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1-10
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에스라 1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진행된 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에스라 7장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2차 포로 귀환과 신앙 회복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는 에스라의 등장과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입니다.
인도자 에스라와 그의 계보(1-5)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본문 1절은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일”이라는 말은 에스라 1장부터 6장에서 발생한 일 즉, 고레스 칙령에 의해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된 일, 방해 세력에 의해 성전 재건이 중단된 일, 다시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으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 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전이 완공된 일 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일 후에 세월이 흘러 바사 왕 아닥사스가 통치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6장과 7장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하지만 이 종이 한 장 사이에는 약 58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존재합니다. 5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바뀌었고, 시대 상황도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신실하고 선하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은 시간이 흘러 시대가 변한 상황에서도 당신의 뜻에 따라 사람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이 말씀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과 말씀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세우기 위해 에스라를 세우십니다. 본문은 에스라가 누구인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것 대신 그의 조상들을 언급하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합니다. 2절에서 5절입니다.
(2-5)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에스라를 소개하기 위해 그의 조상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이를 통해 그가 이스라엘의 첫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핵심 가문인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또한 에스라는 비느하스의 십사 대 손으로 소개됩니다. 비느하스는 아론의 손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 광야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 그들을 처단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 행동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죄악에서 건져내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는 언약을 받았습니다. 에스라의 족보를 통해 비느하스를 소개한 것은 에스라가 비스하스와 같이 죄로 오염된 이스라엘을 개혁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조상을 통해 에스라를 소개한 것은 그가 제사장과 율법 학자로서 말씀을 통한 신앙 개혁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는 일을 감당할 인물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6절에서 9절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6-9)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6절의 “이 에스라”는 가문의 조상들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이라는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은 에스라입니다. 이 에스라는 이제 과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머물게 된 징계의 땅 - 바벨론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과 회복의 상징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징계의 자리를 벗어나 회복의 자리로 돌아 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징계는 영원하지 않으며, 징계의 목적 역시 멸망이 아닌 회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그릇된 길로, 멸망의 길로 행할 때 아프지만 징계하십니다. 이 징계는 멸망을 위한 징계가 아닌 바른길로 이끌기 위한 징계, 즉 회복을 위한 징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징계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징계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그 중심에 에스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에스라에 대한 소개가 지속됩니다. 1절에서 5절까지의 소개가 에스라의 조상을 통한 소개였다면 6절은 에스라 자체를 소개합니다.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율법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일을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자로 소개됩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구한 것은 모두 왕에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한 것을 왕에게 모두 다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땅히 구해야 할 것들을 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에스라에 대한 소개를 통해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모든 일에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순간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 안에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7절에서 9절입니다.
(7-9)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하는 7년 1개월 첫째 날에 에스라는 각계각층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페르시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한 이들 중에는 느디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레위인들을 도와 봉사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귀환을 선택하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국에 돌아가 자신들이 담당해야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귀환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본문이 이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페르시아에서 출발한 에스라와 그 일행은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직선거리로 이동해도 9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또한 이전에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분명 이동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4개월간의 여정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이르니라”라고 기술할 뿐입니다. 성경이 밝히고 있지 않기에 4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위험이 있었는가! 없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는 그들을 도우심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이들과 같이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는 인생이 되길 소원합니다. 10절입니다.
에스라의 결심(10)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10절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의 결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백성들의 신앙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들의 중심이 하나님에게로 향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연구한 율법의 내용을 실천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연구하고, 실천한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에스라의 이 결단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다면 그 말씀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게 합니다.
더 나아가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눈다면 우리 삶의 자리를 바르고 건강하게 세워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러한 은총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을 위해 에스라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이라는 목적을 위해 에스라를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심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예루살렘에 심겨진 에스라는 율법 연구와 실천, 가르침의 결단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개혁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은 세속적 가치관으로 가득 채워진 곳입니다. 우리는 세속화된 삶의 터전을 하나님 나라로 새롭게 가꾸어 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모두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창문을 열고, 말씀 연구와 실천을 결심하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증인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은총 누리시길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고 왕궁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가기 위해 힘쓰는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실천하며,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매일 매일 주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율법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에스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고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무엇을 근거로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2. 느디님 사람들은 그들이 담당해야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귀환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일은 무엇이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을 위해 율법 연구와, 준행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칠 것을 결심합니다. 우리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할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정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