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의 첫열매
군복입은 동지와 내가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 받았을 때, 의사가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하는 말에 동지는 싱글벙글 이었지만, 나는 눈물이 비오듯 흘려 내렸다. ‘얼마의 고행에서 얻은 씨앗인가……… ]
그 때부터는 시집 살이지만 눕고 싶을 때가 태반인데. 눈치를 챈 어머니는 “누군 애 안 놔 밨냐.” 하며 중얼거리시면 감히 누울 엄두도 못 내었다. 또 열 달이 차도록 배는 불러오는데 병원이 코 앞이다. “어머님 병원 가 봐야 하지않겠십니껴. 그래야 뭐가 어떤지 알지 않겠어예.” 하고 아뢰면,
“아 어련히 잘 될라구” 하시니까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경험 많은 어머님 믿고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딸리라면 억지스럽긴 해도 제발 나약한 나를 닮지 말고 강인한 할머니 닮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당월이 되었을 때, 마침 동지가 휴가 나온 정월 스무사흘 날 갑자기 배가 몹시 아핐다. 그렇다고 하면 하든일도 어머님은 “다 그냥두어라 ”할만도한데 또 못 들은척이다.
그 날이 할아버지 기일인데, 눈치를 채신 아버님은 “제사는 생략 한다” 고 하셨는데, 시숙이 오셨다. 명절 끝이라 종일 어머님과 화토를 치는데, 가시라는 말도 못하고 간신히 점심을 차려드렸다.
또 저녁 때도 갈 기미가 안 보여서 밥 하다가 진통이 오면 땔김인 솔가지 위에 앉아 있다가 멎으면 또 꿈적거려서 간신히 저녁차려드리고 설거지를 했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누우려고 하자, 어머니는 또 걸어야 쉽게 낳는다 해서 안방에 벽장문을 잡고 초 저녁부터 새벽이 오도록 근 열시간을 앉지도 못하고 걸어야 되는 줄 알고 어머니 말대로 서성거렸다..
세벽녁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누웠을 때, 어머니는 또 내 배 위에다 손을 얹고 배를 쓰다듬으며 “삼신 할머니 그저 봇물 터지듯이 툭 터져 나오게 해주십시오.” 하며 문지르는데, “어머니 손이 더 아피요. 아파 죽겠어요 손 치워주세요” 하고는 밤새 고역을 치르도 안 되자, 그때 의사가 와서 촉진제를 맞고 해결된 시간이 세벽 다섯시다.
할머니는 갓나온 핏덩어를 보고 “지지베가 입이 바소쿠리만 하네“ 하고 웃었다. 아이가 성년이되어서 성혼식을 마치고 피로연 할 때도, 친구들이 피로연장을 장식을 한 벽보판에 코가 큰 인보와 입이 큰 순우라고 붙여 놓았듯 입이 컷다..
아기가 태어나자 부모님과 다섯 고모가 서로들 뺏어가며 안고 업고 다녀서 젖을 줄 때와 잠잘 때 외에는 순우를 키웠든 시간은 별 기억에 없다.
동지가 아기를 들여다 보며 신기해서 웃자 할아버지가 ”예쁘냐“ 하자 아들은 ”코만 더 높았으면 미닌데” 하자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견한 듯 웃으며 ”네 눈에는 그렇게 예뻐“ 하실 때는 부모님과 동거동락하며 사랑을 주고 받으며 대화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때는 느끼지도 못했다.
저녁만 먹었다 하면 안방 한 복판에 아기를 뉘여 놓고 모두들 오빠의 아기라 더욱 예뻐고 신기해서 웃음 꽃이 끊이 질 않았고, 아이가 기어 갈 때는 때 고모들이 손뼉을 치면서 웃는 바람에 지붕이 들썩들썩 했다고 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자 여섯 살이된 막내 아가씨도 둘러보더니 슬그머니 엎드리더니 슬슬기어서서 오빠가 “아이구 우리 종인이도 잘 기네” 하자 또 한번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가 되어도 미련했던 나는 그런게 천국인 줄도 몰랐고, 좀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