으니 밑에 보이는 초등학교 사이길로 내려가 육교를 건너면
청구아파트 사이로 인왕산 오름길이 있단다.
그러면서 내모습을 아래 위로 처다보더니, "안산을 오르고 저곳을 또 오르냔다"
머리는 반백이지만, 며칠 깎지 않은 수염은 완전 하얀 내가 다소 근심스러웠나 보다.
홍제 삼성아파트를 지나 무악재 근처의 큰길로 내려오니 11시 10분쯤.
시각은 다소 이르지만 아무 것도 챙기지 않은 빈몸인데다가 성북동 내려가기 전에는
계속 산길이기에 이곳에서 오징어덮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다.
11시 40분.
청구아파트 옆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다.
난생 처음 오르는 이 길에는 수량은 적지만 그렇듯한 폭포도 있는게 전에는 제법 운치께나
있었을 것 같다.
이 길로 인왕산 오름은 처음이지만, 사실 인왕산은 나의 모산이나 다름없다.
인왕산 동쪽 자락에서 태어난 나는 인왕산이 놀이터였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위 맛(?)을 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12시 20분 인왕산(仁王山: 338.2m) 정상.
서울(한양)의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은 일제 강점기에는 仁旺山으로 불리었으나 1995년도에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중학교 삼학년 때만 하여도 이곳에서 시내를 보며는 제일 눈에 띄는 건물이, 김영삼 정부 때
허물어 버린 중앙청(일본 총독부 청사)과 그 옆으로 그 무렵에 막 세워진 당시는 재무부가 있었고
지금은 문화부가 있는 건물과 그 옆의 미대사관 건물, 그리고 종각 옆의 화신백화점(지금의 삼성
건물) 정도였는데 완전히 상전벽해(桑田碧海)이다.
예전에 청운시민아파트가 있던 곳을 지나(지금은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고 윤 동주 시인의 시비도
세워져 있다) 12시 50분 자하문(紫霞門) 도착.
자하문은 서울(한양)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창의문(彰義門)이 본 이름이나, 나는 자하문이라는
이름이 더욱 정겹다.
능금과 자두 그리고 복숭아 과수원이었던 자하문 밖을 우리들은 '자문박' 이라고 부르며
여름에는 이곳 계곡에서 수영(헤엄)을 하며 놀았기 때문이다.
이곳 계곡가에는 인조반정 당시, 김류, 이귀, 이괄등이 반정을 모의하며 칼을 씻어다는
세검정(洗劒亭)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종이를 만드는 관아인 조지서(造紙署)도 있었기에
50년대 당시만 해도 닥종이(한지) 만드는 공장이 여럿 있어 종이를 말리느라고 계곡가의
넓적한 바위위에 종이를 널어 놓고는 했었다.
13시 15분 백악마루라는 표지석이 있는 서울의 주산(主山)인 북악산(北岳山: 342m) 도착.
북악산은 일명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북쪽의 삼각산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루다.
이곳에서 보면 서쪽 끝의 향로봉부터 비봉,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이 쭉 늘어선 능선에 가려 그
뒷쪽에 있는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보이지 않으니 삼각산의 최고봉이 보현봉 같다.
그러나 지형학적으로나 군사적 요충으로 볼 때는 능선상에서 동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보현봉
보다는 높이는 다소 낮으나 능선상에 우뚝 서있는 비봉(碑峰)이 이 능선상에서는 맹주이다.
그러기에 신라의 진흥왕도 삼각산(북한산)을 순시하고 비봉 위에 순수비를 세웠을 것이다.
13시 35분 서울의 북대문(北大門)인 숙정문(肅靖門)도착.
본래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 불리었으나 1523년(중종 18년)에 숙정문이라는 말이 문헌에
처음 보이며 그 후 자연스레 숙정문으로 통용된 것 같다.
그러나 이곳은 음기(陰氣)가 센 곳이기에 이 문을 열어 놓으면 도성(都城)의 아낙들이
바람이 난다는 풍수지리설 때문에 거의 문을 닫아 두고 북소문인 창의문을 도성의 출입문으로
이용하였다.
말바위를 지나, 내가 내려가야할 곳인 와룡공원 300m라는 표지가 있는 곳에서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삼청동 근처의 감사원 뒷쪽으로 내려왔다. ㅠㅠㅠ
딸내미와 산행시, 하산 지점이 가까워지면 딸내미는 내가 앞서지 못하게 한다.
뻔한 길인데도 엉뚱한 길로 가서 엉뚱한 곳으로 내려온 적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20여분 알바를 하고 14시 10분에 성균관대학교 후문 근처의 와룡공원 도착.
14시 25분 경신고등학교 앞.
여기서 성곽은 경신고등학교 담장을 끼고 이어지는데, 어느 곳은 성곽이 없기도 하고
어느 곳은 학교 석축 돌담장과 성곽이 같이 쌓여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아예 성곽은 흔적도 없어지고 경신고등학교의 철망 휀스가 계속 된다.
14시 30분 조금 지나 혜성교회 라는 곳에 오니 교회가 덩그라니 성곽 위에 올라가 있다.
곧이어진 두산빌라와 서울시장 공관은 성곽이 담장이다.
곧곧에 세워져 있는... '주요한 사적이니 보호...' 운운하는 안내표지판들이 무색해 진다.
14시 55분 쯤에 새로 복원한 서울의 동소문(東小門)인 혜화문(惠化門)을 지나 큰길로 내려서서
삼선교 네거리 근처의 주유소 옆길로 접어들어 다시 성곽길로 오른다.
이곳부터 낙산공원까지는 비교적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곽길의 많은 부분의 안쪽에 모대학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조금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잠시 걸으니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駱山)
이곳 또한 산 중턱까지 서민 아파트(낙산 시민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조성되 있는데 산 모양이 낙타등 같다하여 낙타산 혹은 타락산으로로 불린단다.
15시 20분.
전에 이화여자대학교병원 자리가 있던 곳에 도착하니 택지 조성 공사와 더불어 성곽길은
갈 수가 없고 무슨 건물인가가 올라가고 있다.
시공자가 서울시 관리공단 본부로 되있는 이곳 공사장 안내판에는 시민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라고 써있는데, 올라가고 있는 고층 건물은 무슨 용도인지?
아리송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에 걸어야 할 성곽 시작점인 동대문교회를 근처를 둘러보고
15시 30분에 오늘의 성곽길 걷기를 끝낸다. 거의 6시간만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