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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기록'
달리기 능력을 확인하는 지표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데 요것 단축하기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2001년 봄,
입문 초창기때 마의 벽으로 여겨졌던 1시간 45분,
와! 돌이켜보니 이것도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21Km를 5분 이내의 페이스로 계속 달릴 수가 있을까???'
그러다가...
그해 초가을에 성남에서 최악의 난리를 치고서 부활전 격인 '광주김치하프'에서 겨우 겨우 세운 기록이 43분대,
그해 11월에 순천남승룡대회에서 확 당긴 기록이 36분대,
(아마도 이대회에서 거리가 다소 짧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2월2일 클럽에서 함께 간 최초의 대회인 여의도하프에서도 역시나 36분대,
해가 바뀌어서 풀코스를 딱지를 땐 다음에 도전한 임실하프에서도 또 역시나 36분대,
2002년 5월 첫주,
여수에서 '올커니 일한번 나겠구나 !'하고 달리다가 삑사리가 나고....
5월 둘째주 대전MBC대회에서 겨우 겨우 넘어선 기록이 34분대,
으휴~힘들다!
당시 30분대의 벽은 보통 벽이 아니었다.
남들은 30분에 근접해서 깔짝 깔짝 초 단위로 그 벽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난 맨날 뛰었다 하면 벽 구경도 못하고 고만 고만하니 원~!
여기에서 내 자신의 아주 큰 결점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달리는 자세에서 무지 큰 결함이 지적되었고...
쪽팔림을 무릅쓰고 처음부터 뜯어 고치느라 여름내 세월 참 많이 까먹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10월3일 지평선대회,
전혀 기대를 안했는데도 오태근과 함께 생각지도 않았던 26분대에 감격... 또 감격..
(근데 여기서도 거리가 400미터 남짓 짧았다나?)
12월1일 대전에서 뛰어보니 역시나 28분대가 나온다.
해가 바뀌어서 2003년, 새해 벽두에 남원에서 새로 생긴대회에 대거 출전했는데 여기에서 세워진 기록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1:24:49
이기록도 쉽게 세워진 것이 아니어서 딴에는 겁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뛰어보니 이것도 꽝(?)이 아니던가?
(올해 달려보니 ...) 역시나 거리가 400미터는 차이가 난다.
아니? 그러니까...
이제까지 기록이 단축된 경우는 모두가 다 짧은 거리에서 일단 당겨진 다음에 후속타로 제실력이 쌓아지며 그 기록을 넘어섰다는 아주 웃기는 야그가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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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2일 아침, 남원.
때아닌 겨울 호우가 내린다.
연일 일기예보에선 비가 많이 올거라고 겁을 주는데 혹시나 혹시나 했지만 대회때까지 비는 계속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빗줄기가 세차지는 않아 달리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다른 대회보다 워밍업을 많이 해줘야 될 것 같아서 9시20분 무렵부터 트랙을 돌기 시작하는데 출발매트쪽을 막아놔서 왔다 갔다 하면서 요령껏들 달린다.
클럽에서 단체로 체조를 하고 출발지점으로 이동, 다른때 보다 빨리 대열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출발 초기에 너무 과하게 질주하는 것이 부담을 줄까봐 신경을 써가며 대열을 헤치고 나간다.
참 사람들 많고 ...
다들 저마다 원하는 기록을 만들어보려고들 얘를 쓸테지만 벌써 이렇게 앞서서 질주하다가 고생좀 할 것 같은 사람들도 눈에 띈다.
5Km지점 19'38",
첫5Km를 평균페이스보다 빠르지 않게 뛰어야 부담을 줄일 것 같아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적당하게 끊은 것 같다.
오늘의 목표는 개인기록 갱신!
마음 같아선 22분대를 뛰고 싶지만 그것보다도 최근에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는 생각과 동아대회를 앞두고 몸에 무리가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니까 최대한 안전빵으로 무리는 하지 않으면서도 최고기록은 넘어서야 하고...
에구 또.... 가능하면 22분대는 들어오고 싶다???
거리가 정확하다고 했을때 22분대를 달리려면 3분55초 페이스가 되어야 하는데 4분 이내에서는 아직도 1초단위를 넘어선다는 것이 큰 부담인지라...
길은 시가지를 벗어나서 이백면으로 향하는 냇가의 광로로 도로 상태는 아주 좋고 면소재지까지 아주 미세하고 완만한 오르막, 그리고 그다음 반환점까지는 눈에 띄는 오르막으로 연결되어있다.
면소재지 다리를 건너고 나서 10Km지점 20'14" (39'52")
역시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르막으로 이어진 구간이라서인지 속도가 좀 죽었다.
여기에서부터 11.7km지점에 있는 반환점까지는 더 오르막이라 속도가 좀 더 떨어지는 것 같다.
상위그룹들은 실력이 해가 지나면서 눈에 띄게 느는지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보인다.
클럽에서는 준호씨가 앞서가는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뒤에 오는지 보이지 않는다.
내리막길에서 그동안 쳐진 속도를 보상받아야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오늘은 혼자서 달리니까 눈에 덜 띄어서인지 딴때보다 화이팅을 외치는 사람이 적은것 같다.
아마도 비가 내리는 영향도 있을 것 같고...
하여간 싸가지 없다는 소리 듣지 않을 정도에서만 화답하는 내색을 하고 지나친다.
다시 면소재지 다리를 건너 광로로 접어들었지만 반환점 이후에 단 한군데도 거리표지가 되어 있지 않다.
앞뒤의 주자들과 견제하면서 달릴 뿐이지 지금 페이스가 어느 정돈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출발한지 1시간 4분 정도 지난 시점,
16Km쯤 왔을 것이라고 생각될 무렵부터 달리는 자세에 묘한 탄력이 붙는다.
광주마라톤클럽의 단체전 팀과 이제까지 혼자서 경합을 벌였는데 여기에서 모두 떨어뜨리고 대열을 거슬러 오른다.
반환점 이후에 나를 추월해서 멀찌감치 거리가 벌어졌던 철수형님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달리다보니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운전면허시험장 삼거리에서 우회전~
속도는 이제 탄력이 제대로 붙은 것 같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고 "류상선"이라고 등에 이름이 써진 자그마한 사람과 경합이 붙었다.
2~3미터쯤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셀수 없이 반복하는데 그 와중에도 아주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이미 탄력을 받아 있고 체력은 하프에선 버틸만하다는 자신감이 뒷받침 되어서인지 밀고 밀리는 레이스에서 조금씩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
전매청 삼거리에서 경기장쪽으로 좌회전을 하고 넓은 대로를 속도를 더해 달려나갈때 경쟁자는 눈앞에 철수형님으로 바뀌었다.
'아~이제 다 왔다!'
경기장 입구에 다 왔고 철수형님과도 거의 맞닿을 무렵에 갑자기 형님이 멈춰 서신다.
단체팀을 여기서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은데...
진행요원은 주자가 방향으로 잃고 헤메는 줄 알고 경기장쪽을 가리키며 안타까워 하고....
그 광경을 휙 지나치며 오르막을 올라 경기장에 들어선다.
'아따~ 이게 웬 떡이디야! 22분대는 충분하겠는데?'
힐끗 시계를 쳐다보며 좋아라고 했는데.....
기대를 안고 들어선 경기장은 작년과 다르게 트랙을 한바퀴 돌고 피니쉬하게 되어있었다.
'오메 이런 잡것이~'
실망하고 있을 여유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트랙을 달린다.
'실망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달려야 한다!'
1: 24' 18"
작년 이대회에서 세웠던 기록을 30여초 갱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후회없이 잘 뛰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24분대의 기록이 지난번 36분대 때처럼 이름 앞뒤로 오래도록 따라 다닐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