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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마지막 붉은 꼬리 여우/혹은 살아남아야 한단다/이정순
“아가들아! 눈을 떠 보거라. 놀라운 것을 볼 수 있단다.”
새끼들이 태어나던 날, 지호네 할아버지 언덕에는 패랭이 꽃, 제비꽃, 보라색 엉겅퀴 꽃, 블루베리 하얀 꽃이 만발했어. 할아버지네 빨간 지붕에는 태양빛이 반사되어 눈부시었고, 벌과 나비는 꽃에서 달콤한 꿀을 빨고 있었지. 빨간 우체통에는 까치가 숲 속 식구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엽서가 들어있었어.
“애들아, 붉은 꼬리 여우 열 쌍둥이가 태어났어. 숲 속 식구가 늘었단다. 모두 축복해 주자.”
자작나무가지에서 새들이 아름다운 축복의 노래를 불러 주었지.
“고마워, 고마워!”
나는 갓 태어난 열 쌍둥이 새끼들의 콧등을 차례대로 핥아주었어. 내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엄마의 혀는 따뜻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웠어. 엄마는 내 코가 빨개지도록 핥아주었던 그 감미로운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내 새끼들도 나의 그 감미로운 느낌을 영원히 간직하길 바래. 그리고 나와 그는 열 쌍둥이를 위해서 사냥을 할 거야.
“여보, 수고했어요.”
그가 나를 핥아주었어. 행복했어.
내 새끼들은 나처럼 외롭지 않게 사랑으로 키울 거야. 아빠를 사냥꾼에게, 엄마를 늑대에게 잃고 늘 외로웠거든.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어.
“아, 눈부셔! 아름다운 세상이야.”
“그래, 아름다운 세상이란다. 아가야.”
“애들아,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게 아니란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늘 주위를 살펴야한단다. 내가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마.”
그는 내게도, 새끼들에게도 자상했어.
그는 늘 새끼들이 노는 것을 저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어. 새끼들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서. 그는 또 이런 말을 하더라.
‘세상을 살아가기란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어. 그 만큼 세상은 위험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 말에 나는 엄마가 죽던 날을 기억했어. 엄마는 나를 지키려다 늑대한테 당했어. 내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냥꾼 총에 맞았고.
‘아가야, 세상에서 너희 아빠가 제일 용감했단다.’
엄마는 내게 늘 말했어. 그 말은 내 아기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야.
“아가야, 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용감한 아빠란다.”
하지만 늑대와 인간 사냥꾼!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어. 그래서 처음엔 지호 할아버지도 경계했어. 엄마를 잃기 전, 엄마와 몇 번 할아버지 언덕에 와 본적이 있었어.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어.
‘애야,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어떻게 인간을 믿어요. 아빠가 인간에게 당했잖아요.’
엄마가 그렇게 말해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어. 엄마가 늑대한테 당하고, 갈 곳이라고는 여기 밖에 없었어. 그래서 할아버지 차고에 몰래 숨어들었어. 인간은 미웠지만, 이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 믿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금세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지.
“애미를 잃고 갈 곳이 없었구나. 그리 경계하더니. 이곳은 안전하니 편히 지내 거라.”
할아버지는 먹이를 굴 입구에 놓아두었어.
“자, 많이 먹어라. 얼른 자라서 너희 개체를 늘리려무나. 너희도 이 지구상에서 곧 멸종하게 생겼다더구나.”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 하지만 그 먹이를 나는 먹지 않았어. 아직 인간을 믿을 수 없었거든. 새들이 말했어.
“붉은 꼬리 여우야,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셔.”
엄마도 그리 말했기에 차츰 믿게 되었어. 그리고 그를 만나 우리는 마음씨 좋은 지호네 할아버지 차고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어. 새끼를 낳아 가장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이거든. 그리고 이곳에서 열 쌍둥이를 낳게 되었지.
어느 날 태양빛이 빛나는 오후였어. 그가 새끼들 훈련을 시키겠다고 하더라.
“오늘부터 너희들 훈련을 한다. 사냥하는 법과 적을 재빨리 피하는 법. 그리고 사냥한 먹이는 사이좋게 나누어 먹어야하는 법도를 가르쳐 주마. 그리고 또 하나, 바깥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우리는 적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하거든. 그리고 최고의 여우가 되는 거야.”
“네, 얼른 가르쳐 주세요. 토끼를 사냥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좋아라했어. 하지만 막내는 그러지 못했어.
“엄마, 나 힘들어 집에 있을래요.”
형제 여우들에 비해 막내 몸집은 유난히 작았어. 형제들은 허약한 막내를 놀리며 괴롭혔지.
“뭐야? 또 야? 넌 왜 맨날 그 모양이야?”
“세 째야, 동생에게 그러면 못써!”
“엄마는 막내만 감싸니 맨날 그 모양이잖아요? 엄마는 우리 엄마가 아니라 꼭 막내 엄마 같아요.”
세 째 눈에 눈물이 아롱졌어.
다섯째가 내게 딱 붙어 있는 막내 꼬리를 당겨 떼어내려고 했어.
“하지 마. 아프단 말이야.”
“애들아, 얼른 나오너라.”
먼저 굴 밖으로 나가 있던 그가 새끼들을 다정하게 불렀어. 새끼들은 아빠가 있을 때는 막내를 놀리지 않아. 그래서 그는 막내가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어. 나는 말하지 못했어. 그는 다른 아기들 보다 허약하게 태어난 막내를 끔찍이 사랑했거든.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언덕으로 올라갔어. 훈련하기 딱 좋은 곳이야. 그가 생쥐 한 마리를 산채로 잡아 왔더라.
“와, 맛있겠다.”
“이 녀석, 이것은 훈련용이야.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 잘 봐라.”
“제발 살려 주세요. 제겐 갓 태어난 아기가 있어요.”
생쥐 눈에는 눈물 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간절히 애원했어.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더라.
“여보, 저 생쥐를 살려 주세요. 죽이면 안 되어요.”
“당신 마음이 그리 약해 열 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요. 하하! 참 내.”
“엄마, 훈련 끝나면 우리가 먹을 거예요.”
나는 슬펐어. 여우들의 습성을 나무랄 수도 없었거든.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있어. 세상이란 강한 자만 살아남는 법이야. 자, 이 생쥐를 놓아 줄 테니까 잡아오느라. 당신은 아이들이 서야할 위치선을 그려주고.”
나는 생쥐를 바라보다 눈이 딱 마주쳤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라. 나는 생쥐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어.
“자, 도망 가. 잡히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들의 밥이 되는 거다!”
그가 생쥐를 놓아 주었어. 아이들은 생쥐를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
“찍, 찌익 찍!”
생쥐는 안간 힘을 다해 달렸어. 나는 속으로 응원했어. 도망쳐 얼른!
“어딜 가려고?”
생쥐는 새끼들의 포위망을 도저히 뚫고 도망가지 못했어. 새끼들은 생쥐를 두고 장난을 치고 있었거든.
“히히, 자자, 도망가. 저쪽이야. 저쪽!”
“헉헉!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아빠, 생쥐를 살려주세요. 불쌍해요.”
착한 막내가 말했어.
“야, 너는 굶어. 우리는 굶을 수가 없거든. 이미 배가 고프단 말이야.”
생쥐가 내 발밑으로 달려왔어. 나는 잡는 척하며 한쪽 발을 살짝 들었어.
‘얼른 도망가!’
작은 소리로 말했어. 생쥐는 공포에 질려 나를 한번 쳐다보고 내 발 사이로 빠져나갔어.
“에잇! 놓쳤잖아요.”
새끼들이 야단이었어. 그가 나를 나무랐어.
“당신 어쩌려고? 당신은 아이들 젖 먹이느라 뼈만 남았는데. 이번엔 당신한테 먼저주려고 했는데….”
그 말에 울컥했어.
“고마워요.”
나는 속삭이듯이 말했어.
“생존 경쟁에서 지면 곧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그는 새끼들한테 말하고 오늘 훈련을 끝냈어.
“에잇 생쥐를 놓쳐 아까워요. 생쥐 더 없어요? 아빠!”
새끼들이 아쉬운 듯 말했어.
햇빛이 쨍 한 날, 그가 사냥 나갈 준비를 하더라.
“당신은 아기들 옆에 있어요. 내가 큰 물고기를 잡아오리다.”
그는 나와 새끼들을 안아 주며 말했어.
“애들아, 아빠가 사냥 가서 큰 놈으로 잡아오마.”
“우리도 따라 갈래요.”
“너희들은 아직 사냥하기엔 어려. 엄마랑 사냥놀이를 하고 놀으렴.”
“우린 충분히 사냥할 수 있어요. 이 만큼 컸다고요.”
첫째가 기지개를 쭈욱 켜고 허리를 늘리며 말했어.
“충분히 훈련도 받았구요.”
“우린 가볍게 바람처럼 소리 내지 않고 달릴 수도 있다고요.”
새끼들이 함께 가겠다고 떼를 썼어.
“하하하!”
그는 하늘이 쩌렁쩌렁한 웃음으로 행복한 마음을 대신 표현했어. 나도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새끼들을 달랬어.
“그래, 내 아기들은 용감해. 바람처럼 소리 내지 않고 빨리 달릴 수도 있어. 하지만 훈련이 조금 더 필요하단다.”
새끼들은 시무룩했어. 나는 새끼들의 코를 비벼주고, 핥고, 간지럼을 피우며 장난을 쳐 주었어.
“엄마 간지러워!”
새끼들은 금세 웃고 장난치며 행복해 했어. 그는 새끼들마다 코를 비벼주고 행복한 마음으로 사냥을 떠났어.
나는 새끼들을 데리고 굴 밖으로 나갔지. 아름다운 경치를 더 많이 보여 주고 싶었거든. 바깥은 한낮의 반짝이는 햇살에 너무나 눈이 부셨어.
“애들아, 코를 하늘 높이 들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
나도 코를 최대한 높이 들고 큰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어. 신선한 공기가 내 몸속으로 가득 들어왔어. 새끼들은 빠르게 달리기, 구르기, 누가 높이 뛰나 내기도 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뛰고 구르기를 반복했어. 지난 태풍에 넘어진 통나무가지에 올라가서 시이소도 타고 놀았어.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에 귀를 기우리기도 했어.
“애들아, 모든 소리와 냄새를 기억해 두렴. 나무 잎 부대끼는 소리, 새소리, 꽃이 피는 소리까지도. 그리고 위험한 소리는 더 잘 기억해둬야 한단다.”
“위험이 뭐에요?”
“엄마, 위험한 소리는 어떤 소리에요?”
새끼들은 모든 게 궁금했어.
“하나 더, 적이 쫓아오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달리면 절대 안 돼. 바람을 등지고 달려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해.”
“왜요? 엄마!”
“적이 따라 오지 못하게 나의 냄새를 없애야하거든. 바람을 안고 달리면 내 냄새가 뒤에 오는 적에게 나를 잡으라는 뜻이 돼. 대신 바람을 등지고 달리면 나의 냄새를 지우게 되지.”
“아, 알겠어요.”
모두 대답했지만, 막내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어. 늦게 태어나 느리고 허약한 막내가 늘 걱정이었어.
그날따라 꽃이 피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어. 한국에서 왔다던 할아버지 손자마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거든. 꼭 무슨 불길한 징조가 일어날 것처럼 소름끼칠 정도로 고요했어. 새끼들이 떠드는 소리 말고는 아무소리도. 하지만, 새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후의 반짝이는 햇살 아래서 마음껏 뛰놀았지. 그들은 지칠 줄을 몰랐어. 이 아름다운 세상은 내 가족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어. 그래서 나는 금세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었어. 새끼들이 숲 속에서 노는 동안 그가 하는 것처럼 언덕에서 지켜보았어. 새끼들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서. 나는 새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그때 까마귀 아줌마가 나뭇가지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며 소리쳤어.
“까악! 까악! 늑대들이 산 너머에 있어. 주의해야 해!”
“알려줘서 고마워요. 까마귀 아줌마!”
“애들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싫어! 더 놀고 싶어요.”
아기들은 더 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어.
“그래, 조금 만 더 노는 거야.”
“네!”
아이들은 다시 신나게 뛰놀았어. 그때 내가 말렸어야하는 건데. 나는 주변을 살피며 아기들을 지키는 게 최선인줄 알았거든.
첫째가 숲 속에서 커다란 깃털 하나를 주워 왔어.
“엄마, 이것 봐! 아름답지?”
“오! 위험 해! 그건 며칠 전 늑대가 할아버지 닭장을 습격해서 닭을 물고 갈 때 빠진 닭털이야.”
“그것 나도 갖고 싶어. 나 줘 응?”
“싫어, 내가 찾았단 말이야.”
까마귀 아줌마가 나뭇가지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며 다시 소리쳤어.
“얼른 숨어! 늑대가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단 말이야.”
“엄마, 늑대는 무서운 거야?”
“그래. 아빠 몸집보다 몇 배는 더 클 걸.”
“우아! 크다. 날카로운 이빨도 있어?”
“물론이지.”
늑대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호기심이 이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꼬치꼬치 캐물었어.
“나 늑대 보고 싶어.”
“아서라. 큰일 나.”
“그래도 우리 아빠는 늑대를 이길 수 있지?”
“물론이지….”
하지만 내 대답에는 확신이 없었어. 늑대한테 당한 엄마 생각이 났거든. 엄마는 이세상의 모든 위험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지켜주었어.
“까까까 깍! 까까 악, 깍! 빠, 빨리 숨어! 늑대가 가까이 오고 있어.”
까마귀 아줌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어.
“어서 굴을 향해 뛰어!”
“엄마, 걱정 마세요. 우리는 늑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요. 바람처럼 요.”
“아서라, 지금은 아니야! 빨리 뛰어!”
다급한 소리로 외치자 새끼들은 긴 꼬리를 치켜들고 숲속을 가로질러 뛰었어.
“까악까악! 더 빨리 더 빨리!”
까마귀 아줌마가 새끼들 머리 위를 맴돌며 소리쳤어. 나는 새끼들이 무사히 굴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맨 뒤에서 달렸어. 하지만 막내가 자꾸만 뒤쳐지는 거야.
“막내야 빨리 뛰어. 너 때문에 우리까지 위험하게 생겼어.”
첫째가 막내를 재촉했어.
“헉헉! 낑낑, 엄마 힘들어. 다리아파.”
나는 막내의 목덜미를 물고 뛰었어.
“크아앙!”
커다란 늑대가 내 뒤를 바짝 붙었어. 순식간에 늑대가 내 뒷다리를 물었어.
“캥!”
순간적으로 입에 물고 있던 막내를 놓치고 말았어. 그놈은 번개같이 막내를 물고 달아났어. 나는 그 뒤를 쫓으며 소리쳤어.
“내 새끼를 내 놓아!”
“엄마, 위험해요!”
새끼들이 소리쳤어.
“빨리 굴속으로 피해!”
나는 소리치고는 늑대 뒤를 쫓았어.
“어…엄마!”
꺼져가는 막내의 가느다란 신음뿐이었어.
“막내야….”
이미 막내의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절망하여 더 뛸 수가 없더라. 내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풀 위에 시뻘건 발자국이 찍혔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었어.
“내 아가야! 막내야!”
그렇게 나는 엄마와 막내를 늑대한테 잃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굴로 돌아왔어. 새끼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어.
“막내는요?”
“애들아, 그 큰 짐승이 늑대란다. 산을 울리는 그 큰소리가 위험한 소리고, 똑똑히 기억해… 둬라.”
나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어.
“너희들이 더 자라면 늑대를 따돌릴 수 있게 빨리 달릴 수 있단다. 까마귀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더 큰일 날 뻔 했어.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해.”
“어디를요?”
“모든 곳을….”
다시 숲 속은 고요해졌어. 반쯤 잘려나간 다리의 피가 멈추지 않았어. 다리가 욱신거리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어.
“으으윽!”
나는 이를 악물었어. 그때야 그가 생각나더라. 막내를 잃은 줄 알면 얼마나 슬퍼할까?
‘그나저나 왜 여태 안 오지?’
지난 번 그가 한 말이 생각났어,
‘요즈음 물고기 한 마리 잡기도 힘들어요. 캐나다의 호수까지 오염이 되다니. 언덕 너머 그리 많던 토끼들도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래서 늑대들이 할아버지 닭장을 습격하기도 한다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거든.’
그가 한숨을 쉬며 말한 적이 있었어. 걱정되어 밖을 살펴보았어. 달빛은 나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아직 사냥을 못했을까? 벌써 깜깜해 지네. 그 녀석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꼬리털이 꼿꼿이 섰어. 엄마가 늑대한테 당할 때 나는 너무 어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막내가 잡혀 갈 때도.
이젠 막내를 더 볼 수 없겠지. 달빛이 흐릿하게 보였어.
“으으으 우우우!”
달빛을 보고 낮게 울부짖었어. 나는 늘 외로웠어. 늘 엄마가 그리웠고. 이제 겨우 외로움에서 벗어났는데. 막내를 잃다니…. 그래서 새끼가 딸린 어미동물은 사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그에게도 말했어.
“여보, 절대 아기가 있는 어미는 잡지 말아요.”
그때의 악몽을 꾸면 그가 말했어.
‘내가 상처받은 당신의 마음을 치유해 주리다.’
잠시 행복한 감정에 젖어 있는데 하늘이 갈라지는 듯 그의 비명소리가 언덕 쪽에서 들렸어.
“깨, 깨갱 깽!”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어.
나뭇잎 위에 그가 끌려간 핏자국이 달빛에 선명하게 보였어. 몸이 부르르 떨렸어.
그놈한테 엄마를 잃고, 나의 사랑스런 막내를 잃고, 그를 잃고, 그리고 내 한쪽 다리마져 잃었어. 나는 슬퍼 할 겨를도 없이 내 남은 새끼들을 지켜야만 했어. 날마다 나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더해갔어.
그가 떠나고 우리는 굶는 날이 더 많았어. 나는 사냥을 나가서도 매번 허탕만 치고 돌아왔어.
“수컷이 늑대한테 당해 사냥을 할 녀석이 없으니 어쩌나.”
할아버지가 생선 머리를 굴 입구에 놓아두며 말했어.
“할아버지, 한국에는 붉은 꼬리 여우가 멸종 되었는데 캐나다는 아직 있네요. 애들 보호종 아니에요?”
“그래서 보호해야하는데, 야생을 가둬 키울 수도 없고.”
새끼들은 할아버지가 준 생선머리 하나를 두고 ‘크르렁!’거리며 서로 먹으려고 싸웠어. 배가 고프니 아이들이 사나워질 수밖에.
“캭! 내가 먹을 거야!”
첫째 녀석이 포악해졌어. 힘으로 동생들은 제압하고 먹이를 독차지 했어.
“싸우지 마라.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어야지.”
한숨을 쉬며 말했어. 새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렸어.
“나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나눠 먹어요. 콩 한쪽을 나눠 먹으라고요? 난 그 짓 못해요. 나 이제 집을 나가 독립해야겠어요.”
“큰애야, 아직 안 돼! 바깥은 위험 해! 늑대한테 당한 막내와 아빠를 보고도 모르겠니?”
“여기서 굶어 죽는 것 보다 나아요. 이 굴 속은 희망이 없단 말이에요. 차라리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위험도 부딪치며 이겨내야죠. 애들아, 너희들도 꿈이라는 것을 가져 봐! 함께 떠날 녀석들은 날 따라와.”
“나도 갈래! 우리는 아빠한테 충분히 훈련을 받았어요.”
“나도!”
“나도!”
“난 무서워. 안 갈래.”
막내가 내 옆에 꼭 붙으며 말했어.
“잘 생각했어. 네가 따라오면 걸리적거린단 말이야.”
결국 녀석들은 모두 떠나고 말았어. 이제 다 자랐으니 떠날 때도 되긴 했지만, 너무 빨리 찾아 온 것 같더라. 나는 오래도록 참아왔던 울음을 내뱉었어.
“우우우우!”
하늘에 별이 된 그에게 닿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꼭 살아남아야 한다. 지혜로운 큰 여우로 자라 거라.”
녀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숲 속으로 사라졌어. 나는 소리쳤어.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생존 경쟁에서 지면 곧 죽음뿐이라는 걸 명심해라. 꼭 살아 남아야한다.”
살아남기 위해 떠나는 새끼들을 바라보았어. 할아버지와 지호도 우릴 지켜보고 있었어.
나는 혼자 남은 막내를 혹독하게 훈련시켰어. 차츰 그를 닮아갔어.
의젓하게 자란 막내도 떠나보낼 때가 되었어.
“막내야, 떠나거라.”
“전 엄마 곁에서 엄마를 지키고 싶어요.”
“아니다. 너도 독립해서 가정을 꾸리 거라. 그리고 식구를 많이 거느리고 엄마 보려 오거라.”
“허허! 지호야! 허약하던 저 막내가 의젓하게 자라 독립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자연으로 나가 잘 적응해야 할 텐데.”
“맞아요. 할아버지. 잘 적응 할지 모르겠어요.”
“한국에는 붉은 꼬리 여우가 멸종 되었다고 했지? 캐나다 여우도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잘 보호 되어 종이 많이 번식되어야할 텐데. 저 붉은 꼬리 여우들이 이 지구상에 마지막 여우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54.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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