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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샤*’의 줄거리 요약
황지여자중학교
2학년 2반 김호정
이 글에 담고 싶었던 의미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르샤’라는 제목은 이 글의 주인공인 영수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영수는 자신을 보호할 힘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장애아로써. 지금껏 사랑받지못한 삶을 살아왔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 에서 그는 ‘구박데기' 혹은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가 주는 소외감은 그와 아무 연관이 없는 교사의 객관적 시각으로 전개된다.
는 우연히 다른 아이들이 영수를 배척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는다. 이 글의 서술자이자 조연인 교사 ‘나’는 영수를 보호해줄 생각은 없는 듯 한 태도로 그를 대한다. 결국 어떤 아이의 입에서 영수가 장애아라는 말까지 나오고, 그 소문은 학교 안으로 퍼져나간다 .‘그’는 영수의 집에 가정방문을 간다. 하지만 이는 영수의 마음을 더 닫게 만든다. ‘나’는 그를 관찰하며, 그에게 도움을 주려 하지만, 그동안의 ‘나’가 준 소외와 무관심은 영수를 더욱 절망케 만들고 그의 가슴을 닫는 효과를 가져온다. 마침내 그의 어머니가찾아오고,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이야기하며 영수가 장애아라는 것과 그가 마음을 닫게 된 직접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영수가 요양을 할 예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문밖에 있는 영수는 이 모든 것들을 듣고 옥상으로 도망친다. 결국 영수는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눈물을 훔친다.
* 나르샤
용비어천가 1장 부분에 처음으로 사용된 말로 ‘날아오르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나 르 샤
황지여자중학교
2학년 2반 김호정
아직까지 내가 이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죄책감, 혹은 나의 첫 교사 경험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리라.
때는 아마도 내가 27살의 풋내기 교사였을 때였다. 어렵게 임용고시를 합격하고, 내가 처음 발령이 난 곳은 강원도의 어느 작은 시골학교였다. 당시, 나는 수도권에 살고 있어 갑작스러운 거주지 이동을 가져온 강원도 발령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문이었던지, 그 작고 아담한 교정을 보면서도 정 이든다거나, 의욕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풋내기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리라 마음먹었던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마도 강원도라는 촌 동네가 태어나서부터 줄곧 도시에 살아왔던 나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내 눈에는 하나의 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이 비쳤다. 내가 바위라고 느꼈던 것은 낡아빠진 검은 옷을 입은 아이였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돌이라도 된 듯, 아이들의 어설픈 욕설에도 가만히 무릎을 두 손으로 껴안고 있었다. 무릎을 잡고 있는 손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는 적어도 이 반의 담임이 된 이상은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편을 들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내가 그에게 내밀어 주는 손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손에 든 출석부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교탁에 탕탕 치며 아직까지도 아이를 놀리고 있는 데 온 정신이 쏠려 있는 아이들을 주목시켰다. 크게 뜨여진 눈과 다물어지지 않은 입을 보아하니, 아이들은 내가 들어온 줄도 몰랐던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의 낯빛이 창백해지는 것이, 마치 내가 자신들을 혼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혼낼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직 초면인 아이들을 혼내서 무엇이 이득 되겠는가? 만약 내가 혼낸다면, 그 마귀같은 학부모 득달같이 들이닥칠 것이다. 학부모들이란, 자기자식이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같다하고, 어려서 아이가 장난으로 피아노를 똥땅거리면 그 아이가 피아노의 영재라고 흥분한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만약 그들이 학교에 온다면 나는 집에서는 항상 얌전하다는 000의 어머니와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xxx의 어머니의 자식 자랑으로 녹초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이런 귀찮은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웅크려 있는 그 아이를 구제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하디 단순한 아이들이니만큼 질리면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하며, 내 소개를 하고 교탁에 앉았다. 처음 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시골 학교다.
어느덧 내가 이 ‘시골학교’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의무적으로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게 되었고, 검은 옷을 입고 항상 웅크리고 있는 아이-그 아이의 이름은 영수였다. 그러나 그 아이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거니와 반드시 언젠가는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교직생활은 1년도 채 안되었지만, 나의 학교생활은 10여년을 넘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아직 나는 교사로서 학생을 보는 것보다 학생으로서 학생을 보는 것이 더 익숙했다. 그런 상태였던 나에게 영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내게는 어색하고 불편했으며, 이 애나 저애나 편애하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나에게는 특별히 유약해서 보호해주어야 할 보호대상에서도 제외된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에게 돌릴 설문지를 받아들고 교실로 가는 도중에, 우리 반 앞에 있는 남자화장실 앞에 아이들이 시끄럽게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듬성듬성 들려오는 두꺼비, 두꺼비, 영구 두꺼비, 하고 놀리는 소리가 내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두꺼비는 내 교실에서 자주 듣던 소리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퍼뜩 지나갔다. 나는 빼곡하게 모여 있는 아이들을 헤치며 항상 들고 다니던 회초리를 들었다.
“지금 다들 뭐하고 있는 거야 ! 어서 다들 자기 반으로 돌아가지 못해!”
나는 빼곡히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호통을 친 후,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인 것은 코가 부러진 두꺼비였다. 아이들은 당황 한 체, 눈만 데록데록 굴리며 서 있었다.
그 순간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분노란, 아이들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뒷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막막함…….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노엽게 한 것은 내 첫 교직 생활에 내가 남기게 된 오점 -학부모들과의 면담, 교장의 훈계 등 -이었다.
이제 뒷일은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그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영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근처 큰 병원에 영수를 데려다 주고 오는 내 심정은 정말 끔찍스러웠다.
이튿날, 영수의 어머니가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행정실 직원의 통보를 듣고, 상담실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살짝 열린 상담실 문 사이로 도도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년의 부인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증거가 그녀의 옷, 신발, 구두, 귀걸이, 반지 등 몸 여러 구석에서 화려한 빛을 내고 있었다.
“끼익 -”
녹슨 쇠 경첩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상담실에 내가 한 발자욱을 떼어놓는 순간, 도도한 중년부인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날카로운 눈총을 예상했던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눈에 담긴 감정은 분노나, 무책임함에 대한 질책이 아니었다. 아니,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그 순간, 영수에 대한 연민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의 추악한 이기심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영수는 참 불쌍한 아이였다. 그렇게 냉정한 눈의 어머니를 둔다는 것은 아직 어린 아이로서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영수라는 아이에게 애착을 가졌었더라면, 연민이라도 가졌었더라면…….
“제 잘못입니다. 아이를 잘 관리하지 못해서 ..”
어렵게 뗀 말문은 영수어머니의 한마디로 일축 되어버렸다.
“됐어요, 항상 선생님들 탓이죠 ”
영수어머니가 낯빛 하나 안 바꾸고, 싸늘히 말했다. 노골적인 비아냥이었으나, 지금의 나는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커피 속에 담겨진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응시하다가 마치 독백처럼 읊조렸다.
“지겨워, 정말”
그러면서 그녀는 커피 한잔을 홀짝였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이윽고 그녀는 커피 잔에서 입을 떼더니,
“치료비는 됐구요, 애 코를 그렇게 만든 아이엄마랑 대화하고 싶으니 번호를 좀 알려주세요.”
그녀가 핸드백을 추스르며 말했다. 말하는 내용은 어머니, 얼굴은 타인인 기묘한 모습으로 그녀는 핸드백을 들고 또박또박 행정실 문 앞으로 가다가 멈칫하더니,
“그, 그리고, 저 애가 웅크리고 있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주세요. 저건 못 고쳐요.”
그 말을 끝내고 그녀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만 허탈해져 버린 나는 잠시간 그녀가 있던 자리를 응시하며 멍하니 있어야만 했다. 영수가 친아들이 맞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나는 그동안 영수의 저런 행동이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에서 비롯되는 자기 도피라고 생각해왔다. 게다가 영수가 할머니와 살거나, 혹은 부모가 없는, 그런 아이일 거라고 나름대로 확신하며, 영수의 가정환경 조사서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아직도 영수의 어머니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진한 분 냄새와 향수냄새가 그득했다.
알고 보니, 영수의 아버지는 동리에서 알아주는 가구상이었다. 게다가 지역에서는 이름도 꽤나 알려져, 가구상 000라면 열에 아홉이 알 거라고, 최근에는 큰 가구 공장도 차려 꽤나 부유한 집안이라고 교감선생님이 말해 주셨다. 다시 들여다본 영수의 가정환경 조사서의 아버지 직업란에도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업가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 비워져 있는 어머니 칸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어머니에 대해 영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최종학력부터 시작해서, 나이, 직업, 이름 등등 모두 비워져 있었다. 방금 전에 영수어머니의 방문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도대체 영수네 집이 뭐가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마치, 정확한 심증(心證)은 있는데, 물증(物證)이 없어 범인을 잡지 못 하는 경찰관이 된 기분이다. 영수가 어머니 란을 안 썼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분명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나누어 줄 때, 내가 모두 꼭 채워 놓지 않으면, 손바닥을 때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 불과 이틀 전이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일주일 후가 가정방문 기간 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일단 가보면 알 수 있겠지 .’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이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그 때 내가 만일 영수의 집에 가정방문을 굳이 가지 않았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고, 죄책감 따위도 가지지 않으며, 상처도 없어도 됐을 텐데……. 영수는 그렇게 내게 아무렇지 않은 존재로 내가 담임이 아닌 다른 반으로 진학했을 텐데……. 그럼 나는 그 애를 잊고 평범한 교사로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영수의 학교생활이 조금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 후, 아이들의 태도가 점점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전처럼 영수에게 지우개 가루를 던지거나, 놀림이나 욕설도 하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요즘은 슬슬 영수를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통 아이라면 (따돌림 받는)우월감이나,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 동안이라도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영수는 전혀 아이들에게 다가가려하지도, 태도 자체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을 피하면, 자신도 따라 피하는 듯 했다. 게다가 어쩌다 아이들이 영수에게 다가가면 눈에 띄게 경계하거나, 혹은 아예 피해 버리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영수야 지우개 좀 빌려 줄래 ?”
라고 한 아이가 다가서면
“…….”
영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지우개만 내미는 것이다. 아이가 다른 말이라도 할라치면 영수는 아무 말도 없이 화장실에 간다든가, 혹은 구석에 가서 책을 고른다. (우리 교실 구석에는 아이들이 볼만한 동화책등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면 말을 걸어온 아이는 그냥 머쓱해져서 영수가 빌려준 지우개 (혹은 연필, 샤프심, 볼펜 등 )을 들고 자리를 옮겨버리는 것이다.
이래서는 영수도, 아이들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큰 도전 하나를 감행했다. 내가 영수의 집에 가정방문을 할 결심을 굳힌 다음날,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활기차고 착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들 여섯을 불러 영수에게 잘 대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하지만, 겨우 일주일 만에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영수를 부탁한 며칠 뒤, 내가 교실에 갔을 때 교실 분위기는 묘하게 가라 앉아 있었다.
‘비가 와서 아이들이 저기압인 건가 ?’
잠시 의아했던 나는 내 앞에 조용히 나와서 하나하나 불만사항을 토로하는 아이들을 보고 대충 짐작했다. 내가 부탁했던 바로 그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영수와 친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말을 걸면 제 말을 무시해요.”
“영수가 아무 말도 안 해요.”
“도대체 어떻게 친해져야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몇 명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를 종합하면 간단히 말해 ‘영수와 못 놀겠다. 선생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 였다. 나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영수가 뭐를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러는 거니? 응?”
아이들은 반박하지 못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그것이 긍정의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몇 번씩이나 입을 오물거리던 한 아이가 결심을 굳힌 듯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 그게 아니라, 우리랑 친해지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아이는 몇 번이나 뜸을 들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 다가가기만 하면 웅크리고, 무시하고, 그러니까요.”
이렇게 말했을 즈음엔 나도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사실이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도 영수는 지나치게 사람을 기피하고, 친해지거나 어떠한 관계든(부모, 친구, 선후배 그러한 모든 것들)관계 맺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의 말이 거진 맞다고 볼 수 있었지만, 여기서 내가 굽히게 되면, 교사로서의 자존심은 물론, 영수나 아이들이나 계속 이렇게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본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아이들을 어르기 시작했다.
“그래, 물론 영수가 잘못한 것도 어느 정도 있어. 하지만 너희들이 조금만 참으면 영수도 너희들의 노력을 알게 될 거야 ”
내가 듣기에도 너무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이런 말이 어린아이들에게는 가장 잘 통하는 법이다. 내게 불만사항을 토로하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용히 자기자리로 물러갔지만, 나머지 한 명만은 남아 있었다. 그 아이는 불만을 토로하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고 밝은 아이였지만, 지금은 연유 없이 얼굴을 찌푸리고만 있었다. 장승처럼 아직까지도 교탁에 서 있는 그 아이를 보고서, 내 표정도 따라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도 영수에 대한 불만이 있니?”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듯이 말하자, 아이는 잠깐 주춤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다시 맹랑한 눈을 하고서,
“네, 저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작게 한숨을 쉬고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영수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야. 그저 너희들이 갑자기 친근하게 대하니까 당황한 거겠지. 그러니까 네가 조금만 참아주면 안 될까?”
나름 간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
“뭐가 문제인 건데, 응 ?”
“저어, 저, 장애래요.”
“뭐라고?”
“그 애 있잖아요. 장애래요. 씻지도 않고 더럽다고 벌써 소문 다 났어요. 우리 엄마가요, 그런 애랑은요, 놀지 말래요, 더럽잖아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그 아이의 눈은 마치 ‘어쩔수가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장애라는 단어로 채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장애, 장애’라고 되뇌이고 있는 머릿속에 그 아이의 말이 계속 꽃혀 들어왔다.
“매일 병원에도 가고요, 집에서 이상한 짓도 많이 해서 개네 엄마가 되게 창피해한대요. 그래서 영수엄마인거 숨기고 다닌다고도 하구요.”
이제 아이의 말은 ‘아아, 그랬구나!’하고 넘어갈 수 있는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수엄마는 매일 영수를 때…….”
“그만.”
나는 조용히 그 애의 엄마가 아이한테 해주었을 수많은 유언비어 (혹은 사실)들을 제지했다. 더 이상 이 애가 이야기 하면 내 입장도 곤란해진다. 물론 더 듣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더 듣는 것은 교수대에 목을 내미는 바보같은 일이나 진배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아이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네가 본 거니? 지금까지 이야기 했던 것을 모두?"
나는 또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정말 교사 생활은 이래서 힘들다. 매일 매일이 스트레스가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이란 매일 매일 사고를 만들어내는 말썽공장 같은 것이다. 하루라도 말썽이 없으면 고장 난 것인 그런 기계.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내 앞에서 당돌하게 말하던 아이는 우물쭈물하며, 슬쩍 자기 자리로 돌아선다. 내가 세운 쓸데라고는 없는 도전 때문에 출석 부르는 것을 잊어버렸다.
“최은미”
“네”
“김소영”
“네”
“이새미”
“네”
…….
“김영수”
“…….”
“김영수?”
“…….”
교실을 한바퀴 휘 둘러보아도 ‘바위’ 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교실 문을 잠가 놓아서 못 들어 온 건가, 하고 교실 밖으로 빼꼼히 목을 내밀었던 내가 본 것은 노란우산이었다. 접혀진 채, 물기가 아직 뚝뚝 흐르는, ‘2-4 김영수’라는 명찰이 붙어있는 소아용 노란우산이었다.
가정방문을 가는 날이다. 우산을 발견한 그 날 이후로 아무도 영수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나는 수업을 평상시처럼 진행했으며, 영수는……. 그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무리 내 학생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나라고 해도 이렇게 된 이상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가정방문이 껄끄러워졌다. 저번에 그 아이에게서 영수 이야기를 들은 바도 있고, 그것을 영수가 들었다고 하니, 또다시 두통이 밀려온다. 프린트 된 학생들의 주소록을 차근차근 찾아다니며, 영수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영수는31번이었다.)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집에 들릴 때 마다 하나씩 늘어나는 선물의 개수는 양손을 가득 채웠고, 한집에 1잔 꼴로 마신 커피는 곧 내 속을 씁쓰레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간신히 택시에서 몸을 내리고 영수의 집을 보았을 때도 , 내게는 생각할 기운 따위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영수의 집을 보고, ‘아 , 괜찮은 집이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지도 모른다. 영수의 집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깔끔하고, 예쁘고, 살고 싶은 집이었다.하지만 영수네 가족사에 대해 대충 알게 된 나로서는 드라마에서 항상 잘 써 먹는 소재인 ‘잘 살지만, 이래저래 사건도, 사고도, 많은 순탄치 않은 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 오세요.’ 라는 말을 기다리기를 2분, 드디어 안에서
“누구세요”
소리가 들려왔다.
“가정방문 왔습니다.”
라고 간단히 대답한 뒤, 선물들을 가방에 반은 쑤셔넣고 (케이크, 설탕, 홍차, 녹차 티백 같은 것들, 케이크는 아마 뭉그러졌을 것이다.)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들어가자마자 입에서 연발 나오는 것은 감탄사였다. 영수의 집은 마치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집’ 의 표본 같았다.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설령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역시나 화장이 화려한 영수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채 30초도 되지 않아
“아, 오늘 가정방문 하신댔죠, 들어오세요, 차린 게 없어서 조금 그렇지만요 .”
라고 태연스레 말했다. 과연 집 안도 집 밖 만큼이나 단정하고 깔끔했다. 게다가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분냄새와 향수냄새는 저번에 영수 어머니에게서 나던 냄새였다. 쓸모없는 물건만 딱딱 갖추어져 있고, 고장 나 있거나, 흠집이 있거나, 하다못해 그 흔한 먼지 낀 가구마저도 볼 수 없는 그 곳은, 영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누군가 야멸차다고, 나쁘다고, 선생되는 이가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누가 봐도 동의할 만큼 그곳은 영수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미 머리보다 빨리 움직이는 입과, 발과, 손은, 이미 꽤나 널찍하게 자리 잡은 거실에 있는 티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에 설탕을 넣고 있었다. 이제 슬슬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아야 할 시점인지라, 조용히 운을 떼었다.
“저, 저어, 저번 일도 그렇고 영수가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코가 깨진 일 말인가요.”
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그녀는 저번, 비 오는 날에 있었던 일 조차 모르는 듯했다. 물론 영수가 엄마에게 이 런일, 저런 일, 말할 아이는 못 돼지만, 그래도 분명 수업중일 시간에 집에 들어왔을 텐데, 조금 수상쩍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의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요 근래 영수가 늦게 들어온 적이 있지 않습니까?”
조용히 물어보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
“글세,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일이 바빠서 요 근래 출장이 잦거든요.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건가요”
라고 물어온다. 정말 모르는 모양이었다.
“며칠 전에, 제가 영수가 아이들과 지내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것 같아, 착한 아이들 몇 명을 불러 친하게 지내보라고 말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 중의 한 아이가 그, 영수가 장애아라고, 출석을 부르는 중에 말했지 뭡니까. 그런데, 하필 그때 영수가 교실 밖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집에 간 것 같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인데, 영수가 그날 일찍 집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라고 재차 확인하자, 약간 당혹스런 얼굴을 내비치던 그녀는
“흠”
하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더니,
“그럼, 반 아이들이 다 들었겠네요. 영수가 장애아라고.”
라고 체념하듯이 말한다.
“....... 저는 영수가 집에 왔는지를 물었습니다만”
학부모에게 이렇게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여자의 이야기를 다 듣는 것은 술이 취할대로 취한 취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이 할 이야기만 하니, 도저히 의사소통(意思疏通)이라는 것이 안 된다. 게다가 만일 여기서 내가 이 여자의 말만을 듣는다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부분 선생이 이렇게 까지 나오면 당황하기 마련일 테지만, 눈 앞의 이 여자는 여전히 당당한 태도로
“제가알기로는 , 영수는 그 시간대에는 집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영수를 돌보아주는 아주머니가 특별한 말을 안했으니까요“
조금쯤은 퉁명스레 여자가 말했지만, 내 태도도 그다지 예의바르지는 않았기에 딱히 퉁명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자는 또다시 지겹기 짝이 없는 손동작으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라는 의미의 것이었다. 나는 아직 아이의 부모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항상 나는 한 아이의 부모라는 존재는 같다고 생각해 왔다.
그들이 아무리 자식에게 엄하게 대해도.
그들이 아무리 오냐오냐 다 받아주어도.
집이 부유해도.
집이 궁핍해도.
혹은 아이가 바라던 남자아이가 아니더라도.
바라던 여자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의 부모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고,
항상 자신의 자식을 주시하고,
관리하며,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인정받기를 바라고,
사랑받기를 바라고,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하느님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의 부모라면 모두 갖고 있는 그러한 욕심은,
딱 한 가지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가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이가 아닐 경우, 왠만한 부모는 그 아이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더러는 부모의 그러한 욕심까지도 없는 경우가 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라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동물이라서, 제 배아파 낳은 제 새끼가 아니면, 자기 새끼를 위하여,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마치 뻐꾸기처럼.
모두들 뻐꾸기의 습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 안에 새끼를 낳는다. 며칠이 있으면, 알들이 부화하고, 뻐꾸기 새끼도 부화한다. 물론 뻐꾸기 새끼의 생김새는 다른 새끼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모성(母性)에 복받친 어미새는 자기보다도 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며, 고이고이 기른다. 하지만,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의 친 자식들을 둥지 밖으로 하나하나 밀어 떨어뜨려 죽인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새가 말이다. 그리고 어미 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점점 뻐꾸기 새끼에게 많은 먹이를 주게 된다. 그렇게 다 자란 뻐꾸기는 자기와 같은 둥지에 있던 다른 모든 새끼들을 죽이고 둥지에서 나와, 새끼를 낳으러간다. 생각해 보면, 신데렐라의 계모도, 콩쥐팥쥐의 계모도, 모두 같은 뻐꾸기인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이 여자는 뻐꾸기가 아니었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끼가 없는 뻐꾸기인 것이다. 모성이 없는 뻐꾸기.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뻐꾸기.
문득 궁금해 졌다. 영수는 이 넓고, 깔끔한 집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곳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돌아본 방문에 검고 동그스름한 더벅머리가 토옥 튀어나와있었다. 무심결에 나는 이 예쁜 집에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라고 생각했다. 우아한 성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의자처럼 말이다. 나는 급히 영수에게서 시선을 때고, 여자에게 말했다.
“영수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요. 영수를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영수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지기는 했지만, 그녀는 군말없이 구석에 있는 방을 가리키면서
“저기서 놀고 있을 거예요. 사람을 무서워하니까,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녀는 바람처럼 그녀와 내가 먹던 커피 잔을 치우더니, 부엌으로 가 버렸다. 텅 빈 거실에 홀로 남게 된 나는 영수가 있다는 구석 방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역시나 영수였다. 하지만 영수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영수의 방이었다. 아까 거실을 둘러보았을 때만 해도 영수의 집은 영수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방은 아닌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들어오자마자 풍기던 분 냄새도, 지독했던 향수냄새도 여기서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은 지독한 황량함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참고서, 학습지, 교육용 도서등이 꽉 차있는 책장이나, 아담한 책상과 의자. 이곳 저곳에 떨어져 있는 장난감들은 그저 겉치레 같았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영수는 그 방에 동화된 것만 같았다. 영수 옆에 떨어져있는 인형, 사전, 영어로 된 만화책들과 영수는 다를 바가 없었다. 먼저 액자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나였다. 달리 할 말은 없었지만, 1분 1초라도 빨리 이 답답한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수야 ”
내 부름에도 영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이야기할 생각 없니 ?”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듣기는 하겠지’
“혹시 저번에 송현이가 한 말 들었니.”
잠시 뜸을 들이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만약 들었다고 해도, 송현이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송현이의 그 행동은 잘한 게 아니야. 하지만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네가 피한다고들 하더구나. 갑자기 친구가 생긴다는 건 어렵지, 어렵지 말구. 그렇다고 네가 계속 혼자 지낼 것은 아니지 않니. 혼자 지내는 것을 벗어나는 일은 갑자기, 어느 날 되는 것이 아니야. 하나에서 둘이 된다는 것은 손바닥 하나로는 안 되는 일이지. 송현이가 아무리 헛 손질을 해 보아야. 누군가 잡아주지 않는 다면 그것은 팔만 아플 뿐이지. 그래서 기분이 상하는 거고. 자, 여기까지가 송현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이야. 너는 송현이에게 할 말 없니?”
영수는 아직도 내게 왜소한 회색 등만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오기로라도 영수의 입을 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또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개미 소리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도 친해지고 싶었는데…….”
영수가 말했다. 나는 잠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히 대답했다.
“그러면 왜 송현이가 같이 놀자고 했을 때, 피했던 거니 ?”
“…….”
“말하는 게 싫니?”
슬슬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니 적어도 말을 듣는 시늉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그림이 되어버린 영수는 내 말에도 작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영수의 등이 고르게 위 아래로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수가 살아있는지 의심을 품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영수의 등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렸다.
마치 최면술사의 시계추 같이, 영수의 등이 점점 그림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림 속의 영수는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나를 동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석양이 의자에 앉은 그의 그림자를 땅딸보로 만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상처를 입고 웅크린……. 아니 두꺼비 같기도 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여기 더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답답해져가는 가슴도 그렇고, 짜증도 그렇고. 만약, 여기서 이야기를 더 하게 되면 내가 역정을 내게 될 것만 같았던 나는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황량한 그림을 한번 돌아 본 뒤 그 집을 나왔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림은 사라져 버렸고, 나는 다시 행복한 집 안 에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오는 순간, 내 몸을 감싸던 향수냄새가 공기 중에 흩어지며, 나를 자유로이 해주는 것 같았다. 두꺼비와 뻐꾸기에게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평상시 잘 읽지 않던 시집을 꺼내들었다. 어디선가 힘들거나 피곤할 때면 시를 읽는 것이 좋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시를 읽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냥 아무 페이지나 넘겨 읽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인상 깊지 않은 말랑말랑한 내용이었지만, 그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시가 하나 있었다. 그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여 두고 나는 선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물은 좋지만, 선물을 준 상대를 하나하나 기억해, 감사인사를 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상대가 학부모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케이크, 와인, 바디오일, 로션, 케이크, 와인, 과일바구니, 빵 등등.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처럼, 내 가방에서 나오는 것들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깔끔하게 접혀있는 도화지 한 장. 그 안에는 행복한 집이 그려져 있었다. 화려한 가구는 없지만 부드러운 색상으로 그려진 집의 내부에. 화려한 화장을 하진 않았지만, 누군지 알 것만 같은 웃는 여자와 그 손을 잡고 있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림은 내면의 표현이라고 했던가, 그림 속에 있는 아이는 노란색 상의를 입고 청색 바지를 입고, 엄마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의 아이는 회색 상의를 입고, 검은색 바지를 입고 누구의 손도 잡지 않고,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그림을 다시 원 상태로 접어 책상위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다시 선물정리를 시작 하려 했지만, 그림 때문인지 도저히 선물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때로 잠은 고민을 해결해준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주며 우리 반에 도착했다.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 생각하면서도 나는 교탁에 앉아 어제 하다 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약 30분간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이대로 두자’ 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 와서 영수의 일에 개입한다고 해도 별 달라질 것도 없거니와, 내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그 선물은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름대로 열심히 그렸을 테니 말이다. 그 때, 오래된 앞문이 열리며 옆 반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네, 저기 할말이 있는데…….”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선생이 말했다.
“아. 네네, 여기 앉으세요.”
나는 내가 앉아있는 교탁에서 일어나, 학생 의자에 앉으며, 그 앞자리에 자리를 권했다.
“다름이 아니라, 영수가.”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영수 어머니께서 선생님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셨다더군요. 그래서 저보고 전하라고 한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내 자리에 던져놓은 코트를 들고 오지 않았다. 아마 핸드폰도 그 코트 안에 있겠지. 횡설수설하는 선생님을 쳐다보며, 나는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 그게 영수어머니께서 영수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앞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요양할 계획이라고요, 절차는 선생님이 밟아주실 수 없으시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겨우 초등학생에게 (죽을병에 걸리지 않은 이상)정신병원 요양이 왠말이란 말인가? 게다가 절차를 밟아 주실 수 없냐는 것은 절차를 내가 절차를 밟으라는 말과 도대체 무엇이 틀리단 말인가?
“영수어머니 번호를 알고 계신가요?”
“네?”
당황한 선생이 ‘아니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솔직히 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런 상황에 맞딱뜨리게 되면 누구라도 저런 표정을 지을 것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담임이라는 위치는 학부모, 학생, 학교에 대해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학교의 명함이자, 표지판이요, Q&A상담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내가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자료를 꿰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러한 담임의 자료실도, 학기 초 실시되는 가정환경 조사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가정 환경 조사서를 제대로 써 오지 않은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에 관한 자료는 그 학생이 기재하지 않은 내용만큼 뻥 뚫리는 것이다. 하지만, 영수가 가정환경 조사서를 제대로 서술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선생은 아직도 내 앞에 앉아서, ‘아니 자기 반 일을 어떻게 자기가 모를 수가 있지 ’라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대답을 못 들을 것이라는 것을 감지한 나는 빨리 배웅을 했고, 영수 어머니의 핸드폰 번호를 찾을 방법을 고심했다. 한 동안 생각한 결과, 내 핸드폰의 통화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를 정리하고 빠르게 몸을 움직여 교무실 문 앞으로 도착했을 때, 강한 향수냄새와 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곧 나는 교무실 안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교무실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가끔은 죽기보다 싫은 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끼-익 ”
또다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교무실 문이 열렸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이 학교는 낡았다. 역시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화려한 핸드백에 화려한 선글라스에 화려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온 뻐꾸기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고 반긴다. 아마도 행정 직원과의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듯 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
“아아, 네 ”
간단히 대답하면서 앉은 자리가 소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늘방석 같기만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
“아아, 영수를 좀 쉬게 해주고 싶어서요. 요새 애가 몸도 안 좋은 듯 싶고……. ”
“쉰다뇨 ?”
“요양을 좀 시킬까 해요. 병원에서도 그게 더 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
“영수가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봐요?”
잠깐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달싹거리다 결국,
“네 ”
라고 간략히 대답했다.
“언제까지 요양하시려고요 ?”
“…….”
내 말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영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데요?”
“영수가 학교생활도 힘들어하고, 우울증까지 생겨서…….”
그녀는 뒷말을 얼버무리며 말을 끝맺었다.
그녀도 그녀가 말한 이유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요양한다는 것은, 돌아왔을 때 더 힘들 텐데요.”
“그래도 잠깐 동안이나마 아이한테 안정이 될 테니까요.”
“돌아올 때 덜 힘들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
“그건…….”
“영수를 위해서라면, 요양은 좀……. 좀더 생각해 보시는 게…….”
그녀는 잠시간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결심을 굳힌 듯이
“영수야,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엄마 금방 나갈 테니까.”
라고 말하며 제자리에 붙어 있으려 하는 아이를 밖으로 힘들게 내보낸 뒤,
“잠시 둘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라고 물어온다.
“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휴우, 이번이 3번 째 결혼이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뒷말은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영수는 저의 셋째 아이구요 .”
나는 커피를 들어 한모금 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무던히 차분함을 이으려 노력했지만, 내 입은 나의 노력에 반하는 말을 뱉어냈다.
“아니, 그럼 영수의?”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지만, 그녀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눈치 챈 것 같았다.
“모두 제가 친 엄마인지 의심을 품더군요.”
그녀는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친엄마가 아니라면, 어떻게 자신의 아이보다 소문나는 것을 더 신경 쓸 수있습니까 ?”
그녀는 여전히 차분히 대답했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가려주지는 못했다.
“아까 말씀드렸다 시피, 저는 3번이나 결혼을 했어요. 아시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함께 살 사람을 엄마, 아빠 중에 고르는 것. 저의 첫 아이는 아빠를 매우 잘 따랐죠. 그런데 제가 이혼을 하자, 제 아빠를 따라 가 버렸어요. 둘째는, 제가 이혼 때문에 힘들었죠. 그래서 잠시 알콜중독에 빠졌었어요 . 그때가 큰 애가 아빠를 따라갔을 때였죠. 아이가 13살이 되었을 때 저는 이미 아이에게 몹쓸 엄마가 되어있었어요. 아이는 제 몸에서 진한 향수냄새가 나면 피하곤 했죠. 제게서 나는 지독한 술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뿌렸거든요 .결국 둘째 아이도 아빠를 따라 나섰죠.
그리고 영수를 낳았을 때, 저는 두려워졌어요. 또다시 아이에게 버림받는 것이 이제는 어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되어버린 것 같았거든요. 사랑하기가 두려워졌죠.그래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어요. 난 이아이가 싫다. 싫다. 싫다. 지독히도 이기적인 엄마였죠. 나는. 영수를 사랑할 수 없어요.”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진한 향수냄새가 풍겼다. 내가 무언가 대답하려는 순간, 밖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영수어머니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더니, 그녀는 바람처럼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두꺼비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영수야!”
나는 영수어머니와 함께 영수를 쫓았지만 ,영수는 날 듯이 달렸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모퉁이를 돌고, 문을 열고, 또다시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모퉁이를 돌고……. 결국 영수가 도달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수위아저씨가 문을 잠가놓지 않은 듯, 센 바람이 불어오는 옥상, 두꺼비가 그곳에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와 영수어머니가 다가가려는 순간, 두꺼비는 허리를 펴고 비상할 준비를 했다. 모든 것을 뛰어넘으려는 듯, 허리를 펴고, 다시는 보지 못할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변태(變態)의 고통을 견뎌내는 듯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두꺼비는 날았다.
그 순간, 옆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자동차의 경적소리, 고함소리, 비명소리,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이 뒤섞여 혼란한 상태에서 그곳에 있었던 모든 이들은 보았을 것이다. 껍질을 벗고 비상하는 두꺼비를, 아니 한 아이를, 아니 ‘영수’를…….
옆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애달픈 어머니의 통곡이었을까? 문득 전에 읽었던 시구가 떠올랐다.
희망이라는 것은
새에게서
깃털 하나의 무게란다
천칭에 올려놓는다 할지라도
바늘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존재란다
그처럼 가벼운 깃털이
살에 무수하게 달라붙어서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것이란다
수백 번 나무 꼭대기에 오르내리며
집을 짓고 짝을 짓고
알을 낳는 것이란다
희망이라는 것은
저리도 가벼운 것으로부터
크고도 무거운 목숨을 얻는 것이란다
절망이라는 것도
새에게서
깃털 하나의 무게란다
그 어떤 저울로도 무게를 잴 수 없는
바위 같은 존재란다
그 커다란 무게의 깃털이
뼈에 촘촘이 달라붙어있으니
한순간 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것이란다
둥지도 잃어버리고 날개도 부러지고
저리도 무거운 깃털 하나에
가볍게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란다.
“저리도 무거운 깃털 하나에 가볍게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란다.”
늙고 검버섯이 패인 손 위에 투명한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곧 그 손은 책상위에 펼쳐진 시집을 덮고, 시집 위에 안경을 벗어놓는다. 석양이 비친 돋보기 안경알은 날개라는 글자를 기묘하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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