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③
* 박규수와 이항로
(가) 박규수(1807~1876):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박지원의 손자로 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근대 문물에 눈을 떴다. 특히 청이 열강에게 침략 당하는 것을 목도하며 열강의 군사적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문호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하였다(통상개국)
임술농민봉기(1862) 때에는 진주민란의 안핵사로 파견되어 민란의 원인이 삼정의 문란에 있다고 보고 그 수습책을 삼정이정에서 찾아 동년 5월 삼정이정청이 설립케 하였다.
또한 그는 비록 통상개화론자이지만 평양 감사로서 통상을 요구하며 만행을 부린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군민과 함께 불태웠다(1866).
(나) 이항로(1792∼1868): 이존귀비의 주리론의 대가로 실제 벼슬길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당대 많은 유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학자였다. 병인양요(1866) 당시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하여 외이와의 조약체결, 통상에 반대하고 침입한 적은 실력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척화주전의 상소를 올려 위정척사 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① 중상적 실학자 박제가(1750~1805)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② 박규수의 통상개화론은 유대치, 오경석 등 중인 지식인들과 공유되어 그의 사랑방에서 김옥균, 박영효 등의 젊은이들이 그의 사상을 발전시켜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④ 박규수 사후 발발한 갑신정변(1884)의 주역은 그의 문하 중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개화파 인물들이다.
⑤ 이항로 문하 유생 중 최익현(1833~1906), 유인석(1842~1916) 등이 항일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첫댓글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