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자연환경
스위스의 국토는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쥐라 산맥, 스위스 고원 지역, 알프스 산맥 지 역으로 나뉜다. 쥐라 산맥은 알프스 산맥에 비해 해발고도가 낮은 습곡 산지이다. 쥐라 산맥 지역에서는 농업과 임업이 발달했다. 스위스 고원은 취리히 등 대도시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다. 알프스 산맥은 국토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
스위스는 국토가 작고 농경지가 별로 없으며 지하자원도 전무하다. 그러나 1인당 국민 총생산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금융업과 관광산업이 발달했다.
◎ 문화
스위스는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므로 외국문화가 끊임없이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문화가 다채롭다. 중립국이라는 지위로 많은 유럽 지식인의 도피처였으며 스위스에서 활동 한 유럽의 뛰어난 학자, 작가는 매우 많다. 국제적십자의 창설자이며 1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앙리 뒤낭, 수학자 베르누이, 수학자 오일러, 부르크하르트 등이 스위스 태생이다. 출판의 역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학술, 미술, 과학 분야에서 뛰어나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 비자면제협정 체결(3개월)
한국과 스위스는 1962년 3월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63년 3월 주 스위스 한국 대사관이 1981년 9월에는 주한 스위스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이후 항공협정(1975), 공업소유권협정 (1977), 비자면제협정(1979)이중과세방지협정(1981) 등이 체결되었다. 1998년 현재 한국의 스 위스 수출액은 15억 2천 3백만 달러이고 수입액은 48억 3천 2백만 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수입품은 귀금속, 디지털 집적회로, 의약품 등이며 수출품은 자동차, 귀금속 등이다. 1999년 현재 교민은 1,120명이고 체류자는 620명이다
<싱가포르>
◎자연환경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의 남쪽 끝, 조호르해(海)를 사이에 두고 말레이도와 마주보고 있는 싱가포르섬과 약 40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3해리 떨어진 지역에는 인도네시아령의 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섬 서쪽의 파시르판장항(港)과 남쪽의 케펠항은 천연의 양항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는 우기와 건기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절의 변화도 뚜렷하지 않다. 최고 평균기온은 31℃, 최저 평균기온은 24℃, 평균 강수량은 2,500mm로 생활하기에 알맞다.
◎경제
싱가포르는 농업·광물자원이 거의 없으나, 19세기 이래로 동남아시아의 중계자유 무역항으로서 번영해 왔다. 선물거래(先物去來)·선적(船積)·적환(積換)·등급구분 등 자유무역항으로서의 기
때문에 근대적 창고업·은행·보험·해운 등의 관련사업이 발전하였으며, 노동인구의 24%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통하여 무역활동을 해오던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보르네오 등은 점차 중계무역을 폐지하고 직접 무역으로 전환하고 있어 중계항으로서의 역할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정부는 제2차 5개년계획(1966∼1970)을 실시, 주로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공업화에 주력하였다.
특히 ‘창시산업법(創始産業法)’에 의하여 세제상의 특혜를 줌으로써 공업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민간자본과 외국자본의 합작기업도 많다. 현재 봉강(棒鋼)·용접강관·아연철판 등 철강업과 자동차 조립·금속·기계·조선업·화학공업 등의 근대공업이 활발하며 고무공업·식품가공업 등의 전통적 공업과 함께 싱가포르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내시장이 좁고 배후지(背後地) 시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업화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는 데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시장도 크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싱가포르 경제의 앞날은 한때 어려워 보이기도 하였으나, 1976년의 경기회복 이후 세계적인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1979년에는 경제성장률이 홍콩에만 뒤졌을 뿐 한국과 타이완보다 앞섰다. 자동차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간선은 모두 포장되어 있다. 북단의 우들랜즈로부터 조호르바루까지의 가교로 말레이반도와 이어져 있으며 철도도 완비되어 있다. 또한 싱가포르의 파야레바르 공항은 인도네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빠지는 하늘의 십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적 특징
싱가포르는 서양의 세계주의적인 문화의 포장 아래 중국인, 말레이지아인, 인도인의 전통이 공존하는 다문화도시국가이다. 싱가포르 각 민족의 무용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공연한다. 특히 중국무용에서 전통과 현대가 혼합된 실험적 형태의 무용이 나타난다. 유명한 무용단체는 댄스 앙상블 싱가포르, 스리와나, 마리트얄라야 체조협회 등이 있다.
싱가폴 최초의 프로 발레단인 싱가포르 댄스 시에터는 클래식 발레와 동서양의 요소가 혼합된 현대무용 레파토리로 유명하다. 이 발레단은 1980년대 워싱턴 발레단에 명성을 가져다준 故 고추산(Goh Choo San)의 안무작업을 공연한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활동무대에 진출시키기 위해 다른 예술분야보다 많은 비율의 음악가들을 육성시켜 왔다. 싱가포르 출신 클래식 음악가는 해외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그들의 감성과 뛰어난 음악해석 테크닉의 완성도로 존경받고 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서우이트킨(Seow Yit Kin)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시오우 리 친 (Siow Lee Chin)은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또한 프로오페라단인 Singapore Lyric Theatre를 가지고 있으며 단원들은 주로 싱가포르인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단원도 선발한다.
싱가포르의 교향악단 Singapore Symphony Orchestra (SSO) 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교향악단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SSO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주자와 협연하며 유럽과 동남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순회공연을 한다. 싱가포르 출신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예술가로는 수채화가 옹킴셍(Ong Kim Seng), 조각가 응엥텡(Ng Eng Teng), 서예가 판쇼(Pan Show) 등이 있다.
◎우리나라와 관계
1970년 12월 싱가포르에 한국의 통상경제 대표부가 개설되었으며, 그 이듬해인 1971년 7월 대표부가 총영사관으로 승격하였다. 이어 1972년 12월 양국간 항공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75년 8월 영사관계가 대사 관계로 승격하였다. 또 1979년 11월 한국·싱가포르 간 ‘이중과세(二重課稅)방지협정’이 체결되었다. 또한 1980년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제1차 한국·싱가포르 통상장관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되었으며, 양국간의 교역확대, 한국의 싱가포르 지하철 건설계획 참여, 싱가포르가 중계무역항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싱가포르 내에 합작 무역업체의 설립 등의 문제를 검토, 협의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 협력관계를 강화하였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해외건설시장으로서 큰몫을 차지하고 있다. 1972년 한국의 건설업체가 처음으로 진출한 이후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물들이 한국인의 기술로 건설되었으며, 그 중에서 쌍용건설이 시공·완성한 싱가포르의 래플시티는 복합건물로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1998년 현재 대(對)한국 수입은 41억 달러이고, 수출은 17억 달러이다.
주요 수입품은 수산물, 농산물, 귀금속, 화학공업 등이며, 수출품은 유리, 수산물, 귀금속, 제약원료 등이다. 1996년 2월 대통령 김영삼이 방문하여 양국간의 경제·무역 등 현안문제에 관하여 회담하였다. 1999년 현재 교민은 약 4,150명이다. 싱가포르의 이민제한 정책에 따라 영주권을 얻은 교민은 100명 정도이다.
<네덜란드>
◎자연환경
네덜란드는 라인·마스·발의 3대 하천의 하류유역에 있는 저지국으로, 동부와 남단부에는 약간의 구릉지가 있지만, 최고부(남동단)가 322.5m에 불과하다. 전국토의 13%가 해발고도 1m 이하이고, 25%가 해면보다 낮으며, 최저부는 해면 아래 6.7m나 된다. 거의 전지역이 홍적세(世)의 빙하지역에 속하며 이것은 라인삼각주의 형성을 촉진시킨 원인이 되었다. 라인삼각주는 남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북해에 면하는 삼각주 지대 노르트홀란트주(州)와 조이트홀란트주에서는 배수로·제방·풍차·양수장·수문 등의 전형적인 폴더(polder:네덜란드의 해안 간척지) 경관을 이룬다.
폴더의 크기는 2∼3ha에서 2,000∼3,000ha까지 있다. 동부·남부·중부의 고지대는 사질토양으로, 라인·마스·발의 3개 하천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북동부의 드렌테주와 그로닝겐주, 남동부의 림뷔르흐주에는 빙하시대에 형성된 이탄층(泥炭層)이 보인다. 서해안의 사구는 6,000년 전에 영국해협의 해류가 북해에 부딪혀 형성되었기 때문에, 북부·서부의 연안지방에는 해성점토층(海成粘土層)이, 하천유역에는 하성점토층(河成粘土層)이 많고, 나무와 돌은 거의 없다. 이 나라에서는 대개 이 점토를 재료로 하는 벽돌로 집을 짓는다.
북해에 면하여 있는 북부와 서부의 해안선은 대단히 복잡하며, 프리지아제도가 선으로 이어진다. 기후는 서안해양성기후에 속하며, 북위 50∼53°의 고위도에 위치하지만,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다. 7월 평균기온 14.7℃, 1월 평균기온 2.7℃이다. 비교적 안개가 많고, 1년 내내 강력한 서풍이 불어와 8,000개 이상의 풍차를 회전시킨다(현재 풍차는 다른 동력의 개발로 1,000개 정도만이 관광용으로 잔존한다). 연평균강수량은 712mm 정도이며, 특히 여름·가을에 우량이 많다. 이는 감자·사탕무 재배에 적당하지만, 봄에는 건조한 편이므로 작물의 생육을 저해하고, 또 사질토양에서는 바람이 강할 때 풍식(風蝕)을 일으킨다. 겨울 강수는 가을의 잉여강수와 함께 지하로 침투하여 토양의 표백화 작용을 한다.
위도 관계로 일조시간은 여름(6월)이 4∼21시까지, 겨울(12월)이 8시 30분∼16시 30분까지이며, 여름에는 국민 전체가 휴가를 즐긴다. 자연식생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야생동물도 거의 없다. 북부의 프리슬란트주에는 대규모 소택지가 있으며, 연안의 모래 언덕에는 방사용(防砂用) 식물과 잡초가 자란다. 사막에는 히스가 자란다. 오베레이셀과 겔덜란트의 수많은 오크나무와 자작나무 산림 및 겔덜란트벨류베 구릉에 있는 광범위한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은 인공식림의 결과이며, 림뷔르흐의 백악질 지층에는 너도밤나무가 자란다.
◎산업적 특징
네덜란드는 지하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는 많으나 1인당 GNP는 매우 높다. 기후와 토양이 농축산업에 적합한 데다, 라인강의 하류라는 지리적 위치로 농업국, 무역국으로 발전하였는데, 그 밖에 간척에 의한 경지 확대, 재배, 목축기술의 진보, 통상의 자유 확보 등의 인위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였다. 공업은 농산물가공 외에는 전적으로 원료를 수입하고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인구격증, 식민지의 상실 등에 대처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업화 정책을 취한 결과, 국민총생산에서 광공업이 농수산업을 앞질렀다. 서비스의 비중이 높으며 금융, 도소매업, 제조업 등이 중요한 산업분야이다. 제조업은 원자재를 수입하여 완제품을 만들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재수출하는 가공무역과 중계무역도 발달하였다. 대표업종은 화학, 전자, 기초금속, 식품가공업 등이다. 1998년에는 경제성장율 3%를 기록하였고 EU의 회원국이며 1999년 1월에 EURO 체계를 도입하였다.
1) 농수산업
네덜란드의 농업·축산·낙농은 19세기 말 농업공황의 일대 시련기를 거쳐 근대화가 추진되었으며, 협동조합이 잘 발달하였다. 전체적으로 협소한 경지면적에 인구는 많아 노동력과 비료를 대량 투입하는 집약농업이 행해지며, 자본주의적 대경영은 동부의 일부에서만 행해진다. 국토중 농경지는 80만ha로 1ha당 인공비료의 사용량 및 감자·사탕무의 생산량, 소 1두당 우유생산량은 세계 최고이며, 달걀·연유·치즈의 수출량도 세계 최고이다.
밀생산은 1970년에 ha당 4,500kg 이었지만 1992년에는 8,100kg으로 늘었다. 농가의 평균 토지보유량은 12ha로 전농가의 반 이상이 소작농이다. 전후(戰後)부터 국제경쟁에 견디어낼 수 있는 적정규모의 농가육성을 지향하여 농업낙농기금으로 생산비 보장방식을 취해 가격유지를 하고 있다. 서부에는 목초지가 많아 낙농이 발달하고 원예지대가 산재하며, 튤립·히아신스를 비롯한 각종의 화초를 재배·수출하고 있다. 동부에서는 밀·감자·축산, 남부에서는 호밀·귀리·양돈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업은 북해에 접하고 있어 대서양·뉴펀들랜드 어장까지 출어한다. 특히 청어어업은 유명하며, 매년 5월의 첫 어획은 여왕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다. 또 고등어·넙치·조개류도 잡히며 내륙수면에서는 굴을 양식한다.
2) 광공업
네덜란드의 남부에서 석탄산업이 번창하여 1938년에는 약 1,340만t을 산출하였으나 그 후 에너지 혁명의 진전에 따라 쇠퇴하였다. 대신 1960년대 중반부터 천연가스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대하여 국내 에너지 소비량의 50% 이상을 충당하고, 다른나라에도 수출한다. 그 밖에 로열더치(네덜란드)셸 회사가 취급하는 석유가 막대한 양에 이른다. 주로 쿠웨이트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원료로 하여 플라스틱·유기약품 등 석유화학공업이 활발하며, 이 나라 제3의 공업이 되어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최대의 공업은 철강 및 기계공업(조선업 등)이다. 북해운하의 입구의 에이모이덴에는 제강회사가 있으며, 위트레흐트 등도 제철회사이다. 제철·제강용 철광석은 에스파냐와 스웨덴에서 수입한다. 제철 외에 알루미늄도 생산되며, 또 다이아몬드 연마공업(硏磨工業)이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전통공업으로, 17세기 경 포르투갈로부터 암스테르담에 유입한 유대인 난민들의 기술을 습득한 것이라고 한다. 기계공업 중에서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등 라인·마스강 하구 부근을 중심으로 한 조선업이 가장 유명하다.
항공기공업은 암스테르담에 입지하며, 중형기 프렌드십이 이곳에서 제작된다. 라디오 및 전기기구의 제작도 성하며, 에인트호벤에는 필립스사(社)가 있다. 공업부문 제2위인 식품공업에는 마가린·식용유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버터·치즈 등의 생산량도 막대하다. 한편 델프트는 도기(陶器) 산지로서 유명하며, 엔스헤데·알멜로·헹겔로 등은 면공업의 중심지이다. 면공업은 18세기 말부터 발족하였으며, 인도네시아와 동(東)인도의 시장화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나,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로는 옛날과 같은 성황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밖에 틸뷔르흐는 양모공업의 중심지이며, 에인트호벤은 융단으로 유명하고 아마(亞麻) 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레이온 공업은 에데·아른헴·브레다 등에서 발달하였다.
3) 무역
1602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네덜란드는 선진상업국이며, 현재도 유럽의 5대무역국 중의 하나이다. 라인강의 상류에 있는 독일을 비롯하여 벨기에·프랑스·스웨덴 등 유럽의 인근 국가들과 미국을 주요 상대국으로 삼고 있다. 라인강과 마스강의 하구에 위치하여 이들 하천으로 유럽의 내륙부와 연결되어 있으며, 또 가항운하(可航運河)의 발달, 풍요한 농목업, 근대공업의 발달, 세계적 항구 암스테르담 및 로테르담의 존재 등 무역상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따른 국토의 황폐, 인도네시아의 독립 등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무역대국으로서 발전하고 있다. 1997년 현재 전체 수출품목의 구성은 기계와 운송장비 34.6%, 화학제품 17%, 소비재 14.5%, 식품류 11.6%, 연료 8.9%, 기타 18.5%로 이루어졌다.
◎문화적 특징
네덜란드인은 예술적 재능에 뛰어나 일찍이 렘브란트, 반에이크 형제, A.반다이크, V.고흐 등의 화가가 났으며, 어느 도시에나 미술관이 있다. 또한 기록영화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상영영화의 검열은 엄격하며, 일반적으로 전연령용(全年令用), 14세 이상용, 18세 이상용의 세 가지로 구별된다. 1년의 반이 겨울인 데다 산이 없다는 자연조건 등으로 축구·스케이트·자전거 경기가 인기가 있으며, 1년 내내 벌어지는 프로축구 시합에서는 도박인 토토칼치오(totocalcio)를 하기도 한다. 올림픽에서는 유도와 스케이트가 강하며, 여자수영도 전통적으로 강하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네덜란드인 처음으로 조선시대에 J.J.벨트브레가 표착하여 귀화하였고,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한 H.하멜은 고국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그 후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 파견되었으나 참석하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1961년 4월 4일 한국과 단독수교를 맺었으며, 1968년 12월에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이 설치되고 1969년 10월에는 주(駐)네덜란드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다.
양국간의 협정으로는 특허 및 상표 협정(1966), 사증 (査證)면제협정(1970), 항공협정(1970), 투자보장협정(1974년), 이중과세방지협정(1978), 경제 및 기술협력협정(1982), 해운협정(1995)이 있다. 1996년 콕 수상과 1999년 윌리엄 알렉산드 왕세자가 방한 하였으며 1999년 고건 서울시장이 네덜란드를 방문 하였다. 1998년 현재 무역규모는 대(對) 한국 수출은 8억 8,300만 달러이고, 수입은 19억 3,7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 제조장비, 디지탈식 직접회로 등이고, 수입품은 데이터 디스플레이,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 승용차 등이다. 1997년 현재 교민수는 415명이고 체류자는 36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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