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이성과 감성
◇ 이성과 감성/제인 오스틴 지음/현대문화
《“이 사실을 언제 알았어. 엘리너 언니?” “넉 달 전에 알았어.”“넉 달? 언니는 이 사실을 넉 달 동안이나 알고 있었단 말이야? 말도 안돼. 그렇게 비참해하는 나를 돌보는 동안 언니 마음속엔 줄곧 이런 일이 들어 있었다고?” “그때는 내가 그 정반대 상황이었다는 걸 네가 모르는 편이 나았어.”》
사랑의 방식, 머리냐 가슴이냐
소설의 두 주인공 엘리너와 메리앤의 대화다. 언니의 애인이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메리앤은 언니에게 따지듯 물었다. 언니가 그 사실을 내색하지 않은 채 최근에 애인과 헤어진 자신을 위로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이성’과 ‘감성’의 대화이기도 하다. 엘리너는 이성, 메리앤은 감성을 의미한다.
이야기는 영국 서식스 주에 살던 헨리 대시우드 씨가 세상을 뜨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둘째 부인에게는 딸 엘리너, 메리앤, 마거릿이 있었다. 엘리너는 냉철한 판단력과 이해력을 갖췄고 메리앤은 모든 일에 깊게 빠지는 경향이 있어 슬픔과 기쁨을 절제할 줄 몰랐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는 연애를 하는 데서도 잘 드러났다. 엘리너는 데번셔로 이사를 하면서 애인 에드워드를 남긴 채 떠나지만 겉으로는 담담하다. 기쁨과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이성적인 성격 때문이다.
메리앤은 열정적이다. 데번셔에서 두 명의 남자를 만난다. 조용히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신사 브랜던 대령과, 쾌활한 멋쟁이 윌러비다. 열정적인 메리앤의 마음은 윌러비에게로 기운다. 급속도로 윌러비에게 빠져드는 메리앤의 모습은 감성을 대표하는 인물답다.
연인들과 떨어져 있게 됐을 때의 행동도 엇갈린다. 며칠을 못 참고 조바심을 내는 메리앤은 멀리서 오는 남자를 보고 흥분한다. “그가 확실해. 풍채도 똑같고, 외투도 똑같고, 저 말도 그 사람 거야. 난 그가 곧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어.”
그러나 그는 엘리너의 애인 에드워드였다. 그토록 기다렸던 에드워드가 아주 잠시 머물고 떠나지만 엘리너는 침착을 유지한다. 조용히 그림을 그렸고, 전처럼 가족의 일에 관심을 보이며 종일 바쁘게 보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도 달랐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가족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가족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 주기 싫었던 것이다.
반면 윌러비한테 버림받은 메리앤은 고통에 겨워 소리친다. “내가 언니를 괴롭게 한다면 날 그냥 내버려둬. 슬플 일이 없는 사람들이 힘을 내라고 말하기는 정말 쉽지. 정말 행복한 엘리너 언니, 언니는 내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몰라.”
이때 이미 엘리너는 에드워드를 마음속으로 떠나보낸 뒤였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동생의 푸념을 들어줬다. 나중에서야 에드워드의 약혼 사실을 알게 된 메리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언니는 이 사실을 넉 달 동안이나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렇게 비참해하는 나를 돌보는 동안 언니 마음속엔 줄곧 이런 일이 들어 있었다고?”
이 책은 엘리너와 메리앤이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루면서 사랑과 결혼에 있어 이성이 중요한가, 감성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저자의 결론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엘리너는 이성적으로는 에드워드를 떠나보냈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자신을 잊지 못하고 돌아온 에드워드와 결혼한다. 감성의 승리다. 불같은 첫사랑의 실패를 극복한 메리앤은 한층 성숙된 태도로 사랑을 대했고, 존경과 우정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던 브랜던 대령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성을 통해 감성을 어느 정도 극복함으로써 그의 고귀한 사랑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