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申潤福 ; 1758~?)
조선 후기의 풍속(風俗)화가로서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입부(笠父)이다.
그리고 호는 혜원(蕙園)이며 김홍도(金弘道) ·김득신(金得臣)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남종화풍(南宗畵風)의 산수(山水)와 영모(翎毛) 등에도 뛰어났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부친 신한평(申<漢枰)과 조부는 화원이었으나 그가 화원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전해진 작품에 남긴 간기(干紀)로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처네를 쓴 여인》
에 있는 1829년이 가장 하한인 바 대체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화원이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해도 직업화가로, 당시 수요에 따른 많은 풍속화를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으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한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이 전한다.
모두 30여 점으로 이루어진 이 화첩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 외국에도 잘 알려진 그림이다.
사회 각층을 망라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달리 도회지의 한량과 기녀 등 남녀 사이의 은은한 정을 잘 나타낸 그림들로 동시대의 애정과 풍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물 묘사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데, 대체로 얼굴이 갸름하고 눈꼬리가 치켜올라간 형태로 인물을 그리면서 섬세하고 유연한 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적절히 사용했다.
신윤복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 이외에도 무속(巫俗)이나 주막의 정경 등 서민사회의 풍모를 보여주는 순수한 풍속화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으며, 산수화는 담묵(淡墨)과 담채(淡彩)를 주로 사용해 참신한 감각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등 조선 말기 이색화풍의 대두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윤제홍(尹濟弘)의 화풍과 유사하다.
신윤복은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찬문(贊文)을 쓰고 자신의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을 덧 붙이고 있는데, 유교적 도덕관념이 강했던 시기에 속된 그림을 자기의 작품이라고 떳떳이 밝히는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그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탄금(彈琴)>등 6점으로 된 화첩 또한 명품(名品)이다.
아울러 초상기법으로 그린 미인도(美人圖)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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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혜원 신윤복의 풍속 화첩
어람. 최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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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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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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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또 즐감하고 감탄을 금치 못하겠네! 고맙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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