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The Economist 2014-5-24 (번역) 크메르의 세계
[분석] 2014년 태국 쿠테타와 왕위계승, 그리고 왕세자의 '904부대'
The path to the throne
군부의 갑작스런 움직임은 그저 단기간의 안정 정도만 가져올 것
태국 군부가 5월20일 계엄령 선포로 시작했던 일이 본지가 보도한 바대로 5월22일 쿠테타 선언을 통해 완성됐다. 쁘라윳 짠오차(Prayuth Chan-ocha) 육군사령관은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군대가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면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개혁을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쁘라윳 장군의 공식적인 쿠테타 선언이 있기 전부터도, 군 당국은 10여곳의 TV 방송국들과 수천곳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에 대해 방송 중단을 시키고, 여타 매체들에 대해서는 비판적 보도를 자제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가령 언론인들에게는 공식적인 지위에 있지 않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쁘라윳 장군은 자신의 의중에 가진 마지막 일이 쿠테타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방콕(Bangkok)의 거리엔 군 병력의 배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쁘라윳 사령관은 5월21일 여러 달 동안 태국 정치를 마비시키고 있던 교착 정국에서 대치 중이던 모든 정파를 불러 회담을 가졌다. 거의 모든 정파의 대표자들이 '육군클럽'(Army Club)에 모였다. 집권 '프어타이 당'(Pheu Thai party) 및 그들의 풀뿌리 대중조진인 '레드셔츠 운동'(UDD), 야당이지만 기득권 진영인 '민주당', 기득권 진영의 반정부 시위대(PDRC) 지도자인 수텝 트억수반(Suthep Thaugsuban) 등이다. 수텝은 작년 11월부터 정부 타도의 기치를 내걸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 협상의 목표는 선거 민주주의를 향한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날(5.22 목)도 다시 '육군클럽'에 모이기로 했다. 비록 군부가 자신들의 의중을 감추고 있긴 했지만, 정치적 교착상태가 그렇게 빨리 도래하리라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둘쨋날 군부는 회의에 참석한 모든 정파의 지도자들을 구금했다(참조: 태국 군부 "쿠테타" 공식 선언).
물론, 이 자리의 불참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였다. 두바이에 망명 중인 탁신은 지난 2001년 이후 치뤄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 여러 정당들을 창당한 인물이며, 현재의 진권 '프어타이 당' 역시 그 정당들 중 하나이다. 태국의 기득권 진영이 정계에서 지워버리길 바라는 것이 바로 탁신의 영향력이다.
이번 쿠테타는 신속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태국은 금융시장에 두려움을 안겨줄 것이고, 해외 자본의 유입도 끊어질 것이다. 또한 이번 쿠테타는 폭력사태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레드셔츠 운동'은 만일 쿠테타가 발생하면 봉기할 것이라는 위협을 오랫 동안 해온 바 있다. 반정부 시위 지도자 수텝은 과도총리를 [선거없이] 임명하는 안을 주장해왔고, 아마도 군부는 수텝의 계획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레드셔츠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작년(2013) 11월 이후 정치적 갈등으로 사망한 사람은 28명에 이르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군부는 이제 친정부 및 반정부 시위대의 집회장을 정리할 것이다. 하지만 가두 차원의 실질적 민간 정치기구인 수텝 트억수반 세력과 군부, 그리고 사법부는 노쇠한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1927년생) 국왕을 둘러싸고 있고, 수텝은 지지자들에게 탁신 및 그 일가를 태국 정치에서 뿌리뽑아 버리겠다고 선언해왔다.
태국이 정치위기 및 경제정책의 방향을 상실함으로써 지불해야 할 댓가는 빠른 속도로 명확해지고 있다. 이번 쿠테타 전날 밤, 정부의 기획청은 태국 경제가 퇴보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면에서 동남아시아의 모범사례로 종종 거론되곤 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지에 관해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번 쿠테타가 정상적인 민주정치가 재개될 수 있는 정치적 안정으로 끝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엘리트 계층이 이 나라를 계속해서 관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틀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어느쪽으로 끝나든, 그것은 쁘라윳 장군에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태국의 진정한 의사결정권은 '추밀원'(Privy Council: 국왕자문기구)과 왕실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실패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제 푸미폰 국왕의 지난 64년 동안의 재위기간이 끝날 날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쿠테타는 사태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국민들의 숭상을 받았고,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년생) 왕세자는 그렇지 못하다.
올해 61세인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기묘한 인물처럼 보인다. 세간의 화제가 됐던 동영상에는 그의 3번째 부인인 시랏(Srirasmi) 왕자비가 거의 나신으로 등장하며, 왕세자의 애완견 푸들인 '푸푸'(Foo Foo)를 위한 생일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담겨있다. 왕세자의 푸들 '푸푸'는 심지어 공군 대장 계급까지 갖고 있다. 이제 푸미폰 국왕의 재위기는 황혼을 드리우고 있고, 태국의 양분화된 정치에서 왕위계승이 문제가 되고 있다. 왕위계승 문제는 태국 사회와 군부 및 왕실 사이를 분열시킬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땅거미는 가혹한 <왕실모독 처벌법>(lèse-majesté laws) 때문에 침묵에 묻히고 만다. 하지만 왕실 보위의 군사력인 태국 군부는 최근 불쾌한 뉴스를 접해야만 했다. 푸미폰 국왕이 작년 11월 말에 서명한 국왕령을 통해, 힘 있는 기관인 '국가안보위원회'(NSC)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 대해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거부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NSC 위원에는 [국방총사령관 및 육해공 3군 사령관을 포함하는] 군 수뇌부 및 NSC 사무총장이 포함된다. 이제 왕세자가 NSC 위원들의 사실상의 상관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일은 기존에 예정된 왕위계승 절차를 전복시키는 일을 더욱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 지도자 수텝의 후원자들은 여타 여러 태국인들처럼 [푸미폰 국왕의 차녀인] 마하 짜끄리 시린톤(Maha Chakri Sirindhorn: 1955년생)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는 기적이 일어나길 오랜 기간 기원해왔다. 시린톤 공주는 왕실의 자선사업 등에 관여하면서 성자 같은 이미지를 누려왔다. 이번 주 계엄령 직후에 거리에 배치된 군 병력 중 일부는 보라색 리본을 착용하기도 했다. 보라색은 바로 시린톤 공주의 상징색이다.
한편, 금년 4월4일에는 또 다른 국왕령이 반포됐다. 이 포고령은 와치라롱꼰 왕세자 개인의 특수부대인 일명 '라차왈롭'(Ratchawallop, ราชวัลลภ)이라고도 불리는 '왕실근위대 제904부대'(Royal Guard 904 Corps)의 능력을 대폭 확장시키는 내용을 갖고 있다. '제904부대'는 1978년부터 왕세자의 지휘 하에 있는 부대로서, 보병연대급 규모의 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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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왕실근위대 제904군단'의 활동 모습을 소개한 태국 TV 왕실전문 뉴스의 보도화면. 이 부대는 '특수전 부대'와 '의장대'의 성격을 합쳐놓은 듯한 특징을 갖고 있다. [크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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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iriwan_TRnews) 금년 2월4일 반정부 시위가 격화될 무렵 정부청사 보호를 위해 파견된 공군 소속의 병력. 앤드류 맥그레거 마샬(Andrew MacGregor Marshall)은 이 병력이 왕세자의 명령으로 잉락 친나왓 총리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이 만일 왕세자 휘하의 병력이라면, '제904부대'역시 '보병 제21연대'(=왕후근위대)와 마찬가지로, 편제상으론 연대급 부대이지만 각종 기능이 확장된 여단급 부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크세] |
새로운 포고령은 '제904부대'로 하여금 왕세자가 선택한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경호할 수 있게 했으며, 왕세자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임무라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사병을 지휘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다. 와치라웃(Vajiravudh, 라마 6세) 국왕도 1910년 즉위를 하는 과정에서 '야생 호랑이 부대'(Wild Tiger Corps)를 창설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장교들이 '1912년 궁내 반란'을 시도했었다.
왕세자의 부대원들은 여타 정규군 군인들보다 더 나은 보수를 받고 있다. 또한 탁신 친나왓 가문의 심장부인 북부지방 및 북동부지방 출신 병사들의 비율도 점차로 늘려왔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왕세자는 자신이 즉위하기 위해 탁신이 지닌 대중적 적법성에 다가갈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탁신 역시 재차 총리가 되기 위해 왕세자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탁신은 과거 왕세자의 도박 빚도 갚아줬다고 알려져 있다.
와치라롱꼰 왕세자와 탁신 전 총리가 공조를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금년 초, 왕세자의 부대는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을 경호하기도 했었다. 잉락 친나왓은 탁신의 여동생이며 당시 총리를 맡고 있었다. [반정부 시위대의 공세가 강화되는데도] 군대가 잉락 총리의 경호제공을 서서히 늦추자, 왕세자가 자신의 병력을 파견했던 것이다.
태국 왕실은 전통적인 기득권 진영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고, 이후 잉락을 실각시켰다.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권인 선거로 선출된 정부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오는 일을 지금 하는 것이 푸미폰 국왕의 사후에 시도하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쿠테타는 분명히 그것을 노리고 있다. 태국에 부과되는 리스크는 오직 증가될 뿐이다.
* 태국의 최근 정치에 관해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얻고자 한다면 앤드류 맥그레거 마샬(Andrew MacGregor Marshall)이 2013년 10월 31일에 발표한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2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3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4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5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6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7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8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9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0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1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2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3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완결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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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깔리육" 논문 이전까지 <이코노미스트> 지는 언제나 태국 왕실에 관해 최고의 정보를 보도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판금조치도 당하고 그랬죠,..
이번 기사 역시 왕실모독 처벌법에 저촉되는 내용인데요..
그간,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잘 설명해주어
정보 가치가 높아 보입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완역했습니다.
태국의 격동기 중앙에 서있는 저로써, 다양하고 깊이있는 정보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꾸벅~
감사합니다,,,
이런글을 이곳말고 어디서 읽어볼수있을까요,~
하여간 왕세자는
현재 영국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