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월요일과 겹친 황금연휴를 이용해서 회사의 인센티브 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원래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면 을릉도와 독도를 단체로 여행가기로 되었는데 매출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목표 달성은 커녕 금년 누적 매출이 작년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울릉도 이야기는 쏙 들어갈 줄 알았는데 여행 계획은 그대로 추진되고 있었고 공장 쪽의 인원 변동 문제로 어수선한 가운데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 줄 목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출발 전에 교통앱을 살펴 보니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많은 부분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빨간 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구간구간 막히는 길을 지나면서 새벽 6시에 출발하게 되어 너무 이르다는 내 불만은 조금씩 사그러들었다. 어차피 시간을 넉넉히 대어 가는 게 좋고 고속도로에서 막히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적어야 운전자의 피로가 줄게 되는 것이므로 시간이 많이 남고 안 남고를 떠나서 정체 부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일찍 출발해야 하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다.
쉬는 날에도 하루도 아침을 거르지 않은 뱃속에서 기별이 온다. 운전자가 진부에 아는 맛집이 있으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지 말고 그곳에서 먹자고 해서 모두가 기대했다. 여행을 떠나면서 얻는 즐거움이라면 맛집을 찾아 다니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지 않은가. 진부 톨게이트에 빠져 나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부일식당. 진부에서 유명한 두 식당 중의 하나라고 한다. 허기진 우리를 더욱 반갑게 한 것은 미리 차려진 밥상. 무려 15가지 이상의 산나물과 다른 반찬들이 밥상을 가득 채웠다. 그 대부분은 우리들의 뱃속으로 이동했지만. 일부 직원은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색다르고 맛 있는 반찬을 봐서 그런지 아침을 한 공기 더 먹는 사람도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다시 출발. 이제부터는 막히는 구간이 없고 배불리 먹은 뒤라 모두 여유로웠다. 그래도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여흥거리를 찾다가 갤탭에 바둑앱이 있고 바둑을 잘 두는 L이 마침 옆자리에 앉은 터라 갤탭 위에서 반상의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포석 및 중반까지는 갤탭의 터치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의 실수를 틈타 비교적 대등한 대국을 벌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몰리게 되어 역시 고수와의 맞바둑이 어려움을 실감했다. 바둑을 두는 사이에 차는 어느새 정동진에 도착했다. 해수욕을 하기에는 한 물간 시기이지만 관광명소라서 그런지 아직도 사람이 많았다. 간단히 기념 촬영을 하고 조금 둘러본 뒤에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묵호항 근처에 있는 등대였다. 등대에서 광주에서 올라온 직원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출발한지 7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라고 한다. 등대 건물은 잘 꾸며져 있었고 등대에서 바라 본 주위의 경치도 좋았다. 잠시 휴식을 가진 뒤 묵호항으로 출발했다. 묵호항 주차장에서 다섯 대의 차로 온 각 팀이 모였다. 우리 팀은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차를 이미 주차장에 대고 3일치 주차료를 낸 뒤라 다시 시내로 나가서 점심을 먹을 기회를 잃게 되었다. 할 수 없이 터미날 2층에 있는 식당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는 백반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다시 L을 붙잡고 갤탭 위에서 반상의 대국을 벌였다.
출발하기 전에 인솔자가 멀미약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뱃멀미를 한 기억이 없어서 약을 받았지만 먹지는 않았다. 이윽고 우리를 태울 쾌속정이 도착했다. 장거리 배여행을 할 때 마루 같은 곳에 앉거나 누운 기억 밖에 없었는데 이 배에는 좌석만 있고 좌석도 지정되어 있어 아무 데나 앉을 수 없었다. 내 좌석은 창가에서 둘째 열 맨 앞쪽이어서 발을 뻗을 수 있어 편했다. 인솔자가 자기가 신경 써서 좋은 자리 줬다고 생색을 낸다. 앞쪽에는 큰 LCD TV가 있어 사극을 방영하고 있었다. 푹신한 의자를 뒤로 젖히니 잠기운이 슬슬 올라온다. 두 시간 반의 긴 여행이니 잠으로 그 시간을 때울 수 있으면 다행이다. 창으로 바깥쪽을 내다보니 배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옆에 바둑 두는 친구가 있으면 또 다시 그에게는 괴로움을, 내게는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아이팟이 있지 않은가. 일드 두 편을 보니 반 정도 남은 밧데리도 소진되고 배도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해 있었다.
도동항은 생각보다 좁았다. 더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다른 곳에 큰 항구를 짓는다고 들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옮겨 탔다. 버스 기사는 인사말을 하면서 자기 차가 울릉도에서 제일 크고 좋은 버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차는 좁은 도로를 타고 전진했다. 울릉도에 평지가 없고 도로가 좁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 몸에 닿았다. 터널도 편도 1차선으로 되어 있어 중간에서 차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신호등이 달려 있는 게 신기해 보였다. 버스는 꾸불뿌불한 산길과 해안도로를 따라 학포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승객을 모두 내리게 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학포웰빙가라고 2년 전에 목조로 지은 최신식 건물이었다. 건물도 아담하고 깨끗했으며 객실마다 대형 LCD TV와 양문 냉장고, 드럼 세탁기 등 대도시의 숙박업소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최신식 전자 제품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스카이라이프도 설치되어 있어 집에서 볼 수 있는 케이블 방송 전부를 외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테라스에 설치된 목재 테이블이었다. 네 개의 테이블은 우리 회사 전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우리가 씻고 쉬는 사이에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울릉도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홍합밥. 홍합은 누구나 좋아하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어떻게 먹어도 좋은데 이런 메뉴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나. 여독을 풀기 위해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었다. 여행지에서 과도한 음주로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분위기에 취해서 과음을 하는 것을 금물로 삼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걸리. 이곳에서도 장수막걸리를 파는구나. 다른 사람이 뺏어 먹지 못하도록 혼자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웠다. 다행히 이곳에 와서 막걸리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 식사 후 마련된 것은 학포 방파제에서 하는 불꽃놀이. 펜션의 주인이자 가이드가 픽업트럭에 불꽃놀이용 화약과 사람을 싣고 방파제로 내려 갔다. 나와 몇몇은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골짜기에 부는 바닷바람은 한 여름의 무더위를 깨끗이 잊게 했다. 방파제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누가 이런 프로그램을 계획했는지 모르지만 조금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불꽃놀이를 마치고 술이 모자란 사람들을 위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안주로는 오삼불고기를 주문했는데 테라스에서는 바람이 거세 휴대용 버너를 켤 수가 없어 1층 앞마당에 테이블을 옮기고 그 주위에 모두 모여 앉았다. 막걸리를 고집하는 내게도 소주잔이 돌아왔고 또 뜨는 잔이 돌기 시작하여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다행히 뜨는 잔은 두 번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한 밤 중에 펜션이 위치한 골짜기에 둥근 보름달이 떴다. 그 보름달 주위로 달무리가 끼어 보기 드문 장관을 이루었고 이런 자연 현상에 의미를 두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도 찧기 시작했다.
밤은 깊어져도 취객들의 흥겨운 목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미꾸라지 낚시
어제 술자리가 12시 이전에 파했다. 워크샾이나 단체 여행의 행사라면 집에 갈 일도 없이 밤새도록 허리띠 풀러 놓고 술을 마실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술고래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정 이전인, 매우 이른(?) 시간에 술자리가 파했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을 빌어 경이적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인적 구성의 변화가 그 주된 원인인 것 같다. 이런 변화가 슬픈 사람도 있겠지만 건전한 음주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내 입장에서는 바람직했다. 자신이 마시고 싶은 술을 주량껏 마시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막걸리 두 병을 마시려 했다가 한 병을 마시고 남은 한 병은 내일을 위한 양식으로 냉장고에 고이 모셔 두었다.
술을 적당히 기분 좋게 마셔서 숙취 없는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아침 8시가 되자 테라스 위의 나무 테이블에 아침상이 차려 졌다. 아침 메뉴는 엉겅퀴국. 통오징어 회, 꽁치 구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여럿이 모여 아침을 먹으니 식욕이 돋는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기 전에 펜션에서 고로쇠물 한 병씩을 나누어 준다. 어제는 귀한 것이라며 여직원 두 명에게만 줘서 생색을 내더니 그냥 나누어 주는 걸 보니 울릉도에서는 그게 그렇게 귀한 것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 버스 안에는 물병을 둘 만한 자리가 없다. 들고 다니기도 귀찮고 해서 나중에 마시기 위해 앞 좌석과 벽의 빈 틈에 끼워 놓았다.
오늘의 첫 관광코스는 태하마을에 가서 모노레일을 타고 조망대에 올라 등대와 바다의 경치를 보는 것이다. 두 대의 객차로 되어 있는 모노레일은 객차 당 24명을 태울 수 있는 큰 차로 국내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우리 그룹이 모노레일역에 제일 먼저 도착했지만 곧 이어 다른 그룹의 관광객들이 몰려 와 혼잡한 가운데 그들과 섞여서 모노레일을 탔다. 운행시간은 편도 6분 정도였다. 상부역에서 내려 조망대까지 걸었다. 햇볕이 강렬했지만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이라서 꽤나 쾌적했다. 조금 걸으니 선박의 갑판 모양을 한 조망대가 보였다. 단체 사진을 찍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주변의 경치는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등대 건물의 앞쪽에는 큰 오징어 동상이 있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개인 여행일 때에는 모노레일을 올라갈 때에만 타고 내려 올 때에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 오는 게 경비도 절감하고 경치도 감상하며 운동도 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리처럼 시간을 정해 놓고 다니는 단체여행에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내려갈 때에도 모노레일을 탔다. 내려올 때에도 다른 관광객들과 섞여 두 사람이 모노레일을 타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걸어서 내려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깝다. 왕복요금을 이미 냈을 텐데.
내려오자 마자 냉방이 된 버스에 올라타서 시원한 고로쇠물을 찾았다. 그런데, 앗, 좌석과 벽 사이에 끼워 둔 내 물이 없어졌다. 방금 뒷자리에서 병을 따고 마시는 뚱땡이가 의심스러운데 물증이 없다. 고로쇠물병에다 이름을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신경질이 무진장 났다. 맛도 보지 않고 그대로 놔 둔 새 병인데. 아, 이 웬수를 어떻게 갚는담. 내가 부주의한 것인가 아니면 훔쳐가 그 화상이 몰상식한 인간인가.
두 사람이 걸어 내려 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바로 옆에 있는 동굴관광을 했다. 동굴 벽 한쪽은 황토색으로 되어 있는 층이 있는데 먹어도 되는 흙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몇 사람은 그 흙의 맛을 보았다.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련한 짓이다. 한 편으로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인공구조물로 해안을 따라 산책할 수 있도록 긴 가드레일과 발판이 있었다. 시간만 된다면 바다 위로 난 그 길의 끝까지 걸어 갔다 왔으면 좋을 길이었다.
다음 코스는 북면 현포리에 있는 예림원이었다. 개인이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는 곳으로 문자조각 공원과 전망대가 볼만한 것이었다. 여러 가지 문자를 형상화해 조각을 만들었는데 내게 “행복해”라는 명령을 내린 조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어 내가 행복해 보이는지 묻는 이메일을 아이들에게 보냈지만 스스로 생각해보건대 그다지 내 처지가 행복하진 않아 보인다. 공원 내부에서 호박 막걸리와 부침개를 팔고 있었다. 줄만 잘 서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유력자 주위에 있던 몇 사람만 울릉도 호박 막걸리와 부침개 맛을 볼 수 있었다. 고로쇠물을 잃고 나서 아무 것도 마시지 않은 상태여서 막걸리 맛은 꿀맛이었다. 전망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 본 경치도 좋았다. 코끼리 바위가 더 가까이 보였고 바닷물도 수정처럼 맑았다.
다음 코스 나리 분지. 경사가 높은 길을 오르기 때문에 에어컨을 끌 수도 있다고 기사가 말한다. 그가 자신이 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인지 그만이 알 테지만 도중에 시동을 꺼뜨렸다. 길이 하도 꼬불거려 내려 올 때도 속력을 낼만한 곳이 없어서 울릉도에서는 기어 4단까지 변속할 일이 없다고 한다. 이윽고 평평한 나리분지 도착.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로 면적이 무려 1.5km2에 이른다고 한다. 섬 전체로 보았을 때 가운데가 움푹 파인 곳이어서 겨울에 눈이 오면 무려 3미터까지 쌓인다고 한다.
옛날의 주거 형태인 투막집을 관광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분지 내에 있는 큰 식당 두 곳 중 한 곳을 찾았다. 이곳에서 먹은 것은 산채 비빔밥. 고산지대에 나는 풍부한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란다. 식탁에 간장이 올라왔는데 누군가가 간장을 비빔밤에 넣어 먹으라고 해서 비빔밥에 고추장이 아닌 간장을 비벼 먹은 성급한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서도 호박 막걸리가 제공되었다. 막걸리를 기분 좋을 정도까지 충분히 마셨다.
그 다음 코스는 신령수까지 트래킹. 가득 채운 술배와 밥배를 소화시킬 겸 경사가 거의 없는 숲길을 걷는 것이었다. 등산을 취미로 삼기 위해 틈 나는 대로 산에 오르려고 노력은 하지만 워낙 체력이 저렴해서 산에 오르는 일은 늘 힘에 부친다. 그러나 평지를 천천히 걷는 일은 그래도 자신이 있다. 빨리 걷는 일만 없다면. 하지만 목적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걷는 것 만큼 불안한 일은 없다.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모르고 우리는 계속 걸었다. 2, 30분 걸었을까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족욕탕이 보이고 사람들이 그 속에 발을 넣고 쉬고 있었다. 다행이다, 더 멀리 갈 필요가 없다니. 그곳에서 나오는 샘물로 목을 축이고 발을 담그고 잠시 쉬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부석(뜨는 돌)을 찾아 족욕탕에 띄우고 놀았다. 정말 돌처럼 생겼지만 무게가 아주 가볍다. 화산 분출의 결과로 생긴 화산재라는 설도 있다. 사람들이 그 부석을 하나씩 챙겨 가지고 온다. 나는 그 돌을 어디에 쓸까 하고 챙기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작은 돌 하나를 건넨다. 그제서야 사무실 어항에 물고기들에게 쉼터가 될까 하고 그 돌을 챙겼다.
다시 걸어간 만큼 걸어 돌아왔고 적당히 피곤한 몸을 차에 싣고 이번에는 섬의 북동쪽으로 향했다. 섬목이라는 곳인데 울릉도의 부속섬이자 유인도인 죽도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곳이었다. 섬목항에는 카페리가 있었는데 열심히 차를 싣고 있었다. 대체 차를 싣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육지로 가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고 그렇다고 차를 싣고 갈만한 곳이 울릉도 내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울릉도 일주로가 아직 완공된 상태가 아니어서 가장 번화한 저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섬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거의 한 바퀴를 돌든지 아니면 여기에서 배를 타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후자라고 한다. 별 영양가 없는 궁금증 해결.
오늘의 일정을 거의 마치고 버스는 우리의 숙소인 학포웰빙가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여흥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낚시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픽업트럭의 적재칸에 타고 학포포구로 향했다. 미꾸라지 낚시는 경품이 준비된 게임이었다. 작은 사발을 들고 자갈밭인 바닷가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서 오징어 다리를 자갈밭 사이에 끼우면 미꾸라지 들이 물고 올라올 때 사발에 담는 것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미꾸라지가 오징어 다리를 물을까 의아했는데 막상 해보니 파도 때문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꾸라지가 마구 몰려든다. 심지어 오징어 다리를 잡은 내 손가락을 빠는 놈들도 있다. 열심히 낚아 올렸지만 파도가 올 때 마다 사발이 흔들려 애써 잡은 놈들이 도망을 쳤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잡는 놈보다 놓치는 놈들이 더 많을 것 같아 머리를 굴렸다. 사발 하나를 더 얻어 육지 쪽 안전한 곳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잡는 족족 퍼 날랐다.
30분 정도 했을까. 가이드가 게임 종료를 알렸다. 이어 채점. 잡은 미꾸라지를 세어 순위를 매기는 순서였다. 내가 잡은 것은 무려 27마리 2, 3위의 21 마리보다 당연 훨씬 많아 우승 확정! 놀러 가서 무슨 대회를 하거나 보물찾기를 해도 참가상 밖에 못 받던 내가 이런 쾌거를 이루다니! 우승 상품은 현지 특산품인 마가목주로 3만원 짜리 딱지를 달고 있었다. 그 후로 음해세력이 이 술을 육지로 가져가지 못하게 그 자리에서 따서 마시자고 하는 화상이 있었으니, 어불성설일세. 사실 1등 상품보다 오징어 10마리 들어간 2등 상품이 더 갖고 싶었는데…
미꾸라지 낚시를 끝내고 경품이 걸리지 않은 일반 낚시를 시도해 보았다. 미끼로 새우를 달고 던졌지만 금새 미끼가 없어져 오징어 다리 조각을 바늘에 걸기도 했지만 고기가 물지 않았다. 몇 분 정도 해보아도 소득이 없자 낚시대를 던져 버리고 임시 주점에 술을 마시기 위해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 끼었다. 미꾸라지 낚시를 하느라 온 몸이 바닷물에 젖어 바람이 불 때 마다 추위를 느꼈다. 간이 주점 주인이 안주를 만든다고 작은 생선의 회를 뜨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술꾼들을 간질나게 했다. 드디어 안주로 회가 나오긴 했지만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깡술에 깻잎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변변하지 못한 안주에 소주를 네 잔이나 마셨다.
날이 어두워져서 모두 펜션으로 돌아갔다. 빨리 샤워를 하고 젖은 옷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우리가 씻는 동안 저녁이 준비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바비큐 파티. 울릉도 특산인 약소고기와 삼겹살이 준비되어 있었다. 술도 공장에서 가져 온 양주와 오면서 사온 국산 양주도 대동하고 있었으니… 두둥! 결전의 날이 밝은 것이다. 나는 어제 먹다 남은 막걸리가 있어서 그걸로 대충 때우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아 하니 그게 용납되지 않을 것 같다. 맥주와 출장 가서 사온 양주로 제조된 제대로 된 폭탄주가 각자에게 할당되었다. 한 잔에 여러 번을 나누어 마셨다. 회사에서 말술로 인정한 700과 024가 쓸데 없는 만용으로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이 테이블을 옮겨 가며 술을 마시는 철새의 계절이 왔다. 나는 같은 자리를 고수하며 내게 와서 따르는 술만 마지 못해 마셨다. 이럴 때 아는 척, 친한 척하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제일 싫고 밉다. 갈수록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술자리의 음영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의 눈길이 덜 가는 분위기가 되자 나는 탈출을 감행했다. 안쪽 방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TV를 보고 있었다. 지난 주 방영된 개콘이었다. 나도 편한 자세로 누워서 TV를 시청하다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술을 적당히 기분 좋게 마셔서 숙취 없는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아침 8시가 되자 테라스 위의 나무 테이블에 아침상이 차려 졌다. 아침 메뉴는 엉겅퀴국. 통오징어 회, 꽁치 구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여럿이 모여 아침을 먹으니 식욕이 돋는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기 전에 펜션에서 고로쇠물 한 병씩을 나누어 준다. 어제는 귀한 것이라며 여직원 두 명에게만 줘서 생색을 내더니 그냥 나누어 주는 걸 보니 울릉도에서는 그게 그렇게 귀한 것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 버스 안에는 물병을 둘 만한 자리가 없다. 들고 다니기도 귀찮고 해서 나중에 마시기 위해 앞 좌석과 벽의 빈 틈에 끼워 놓았다.
오늘의 첫 관광코스는 태하마을에 가서 모노레일을 타고 조망대에 올라 등대와 바다의 경치를 보는 것이다. 두 대의 객차로 되어 있는 모노레일은 객차 당 24명을 태울 수 있는 큰 차로 국내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우리 그룹이 모노레일역에 제일 먼저 도착했지만 곧 이어 다른 그룹의 관광객들이 몰려 와 혼잡한 가운데 그들과 섞여서 모노레일을 탔다. 운행시간은 편도 6분 정도였다. 상부역에서 내려 조망대까지 걸었다. 햇볕이 강렬했지만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이라서 꽤나 쾌적했다. 조금 걸으니 선박의 갑판 모양을 한 조망대가 보였다. 단체 사진을 찍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주변의 경치는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등대 건물의 앞쪽에는 큰 오징어 동상이 있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개인 여행일 때에는 모노레일을 올라갈 때에만 타고 내려 올 때에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 오는 게 경비도 절감하고 경치도 감상하며 운동도 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리처럼 시간을 정해 놓고 다니는 단체여행에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내려갈 때에도 모노레일을 탔다. 내려올 때에도 다른 관광객들과 섞여 두 사람이 모노레일을 타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걸어서 내려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깝다. 왕복요금을 이미 냈을 텐데.
내려오자 마자 냉방이 된 버스에 올라타서 시원한 고로쇠물을 찾았다. 그런데, 앗, 좌석과 벽 사이에 끼워 둔 내 물이 없어졌다. 방금 뒷자리에서 병을 따고 마시는 뚱땡이가 의심스러운데 물증이 없다. 고로쇠물병에다 이름을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신경질이 무진장 났다. 맛도 보지 않고 그대로 놔 둔 새 병인데. 아, 이 웬수를 어떻게 갚는담. 내가 부주의한 것인가 아니면 훔쳐가 그 화상이 몰상식한 인간인가.
두 사람이 걸어 내려 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바로 옆에 있는 동굴관광을 했다. 동굴 벽 한쪽은 황토색으로 되어 있는 층이 있는데 먹어도 되는 흙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몇 사람은 그 흙의 맛을 보았다.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련한 짓이다. 한 편으로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인공구조물로 해안을 따라 산책할 수 있도록 긴 가드레일과 발판이 있었다. 시간만 된다면 바다 위로 난 그 길의 끝까지 걸어 갔다 왔으면 좋을 길이었다.
다음 코스는 북면 현포리에 있는 예림원이었다. 개인이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는 곳으로 문자조각 공원과 전망대가 볼만한 것이었다. 여러 가지 문자를 형상화해 조각을 만들었는데 내게 “행복해”라는 명령을 내린 조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어 내가 행복해 보이는지 묻는 이메일을 아이들에게 보냈지만 스스로 생각해보건대 그다지 내 처지가 행복하진 않아 보인다. 공원 내부에서 호박 막걸리와 부침개를 팔고 있었다. 줄만 잘 서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유력자 주위에 있던 몇 사람만 울릉도 호박 막걸리와 부침개 맛을 볼 수 있었다. 고로쇠물을 잃고 나서 아무 것도 마시지 않은 상태여서 막걸리 맛은 꿀맛이었다. 전망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 본 경치도 좋았다. 코끼리 바위가 더 가까이 보였고 바닷물도 수정처럼 맑았다.
다음 코스 나리 분지. 경사가 높은 길을 오르기 때문에 에어컨을 끌 수도 있다고 기사가 말한다. 그가 자신이 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인지 그만이 알 테지만 도중에 시동을 꺼뜨렸다. 길이 하도 꼬불거려 내려 올 때도 속력을 낼만한 곳이 없어서 울릉도에서는 기어 4단까지 변속할 일이 없다고 한다. 이윽고 평평한 나리분지 도착.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로 면적이 무려 1.5km2에 이른다고 한다. 섬 전체로 보았을 때 가운데가 움푹 파인 곳이어서 겨울에 눈이 오면 무려 3미터까지 쌓인다고 한다.
옛날의 주거 형태인 투막집을 관광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분지 내에 있는 큰 식당 두 곳 중 한 곳을 찾았다. 이곳에서 먹은 것은 산채 비빔밥. 고산지대에 나는 풍부한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란다. 식탁에 간장이 올라왔는데 누군가가 간장을 비빔밤에 넣어 먹으라고 해서 비빔밥에 고추장이 아닌 간장을 비벼 먹은 성급한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서도 호박 막걸리가 제공되었다. 막걸리를 기분 좋을 정도까지 충분히 마셨다.
그 다음 코스는 신령수까지 트래킹. 가득 채운 술배와 밥배를 소화시킬 겸 경사가 거의 없는 숲길을 걷는 것이었다. 등산을 취미로 삼기 위해 틈 나는 대로 산에 오르려고 노력은 하지만 워낙 체력이 저렴해서 산에 오르는 일은 늘 힘에 부친다. 그러나 평지를 천천히 걷는 일은 그래도 자신이 있다. 빨리 걷는 일만 없다면. 하지만 목적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걷는 것 만큼 불안한 일은 없다.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모르고 우리는 계속 걸었다. 2, 30분 걸었을까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족욕탕이 보이고 사람들이 그 속에 발을 넣고 쉬고 있었다. 다행이다, 더 멀리 갈 필요가 없다니. 그곳에서 나오는 샘물로 목을 축이고 발을 담그고 잠시 쉬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부석(뜨는 돌)을 찾아 족욕탕에 띄우고 놀았다. 정말 돌처럼 생겼지만 무게가 아주 가볍다. 화산 분출의 결과로 생긴 화산재라는 설도 있다. 사람들이 그 부석을 하나씩 챙겨 가지고 온다. 나는 그 돌을 어디에 쓸까 하고 챙기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작은 돌 하나를 건넨다. 그제서야 사무실 어항에 물고기들에게 쉼터가 될까 하고 그 돌을 챙겼다.
다시 걸어간 만큼 걸어 돌아왔고 적당히 피곤한 몸을 차에 싣고 이번에는 섬의 북동쪽으로 향했다. 섬목이라는 곳인데 울릉도의 부속섬이자 유인도인 죽도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곳이었다. 섬목항에는 카페리가 있었는데 열심히 차를 싣고 있었다. 대체 차를 싣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육지로 가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고 그렇다고 차를 싣고 갈만한 곳이 울릉도 내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울릉도 일주로가 아직 완공된 상태가 아니어서 가장 번화한 저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섬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거의 한 바퀴를 돌든지 아니면 여기에서 배를 타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후자라고 한다. 별 영양가 없는 궁금증 해결.
오늘의 일정을 거의 마치고 버스는 우리의 숙소인 학포웰빙가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여흥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낚시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픽업트럭의 적재칸에 타고 학포포구로 향했다. 미꾸라지 낚시는 경품이 준비된 게임이었다. 작은 사발을 들고 자갈밭인 바닷가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서 오징어 다리를 자갈밭 사이에 끼우면 미꾸라지 들이 물고 올라올 때 사발에 담는 것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미꾸라지가 오징어 다리를 물을까 의아했는데 막상 해보니 파도 때문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꾸라지가 마구 몰려든다. 심지어 오징어 다리를 잡은 내 손가락을 빠는 놈들도 있다. 열심히 낚아 올렸지만 파도가 올 때 마다 사발이 흔들려 애써 잡은 놈들이 도망을 쳤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잡는 놈보다 놓치는 놈들이 더 많을 것 같아 머리를 굴렸다. 사발 하나를 더 얻어 육지 쪽 안전한 곳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잡는 족족 퍼 날랐다.
30분 정도 했을까. 가이드가 게임 종료를 알렸다. 이어 채점. 잡은 미꾸라지를 세어 순위를 매기는 순서였다. 내가 잡은 것은 무려 27마리 2, 3위의 21 마리보다 당연 훨씬 많아 우승 확정! 놀러 가서 무슨 대회를 하거나 보물찾기를 해도 참가상 밖에 못 받던 내가 이런 쾌거를 이루다니! 우승 상품은 현지 특산품인 마가목주로 3만원 짜리 딱지를 달고 있었다. 그 후로 음해세력이 이 술을 육지로 가져가지 못하게 그 자리에서 따서 마시자고 하는 화상이 있었으니, 어불성설일세. 사실 1등 상품보다 오징어 10마리 들어간 2등 상품이 더 갖고 싶었는데…
미꾸라지 낚시를 끝내고 경품이 걸리지 않은 일반 낚시를 시도해 보았다. 미끼로 새우를 달고 던졌지만 금새 미끼가 없어져 오징어 다리 조각을 바늘에 걸기도 했지만 고기가 물지 않았다. 몇 분 정도 해보아도 소득이 없자 낚시대를 던져 버리고 임시 주점에 술을 마시기 위해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 끼었다. 미꾸라지 낚시를 하느라 온 몸이 바닷물에 젖어 바람이 불 때 마다 추위를 느꼈다. 간이 주점 주인이 안주를 만든다고 작은 생선의 회를 뜨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술꾼들을 간질나게 했다. 드디어 안주로 회가 나오긴 했지만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깡술에 깻잎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변변하지 못한 안주에 소주를 네 잔이나 마셨다.
날이 어두워져서 모두 펜션으로 돌아갔다. 빨리 샤워를 하고 젖은 옷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우리가 씻는 동안 저녁이 준비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바비큐 파티. 울릉도 특산인 약소고기와 삼겹살이 준비되어 있었다. 술도 공장에서 가져 온 양주와 오면서 사온 국산 양주도 대동하고 있었으니… 두둥! 결전의 날이 밝은 것이다. 나는 어제 먹다 남은 막걸리가 있어서 그걸로 대충 때우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아 하니 그게 용납되지 않을 것 같다. 맥주와 출장 가서 사온 양주로 제조된 제대로 된 폭탄주가 각자에게 할당되었다. 한 잔에 여러 번을 나누어 마셨다. 회사에서 말술로 인정한 700과 024가 쓸데 없는 만용으로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이 테이블을 옮겨 가며 술을 마시는 철새의 계절이 왔다. 나는 같은 자리를 고수하며 내게 와서 따르는 술만 마지 못해 마셨다. 이럴 때 아는 척, 친한 척하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제일 싫고 밉다. 갈수록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술자리의 음영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의 눈길이 덜 가는 분위기가 되자 나는 탈출을 감행했다. 안쪽 방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TV를 보고 있었다. 지난 주 방영된 개콘이었다. 나도 편한 자세로 누워서 TV를 시청하다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2011년 8월 15일 월요일
싱거운 독도 관광
옷을 입은 채로, 남의 방에서 TV를 보다 잠이 든 모양이다. 여기저기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덥고 답답해서 잠이 깨었다. 내 방으로 건너가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 방으로 들어가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보려는데 분노의 역류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제 마신 술이라고는 양주와 맥주로 제대로 비빈 폭탄주 한 잔 뿐인데. 남들은 여러 잔을 마시고 끄떡없던 잔인데… 내가 아무리 술이 약하다고 해서 그거 한 잔 마시고 뻗었다는 이야기인가? 음해세력이 약을??? 속을 양쪽 출입구를 이용해서 대충 비우고 누울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방 하나에 거실 하나 밖에 없는 좁은 공간에 내 자리가 있을까. 과연 덩치 큰 두 사람이 옷도 벗지 않은 채 마루에서 큰 대자로 누워 자니 비집고 들어갈 자리도 없었거니와 깔 요도 없었다. 날씨가 춥지 않아 덮을 것을 필요 없지만 깔 것은 필요했다. 눈에 띄는 게 소파였다. 2.5인용의 길이로 눕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푹신한 쿠션 위에서 대충 잘만 했다.
어제 어지간하게 마신 모양이다. 술자리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언제 실종되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중간에 빠져 나간 것은 기억해주지 않아서 고맙긴 하지만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한 줄 알고 마지막 순간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면 더욱 고맙겠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불고기에다 오징어내장국이었다.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란다. 숙취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땡기지 않는다. 어제 엄청나게 달렸을 024는 연신 그 국만 찾는다. 몇 그릇을 비우고도 추가로 신청해서 국냄비를 아예 독점했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나니 숙취가 사라지긴 했지만 움직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마지막 날이어서 체크아웃을 해야 했다. 어제 상으로 받은 술을 챙겨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출발 전에 받은 얼려놓은 물이 어제와 같이 도난을 당하지 않게 선반 위에 잘 숨겨 놓았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저동에 있는 내수전전망대였다. 버스 기사가 저동으로 차를 몰았다. 저동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4층짜리 아파트도 보였다. 을릉도에서는 2층 이상의 건물을 고층건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버스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만 올라가서 걸어서 올라야 했다. 경사도 그리 심하지도 않고 거리도 10분 정도만 되는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전망대에서는 저동 전체와 죽도가 내려다 보였다. 맑은 날에는 독도가 보인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다음 코스는 봉래폭포. 가는 도중에 기사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길가에 세워 둔 오징어 건조장치와 부딪혀 손상이 되고 말았다. 울릉도의 길은 매우 좁다. 울릉도 3무 중에 더 포함시켜야 할 게 있다면 4차선 도로가 아닐까. 우리나라 관광지 중 가끔 폭포가 명소로 손꼽히지만 보고 나면 기대에 어긋나는 게 폭포이다. 기껏 물줄기 몇 개 내려 오는 곳도 과대포장이 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버스를 중간에 세워 놓고 한참을 걸어 올라야 했다. 길은 타이어 조각을 연결한 고무판으로 덮여 있어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걷기에는 좋았다. 겨울철 눈 오는 날에는 더욱 좋을 것 같다. 폭포로 연결되는 계곡은 출입관리를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상수도로 쓰이는 물이기 때문이란다.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사람 몇은 끝까지 오르기를 포기했다. 중간에 천연에어컨 풍혈이 여기에도 있었다.
다음은 점심을 먹고 독도를 관광하는 마지막 코스였다. 도동항에 도착해서 버스기사를 보내고 각자 짐을 들고 식당에 올랐다. 점심 메뉴는 물오징어회밥이었다. 오징어회와 야채에 초고추장을 얹은 그릇이 상위에 올랐는데 내 앞 자리의 L이 시범을 보인다고 내 그릇에 물을 마구 붓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대충 알아서 먹으라고 한다. 회에 맹물을 타니 맛이 그저 그렇다. 그런 상태에서 밥을 마는 사람도 있었다. 이른 바 물회덮밥이다. 회덮밥은 좋아하지만 이런 식의 회덮밥은 끌리지 않아 밥 따로 물회 따로 먹었다. 독도로 가는 배를 타기 전에 멀미약이 배급되었는데 나는 뭐가 잘 났다고 받아 먹지 않았는지… 나중 후회 막급.
독도로 가는 배는 씨플라워호. 묵호에서 타고 온 배보다 규모가 약간 작지만 400명 이상이 타는 배였다. 승객이 많지 않고 의자도 뒤로 눕힐 수 있는 각도가 커서 자리에 앉자마자 잠을 청했다. 깊은 잠에 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잔 것 같다. 깨고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뱃멀미를 안 한다고 믿고 있지만 자기 최면에 걸렸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배를 탄 적이 아주 오래된 일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지 뱃멀미를 하지 않은 것 아닌 것 같은데 왜 시건방지게 멀미약을 받지 않았을까. 곧 독도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일기가 고르지 않아 입도가 불가능하다는 방송을 했다. 결국 배 안에서 독도의 사진을 찍는 수 밖에 없었다. 갑판으로 나와 파도를 보니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파도에도 접안을 못 한다면 대체 호수와 같이 잔잔한 바다를 기대해야 된다는 말인가. 독도의 땅을 직접 발로 밟는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큰 일이지만 버스기사가 독도의 접안은 하늘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는 말을 새기며 눈으로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싱거운 독도 관광이었다. 다시 뱃길로 온 만큼 되돌아 가야 했다.
가이드가 묵호로 가는 배 시간이 바로 연결되니 일찌감치 단체가 함께 내리도록 언질을 주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두 배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정해 놓았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에게서 새로운 배표를 받았다. 짐을 간단히 하기 위해서 마가목술병을 배낭 안에 쑤셔 넣었다. L은 아침부터 술병을 따서 돌리라고 한다. 그래야 고마워 할 사람 하나 없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그 말을 흘려 들었다.
다시 승선. 이번에는 창 쪽이긴 했지만 의자가 전혀 젖혀지지 않는다. 배가 떠나기 전에 그제 묵호항을 출발하기 전에 받았던 짜먹는 멀미약을 먹었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창가에 있긴 하지만 망망대해에 보이는 것이라곤 바다뿐이라서 지루했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오면서 보던 독도에 관한 만화책의 주인이고 책을 앞 선반 위에 올려 놓고 보지 않아서 그에게 책을 빌려 완독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700하고 갤탭으로 바둑을 두었다. 그는 뭘 해도 시작하기 전에 내기를 하자고 한다. 바둑은 싱겁게 나의 완승으로 끝났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파는 것을 보고 하나 먹으려고 하다가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포기했다. 멀미가 나도 컵라면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어지간하게 마신 모양이다. 술자리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언제 실종되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중간에 빠져 나간 것은 기억해주지 않아서 고맙긴 하지만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한 줄 알고 마지막 순간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면 더욱 고맙겠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불고기에다 오징어내장국이었다.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란다. 숙취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땡기지 않는다. 어제 엄청나게 달렸을 024는 연신 그 국만 찾는다. 몇 그릇을 비우고도 추가로 신청해서 국냄비를 아예 독점했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나니 숙취가 사라지긴 했지만 움직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마지막 날이어서 체크아웃을 해야 했다. 어제 상으로 받은 술을 챙겨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출발 전에 받은 얼려놓은 물이 어제와 같이 도난을 당하지 않게 선반 위에 잘 숨겨 놓았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저동에 있는 내수전전망대였다. 버스 기사가 저동으로 차를 몰았다. 저동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4층짜리 아파트도 보였다. 을릉도에서는 2층 이상의 건물을 고층건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버스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만 올라가서 걸어서 올라야 했다. 경사도 그리 심하지도 않고 거리도 10분 정도만 되는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전망대에서는 저동 전체와 죽도가 내려다 보였다. 맑은 날에는 독도가 보인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다음 코스는 봉래폭포. 가는 도중에 기사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길가에 세워 둔 오징어 건조장치와 부딪혀 손상이 되고 말았다. 울릉도의 길은 매우 좁다. 울릉도 3무 중에 더 포함시켜야 할 게 있다면 4차선 도로가 아닐까. 우리나라 관광지 중 가끔 폭포가 명소로 손꼽히지만 보고 나면 기대에 어긋나는 게 폭포이다. 기껏 물줄기 몇 개 내려 오는 곳도 과대포장이 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버스를 중간에 세워 놓고 한참을 걸어 올라야 했다. 길은 타이어 조각을 연결한 고무판으로 덮여 있어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걷기에는 좋았다. 겨울철 눈 오는 날에는 더욱 좋을 것 같다. 폭포로 연결되는 계곡은 출입관리를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상수도로 쓰이는 물이기 때문이란다.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사람 몇은 끝까지 오르기를 포기했다. 중간에 천연에어컨 풍혈이 여기에도 있었다.
다음은 점심을 먹고 독도를 관광하는 마지막 코스였다. 도동항에 도착해서 버스기사를 보내고 각자 짐을 들고 식당에 올랐다. 점심 메뉴는 물오징어회밥이었다. 오징어회와 야채에 초고추장을 얹은 그릇이 상위에 올랐는데 내 앞 자리의 L이 시범을 보인다고 내 그릇에 물을 마구 붓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대충 알아서 먹으라고 한다. 회에 맹물을 타니 맛이 그저 그렇다. 그런 상태에서 밥을 마는 사람도 있었다. 이른 바 물회덮밥이다. 회덮밥은 좋아하지만 이런 식의 회덮밥은 끌리지 않아 밥 따로 물회 따로 먹었다. 독도로 가는 배를 타기 전에 멀미약이 배급되었는데 나는 뭐가 잘 났다고 받아 먹지 않았는지… 나중 후회 막급.
독도로 가는 배는 씨플라워호. 묵호에서 타고 온 배보다 규모가 약간 작지만 400명 이상이 타는 배였다. 승객이 많지 않고 의자도 뒤로 눕힐 수 있는 각도가 커서 자리에 앉자마자 잠을 청했다. 깊은 잠에 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잔 것 같다. 깨고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뱃멀미를 안 한다고 믿고 있지만 자기 최면에 걸렸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배를 탄 적이 아주 오래된 일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지 뱃멀미를 하지 않은 것 아닌 것 같은데 왜 시건방지게 멀미약을 받지 않았을까. 곧 독도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일기가 고르지 않아 입도가 불가능하다는 방송을 했다. 결국 배 안에서 독도의 사진을 찍는 수 밖에 없었다. 갑판으로 나와 파도를 보니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파도에도 접안을 못 한다면 대체 호수와 같이 잔잔한 바다를 기대해야 된다는 말인가. 독도의 땅을 직접 발로 밟는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큰 일이지만 버스기사가 독도의 접안은 하늘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는 말을 새기며 눈으로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싱거운 독도 관광이었다. 다시 뱃길로 온 만큼 되돌아 가야 했다.
가이드가 묵호로 가는 배 시간이 바로 연결되니 일찌감치 단체가 함께 내리도록 언질을 주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두 배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정해 놓았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에게서 새로운 배표를 받았다. 짐을 간단히 하기 위해서 마가목술병을 배낭 안에 쑤셔 넣었다. L은 아침부터 술병을 따서 돌리라고 한다. 그래야 고마워 할 사람 하나 없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그 말을 흘려 들었다.
다시 승선. 이번에는 창 쪽이긴 했지만 의자가 전혀 젖혀지지 않는다. 배가 떠나기 전에 그제 묵호항을 출발하기 전에 받았던 짜먹는 멀미약을 먹었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창가에 있긴 하지만 망망대해에 보이는 것이라곤 바다뿐이라서 지루했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오면서 보던 독도에 관한 만화책의 주인이고 책을 앞 선반 위에 올려 놓고 보지 않아서 그에게 책을 빌려 완독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700하고 갤탭으로 바둑을 두었다. 그는 뭘 해도 시작하기 전에 내기를 하자고 한다. 바둑은 싱겁게 나의 완승으로 끝났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파는 것을 보고 하나 먹으려고 하다가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포기했다. 멀미가 나도 컵라면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프로그램을 만들고 함께 가이드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학포웰빙가직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