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15:1-10/ 열매 맺는 생활의 비결 / 한경직 목사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十五․五)
지금은 가을이올시다.
들에 나가면 곡식이 무르익었고 저자에는 상점마다 사과, 배, 감, 포도 같은 아름다운 과실로써 단장이 되어 있습니다.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이올시다. 심지어 잡초도 씨를 맺는 때입니다. 온 천하 만물이 한 그림책 같습니다. 이 대자연은 이러한 계절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너희 인간들도 열매를 맺으라 하는 그 말일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운데 지난 주일에 학습을 서고 세례를 받은 이들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예수 님께서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열매를 맺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 하나 하나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 맺는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 복음 十五장 첫 부분에서 주님께서는 그 비결을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그리해서 十五장 첫 절을 볼 것이면『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라.』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큰 신령한 교회를 큰 포도나무에 비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선 이 포도나무가 얼마나 큰가 상상해 보세요. 이 포도나무의 가지는 문자 그대로 오대양 육 대주 온 세계에 거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온 세계에만 미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하늘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원 줄기는 하나입니다. 여기 앉은 우리 하나 하나는 이 큰 포도나무의 한 작은 가지들이올시다. 그러면 이 작은 가지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열매를 맺겠습니까?
여기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명(自明)의 이치입니다.『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주님께서 선언했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속해야 생명을 유지합니다. 가지는 본 나무에서 생명의 즙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본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고 하는 말은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먼저 주님 안으로 들어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들어온 후에도 변하지 말고 계속해서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주안에 있으라, 예수 안에 있으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고 하십니다.
『안에』라고 하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창세(創世)전에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라는 찬송도 부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 분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서 우리의 생각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우리의 계획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우리의 상상도 그리스도안에서 하고, 우리의 사업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우리의 공부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우리의 사교 생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결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할 것입니다.
일찍이 동양의 성현 공자께서「인은 인지 안택」(仁, 人之安宅)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은 어질 인자(仁字)입니다. 인은 사람이 평안하게 있을 만한 집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평안히 있을 만한 집입니다. 우리가 이 집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새가 공기를 떠나서 날아갈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 사람들이 이 높은 차원의 그리스도 안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스스로 자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내 생각, 내 행동, 내 생활이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의 근본 줄기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많은 가지가 있습니다. 이 많은 가지가 서로 엉켜 있습니다. 그 엉킨 가지 안에는 많은 포도송이가 있습니다. 많은 가지가 서로 엉켜 있어서 피차에 도와줍니다. 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교회의 상징인 줄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많이 있지마는 우리 모든 믿는 사람 하나 하나가 한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게 다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붙어 있는 가지는 서로 엉킨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도와줄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보면 코이노니아, 즉 성도의 친밀한 교제라고 합니다.
한 나무에 붙은 여러 가지가 서로 싸울 수 없습니다. 서로 분열해서는 안 됩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주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열매를 많아 맺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 산상보훈에서 가르치실 때에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고 하다가 너희에 대하여 누구 가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제단을 잠깐 그대로 두고), 예물을 그대로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목한 후에 다시 와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만큼 성도의 화목이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사람이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느냐』.
우리 한국 장로교회와 관계가 많은 미국 연합장로교는 새로운 신조를 지금 만들고 있는데 거의 다되었습니다. 그러나 발표는 명년 총회 때 하게 되므로 소위 一九六七년 신조라고 합니다. 그 신조에 보면 특별히 우리 기독교는 사회의 종교인 것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 인간과 인간과의 화해, 이 화목이 기독교 신앙 가운데 중심 신앙인 것을 특별히 강조한 것을 우리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 한국 교회가 이런 점을 먼저 깊이 좀 깨달았다고 할 것이면 얼마나 더 많은 열매를 맺었겠습니까? 한 나무에 붙은 가지는 서로 붙들어 주고, 서로 도와주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를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영락교회가 과연 큰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까?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다른 나무 가지보다는 특별히 연하며 아주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마음대로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동편으로 돌리면 동쪽으로 서편을 돌리면 서쪽으로 그냥 뻗어 나갑니다. 아주 부드러워서 농부의 뜻에 의해서 잘 순종합니다. 그래서 좋은 방향으로 농부가 뻗어 나가게 하는 대로 순종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이것도 배워야 될 줄로 압니다.
누가복음 五장에 보면 예수께서 게네사렛 바다에서 시몬을 만날 때에 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는 말이『주여, 내가 밤새도록 그 근방에서 수고를 하였으나 하나도 잡지 못하였습니다.』그리고 계속해서『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우리가 그물을 던지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 자신의 생각으로는 거기 던져야 고기가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겸손한 맘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순복할 줄 알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사도행전 十六장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과 같이 전도하는 일행이 갈라디아 지방과 비두니아 지방을 지나가면서 그 근방에서 전도하기를 애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허락지 않았는지 모르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전도를 못하고 멀리 북방 아시아 맨 끝 드로아라는 성까지 방향 없이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 밤에 환상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바다 건너 마게도니아 지방, 지금 말하면 유럽 지방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마게도니아 지방에 가서 온 유럽을 향하여 전도를 하기 시작했더니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뜻밖에 큰 수학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람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열매를 맺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싫어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도 있는 줄 압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할 줄을 알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존 칼빈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런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이가 청년 신학자로서 스물 일곱 살에 유명한「기독교 강요」를 저술한 후에 그 이름이 온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이탈리아에 잠깐 갔었습니다. 갔다가 곧 돌아오려 했는데 그곳에 뜻밖에 전쟁이 일어나서 돌아올 수가 없어서 부득이 지금 스위스 지방으로 돌아 자기 고향으로 오려고 제네바에 들려서 하룻밤 자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월리암 화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종교개혁 지도자가 젊은 청년 칼빈을 여관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지방에 종교개혁을 시작했는데 일꾼이 없으니 당신 같은 젊은이가 나를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 말을 듣고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정 고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모든 일에 계획을 다 세우고 사는 사람이므로 다른 할 일이 있는데도 여기에 있으라고 하니 허락할 이치가 만무하였습니다.『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야만 합니다.』그랬으나 그 월리암 화렐은 그냥 권면합니다.
칼빈은 또 거절합니다. 마지막에는 이 화렐이 성이 났습니다.『나 보기에는 당신이 여기에 잠깐 들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장차 이것은 당신이 여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데 당신이 만약 그냥 간다고 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칼빈은 눈이 둥글 해졌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그 다음에는 거절을 못했다고 합니다.『그렇게까지 생각하시면 제가 여기 좀 머물어 선생님을 돕겠습니다.』그렇게 되어 그가 제네바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로 말미암아 그가 일생토록 제네바에 머물어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열매를 그곳에서 맺었습니까?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많은 열매를 맺을는지 미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 뜻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공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더 깨끗케 하시느니라.』과실 많이 맺는 가지를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 깨끗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전정(剪定)해 준다는 말입니다.
다듬어 준다는 말입니다. 전 정해 주어야 열매 맺는 가지가 열매를 더 많이 맺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다 이 큰 포도나무에 붙은 가진데 여러분 가운데 열매 많이 맺는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고통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혹 질병에 걸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환난, 실패 등, 여러분을 연단(練鍛)캐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전정의 가위를 쓸 때가 혹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항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잘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늘 얘기하거니와 여러분은 요셉의 생활을 다 아시지요? 젊은 요셉이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큰 죄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멀리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오히려 큰 유혹을 이겼건만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열매를 애굽에서 맺었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열매를 잘 맺어도 하나님께서 열매를 더 맺게 하기 위해서 가위질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여기 성경에 열매라고 하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서너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열매를 가르치는 줄 압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와 같은 품격의 열매를 우리 자신에게 맺습니다. 성결, 진심, 사랑, 공의 혹은 서경의 말 그대로 사랑, 가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 그리스도와 같은 품격의 열매를 우리 자신에게 맞습니다.
좀 더 예수 님과 같아져야 하겠습니다. 여기 이북에서 오신 분은 아마 아실 것입니다. 옛날 피언 교회에 오래 계시던 최 명준 목사님은 그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다 최 예수, 최 예수라고 했습니다. 왜? 그가 예수 님과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의 품격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열매는 종류에 따라서 맺습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배나무는 배를 맺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맺는 열매는 무엇일 것 같습니까? 그리스도인을 맺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먼저는 내 속에서 그리스도의 품격의 열매를 맺고 그 다음 바깥에 나타나는 첫 열매는 나로 말미암아 다른 그리스도인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도합니다.
여러분, 이 열매가 다 맺혔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므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이 변해서 그리스도인 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여러분이 맺게 한 열매입니다. 여러분, 다 그 열매를 맺었습니까? 이것은 분명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예수를 五년을 믿고 十년을 믿었는데 나로 말미암아서 죄악 가운데 있던 사람이 회개하고 새 사람된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그 사람은 여러분이 맺은 열매입니다. 금년에도 우리가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전도하자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금년에 한 사람의 열매를 맺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뜻이 깊은지 압니까? 가령, 우리 교회 청장년이 매주 六. 七천 명이 모이는데 六천여 명이 금년에 한 사람씩 만 열매를 맺었다고 할 것이면 연말이 되면 얼마로 불을 것 같습니까? 남한에 기독교인이 二00만 명인데 二00만 명이 금년에 한 사람씩 열매를 맺었다고 할 것이면 금년 안으로 얼마가 되겠습니까?
四00만이 됩니다. 명년에 四00만이 또 한 사람씩 열매를 맺으면 명년 안으로 八00만이 될 것입니다. 八00만이 三년째 되는 해에 또 하나씩 열매를 맺으면 그 다음에는 一,六00만 명이 될 것입니다. 四년 후에는 三천二백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 인구가 좀 모자라게 되겠습니다. 내가 참 그리스도께로 생명의 길을 갔습니까? 그러면 열매를 맺으세요. 무슨 열매? 그리스도인의 열매입니다. 금년도 오래지 않아서 다 지나갑니다. 다 지나가기 전에 한 사람씩 열매를 맺읍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열매가 있어요. 그것은 봉사의 열매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내 생명을 대속(代贖)물(物)로 주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봉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봉사합니다. 사회를 봉사합니다. 국가를 봉사합니다. 전세계를 봉사합니다. 특별히 불우한 이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불안과 고독 가운데 있는 이들, 봉사를 받아야 할 이들을 봉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봉사의 열매를 맺습니까? 참 위대(偉大)의 표준은 돈을 얼마나 모았는가 하는 데 있지 아니합니다. 그 돈을 얼마나 주를 위해서 썼는가 하는 데에 있습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서 남에게 대접을 받았는가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든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섬겼는가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를 맺습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경고를 하나 했습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찍어서 불에 던져 사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도 열매 안 맺으면 찍어서 불에 사릅니다. 장로도 열매 안 맺으면 찍어 불에 사릅니다. 권사도 열매 안 맺으면 찍어서 불에 던집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올시다. 송사리만 잡아내고 큰 고기는 놓아주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제 도끼를 나무 뿌리에 노았으니 누구든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에 던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실을 다 기억하시지요. 열매를 꼭 맺어야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비결은 항상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끼리 서로 도와주고 한 마음 한 뜻 안에서 사는 데에 있습니다. 겸손히 순복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환난과 재앙이 와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