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전 신규 건설 중단”을 공약하는 총선후보들을 기대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여러 AI들
2026-06-29
2028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후보들은 다시 수많은 약속을 내놓을 것이다. 일자리, 복지, 성장.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약속이 반복돼도 사회의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치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한다. 대신 우선순위를 정하고, 방향을 선택한다. 그래서 선거에서는 사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 가지 질문을 분명히 제기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나는 그 질문 가운데 하나로 ‘원전 신규 건설 중단’을 제안하고 싶다.
원전은 단순한 발전원이 아니라 권력 집중적 시스템이다
원전은 하나의 발전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막대한 초기 투자, 높은 기술 장벽, 강한 국가 승인 체계, 장기간의 건설 및 운영 구조를 전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 결정과 정보, 운영 권한은 정부, 대기업, 전문기관 등 소수 주체에 집중되기 쉽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상대적으로 분산형 구축이 가능하고, 지역과 시민, 중소 사업자, 다양한 산업 주체의 참여 여지를 넓힌다. 물론 재생에너지도 제도 설계에 따라 대규모 자본 중심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방향 자체는 중앙집중보다 분산과 참여 확대에 더 가깝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기술 선택이 아니라, 에너지 체계를 어떤 권력 구조 위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핵폐기물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원전 논의에서 가장 무거운 쟁점은 고준위 핵폐기물이다. 고준위 폐기물은 매우 장기간의 관리와 격리를 필요로 하지만, 어느 사회도 이 문제를 완전히 끝낸 상태라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세대가 전력 이용의 편익을 얻는 대신, 미래 세대가 장기적 관리 부담과 위험을 떠안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가. 또 특정 지역이 오랜 기간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책임과 사회적 정의의 문제다.
전력수급은 원전만이 아니라 조합의 문제다
AI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크다. 따라서 전력 공급의 안정성은 분명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그 해법이 곧바로 신규 원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 수급은 단일 에너지원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수단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합하느냐의 문제다.
가능한 대안은 이미 분명하다.
- 재생에너지 확대
- 대규모 저장장치(ESS) 확충
- 산업체와 데이터센터의 수요관리(DR) 강화
- 고효율 설비 도입을 통한 피크 완화
- 계통 보강과 지역 분산형 자원의 통합
이러한 수단들은 단계적으로 병행 구축이 가능하며, 장기간이 소요되는 신규 원전보다 더 빠르게 전력 수급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원전은 착공에서 상업운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수요·기술·비용 여건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반면 분산형 자원과 저장, 수요관리는 속도와 유연성 면에서 장점이 있다.
물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계통 부담은 현실적인 과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신규 원전 확대에 대한 단순 의존이 아니라, 저장·계통·수요관리·효율 혁신을 함께 묶는 종합 전략이다.
해외 경험은 신규 원전의 한계를 보여준다
세계 여러 나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신규 원전이 아니어도 전력 체계 개편이 가능하다는 점이며, 신규 원전을 택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빠르고 값싼 해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해외의 대형 신규 원전 사업들은 반복적으로 비용 증가와 일정 지연 문제를 드러냈다. 영국의 힝클리포인트 C, 미국의 보글 3·4호기, 프랑스의 플라망빌 EPR은 모두 원전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안정적이고 저렴한 선택’으로 간주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원전을 당장 모두 멈추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의 전력 전략에서 신규 원전을 상수처럼 전제하는 사고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SMR은 기대보다 검증이 먼저다
소형모듈원전(SMR)은 미래 기술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대와 상용화 검증은 다른 문제다. 경제성, 안전성, 규제 체계, 실제 건설비와 운영비, 공급망 안정성 등은 여전히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다.
따라서 SMR은 당장의 확정 해법으로 다루기보다, 불확실성을 인정한 채 신중하게 검증해야 할 대상에 가깝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 기대를 근거로 지금의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왜 ‘신규 건설 중단’인가
이 글이 제안하는 것은 즉각적 탈원전이 아니다.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 관리와 수명, 운영 문제는 별도의 엄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규 건설 중단은 그와 구별되는, 분명하고 현실적인 정책 신호가 될 수 있다.
- 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스템 전환의 방향을 제시한다
- 대규모 중앙집중형 설비 확대의 속도를 조절한다
- 재생에너지·저장·분산형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제도 혁신을 유도한다
즉, 이는 급격한 충격을 피하면서도 구조적 전환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안보와 재난 대응의 관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사례가 보여주듯, 대규모 중앙집중형 전원은 전쟁과 재난 상황에서 국가 전체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전력망 밀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특정 대형 설비와 송전계통의 충격이 광범위한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을 함께 따져야 한다.
분산형 전원 체계의 확대는 에너지 전환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복원력과 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정치는 결국 사회가 어떤 위험을 줄이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원전 신규 건설을 중단한다”는 선언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 세대에 무엇을 넘길 것인지, 어떤 에너지 체계를 민주적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출마를 선언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저는 하나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겠습니다.
원전 신규 건설을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위에서 더 안전하고 더 분산적이며 더 책임 있는 에너지 체계를 시민과 함께 설계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다음 20년의 방향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