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무권(居之無倦) - 자리에 일할 때 게을러서는 안 된다.
[살 거(尸/5) 갈 지(丿/3) 없을 무(灬/8) 게으를 권(亻/8)]
나라를 유지시키고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정치는 중요하다. 이런 정치를 대부분의 국민들이 넌덜머리를 내고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떠해야 하고 다스리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옛 선인들이 무수히 가르쳤지만 따르지 않았다.
정치에 대해 孔子(공자)가 말한 몇 가지만 보자.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 정자정야)’, ‘솔선수범하고 몸소 힘써 일하는 것(先之勞之/ 선지로지)’인데 그렇게만 하면 모든 사람이 바르게 따른다고 했다. 자신이 바르지 않고 자신만 위한다면 나쁜 정치가 되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된다(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고 일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論語(논어)’ 顔淵(안연)편에는 정치인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한 것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 子張(자장)이 정사에 관해 여쭈니 답한다. ‘관직의 자리에 있을 때(居之)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無倦)’고 했다.
있을 居(거)는 어떤 자리에 차지하고 앉다는 의미로 ‘윗자리에선 명철했고, 아랫자리에선 충성을 다했다(居上克明 居下克忠/ 거상극명 거하극충)’는 商(상)나라 현신 伊尹(이윤)을 나타내는 데서 쓰임이 명확하다. 스승보다 48세나 젊은 제자 자장은 항상 당당하여 의욕이 넘치자 공자가 깨우쳤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가르침인데 過猶不及(과유불급)이 여기서 유래했다.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의 뒤로 ‘정사를 처리할 때는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行之以忠/ 행지이충)’고 이어진다. 충심을 지녀 정사를 시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앞의 관직에 있다는 居之(거지)는 약간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朱熹(주희)는 居(거)를 마음속에 보존하는 것으로 보고 게으름이 없도록 항상 유의하면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 始終如一(시종여일)이 되고, 일을 할 때도 진심으로 한다면 겉과 속이 같은 表裏如一(표리여일)이 된다고 봤다. 주희보다 앞선 程頤(정이, 頤는 턱 이)는 자장이 仁(인)이 모자라 정치에 마음을 다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공자가 당부한 것이라 했다.
자리에 있을 때 실제로 행동하든 마음속에 늘 지니든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에서 직무에 맞는 일을 창의적으로 일한다면 개인의 앞날도 창창하고 회사도 뻗어갈 것이다.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도 부부가 ‘있을 때 잘해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모두들 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곳에선 그렇지 않아 끊임없이 분란만 일어난다. 일을 미루고 넘기는 직무유기와 반성은 없고 남 탓만 하는 ‘내로남불’이 판치는 곳, 신뢰가 바닥인 곳이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