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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져스쿨 원문보기 글쓴이: 최원락&롤
고고씽~ 강원도
강원도 7개 시, 11개 군, 아름다운 자연과 맑디 맑은 공기, 보너스와도 같은 먹거리까지
그 멋진 강원도속이로 나를 맡긴다.
11월 5일 일단 원주로 향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강원투어 일정을 세워보았다.
정선의 강원랜드를 1차 타겟으로 정했는데 선배님이 출장이란다...
속초의 선배가 일단 올라 오란다.
그럼, 인제-고성-속초로 달려보자~
다음날 아침, 인제로 향했다.
인제 용대리에 기억에 남는 폭포가 하나 있다.
재작년 한계령을 넘어오면서 나를 맞이한 아스팔트 길가에 서있던 폭포.....
인제군 용대리 백골병 전적비 맞은편에 있는, 비록 인공 폭포이지만 나름대로 강원스러운(?) 폭포이다.
사실 이날은 물이 없었다. 가물긴 가문가보다.....ㅠ
점심식사는 역시 황태구이를 먹었다.
차디찬 겨울철 영하 10'이하 눈보라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4개월간 말리는 명태를 황태라고 합니다.
단백질이 전체성분의 60%를 차지하고,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해독작용이 뛰어나며 모든 영양소가 잘 보존되어 있지요.
(추천: 용바위식당 033-462-4079)
고성을 향하다 산길을 잘못 들어 자갈밭을 덜덜덜 간신히 넘고 가을단풍 막바지의 진부령을 넘어 고성 바다에 도착하였다.
나의 마음을 언제나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바다,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속초의 영랑호를 돌아
강릉 오죽헌에 도착하였다. 늦은 저녁이라 문은 닫혔고 담너머로만 쳐다보다
나의 멋진 잠을 재워줄 경포대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라 했지....일단 오징어 회덮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경포의 밤바다를 거닐었다. 근데 "oops~" "아이고" 차키를 백사장에서 잃어버렸다.....ㅠㅠ
밤새 찾아보았지만 찾지못하고 대충 잠이 들었다.
멋진 밤바다가 아닌 잃어버린 차키 꿈을 꾸며.......
다음날 이른 아침, 다시 한번 백사장을 향했다.
"야호, 하나님, 감사합니다."
길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내 차키,,,에구구 귀여운 것, 다시는 안 잃어버릴께.....ㅋㅋ
신나는 맘으로 초당순두부 한그릇, 내입맛에 너무 딱 맞는다.
(추천: 초당할머니순두부 033-652-2058)
부드럽게 넘어가는 순두부, 진한 찌게, 구수한 콩비지.....아 맛있다~~
강릉 시내를 돌다 이젠 동해로 고고씽~
동해 시내 한복판에 천곡동굴이 있길래. 동굴속으로 들어가보았다.
천곡동굴 (泉谷洞窟):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로, 4~5억 년 전에 생성된 천연동굴이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동굴로, 1991년 6월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 조성 공사 때 발견되어 총 1,400m 가운데 700m가 개발되었다. 동굴 내부는 한국에서 가장 긴 천장 용식구, 커트형 종유석, 석회화단구, 종유폭포 등과 희귀석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동굴 입구에는 우주생성과 동굴 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전시관과 영상실을 꾸며놓은 자연학습관이 있다.
각양각색의 석순, 석주들이 기묘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예술이 자연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인간들도 언젠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살기를.....
동해에서 이름난 대밭골가든의 장어돌솥밥을 먹었다.
(추천: 대밭골식당 033-531-8194)
푸짐한 밑반찬까지.....건강을 넘어 행복한 포만감까지 소화를 시키기위해 정원에 있는 연못에서 놀고있는 금붕어들과
잠시 노닥거렸다. 삼척으로 넘어가다보니 추암해수욕장 푯말이 나를 인도하였다.
기이한 촛대바위가 동해바다를 외로이 지키고 서있었다. 해변가에는 다정한 연인들이 길을 걷고 있는데...
너랑 나만 외로이 서있구나.....
외로움을 잊게 하는 것은 죽서루였다.
죽서루 :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원년(元年)(1275) 학자(學者)인 이승휴(李承休)(1224∼1300) 선생(先生)이 벼슬에 뜻이 없어 두타산(頭陀山) 아래에 은거(隱居)할 때 창건(創建)하였고, 조선(朝鮮) 태종(太宗) 3년(1403) 삼척부사(三陟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건하였다 하며, 누 동쪽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과 명기(名妓) 죽죽선녀(竹竹仙女)의 집이 있어 죽서루(竹西樓)라 이름하였다 한다. 오십천(五十川) 층암절벽(層岩絶壁) 위에 세운 이 누는 자연암반(自然岩盤)을 초석(礎石)으로 삼고 암반 높이에 맞춰 길고 짧은 기둥을 세운 5량구조(五樑構造)의 팔작집인데 공포(공包)에서는 익공계수법(翼工系手法)과 다포계수법(多包系手法)이 혼용(混用)되었는데 천장구조(天障構造)로 보아 맞배집이었을 가능성도 있어 조선(朝鮮) 후기(後期)까지 여러 번의 수리(修理)로 많은 변형(變形)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액(書額) 중 '제일계정은(第一溪亭)'은 현종(顯宗) 3년(1662) 부사(府使) 허목(許穆)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肅宗) 37년(1711)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憲宗) 3년(1837) 부사 이규헌(李圭憲)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 정조(正祖),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 등 많은 명사(名士)들의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본 누의 남쪽에는 별관(別館)인 연근당(燕謹堂)이 있었다 한다. 두타산의 푸른 숲, 굽이쳐 흐르는 오십천, 기암절벽(奇岩絶壁) 등과 어울려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다.
누각에 서서 시한수 읊고 태백의 용연동굴로 핸들을 돌렸다.
용연동굴 : 용(龍)의 연못(淵)(용소) 속에 있던 용이 계곡을 따라 하늘로 승천했다는 뜻임.
백두대간의 금대봉 하부능선인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금대봉 산기슭에 자리잡은 용연동굴은 93.3부터 97.9 까지 5개년에 걸쳐 55억 4천 7백만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지난 97년 10월 31일 개장과 더불어 전국 등지에서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하에 관광객들에게 풍부한 볼거리 제공을 위하여 동굴광장 내에는 분수대 4종, 인공폭포 등을 설치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찬사를 자아내고 있다.
동굴의 주 형상은 수직굴 및 수평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굴내에는 1억 5천만년에서 3억년 사이에 생성된 각종 종유석들이 즐비하며 관박쥐외 생물 11종이 현재 살고 있다.
관광객들의 편의 제공을 위하여 동굴 진입로 주차장에서 동굴 입구 광장까지 1.1km 구간을 무궤도 열차인 용연열차를 운행함으로써 해발 800고지에서 920m의 고지를 이동하는 동안 청정공기를 맘껏 마시며 동굴주변 자연의 신비로움도 만끽하며 금대봉 계곡의 산허리를 돌고 돌아 오르는 기분이야말로 이곳 용연 동굴을 찾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어두어져가는 산길을 따라 태백시내에 들어오니 낙동강이 시작된다는 황지연못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황지연못 : 길이 525㎞의 낙동강 발원지로,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등에서 낙동강의 근원지라고 밝혀 놓고 있다. 처음에는 '하늘못'이라는 의미로 천황(天潢)이라 했고, 황지(潢池)라고도 했다. 태백시내 중심지에 있는 황지공원의 커다란 비석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지·중지·하지로 이루어진 둘레 100m의 소(沼)에서 하루 5,000t의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물은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함백산·백병산·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 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 것으로, 시내를 흘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남도·경상북도를 거쳐 부산광역시의 을숙도에서 남해로 유입된다.
장자못 전설의 근원지가 되는 연못으로, 예부터 황부자 전설이 전한다. 옛날 한 노승이 연못의 자리였던 이곳 황부자의 집으로 시주를 받으러 오자, 황부자는 시주 대신 쇠똥을 퍼주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놀라서 노승에게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주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자,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노승의 말을 듣고 뒤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때 며느리는 노승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보아 돌이 되었고, 황부잣집은 땅 속으로 꺼져 큰 연못이 되었는데, 상지가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터라고 한다. 그리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못은 1년에 한두 번 흙탕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무기가 된 연못 속의 황부자가 심술을 부려서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30여 년 전만 해도 연못에 큰 나무 기둥이 여러 개 잠겨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황부잣집 대들보와 서까래라고 하였다.
피곤함에 못이긴 척 잠이 들었다.
개운한 아침, 내가 찾아간 곳은 영월의 장릉이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장릉보리밥집에서 허기를 채웠다.
서울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들고 난다. 한끼식사로는 그만이다. 두부도 맛있고.....
(추천: 장릉보리밥: 033-374-3986)
이제 배를 채웠으니 다음은 눈을 채울 차례~
장릉 : 장릉은 단종의 묘이다.
사적 제196호. 능의 양식은 왕명에 의하여 간단하게 조성되었다. 봉분 앞에 상돌과 4각옥형(四角屋形) 장명등이 있으며, 능 주위에 곡원(曲垣)을 두르고, 양쪽에 망주석(望柱石) 2기, 문석(文石) 2기, 돌짐승 다수가 있으며, 능 아래에 단종비(碑)·비각·충신단·재실 등이 있다. 묘표(墓票)는 1581년(선조 14) 세워졌으며 능역은 0.35㎢이다.
청령포 : 영월 시가지에서 서쪽으로 3km쯤 떨어져 있으며,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루었다. 동·북·서쪽이 깊은 물로 막히고 육지와 이어지는 남쪽은 육륙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다. 그 때문에 이곳에 유배되었던 단종(端宗)이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한 바 있다.
솔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영월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소이어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는다.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이곳에 유배된 것은 1457년(세조 3) 6월이다. 그해 여름에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고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시를 읊으며 한을 달래기 몇 달 만인 같은 해 10월 눈을 감았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유지비각(遺址碑閣)과 후세에 세운 청령포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려고 쌓은 것이라고 하는 돌탑(속칭 망향탑)이 유지비각 서쪽 절벽 위에 서 있다.
역사의 비극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낙엽들은 바람에 휘날리며 이리로 저리로 휘둥구르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비극을 뒤로 하고 다하누촌에 도착하였다. 온통 한우고기뿐이었다.
(추천: 영월버섯관광농원 033-378-3265)
허나 아직도 배가 부른지라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쳤다.
진부에서 볼 일을 본 후 잠시 휴식~
오대산의 밤길을 드라이브한 후 대관령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침과 함께 도착한 곳은 양떼목장이었다.
자연과 함께, 양떼와 함께 나도 하나의 목동이 되어버렸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장난섞인 거짓말과 함께 이효석 생가에 방문하기로 했다.
배가 출출한 관계로 근처에서 메밀로 만든 갖가지 음식을 맛보았다.
특히 메밀전병은 첨 먹어보는데 나름대로 맛있게 먹었다.
(추천: 메밀꽃필무렵 033-335-4594)
이효석 생가 앞에 우짠 당나귀....암튼 생가를 들러보고 메밀향을 만끽하였다. 맛으로 문학으로~
메밀향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이번에 허브향에 취해보았다.
흥정계곡을 구비구비 올라가다보면 봉평 허브나라가 나온다.
가는 길도 맘에 들고 허브나라안에 숙바도 되는데 담엔 멋진 공주님과 함께 와야겟다....생각만해도 기분이 좋다.
횡성에서 한우를 쇼핑하고 춘천닭갈비골목으로 고고씽~
(추천: 원조숯불닭불고기 033-257-5326)
배를 채우고 시내를 돌아 숙소로 향했다.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잠이 들었다.
드디어 강원투어의 마지막날, 첫스타트는 역시 먹거리, 춘천하면 닭갈비 말고도 막국수가 유명하니 이젠 막국수
을 맛보러 갔다.
(추천: 원조샘밭막국수 033-242-1702)
화천을 가로질러 철원으로 가다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띤 곳은 고석정이었다.
고석정, 순담 (孤石亭, 蓴潭): 고석정은 한탄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순담은 고석정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을 일컬으며, 조선 영조(재위1724∼1776)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1691∼1767)가 요양하던 곳이다. 이름의 유래는, 순조(재위 1800∼1834)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1743∼1806)가 20평 정도의 연못을 파고 물풀인 순채를 옮겨다 심고서 ‘순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깎아 내린 듯한 벼랑 등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계곡에서는 보기 드문 하얀 모래밭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탄강의 경치에 취하고 임꺽정의 기백을 마시고 이번엔 직탕폭포의 시원함에 젖어볼란다.
직탕폭포(直湯瀑布): 동송읍 가운데를 꿰뚫는 한탄강 물줄기 아래에 풍부한 수량과 나직한 골짜기를 가진 몇 가닥의 강물이 서로 합쳐 떨어지는 직탕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여느 폭포와는 달리 밑으로 긴 것이 아니고 옆으로 긴 것이 특징이다.
직탕폭포는 한탄강 상류에 기암절벽과 자연적인 ㅡ 자형 기암으로 이루어진 폭포로서 그 웅장함과 기묘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겹쳐 철원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탄강의 맑은물과 풍부한 수량 등으로 자연미가 넘치는 이 폭포는 절경 고석정과 불과 2km 정도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폭 80m, 너비 50 ~ 60m,높이3m로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는 장엄하고 아 름다워 속칭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름철 피서지로 최적지이며 이곳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이는 매운탕 맛은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멋진 곳, 맛진 음식, 시원한 자연을 뒤로 하고 이제 아스팔트와 빌딩 숲으로 가득한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일정이 여유롭진 못했어도 자연이 나를 여유롭게 만들어주었으며 기나긴 운전의 피로도 깨끗한 공기가
말끔히 씻어주었다.
아름다운 강원이여, 나 지금 너의 곁을 떠나지만 다음번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꼬옥 다시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