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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0년 4월 19일 일반법회
> 제목: 정산종사법어 제8 응기편 17장 // 향산 안이정 선진님
> 김제원 교무님 설법
> 타이핑: 백도원, 김영진
1. 향산종사님 (香山 安理正 1920~2005)
반갑습니다. 한 주일간 잘 보내셨지요. 오늘은 우리 유타원님께서 향산님에 대한 것과 또 응기편 17장 말씀에 대해서 같이 풀어주셨습니다. 응기편 17장은 참 짧지요? 먼저 향산님 뵈신 분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아하 그래요. 향산님 얼굴 뵈면 무슨 생각 드세요? 대종사님 당대에 보면 서대원 선진님이 인물이 훤칠하셨고 또 팔산님이 크시고 그랬는데, 제가 처음에 총부에 가니까 제일 골상이 좋으신 분이 향산님이셨습니다. 머리 끝부분이 봉긋하게 솟아있어서 뒤에서 보면 그냥 ‘저분은 도인이다’ 하는 생각이 딱 들 정도였습니다. 머리모양이 제일 예쁘시고, 밝고 깨끗하고 빛이 나는 분이 향산님이셨습니다.
향산님은 대종사님 열반 2년전에 원불교에 오시게 되셨죠. 아까 설명이 좀 나왔지만은 향산님은 광주 서중학교를 들어가셨습니다. 서중은 옛날에 일고입니다. 함평 출신이신데 서중에 들어갔다가 형편이 어려워서 나왔습니다. 그 당시 서고 들어갔으면 공부를 아주 잘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열반하시면서 인생무상을 생각하게 되어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먼저 광주에서 큰 절인 백양사에, 저도 인연이 많은 곳인데, 송만암 스님이 큰스님으로 계실 때 찾아가셨습니다. 백양사에 가서 첫날 자는데, 꿈 속에 검은 도포자락을 입고 준엄하게 생긴 등치가 큰 양반이 뭐라고 했다고 합니다. “네 이놈. 왜 이곳에 왔냐! 당장 떠나라!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두 달을 거기서 더 살면서 수심결과 금강경을 공부를 하셨어요. 그 전에 이 분은 사서를 다 떼신 분이에요. 향산님 글씨를 당신 얼굴처럼 빈틈없이 아주 깔끔하게 쓰십니다. 약간 얇실한 듯 하면서 깔끔하게 쓰시거든요. 그런데 두 달 지나서 또 똑 같은 꿈을 꾸고 나서 이게 정말 아닌가 보다 하고 백양사를 나오게 됩니다.
나왔는데 할 일이 없어서 집에 계시니까, 어머니께서 “너 그렇게 있으면 안되겠다. 신흥교당 (영광)에 계시는 이모한테 가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이모가 계신 신흥교당 교무님이 팔산님의 아들이신 형산님이셨어요. 형산님을 만나서 법문을 들으니까 그렇게 안심이 되더래요. 형산님이 딱 보니까 향산님이 쓸만하거든. 그러니까 바로 영산에 계시는 정산종사님께 보냈어요. 정산종사님께서 보니까 쓸만하거든, 그래서 도와 덕에 대해 설하셨어요. 거기서 향산님께서 탁 마음을 내셨어요. 말씀을 듣고 ‘내가 영생을 의지할 곳이 여기다. 내 마음 다 바쳐서 공부할 스승님을 만났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되셨습니다. 정산종사님께 “제가 이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하고 여쭈었는데, 그때가 막 총부의 동선 전이어서 총부로 보내십니다. 총부에 가서 주산종사님 마중으로 대종사님을 뵈었는데 기겁을 하셨다고 해요. 그 꿈에 나타났던 분이 대종사님이셨던 거에요. 향산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돼서 동선 하선을 네 번 정도 나십니다. 그때 향산님께서 기지를 많이 발휘하십니다.
대종사님이 법명을 주시는데 너는 이름이 안이정 (安理正, 편안할 안, 이치리, 바를정)이다. 수양을 잘 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그 다음 연구를 잘하면 이치에 밝아지고, 그 다음 취사를 잘하면 바르게 된다 하여 이름을 삼학(三學), 정혜계(定慧戒)로 지어 주셨습니다. 원불교 이름 중에 제가 볼 때는 제일 멋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허허. 그런데 정산종사님께서 나중에 호를 내리시는데 향(香)산이라고 나왔습니다. 이름을 다시 보면 안(安)-정(定), 이(理)-혜(慧), 정(正)-계(戒)인데, 여기에는 주로 향(香)자를 붙입니다. 불교에서 독경할 때도 많이 들어보셨죠? ‘정향~, 혜향~, 계향~’ “정향” 수양을 잘해서 편안하고 고요한 그 자리에 들어가면 안정되면서 향기가 있고, “혜향” 이치에 밝으면 밝은 향기가 있고, “계향” 사람이 계문을 잘 못지키면 악취가 나지만 계문을 잘 지키면 향기가 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처음에 딱 뵀을 때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향기로운 남자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어른은 향기로운 남자였어요. 정말로 여성다우면서 깨끗하면서 하여간 그런 어른이셨습니다.
향산님은 처음에 출가하셔서 무엇에 관심이 많으셨냐면 특히 성리(性理)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 당대에 동선을 나실 때에도 질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에는 의두요목으로 계속 문답을 하거든요. 손들어서 대답을 시켜요. 그래서 엄한 대답, 다른 대답하면 삑 하고 누르셨어요. 그때 향산님이 한참 동안 문답하신 어른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다 그러니 “왜 하나냐?” 하고 질문을 해 나가는데 향산님이 마지막에 한번 대답을 못했다고 합니다. 다 하나라고 하니까 대종사님께서 “그러면 참새하고 너하고 하나겄다? 그러면 참새가 포수 총에 맞아서 죽을 때 아플텐데 너는 왜 하나도 안 아프냐?” 하셨는데 그 질문에 탁 막혀버렸다고 합니다. 대령과 개령의 관계를 그때는 이해를 못하신 거죠. 그렇게 향산님은 상당히 성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어른입니다. 그래서 『의두 성리 연마』 라는 책을 내셨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원불교 교전 전체를 풀어낸 『원불교 교전 해의』 라는 책을 내셨어요. 향산님은 제가 볼 때 오롯하게 정남이시고, 오롯하게 대종사님 뜻을 받드시고, 그대로 대종사님 법에 체화가 되신분이에요. 그래서 출가위까지 올라가신 분이에요. 다른 사심이 일체 없으셨어요.
초반에는 도양교당, 전주교당, 부산교당 다니시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주로 후진들 양성하는 훈련원에 계속 근무하시게 됩니다. 훈련원은 수양 연구가 주인데, 여기에 밝으시기 때문에 주로 성리 법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은 대학원인 곳이 그 당시에는 삼삼회에서 향타원님과 같이 지은 훈련원이었는데, 향산님께서 저희 학교 다닐 때는 그 훈련원에 주재하고 계셨습니다. 매 학기 초나 말에 총부에 인사를 돌거든요. 그때 가면 특이했습니다. 딱 두 가지 말씀을 주로 하시는데, 첫 번째는 “느그들 학부 때 공부길 잡아야 한다.“ 두 번째 말씀은, “학생 때 반드시 견성해라.” 하는 말씀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거기서 공부길이라는게 무엇일까. 견성은 어디까지를 견성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참 견성이라고 할까 하고 저도 의두 연마에 더 관심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제게 공덕이 많은 어르신이십니다. 향산님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저하고 서울역 다방에서 한시간 독대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묘하게 양산법사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저와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향산법사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한 시간 넘게 얘기를 해주셔서 저한테 부탁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뭐였냐면, “교단이 직책 위주로 가기 보다는 법위 위주로 가면 좋겠다”였습니다.
향산님은 물론 원로 수위단원까지 다 하시고. 퇴임 후에 바로 원로원으로 가시지 않으시고 중앙 중도훈련원에 가셔서 퇴임하실 때까지 계속 계셨어요. 그래서 저희들 훈련을 들어가면 향산님께서 꼭 설법을 하셨어요. 주로 성리에 대한 법문 해주시고, 결제식 때 법문도 많이 해주시고 그러셨어요. 거기 보면 향산님께서 주장을 해서 중도원에 해두신게 있는데, 그게 연못입니다. 처자식이 없으니까 연못을 파라고 하셔서 잉어 같은 것을 키우셨습니다. 그렇게 말년을 향기롭고 아름답게 마치신 어른이시고, 마지막에 기력이 쇠해졌을 때 원로원으로 가셨어요. 그렇게 건강하셨었는데 갑자기 기력이 쇠해지시데요.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40세에 영산선원에서 그 분이 깨달음을 얻고 쓰신 글이 있는데요,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40세에 글을 쓰셨습니다. 오롯이 선 하시고, 선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선에 대한 강의를 제가 직접 받든 적도 있습니다.
2. “몸으로써 먼저 실행할 것이니라.” -정산종사법어 제8 응기편 17장
오늘의 법문은 향산님이 출가를 하셔서 선을 나시고 첫 발령지에 가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영광의 도양교당에 발령받아서 가려는데, 사실은 향산님이 일에 대해서 약간 약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셔서 정산종사님께 물은 겁니다. 제가 처음으로 도양교당 발령을 받아서 교화선상에 나가려고 하는데 저에게 보감되는 말씀을 해주십시요. 그러니까, 정산종사님께서 “모든 일에 몸으로써 먼저 실행해라.” 하셨습니다. 원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 실천이라고 그럽니다. 생활종교 실천종교라고 하죠. 활불(活佛)이라고도 하구요. 과거의 종교는 성현들께서 마음으로 몸으로 또는 말로 많이 제생의세 (濟生醫世) 사업을 하셨어요. 그러나 이제는 더 중요한 것이 몸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몸으로라는 것은 실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실천을 하려면 몸이 있어야 하고, 몸은 마음이 관장하죠. 그 마음은 정신에서 나왔죠. 그 정신은 성품을 깨쳐야 하죠. 근데 그 몸은 지수화풍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기질(靈氣質)이 있지요. 더 들어가면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있습니다.
아까 우리 유타원님도 성진이한테 잘 할라고 하는데, 하다 보면 성질이 나지요. 여기에 오신 분들 오전에 푹 자고 싶은데 여기 오신 것이 그 마음, 잘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어떤 것이 내 영생을 통해서 가치가 있는가. 그래 이 법회라는 것을 통해서 내 정신적 자료, 삶의 가치, 어떤 깨침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내가 영생을 잘 살아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여기 오셨거든. 그런데 그게 여기서 문밖으로 나가면서 전화 한 통 받고 나면 짜증이 나고..그러죠? 이게 마음대로 되나. 결국은 정산종사님께서는 너는 몸으로 먼저 실행하라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 삼학 전체를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시선(無時禪)을 말씀하신 것이고, 즉 삼학 전체를 솔성(率惺) 위주로서 말한 것입니다. 취사를 말한 거에요. 결국은 교법을 실천하라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제가 오늘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3. 몸 - 안이비설신 (眼耳鼻舌身)
(1) 눈 - 안 (眼)
아까 우리 유타원님이 성진을 뭘로 봤어? 눈으로 봤어요. 색이라는 경계, 물질이라는 경계 또는 손자라는 경계를 봤어. 그러면 성진이구나 하는 식(생각)이 일어나. 아이고 우리 손주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눈(眼) 눈이라는 것은 하나의 형태와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색깔을 보는 겁니다. 색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죠? 제가 어지간한 일에는 동하지 않는데, 제가 색에 좀 동합니다. 보라색이라든가 보라색이랑 회색이 섞여 있다든가. 제가 예전에 벌교에 천연염색하는 인간문화재이신 분을 교구장님 모시고 방문했다가, 그날 저녁까지 계속 생각나더라구요. 제가 또 한번 제 마음을 뺏긴 경계가 천주교에서 강연요청이 있어서 남한강을 지나면서 수석집을 들렸어요. 제가 수석을 좋아해서 들렀는데 딱 맘에 드는 것이 하나 있는거에요. 수석이라는 색깔과 형태가 어울리는 것, 특히 수석 자체 형태가 예를 들어 사람 모양이라던가, 아니면 수석 속에 사람형태가 들어있으면 비싸요. 그런데 기가막히게 태양이 있고 그 아래 스님이 선하고 있는 것 같은 돌이 있는 거에요. 좋아서 금액을 물어봤더니 천삼백만원이래. 그래서 침만 삼키고 왔죠. 색깔이나 모양을 보면서 좋다 싫다를 내가 하게 되요. 또는 눈이 자연을 관찰하고 물질을 관찰하고 사람을 관찰하고 대상을 관찰하면서 어떤 생각을 일으키죠. 그래서 물질과 색을 관장하는 눈을 너무나 많이 쓰는 사람은 간이 상합니다. 그런데 자연을 본다던가 원근을 본다던가 하늘을 보면 간이 좋아집니다.
(2) 귀 - 이 (耳)
그 다음, 귀 (耳). 귀는, 여러분 귀 한번 만져봐요. 다 뚫려 있으시죠? 귀라는 것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소리라는 것을 들으면서 생각을 하죠. 예를 들어 이선균이가 침대 선전을 하는데 목소리를 딱 깔고 말할 때나, 가수 성시경이가 ‘잘자’ 한마디 하면 여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그걸 다운받고 그러죠. 이게 뭐냐면 이 귀라는 것은 입하고 연결되면서 이 라인이 감정을 관장하는 라인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못생긴 남자인데 목소리가 좋으면 여자들이 넘어갑니다.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연설자들이에요. 데일리안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38%가 목소리라고 합니다. 저도 참 부모님한테 키는 작은데 목소리라도 이렇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영화도 성패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게 똑같았을 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음악입니다. 음악이 결국 성패를 좌우 합니다.
그래서 몸에 수행하는 방법이 있는데, 귀와 입을 동시에 하는 수행이 뭐냐? 바로 염불입니다. 여러분 기가 막혀 있는 사람이 있어요. 뭔 말을 해도 잘 안들어. 소통이 안되는 사람들이 있죠. 이건 이(耳)근이 막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플하면서 간단한 소리를 계속 말하면서 듣는 염불법이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입니다. 수행 중에 가장 빠른 수행이 소리 수행이에요. 음악을 통하거나 염불을 통하거나 또는 범패라던가 이런 것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소리를 잘못 응용을 하면 깡패가 “사랑해:” 라고 하는 한 마디에 여자들이 그 깡패한테 다 넘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 맨 겉 층을 싸고 있는 것이 바로 몸, 색의 구조입니다. 이 색의 세계를 뚫고, 의식의 세계, 더 뚫고 식의 세계, 더 나아가서 공의 세계로 들어가줘야 하는데, 중생은 이 몸으로서 재미를 삼고 이것을 향해서 가는 거에요. 그것이 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좋아는 모양과 색깔이 나타나는게 아니면 싫어해 그것이 분(忿), 진, 즉 성질 낸단 말이에요. 소리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되요? 부부 간에 뭣 때문에 자주 싸워? 안 좋은 소리가 들리는 순간, 결혼식 때 그렇게 쳐다보면서 웃었던 그 마음은 저 멀리 사라지더라.
(3) 코 - 비 (鼻)
그 다음은 이제 코 (鼻)입니다. 코는 냄새입니다. 외부의 냄새를 맡아서 좋다 싫다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독일에서 유태인들을 죽일 때, 총으로 쏘거나 하지 않고 이 코에다가 냄새를 집어 넣어 죽였습니다. 우리가 화재가 나도 불에 타서 죽기 전에 냄새 때문에 먼저 죽습니다. 코라는 것이 그대로 바로 뇌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향을 사르는 것도 향내를 맡음으로써 뇌가 아주 활성화가 되면서 아주 맑아지는 느낌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오히려 눈보다 뇌에 더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 코입니다. 코는 폐를 담당합니다. 코를 통해서 호흡을 통해서 천기가 들어오게 되죠. 그래서 냄새에 예민한 사람은 성격이 안 좋은 사람입니다. 개념이 많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은 성격이 좋은 사람입니다. 다릅니다. 그래서 코가 좋은 사람은 폐가 좋게 되고 장이 좋게 되고 피부가 좋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공부를 통해서 커지면 코가 반듯해집니다. 관상 중에 최고가 코입니다. 코가 반듯해지고 콧볼이 커집니다. 마음이 커지면 콧볼이 커져요. 그래서 코만 봐도 저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될 건 가를 대강 알아요. 콧볼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면 말년이 고생입니다. 기(귀)가 막히다 코가 막히다 라는 말이 있어요. 이건 외부와 단절된다는 말이에요. 마음이 외부와 단절되게 되면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되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우리의 언어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4) 입 - 설 (舌)
그 다음에 입(舌)이죠. 코는 천기를 들어 마시는데, 입은 지기(地氣)과 토기(土氣)를 받아들입니다. 이걸 잘못 받아들이면 몸이 안좋아집니다. 그래서 너무 지기가 발달한 사람, 입이 두툼해서 잘 먹는 사람들 있죠. 이 사람들은 주로 과식을 하게 됩니다. 수행을 함에 있어서 이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참 어리석은 것이 과식을 해놓고 그것을 소화하려고 소화제를 먹고, 소화시킨다고 피가 다 위로 가면 또 나른해져서 한숨 자야지. 그렇죠? 이것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오늘 교무님이 별소리를 다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거에요. 그렇죠? 그런데 공부가 성리 자리만 말한다고 공부가 아닙니다. 이것이 실생활적인 공부에요. 건강의 70%는 음식이에요. 입하나 조절 못하고 음식을 모르고 먹고 조절을 못해서 병이 나면 무슨 성불이고 무슨 견성이며 무슨 제중사업입니까? 못해요.
그리고 입안에는 뭐가 들어있어요? 이놈의 혀가 들어 있네. 이 혀도 심장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감정을 관장한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이 감정이 올라오면 키스를 하죠. 감정이 열리면 혀가 길어져. 그래서 부처님은 감정이 완전히 열려버렸기 때문에 부처님의 혀가 엄청 길다고 그래요. 혀가 짧은 사람은 감정이 닫혀있는 사람이야.
(5) 신 (身)
그 다음 몸(身). 신은 눈, 귀, 코, 입 이걸 모두 통괄한거죠. 그래서 오장의 기운이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요것이 계문에 보면 보통급, 특신급, 상전급이 있는데 보통급의 계문은 주로 몸에 대한 것입니다. 그럼 이 몸에 대한 것을 법위 등급과 연결해서 관계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4. 몸과 법위등급
(1) 범부- 보통급, 특신급, 법마상전급
보통급을 뭐라고 표현하냐. 그냥 불문초입(佛門初入)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 문에 처음 들어왔다라는 거죠. 그 다음에 두 번째가 특신급인데, 심신귀의(心身歸依)라고 합니다. 특신급이 되면 몸과 마음이 돌아가서 의지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스승이나 진리나 법을 만나고 보면 이제 내가 의지할 곳이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특신급이거든요. 아까 향산님이 정산종사님을 만나셨을 때처럼. 심신귀의에요. 타력에 대해서 부처님이나 법이나 진리 회상에 대해서 귀의하자는 것은 노예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심신을 대자유로 쓸려면 먼저 타력에 귀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해요.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타력에 귀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인 법마상전급은 심신교전(心身交戰)이라고 합니다. 귀의는 했는데, 마음은 잘 할라고 하는데 아직 습관과 업력이 남아 있죠. 귀가 칭찬해주면 좋고 눈은 좋고 이쁜거 찾고, 몸은 부드러운거 찾고. 계속 표층 의식에 길들여져 있어요. 그럼 이것이 신기하게도 무형 같지만 축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한다는 것은, 안이비설신 육근에 축적된 것을 다 밖으로 빼내야 합니다. 안에서 녹이는 방법도 있는데 빼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줄게요. 어떤 사람이 굉장히 상처를 입었어요. 누구한테 억울함을 당하고 한이 되었어요. 그럼 어떻게 되요? 그 사람은 다른 것을 포장에서 일생을 한을 뿜어 냅니다. 막 어떤 대상에 자기가 약점을 잡은 대상들에 막 쏟아냅니다. 안에서 쏟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쏟아낼 때 도(道)로써 쏟아내느냐, 아니면 자기 한만 뿜어내느냐. 요새 과학이 발달하다 보니 유럽 같은 데서는 한이 많은 사람들은 베개 같은 것을 놓고 망치 같은 줘요. 그걸 주고 아버지한테 상처받은 딸이라던가 남편한테 상처받은 부인이라던가 자식한테 상처받은 엄마들이 망치로 막 때리게 합니다. 그래서 안에 쌓인 것을 밖으로 쏟아져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법마상전급 때 심신이 엄청나게 서로 싸웁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구나 마음은 복 받고 싶고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몸은 ‘그러지마 이게 편하잖아, 아침에 일어나지마 귀찮잖아, 너 나이 먹었잖아, 어제 늦게 잤잖아, 감기 기운 있네, 일어나지마’ 합니다. 이렇게 계속 안에서 싸우는 겁니다. 몸으로 실천한다는 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몸과 마음의 간격이 정말 멀라면 먼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간격이 가까울수록 도가 높아지는 거에요. 하다못해 나이만 먹어도 운동하면 매번 다칩니다. 마음은 옛날 청춘이고 마음은 노소가 없잖아요. 그래서 달리고 싶은데 몸은 달려지나. 그러니 넘어지고 다치고 인대 나가고 기브스하고 그러죠. 내 마음 내 몸인데도 내 마음이 내 몸을 마음대로 못해. 그 축적되어왔던 업력과 습관과 그런 것이 그렇다. 그래서 법마상전급 때에 이 심신교전을 정말 잘하면 진짜 법력이 그때 쌓여요. 왜나면 심신교전 할 때 법이 들어가고 타력이 들어가고 서원이 들어가고 신심이 들어간 사람은 상처를 입은 것이 전부 다 오히려 보약이 됩니다. 경계를 겪은 것이 전부 다 교화의 방편으로 법문이 됩니다.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 법문을 보면 어찌 그리 얼마나 중생들의 마음을 아시는지. 그건 무슨 의미에요? 심신교전할 때 법으로 승화시켜 냈다는 의미에요. 중생들은 심신 교전할 때 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쌓아놓고 상처가 되고 아파가지고 그걸 막 불을 쏘아 내죠. 대상을 보면 막 과실을 말하고, 한을 품고 비판을 하고 대통령 욕하고 정치인들 욕하고. 자기 안의 한을 법으로 풀어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풀어내는 거에요. 그래서 야당을 하는 사람들도 보면 상당부분 한이 많아요. 자기가 품은 한을 법으로 승화시키지 못해서 법이라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막 뿜어냅니다. 많아요.
(2) 성위 - 항마위, 출가위, 여래위
이때 이 성리공부를 해가지고, 이때 깊이 있게 정말 서원으로 녹여내고 자타를 잘 병진해서 하면 범부를 넘어서 성위로 올라가요. 달라요. 그래서 거기부터는 ‘급’이 아니라 ‘위’라고 하죠. 항마위가 되요. 항마위가 되면 심신을 조복 (心身調伏)받았다. 즉 마음이 몸을 이겼다 라는 말이에요. 계속 훈련을 통해서 반복을 하다 보면 아까 표층의식의 그것들이 다 녹아나고 다 빠져나옵니다. 그러니 우리 향산님처럼 기운이 향기롭게 바뀐다 이 말이에요. 얼굴이 바뀌어요. 아까 코볼도 커진다니까. 눈도 커져요. 마음이 열리고 업력이 녹아나면 코볼도 커지고 눈도 커집니다. 기운이 맑아지게 되어있어요. 그걸로만 다 판단하면 안되지만. 햇빛에 일한 도인은 시커멓지. 근데 기운은 다르다 이 말이에요. 색깔과 기운은 좀 달라요.
그래서 마음이 이제 몸한테 지다가 싸우다가 이겨먹는 것이 항마위입니다. 이게 다른 말로 하면 갈수록 행복해지는 거에요. 왜냐하면 범부일 때는 기분 좋을 때는 행복한데 어쩔 때는 자기가 너무 미워. 그런데 항마위 넘어가면서는 자기가 이뻐지기 시작해요. 엄청 이뻐. 아 되네 되는구나 맞구나. 범부까지는 재미가 있다가도 아 안되겠구나 이래요. 그런데 범부나 성위에 가장 바탕이 되는게 서원하고 신심하고 정성이에요. 서원하고 신심이 어떤 경계가 와도 정성으로 쭉 가다보면 이게 유무자리로 변화가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사람들이 정성 하고 싶지. 그런데 신이 약하거나 원이 약하면 중간에 딱 경계가 오잖아요. 그럼 수행을 탁 발로 차버려. 경계가 오면. 만약 정성이 안 끊기고 그랬으면 지금 이 법당에 아마 만 명도 더 왔을 거에요. 아주 그냥 엄청나게 크게 다시 지었을 거야 다시. 근데 다 어디 가버렸네.
범부들은 마음이 어때요? 불보살들의 마음은 도장 같은 마음이에요 (心印). 흔들림이 없는게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그 대체를 잡고 끝까지 가는 거에요. 그래서 불보살들의 마음은 어떤 경계가 와도 쭉 가요. 그래서 심인이라고 해요. 그런데 범부들은 뭐라고 해요? 범부들의 마음은 조변석개요 작심삼일이에요. 경계만 오면 핑계 대고 합리화하고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나 항마위가 딱 넘어가는 순간 그 사람은 심인자리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범부들은 뭐냐면 심인이라고 하지 않고 본성 (本性)이라고 그래. 성품은 부처님이어서 좌선하다가 이렇게 좋은게 있네. 복 한번 짓고 나서 아 이렇게 좋구나. 염불하고 나면 편안하고 좋네. 이렇게 본성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맛 뵈기로 한번씩 보여줘요. 그런데 경계를 당하면 팍 무너져요. 그런데 항마위부터는 심인이에요. 아무리 경계가 와도 끄떡없어요. 약간 휘청할 수는 있어요. 어떻게 휘청하냐. 엊그제 제가 종교인 모임을 했는데 박기호 신부님이 그렇게 표현하신걸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살다 보면 세상이 평상심 기차 레일 가듯이 가지 않아. 산을 올라타듯이 굴곡이 있는 거죠. 그분이 걸음으로 비유를 해주더라고요. 자 걸음 걸으면 어떻게 걸으세요? 차 타는 거 이외에는 기우뚱기우뚱 걸어가게 되죠. 왼쪽으로 치우쳤다 오른쪽으로 치우쳤다. 이건 뭐에요? 수많은 경계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결과는 뭐에요? 쭉 앞으로 가는 거지요. 사람이 어떻게 감정이 없고 경계가 없고 왜 흔들림이 없겠어요? 그렇지만 쭉 가는 거지. 그래서 쭉 그걸 놓지 않은 사람들이 조복을 받아서 항마위가 되는 것이다. 별거 아니에요.
그 다음에 출가위는 뭐에요. 심신출가(心身出家)라 그랬어요. 그건 국을 벗어나 버렸다는 거에요. 항마위를 조금 잘못하다 보면 대접받는 재미, 수행하는 재미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런데 국이 툭 터지는 거에요. 지금 여기 항마위에 이번에 올라가는 분도 계시고 이미 올라가신 분도 계시고 한데, 국을 트셔야 되요. 그 다음 공부는. 국을 트지 않으면 갇혀요. 큰 덕이라는 것은 국을 넘어서, 개인주의나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고 그것을 덕이라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여래위는 심신자유(心身自由)라고 합니다. 대종사님 아들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울지도 않고 두 시간 뒤에 차분하게 설법해. 그런데 도산 이동완 선생님이나 팔산님 돌아가시면 펑펑 울어. 심신이 자유야. 제자가 말을 안 들으면 엄청 혼내놓고 또 다른 사람 들어오니까 안색을 바꾸시고 미소 짓고 있잖아. 심신이 자유야. 여러분 그렇게 되세요?
5. 맺음말
그래서 결국은 몸과 마음이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결국은 마음 공부해서 몸으로 실천하자. 그래서 원불교는 무슨 종교? 실천종교다. 제일 어려운 것이지. 과거 정치인들 보세요. 이번에 보니까 아따 실천 잘하데. 거짓말로 실천 잘하데. 한번도 안 만났는데 24번을 만나고.. 지금 이 시대가 어두운 시대에서 밝은 시대로 바뀌어 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실천하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정산종사님 말씀과 같이 이신선지(以身先之)다. 이신이라는 것은 ‘몸으로써’ 선지는 ‘먼저 나아가라’라는 의미에요.
지금 제가 향산님이 쓰신 글씨 두 개를 소개하고 마칠까 합니다. 따끈한 사진이에요. 오늘 아침에 찍어서 보내라고 했어요. 중앙중도훈련원에 가면 돌에 쓴 글씨가 두 개가 있어요. 식당 앞에 쓰여 있는 글입니다. 좌측에는 사사신선지 (事事身先之). 일마다 먼저 몸으로 나가라. 우측에 보면 불리공원정(不離空圓正). 향산님이 말씀하신 공부길을 잡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것입니다.불리(不離)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공부길을 왜 못 잡냐. 고양이도 쥐새끼 잡을 때는 열심히 삼학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이어지지가 않죠. 불리라는 것은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야. 항상 동정간 삼학공부가 불리된다. 공원정이 떠나지 않는 사람이 공부길을 잡은 사람이고, 다른 말로 하면 일상수행의 요법이 생활화 된 사람이고, 더 다른 말로 말하면 상시응용주의사항이 실제로 응용되고 있는 사람이고, 무시선이 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공부길을 잡은 사람입니다.
중도훈련원 입구에 있는 글입니다. 동정분리공원정(動靜不離空圓正). 분리공원정 앞에 동정간을 더 붙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할 때 되는데 정할 때 안되고, 어떤 사람은 정할 때 되는데 동할 때 안되죠. 동정간 분리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공부길을 잡은 사람이다. 대종사님은 동정간분리선이라고 하셨죠. 향산님께서 공원정이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거지요. 그래서 향산님께서 정산종사님 말씀을 받들 기회가 돼서 저희들에게도 소개가 됐지요. 그래서 몸으로 하려면, 실천을 하려면 핵심이 훈련입니다. 유념의 훈련입니다. 순간순간 유념이요 그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염불 나무아미타불하면 바로 진경에 들어가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하다 보면 안정이 돼서 진경에 들어가듯이, 유념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시훈련입니다. 그래야 몸으로 되는 것입니다. 누가 몸으로 안하고 싶어? 성자도 말했고 국가 사회에서 누가 단상에만 서면 실천하자고 합니다. 문제는 실천을 어떻게 할꺼냐 이겁니다. 그건 유념의 훈련이다. 삼학의 훈련이다. 그랬을 때 비로소 동정간의 실천으로 하나씩 하나씩 아까 법위 단계별로 몸과 마음의 싸움이 단계별로 되어진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참 고마워요~
향상 안이정 선진님 강연 준비 덕분에 이렇게 좋은 글도 읽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