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논문은 전직 로이터통신(Reuters) 기자였던 앤드류 맥그레거 마샬(Andrew MacGregor Marshall)이 2013년 10월 31일에 자신의 자신의 블로그 '젠 저널리스트'(ZENJOURNALIST)에 공개한 논문이다. 이 글은 이제까지 태국 정치 및 왕실에 관해 발표된 글 중 가장 심도 있는 내용이며,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폭로한 미국 정부의 비밀 외교전문을 광범위하게 분석해, 태국 정치의 심연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했고, 동영상 등 일부 자료를 추가했다. 번역본은 총 14편으로 나눠져 있다.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1)
กลียุค — Thailand’s Era of Insanity
|

|
|
(사진) 흑인처럼 코스프레를 한 태국 극우 보수 반정부 시위대의 모습. |
2013년 10월 중순에 방콕(Bangkok)의 심장부에 위치한 '룸피니 공원'(Lumphini Park)을 둘러본 기자라면 대단한 장관을 보았을 것이다. 얼굴에 검은색 분칠을 한 극과격 민족주의 성향의 반정부 시위대가 나뭇잎으로 만든 스커트를 입고 기묘한 모양의 모자를 쓴 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태국-캄보디아 국경에 위치한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프레아비히어 사원) 관련 영유권 분쟁의 판결을 반대한다는 배너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ICJ의 판결은 11월11일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엔 아직 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룸피니 공원에 자리잡은 이 잡동사니 같은 불평불만자 집단은 대부분 소위 '탁신체제 타도를 위한 국민 민주세력'(People Democratic Force to Overthrow Thaksinism)이라 불리는 자들로서, 이들은 스스로를 'PEFOT'이라는 약칭으로 부르길 더 좋아한다.
이 집단에는 '화이트 마스크 운동'(“white mask” movement)과 관련된 이들도 포함된다. '화이트 마스크 운동'은 그다지 인원은 많이 동원하지 못했지만 많은 횟수의 집회를 개최했는데, 그때마다 유명 만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의 주인공 브이(V)가 착용했던 가이 포크스 가면(Guy Fawkes mask)를 착용하곤 했다. 이 시위대가 가이 포크스란 인물이 국왕 암살 음모를 꾸미다 1606년 런던에서 반란죄로 처형된 사람이란 사실을 알지도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한편, 이들의 동맹세력 중에 이들과 마찬가지로 기이한 모습을 한 군중들이 금년 들어서만 벌써 몇달째 '사남루웡'(Sanam Luang)에 진을 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군중들은 더욱 더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그 안에는 수십명의 늙은 공산당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공산당원들은 태국 군주제에 대한 자신들의 불멸의 지지를 선언하면서 빛바랜 인민복을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광기는 초골수 왕당파(ultra-royalist) [반정부]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친정부 '레드셔츠'(UDD: 반독재 국가민주 연합전선) 운동의 극과격파(hardcore Red Shirt) 논객들 중에도 그러한 태도는 감지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반폿'(Banpodj, บรรพต)이다. 필자가 확인해본 결과, 이러한 논객들은 음모론을 여기저기 팔고 다니고 있다. 그들은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1927년생) 국왕과 시리낏(Sirikit: 1932년생) 왕후가 이미 사망했다면서, 마하 짜끄리 시린톤(Maha Chakri Sirindhorn: 1955년생) 공주가 막후에서 사악한 계획을 총괄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객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린톤 공주는 자신의 부모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다양한 특수효과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법을 통해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년생)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폿은 여타 왕실 가족들에 대해선 적대감을 갖고 있지만 왕세자에 대해선 광장한 팬으로, 왕세자에 대한 화려하고 야단법석한 찬사를 정기적으로 늘어놓곤 한다.
태국의 현 상황에 관해 한겹 더 심층으로 들어가보면 더욱 수수께끼 같은 측면이 엿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들보다 더욱 효과적인 전술이란 점은 인정하지만, 어찌하여 태국의 기득권층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에 대한 전례없이 원초적인 증오감에 그토록 물들게 된 것인까? 탁신은 그 이전의 태국의 여타 부패한 정치인들과는 약간 다른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다.
전통적으로 실용적이면서 지조도 없는 태국의 노쇠한 귀족층 정객들이 임박한 국가적 대재앙과 실존적인 파멸에 관한 야생적 관념들 때문에 괴로와하면서도, 과격한 광신도들로 변하게 된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폴 핸들리(Paul Handley)와 통차이 위니차꾼(Thongchai Winichakul), 그리고 여타 전문가들이 올바르게 주장한 바 있듯이, 만일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라마 10세로 등극하는 일이 필연적이란 점을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향후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21세기 태국을 이해하는 데 그토록 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태국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언론인과 학자들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1936~ )은 1978년에 발표한 뛰어나면서 혁신적인 연구서
<태국 국가 연구 : 태국학>(Studies of the Thai State: The State of Thai Studies)에서 그 이전 수십년간 태국에 관해 수용됐던 지혜들을 냉정하게 뒤집어놓았다. 이 책은 그때까지 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가정들 중 많은 부분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보여줬다. 앤더슨은 여기서 "스캔들에 휘말릴만한 가설들"(scandalous hypotheses) 네 가지를 제시했고, 그것들은 태국 역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심층적으로 재정의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비록 필자가 베네딕트 앤더슨만큼의 탁월함과 지식의 깊이를 갖고 있지 않긴 하지만, 최소한 필자보다 앞서 선도적인 길을 열어준 많은 학자들이 남긴 저술들을 의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필자는 태국의 왕실모독 처벌법(lèse majesté: 대역죄)을 이미 위반한 상태로서, 그에 따라 태국으로 되돌아갈 일도 없기 때문에, 보다 솔직하게 발언할 수도 있는 입장이다. 본 논문은 필자가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스캔들에 휘말릴만한 가설들" 몇 가지를 정리한 내용이다. 필자는 이 가설들이 태국이 당면하고 있는 이 광기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정수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엘리트 차원에서 보면, 탁신 친나왓이 이 드라마의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취급 곤란한 문제인 태국의 정치적 갈등은 비단 탁신 한사람 주변에서만 맴도는 문제가 아니다. 태국 엘리트 계층들 사이의 갈등은 푸미폰 국왕 사후에 누가 국왕이 될 것인가를 둘러싼 왕위계승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태국 엘리트 계층 대부분은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등극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고, 그의 왕위계승을 방해하기 위해 극단적인 강도의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 왕위계승 투쟁을 벌이고 있는 태국 엘리트 계층의 주류 파벌들은 현재의 태국 사회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농촌 및 도시의 빈곤층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내놓고 있고 정보도 획득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연한 비밀인 태국의 왕위계승 투쟁이 전국적인 사회적 갈등과 뒤죽박죽으로 얽혀버리고 있다. 이러한 일은 태국의 군주제 및 '딥 스테이트'(deep state)(역주1) 체제 자체의 적법성에 관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 탁신 친나왓이 비록 왕세자에 대해 이례적일 정도로 꺼림칙함을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이긴 하지만, 그 역시 상당히 전통적인 태국 왕당파이다. 아니면 탁신은 태국 엘리트 계층의 많은 이들과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엘리트 계층 대부분은 광신적인 극단적 왕당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국왕에 대한 본유적 충성심과 애정에 제한을 가해왔다. 즉, 그들은 국왕의 바라미(barami, บารมี)(역주2)가 자신들의 사익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한에 있어서만 충성심과 애정을 지닌다. 더욱이 와치라롱꼰 왕세자를 반대하는 엘리트들의 경우, 푸미폰 국왕이 보위에 머물고 있는 한 자신들이 절개있는 초극단적 왕당파인 척 행동하면서 특별한 인센티브를 누리기도 한다. 그것은 언젠가 왕위계승이 이뤄진 후 자신들에게 쏟아질지도 모를 대역이나 불충에 관한 비난에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태국의 '네트워크 군주제'(network monarchy) 모델을 군주가 그 네트워크를 통제한다거나 영도하는 체제를 표현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태국 현대사에서, 대부분의 경우 네트워크가 군주를 통제했다.
|
|
(역주1) '딥 스테이트'(deep state: 심층 정부)는 터키어로 '데린 데블렛'(derin devlet)이라 부르며, 터키 정치체제에 존재하는 반-민주 성향을 지닌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그룹을 말한다. 여기에는 국내외 담당 정보기관, 터키 군부 및 보안부문, 사법부, 마피아(조폭) 등이 포함된다. '딥 스테이트'는 '정부 내의 정부'(state within the state) 개념과도 유사한 것이다. 이들은 민족주의, 기업국가주의, 국익주의 등을 앞세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를 관철시키는 무형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참조: 영문 위키피디아 'Deep State' 항목]
(역주2) 태국어 '프라 바라미'(Phra Barami, พระบารมี)는 '위대한 공덕'이나 '위대한 위엄'을 의미한다. 태국어 '프라'는 범어나 빨리어의 'vara'(최고의, 성스러운)에서 온 말로서, 성자나 국왕, 혹은 사원의 명칭에 일종의 경칭형 접두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참조: 캄보디아의 크메르어에서는 '쁘레아'라고 발음함). 태국어 '바라미'는 빨리어 '빠라미'(pāramī, 波羅蜜 [바라밀])에서 온 말이다. 남방불교의 교리 가운데 '빠라미'는 대승불교와의 공통성을 가장 많이 지닌 교리에 해당한다. '빠라미'는 대승불교의 '빠라미따'(Pāramitā, 波羅蜜多[바라밀다])와 마찬가지로 붓다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수행들을 의미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혜, 선정의 6바라밀을 가르치지만, 남방 상좌부(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보시, 지계, 출리, 지혜, 정진, 인욕, 진실, 결심, 자애, 평온의 10바라밀을 가르친다. 그러나 태국어 '바라미'는 한 인물이 지닌 인격적 위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며, '프라 바라미'는 특히 국왕이 지닌 인격적 위엄을 가리킨다. 바라미의 수행은 여러 생에 걸친 수행의 결과라고 믿기 때문에, 태국인들에게 있어서 '국왕의 바라미'는 일종의 반신반인의 종교적 경외감을 갖게 해주는 주술적 성격도 지닌 것처럼 보인다. |
이러한 가설들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태국 현대사에 관한 수정주의적 관점이 요구된다. 본 논문은 바로 그러한 노력을 위한 초안에 해당한다. 여기서 논의된 주제는 추후 보다 상세하면서도 보다 폭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논의될 예정이며, 필자가 2014년에 '제드 북스'(Zed Books)에서 출판할 책 <위기의 왕국: 21세기 태국의 왕위계승과 민주화 투쟁>(A Kingdom in Crisis: Royal Succession and the Struggle for Democracy in 21st Century Thailand)에 수록될 예정이다.
|

|
|
(사진)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오래된 가족사진. 좌로부터 마하 와치라롱꼰 왕세자, 푸미폰 국왕, 마하 짜끄리 시린톤 공주(차녀), 시리낏 왕후, 쭐라폰 왈라일락 공주(3녀), 우본랏 라차깐냐 공주(장녀). |
태국의 왕실 가족은 한때 행복해보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3년 사이의 태국 군사정권 독재자들은 미국의 지원하에 반공 캠페인을 펼치면서, 국왕 부부에 관한 날조된 이야기들을 해외에까지 선전하고 미화시키는 데 나섰다. 그 덕분에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후는 태국에서 광범위한 숭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찟라다 궁'(Chitralada Palace)의 담장 뒤에서는 그들의 아들인 와치라롱꼰이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었다. 왕세자는 무뚝뚝하고 게으르며 폭력적 분노를 쉽게 표출했고, 미래의 라마10세가 되기엔 어울리지 않는 인물처럼 보였다. 푸미폰 국왕과 아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난항에 빠졌던 것처럼 보이고, 왕세자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하지만 시리낏 왕후는 아들에게 맹목적이었다. 국왕과 왕후는 주로 아들에 관해 의견불일치를 보였고, 왕실 가족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72년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20세가 되었다. 푸미폰 국왕은 그에게 왕세자 책봉 의례를 열어 그를 짜끄리 왕가의 왕위계승권자 지위로 올려주었다. 하지만 태국 국민들은 이미 대단할 정도로 왕세자를 싫어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사적인 대화에서 왕세자를 조롱하거나 힐난했다. 오히려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인물은 왕세자의 여동생인 시린톤 공주였다. 시린톤 공주는 잘난 체 하지 않으면서도 외형적으로 활달한 소녀였고, 많은 태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왕실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한 긴장상태는 1970년대 중반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광기가 고조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이러한 광기는 왕실이 오랫 동안 후원하고 장려했던 극우 [준-군사] 세력들이 1976년 10월 6일 '탐마삿 대학'에서 좌파 학생들에 대한 학살극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그 절정을 이뤘다.
이 야만적 만행이 발생하기 이틀 전, 대학생들은 풍자극을 통해 교수형에 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공연 참가자들은 부인했지만, 극우파들은 이 공연이 와치라롱꼰 왕세자를 처형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태국 극우파들은 이 사건을 이용했고, 살인과 강간의 광란을 펼치면서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 만행은 태국 사회를 산산이 찢어놓았고, 그 동안 공들여 선전해온 이미지, 즉 군주제가 정파적 정치를 초월하여 국가적 단합을 유지시키는 제도라고 선전했던 이미지를 파괴한 사건이기도 했다.
그후 수년간 태국의 기성체제는 푸미폰 국왕의 명성을 다시금 축조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태국 사회에 만연되어 남아있는 터무니 없는 '과열 왕당주의'(hyper-royalism)의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과열 왕당주의는 국가적 차원의 전방위적 선전선동 활동의 뒷받침을 받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것이었다. 태국인들, 특히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과시적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경쟁했다. 이러한 현상은 칼리굴라(Caligula) 황제 시대의 로마 역사를 연구한 정치학자 자비에르 마르퀘즈(Xavier Marquez)가 '아첨의 인플레이션'(flattery inflation)이라 불렀던 현상과도 유사한 것이다.
|

|
|
(사진) 뒷줄 좌로부터 마하 와치라롱꼰 왕세자, 푸미폰 국왕, 시린톤 공주. 앞줄 좌로부터 솜사왈리 끼띠야꼰 왕자비(=왕세자의 첫번째 부인. 1977년 결혼. 1991년 이혼), 시리낏 왕후, 쭐라폰 왈라일락 공주. |
태국의 '과열 왕당주의'가 지닌 가장 충격적인 측면 중 하나는 엘리트 계층이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후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와치라롱꼰 왕세자를 배제시켰다는 점 외에도, 태국의 기득권층이 라마 9세(=푸미폰 국왕) 개인 숭배를 위해 왕세자의 대중적 비호감을 적극적으로 '착취'하기까지 했다는 점일 것이다.
1970년대부터 태국 사회 전반에서 시린톤 공주를 차기 국왕으로 추대하자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태국의 엘리트 계층은 그러한 사조를 이단적인 것으로서 억누르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을 적극 고무시켰다.
푸미폰 국왕 역시 그러한 풍조에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7년 푸미폰 국왕은 시린톤 공주의 품계를 왕세자와 마찬가지로 왕위계승권자가 될 수 있는 지위로 승격시켰다. 공식적인 소식통들은 항시 이러한 움직임에 관해, 만의 하나 왕세자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예방책이라고 설명했고, 왕세자의 왕위 상속 지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린톤 공주를 왕위계승 후보자로 품계를 상승시킨 것은 대단한 애매모호함을 촉발시켰고, 오늘날까지도 그 상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 많은 태국인들은 이러한 일이 푸미폰 국왕이 자신들의 근심을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고려해주었다는 메세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국가의 영혼: 태국 왕실>(Soul of a Nation : The Royal Family of Thailand)은 영국대사관이 푸미폰 국왕 및 시리낏 왕후와 은밀한 공조를 하는 가운데 1979년에 제작되어 1980년에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이 작품은 국왕 부부가 자신들이 승인한 내용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와치라롱꼰 왕세자보다는 시린톤 공주에게 할당된 시간이 주목할만큼 더 길었다. 왕세자가 등장하는 부분은 매우 짧았고, 왕세자 자신의 짧은 인터뷰가 포함됐다.
|
|
|
(동영상)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1979년 BBC와 가진 인터뷰. 그는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면서, 왕세자로서의 삶이 상당한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주고 있다는 점을 토로한다. <국가의 영혼>에 삽입된 장면. |
|
|
|
(동영상) BBC 다큐멘터리 <국가의 영혼> 전체 동영상. 총 길이: 1시간 52분. 이 동영상의 8분 15초 부분부터 등장하는 열병식에서 왕세자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고, 시린톤 공주가 국왕 부부의 사열차량 앞자리 조수석에 탑승하고 있다. |
태국 엘리트 계층 대부분은 태국의 정치적 상태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면서 현상유지(status quo)를 이루는 한에 있어서만 왕당파들이다. 이 피라미드 체제의 정점을 바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푸미폰 국왕은 이상적인 군주이다. 그는 일반 국민 대부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고 대단한 덕과 도덕성까지 겸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약하면서 유순하기 때문이다. 태국의 엘리트 계층은 라마 9세를 찬양하면서 자신들이 확고하게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체제를 정당화시켜왔다.
하지만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국민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없고 불교의 전통적인 이상적 군주인 덕스러운 '탐마랏'(dhammaraja: 法王[진리의 군주])의 이미지에도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득권층은 왕세자가 국왕에 등극하면 군주제 시대도 종말을 고할 것이라 믿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태국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던 헤게모니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왕세자는 기득권층에게 두려움의 상징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왕세자가 기득권층 가문의 딸들을 먹이감으로 삼는 습성을 보이자, 기득권층의 왕세자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강화됐다. 과거 시암(Siam) 왕국에서는 국왕이나 왕자들이 수십명의 아내와 애첩들을 두는 관행이 있었다.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매혹적인 상류층 여성들을 자신의 궁으로 불러들여 악명을 쌓기 시작했다. 그 정도에 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왕세자의 그 같은 행동은 태국의 엘리트 계층 사이에서 심도 깊은 분노와 근심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됐다. 많은 엘리트 집안은 자신의 딸들을 해외로 유학보내 왕세자의 관심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왕세자에 대한 광범위한 혐오감은 다른 한편으로 푸미폰 국왕에 대한 과장된 숭배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국왕의 사후 태국 사회가 처할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시켰다. 기득권층이 이런 악몽을 갖게 된 것은 대부분 자신들에 대한 자기보호 본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세자에 대한 혐오감을 보다 폭넓은 사회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부도덕한 국왕이 나라를 쇠약하게 만들고 망하게 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르면, 결국엔 암흑기, 즉 '깔리육'(กลียุค)(역주3)에 도달하고 만다.
|
(역주3) '깔리육'은 산스끄리뜨어 '깔리 유가'(Kali Yuga)의 태국어식 발음이다. '고대 힌두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은 생주이멸(生住異滅: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의 4가지 유가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그 중 종말기를 '깔리유가'라고 부른다. |
짜끄리 왕조 시대(Chakri era) 초창기부터 예언 하나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이 왕조가 제9대 국왕이 사망한 후 망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예언 역시 왕세자에 대한 반감을 더욱 촉진시키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에 따라 태국의 엘리트 계층은 질서 있는 왕위계승을 준비하기보다는, 와치라롱꼰 왕세자에 대한 혐오감을 이용하여 푸미폰 국왕이 가능한한 계속 통치를 해야 한다는 간절한 희망을 일반 국민들 사이에 조장하는 데 치중했다.
왕세자는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1987년 그는 <디찬>(Dichan) 지와 회견하면서, 자신이 '집안의 골칫거리'(black-sheep) 같은 상태라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대답했다.
|
"때때로 검은 양이 일을 더 잘 할 때도 있고, 다른 이들을 돕기도 한다. 검은 양은 좀 덜 흰 양들을 더욱 희게 보이도록 도와준다." |
한편 1970년대 말의 [정치적] 재난들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푸미폰 국왕은 쁘렘 띠나술라논(Prem Tinsulanonda: 1920년생) 장군이 총리를 맡았던 1980년대에는 왕실을 위해 명시적인 정치적 개입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던칸 맥카고(Duncan McCargo) 교수는 이 시대를 ' 네트워크 군주제'(network monarchy)라는 유명한 용어를 사용해 특징지웠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태국 '네트워크 군주제'의 주요한 특징들은 (중략) 다음과 같다.
- 정치위기의 시점에 긴장관계의 궁극적인 중재자가 국왕이다.
- 국왕은 국가적 적법성을 부여하는 주요한 원천이다.
- 국왕은 국가적 현안에 관한 훈계적인 논평가이다. 이러한 점은 국가적 의제들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특히 매년 개최되는 그의 생일 행사의 연설들은 더욱 그러하다.
- 국왕은 태국의 정치적 전개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하지만 그것은 추밀원(국왕자문기구) 위원들이나 신뢰할만한 군부 인사들처럼 꼭두각시(proxy)들을 통해서 이뤄진다.
- 국왕의 꼭두각시들 중 선도적인 인사는 전직 군 사령관이자 총리를 지낸 쁘렘 띠나술라논 장군이며, 그는 연립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조력하고, 군부나 여타 기구들의 인사이동과 승진을 모니터링한다.
이러한 종류의 네트워크를 통한 거버넌스(통치 행정)의 핵심은 '올바른 사람들'(주로 올바른 부하들)을 '올바른 직무'에 배치하는 일에 의존하고 있다. |
'네트워크 군주제' 모델은 쁘렘 장군이 푸미폰 국왕의 꼭두각시(복심)라는 것을 전제하며, 국왕은 쁘렘 장군을 통해 태국의 엘리트 계층을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단 한번도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엘리트 계층으로 하여금 줄을 대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푸미폰 국왕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때때로 현실과 떨어져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록 그가 최근까지도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푸미폰 국왕은 그의 통치기 대부분에 걸쳐 하나의 꼭두각시였다.
세르핫 위날디(Serhat Ünaldi)는 최근 학술지 <현대 아시아 저널>(Journal of Contemporary Asia)에 발표한 논문 <국왕 친향적 작동기제 및 그에 따른 불만들: 방콕 시내에 나타난 반-왕당적 그래피티>('Working towards the Monarchy’ and its Discontents: Anti-Royal Graffiti in Downtown Bangkok)에서, 맥카고의 '네트워크 군주제'를 대신할만한 새로운 시각틀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개념을 "국왕 친향적 작동기제"라고 명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국왕의 힘은 단순히 위에서 제시한 조작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본과 사회적 탁월함을 추구해온 많은 이들의 이익에 오랜 기간 봉사해온 하나의 상징적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맥카고가 말한 '네트워크 군주제'는 국왕을 지지하는 엘리트 계층들의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들을 설명하는 데는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필자가 말하는 '국왕 친향적 작동기제'는 더욱 폭넓은 구조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태국의 문화적, 정치적 삶 속에서 군주의 지배적 위상을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분석 단위들은 경계가 명확한 네트워크들 및 왕실에 직접 관계가 있는 공동체였지만, '국왕 친향적 작동기제'는 보다 광범위하고 각계계층을 가로지르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기업가에서 빈민촌 거주민에 이르기까지 국왕의 물리적 근접성 안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의 사회 정치 경제적 목적에 봉사하는 요소를 말하는 것이다. '네트워크 군주제'가 왕당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조작하는 데 적극적인 중심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면, '국왕 친향적 작동기제'는 국왕 추종자들에만 초점을 맞추던 관점과는 반대이다. 국왕 추종자들은 카리스마를 지닌 그룹을 중심에 두고, 그와 관련시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카리스마를 지닌 그룹은 그 카리스마를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재확인하는 일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
태국의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의 우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왕이 지닌 성스러운 기운(=프라 바라미)을 필요로 하며, 기득권 체제의 지도급 인물들은 푸미폰 국왕에게 자신들이 그를 숭배하고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지도급 인사들은 또한 자신들의 네트워크 내에서 보다 하위의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이 지도하는 바가 국왕의 권위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도 끊임없이 각인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국왕의 측근인 추밀원 의장] 쁘렘 띠나술라논(1920년생) 장군이나, 보다 최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난 빤야라춘(Anand Panyarachun: 1932년생) 전 총리와 쁘라윗 웡수완(Prawit Wongsuwan: 1945년생) 전 국방부장관과 같은 "국왕의 가신들"(king’s men)이 일단 '국왕의 바라미'라는 망토를 걸친 후, 그들은 기성체제의 네트워크를 자신들의 사익에 이용할 수 있는 상당한 위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방향이 푸미폰 국왕의 뜻과 상응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이들의 이해관계는 상호 합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특히 왕위계승에 관한 사안이 그러하다. [이러한 네트워크 내에서] 각종 지침들이 정말로 푸미폰 국왕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들 가운데 '제09BANGKOK2967호 전문'은 바로 이 문제를 가장 잘 조명한 문건 중 하나이다. [2009년 11월 23일 에릭 존(Eric G. John) 방콕주재 미국대사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이 외교전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
다양한 부문의 많은 인사들이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태국어로 '앙 바라미'(ang barami)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아무런 공식적 권한도 없이 국왕의 카리스마와 왕실의 위엄을 도용하려는 시도를 함. 심지어는 왕실 주요 인사들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의 태국인들조차 자발적으로 봉사한다는 '앙 바라미'의 전통을 묵인하면서 여타 왕실 측근들이 주도하는 목적을 지닌 희망사항들을 주의 깊게 다루고 있는 상황임. |
쁘렘 띠나술라논 장군과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1980년대부터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두 사람이 증오하게 된 정확한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1980년대 중반 왕실에서 발생했던 공공연한 비밀의 가정불화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후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갔고, 시리낏(1932년생) 왕후가 군부 내 자신의 측근이었던 나롱뎃 난타포티뎃(Narongdej Nanda-photidej, ณรงค์เดช นันทโพธิ์เดช: 1947년생?) 대령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자 푸미폰 국왕은 몹시도 어색한 처지가 됐다.
결국 나롱뎃 대령은 방콕을 떠나 미국 주재 대사관 무관으로 발령을 받았고, 1985년 뉴욕에서 테니스 경기를 마친 후 갑작스레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공식적인 발표는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리낏 왕후도 포함하여 많은 태국인들은 무언가 더욱 나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
|
|
(동영상) 나롱뎃 난타포티뎃 대령을 추모하는 동영상. 배경 음악은 <짝 엿더이>(จากยอดดอย: 산정상에서)라는 곡으로서, 나롱뎃 대령의 육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
|
|
|
(동영상) 나롱뎃 대령은 포크 가수 짜란 마노펫(จรัล มโนเพ็ชร)의 곡 <짝 엿더이>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

시리낏 왕후가 나롱뎃 대령의 죽음에 대해 매우 공개적인 슬픔을 표출한 일은 결국 문제에 휘말리고 말았다. 1985년 말, 푸미폰 국왕은 시리낏 왕후에게 병원에 입원하라고 명령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진단적 소파술'(diagnostic curettage: [역주4] 자궁 내막을 기계로 긁어내는 수술을 일컬음)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시리낏 왕후는 이후 몇달 동안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대중적 동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쭐라폰 왈라일락(Chulabhorn Walailak) 공주가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1986년 한 TV 인터뷰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
"우리 가족 모두는 국왕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폐하를 위해 일한다. 우리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가 인기를 얻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가족이 업무를 분담하고 팀을 이뤄서 일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 가족이 양편으로 갈라져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전반적인 슬픈 일화들은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후의 결혼생활이 종말을 고했음을 알렸고, 이 부부는 이후 20여년간 별거생활을 했다. 시리낏 왕후를 중심으로 경쟁적 성격을 갖는 또 하나의 왕실 그룹이 탄생했다. 이 그룹의 특징은 극우적 정치 성향과 철야로 진행되는 만찬 댄스로 특징지워졌다.
태국의 기득권층이 단일한 기층으로 구성된 단합된 공동체를 이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후의 관계가 소원해진 일은 그러한 분열의 간극을 더욱 벌려놓는 일이었다. '네트워크 군주제' 내의 지도급 인사들에게 이러한 간극은 더욱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독자적 의제를 추구했던 쁘렘 띠나술라논 장군에게는 특히 그랬다.
푸미폰 국왕은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은 후 왕위에서 퇴위하는 일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59회 생일이었던 1986년 12월 행사에서, 자신이 와치라롱꼰 왕세자에게 양위를 할 수도 있음을 내비쳐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방콕 시내를 흐르는 강인] 짜오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의 물줄기는 계속해서 흘러가야만 하며, 흐르는 물은 [새로운 물에 의해] 대체돼야만 한다. 우리의 생애기에, 우리는 단지 우리의 의무들만을 행할 뿐이다. 우리가 은퇴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들을 대체한다. 하나의 임무에 영원히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다. 언젠가 우리는 늙어서 죽게 될 것이다." |
왕실 관리들도 발언을 통해, 푸미폰 국왕이 태국 역사상 최장기 재위를 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1988년 7월의 국가적 경축행사를 마치면 불교의 수도원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푸미폰 국왕의 준-공식적 대변인 역할을 하던 텅너이 텅야이(Tongnoi Tongyai)는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 지의 보도에 대한 논평을 하면서, 이후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만일 당신이 말하는 퇴위가 국왕의 의무를 뒤로 한 채 은퇴하는 것이라면, 국왕께서는 절대로 퇴위하지 않을 것이다. 국왕 폐하께서는 일단 왕세자께서 보다 성숙한 나이가 되어 왕실의 모든 기능들을 관장할 준비가 된 것을 본 후, 수도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중략) 그것은 그분께서 승려로 머문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폐하께서 옥좌를 뒤에서 돌보면서 자신의 아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시면서 계실 것이란 점이다." |
짜끄리 왕조의 군주제를 장기적으로 보존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계획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많은 수의 태국 기득권층 사이에 패닉 상태를 만들었다. 국왕의 의도에 공공연히 의문을 품는 일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수쿰판 버리팟(Sukhumbhand Paribatra: [역주5] 현 방콕시장이자 왕실 종친)이 이 계획을 반대하는 운동의 선봉에 섰다. 수쿰판은 짜끄리 왕가 내에서 또 다른 경쟁 계보 혈통의 왕족이었고, 그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보호막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수쿰판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퇴위에 관한 소문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고 적었다.
|
* 시리즈물 바로가기 :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2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3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4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5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6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7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8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9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0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1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2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3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완결편)" |
|
첫댓글 아마도 이 논문 연재는
우리 카페가 태국 정치에 관해 다룰 수 있는 "최후의 분석"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앤드류 맥그러거 마샬 기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는 김에 동영상들을 추가했습니다..
정말 애절한 러브 스토리였구만요..
푸미폰 국왕도 마음의 상처가 컷겠습니다..
시리낏 왕후와 나롱뎃 대령을 포함해서
세 사람 모두 동정심이 가는군요..
글이 그냥 아주 ~ 흥미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