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칙
미호의 깨달음을 의지해야 하는가? [米胡悟否]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달마의 제일의제를 양무제가 어리둥절해했고 정명(淨名)의 불이법문에 문수가 입을 열지 못했으니, 여기에 끼어들어 작용할 분수가 있느냐?
<본칙> 드노라
미호(米胡)가 승으로 하여금 앙산(仰山)에게 가서 "지금의 사람(今時人:本分人의 對)도 깨달음을 의지해야 합니까?"
- 일찍이 미혹했었던 것이 있는가?
하고 묻게 하니, 앙산이 대답하되 "깨달음은 없지 않으나 둘째 것[第二頭]에 떨어지는 것이야 어찌하랴?" 하였다.
- 어찌해야 면할 수 있으리요?
승이 돌아와서 미호에게 사뢰니
- 그것은 몇째 것인가?
미호가 깊이 수긍하였다.
- 긍정하기는 없지 않으나 둘째 것에 떨어짐이야 어찌하랴.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경조 미(京兆米)선사는 첫째는 미칠사(米七師)라 하고, 둘째는 미호(米胡)라 했는데 속가의 일곱째로서 수염이 가장 아름다웠으므로 이렇게 두 가지 이름이 생기게 되었으니 팔방에서 그를 주옥(珠玉)으로 여겼다. 그는 설봉(雪峰)의 법을 이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의 화두에 의거해보면 앙산과 함께 참문하여 위산의 법을 이었음을 알겠다.
그 승이 바야흐로 묻되 "예로부터의 여러 현인들이 진정한 이치를 통달했습니까?" 하니, 미호가 "통달했다" 한 것이다.
그 승이 다시 묻되 "그 진정한 진리를 어떻게 통달했겠습니까?" 하였으니, 이는 "깨달음을 의지해야 하는가?"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미호가 이르되 "옛날에 곽광(곽光)이 가은성(假銀城)을 선우(單于)에게 팔 때에 계약서[契書]는 누가 만들었겠나?" 하고 반문하니, 불과(佛果)가 미호를 일러 "큰 선지식이다. 이름이란 헛되게 전하
지 않는 법이다" 했다. 승이 이르되 "저는 당장 입이 막혀 할 말이 없습니다"하니, 미호가 이르되 "느닷없이[平地] 사람을 담보로 삼는구나!" 하였다. 이렇듯 미호는 "통달한다" 하였고 앙산은 "깨달음은 없지 않으나 둘째 것에 떨어지는 것이야 어찌하겠는가?" 하였으니, 만일 깨달음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곳에서 이르기를 스스로 긍정해야 바야흐로 친해진다 한 것은 어찌하랴?
승묵(勝默)화상이 항상 이르되 "투자(投子)는 옛 화두를 돌되 안으로 수려해서 예사롭지 않고[초(소)措] 꾸밈이 없다[無賽]" 하였다. 일찍이 이 화두를 들고는 이르되 "그러나 앙산의 이런 말이 자기의 허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일 면할 수 있다면 다시 누군가는 대단히 불평을 할 것이다. 만일 면할 수 있다면 역시 둘째 것에 떨어지게 된다. 미호도 비록 그를 긍정했으나 자기의 벗어날 길은 알고 있던가? 여러분은 점검해보라. 만일 점검해낸다면 두 사람은 사라지겠지만 만일 점검해내지 못하면 아직 경솔히 굴지 말지니라" 하고는,
다시 송하되 "푸른 산봉 위에서 그대에게 이르노니/산이 끝난 데 이르러도 머물지 말라/설사 9월의 서릿발은 면할 수 있다 해도/신령한 싹, 봄을 모르는 것에 같을 수야 있으랴!"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거니와 꽃이 핀 뒤에는 다시 바람에 흩날리리" 하노라.
남양 충국사께서 자린 공봉(紫璘供奉)에게 묻되 "부처란 무슨 뜻인가?" 하니, 자린이 대답하되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하였다. 국사께서 다시 묻되 "부처가 일찍이 미혹했었던가?" 하니, 자린이 대답하되 "미혹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국사가 다시 묻되 "그렇다면 깨달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하였는데, 자린이 대답이 없었으니, 이것 역시 본래 미혹도 깨달음도 없다는 뜻이다.
"본래 미혹도 깨달음도 없단 말씀 삼대같이 많으나 영운(靈雲)만이 작가임을 인
정하노라" 한 설두(雪竇)의 시구를 항상 사랑했거니와 깨달았다면 둘째 것에 떨어지고 깨닫지 못했다면 역시 사람들 스스로가 긍정해야 할 뿐이거니 어찌해야 좋을까? 천동에게 방편이 있으니 그의 송을 보라.
<송고>
둘째 것이여, 깨달음을 나누고 미혹을 깨뜨리리니
- 보주(普州) 사람이 도적을 끌고 가는구나!
재빨리 손을 털고 옥로와 통발[筌제]을 버리라.
- 놓아버리라.
공력이란 다하지 못하니, 육손[변拇]이가 되었고
- 끝내 분수 밖이라.
지혜란 알기 어려우니,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서臍]을 깨닫도다.
- 우(禹)임금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물 흐르는 소리만이 서쪽을 향한다.
옥토끼가 얼음소반[氷盤] 위에 늙은이 가을 이슬에 울고
- 연연하여 집착하면 감당치 못한다.
추워 떠는 새는 옥나무[玉樹]에서 새벽바람에 깃들인다.
- 주저앉으면 옳지 못하다.
앙산 큰스님께 문제를 들고 와서 진(眞)과 가(假)를 가리려 하니,
- 한 점도 속이지 못하리.
티도 흠도 전혀 없이 귀중한 백규(白珪)일네.
- 행여 건드려 깨뜨릴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둘째 것[第二頭]에 깨달음을 나누고 미혹을 깨뜨리며 밝음이 오고 어둠이 물러가며 지혜가 일어나고 번뇌가 사라지거니와 이 모두가 도중의 일이다. 『주역약례(周易略例)』에 이르되 "옥로를 만드는 뜻은 토끼를 얻으려는 데 있으니 토끼를 얻었으면 옥로를 잊어야 하고, 통발을 만드는 뜻은 고기를 얻으려는 데 있으니 고기를 얻고는 통발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말[言]이란 형상[象]의 옥로요, 형상이란 뜻[意]의 통발인데 말을 남겨두는 이는 형상을 얻은 이가 아니요, 형상을 남겨두는 자는 뜻을 얻은 자가 아니다" 하였다.
만일 둘째 것에서 이르되 "깨달음과 통달함이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한다면, 다른 곳에서 이르기를 "설사 묘한 깨달음이 있더라도 역시 토해버려야 한다" 한 것은 어찌하여야 되겠는가? 재빨리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한 물건도 없게 되어야 비로소 옥로도 통발도 버리게 되는 것이다. 공부라든가 지혜로 안다는 것 모두가 둘째 것에 속하나니, 공부가 다하고 지혜로 알려는 일도 끝나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조그만치의 기미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자(莊子)』 외편(外篇) 변무(변拇) 제8에 이르되
"발에 육손[변]이 붙은 것은 쓸모없는 살이 이어진 것이요, 손에 곁가지[枝]가 난 것은 쓸모없는 손가락이다"하고, 그 주에 이르되 "변무는 엄지발가락에 이어진 둘째 발가락이요, 가지[枝]란 여섯째 손가락이다" 하였다. 이는 공부가 다하지 못하면 마치 변무가 쓸모없는 살에 이어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춘추(春秋)』에 나오는 이야기다. 초문왕(楚文王)이 신(申)을 치기 위해 등(鄧)을 지나가는데 등기후(鄧祁候)가 이르되 "나의 생질[甥]이로다" 하고는 멈추게 하고 대접을 하였다. 추생(추甥), 염생(염甥), 양생(養甥)은 초자(楚子:초왕)를 죽이라고 청했으나 등후가 허락치 않으니 세 생[三甥]이 이르되 " 등(鄧)을 망칠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이다. 만일 서둘러 도모하지 않으면 나중의 군왕은 뉘우쳐도 소용없을 것[서제]이 다" 하였는데, 주에 이르되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이는 지혜가 이르지 못하는 곳, 지혜로도 알 수 없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토끼가 늙었다" 함은 둥근 달을 이르는 말이니, 단하(丹霞)가 이르되 "물 맑고 달 둥글 때 도인은 수심에 잠긴다" 하였고, "얼음소반", "가을 이슬에 운다" 함은 집착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황경(大荒經)』에, "곤륜산(崑崙山) 위에 낭간옥수(琅간玉樹)라는 나무가 있는데 열매를 맺으면 구슬 같으나 작다" 하였다. 『현중명(玄中銘)』에 "신령한 나무가 끝없이 우거졌어도 봉황은 의지하고 않고, 학과 함께 머무르지도 않는다" 하였으니 모두가 연정에 집착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새는 춥고 처절하더라도 뿌리나 지엽에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시경(詩經)』 억편(抑篇)에는 "백규의 티는 오히려 갈 수 있다" 하였는데, 옥 속에 있는 병을 티라 하니 바탕이 깨진 것이요, 겉에 있는 병을 흠이라 하니 색깔이 더러워졌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앙산이 진귀한 백규와 같이 티가 없어서 둘째 것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송한 것이니, 어떤 것이 첫째 것인가? 크게 깨달은 뒤에야 바야흐로 옳지 못한 줄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