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8:11-17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에스더는 멸망의 위기에 처한 자신의 동족, 유다인을 구하기 위해 아하수에로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그에게 호소하며 유다인을 제거하려는 하만의 악한 꾀가 무력화되기를 청했습니다. 이에 아하수에로 왕은 간절한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그들의 동족을 구하기 위한 조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조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반지로 인쳐지게 됩니다. 왕의 반지로 인쳐진 조서는 왕의 명령을 전하는 역졸들에 의해 페르시아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지역으로 발송되게 됩니다. 11절에서 13절입니다.
왕의 조서 반포(11-14)
(11-13)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아하수에로 왕의 반지로 인쳐진 조서는 왕의 통치가 미치는 페르시아 전 지역으로 발송됩니다. 이 조서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다인은 함께 모여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라 입니다. 둘째,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는 자와 그의 아내, 자식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달월, 곧 12월 13일, 하루 동안 이 일을 진행하라는 내용입니다.
조서의 내용을 통해 유다인이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만이 페르시아 전 지역으로 보낸 유다인 도륙 명령으로 인해 온 유다인은 공포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에게 개별로 행동하지 말고 함께 모여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만의 조서만 믿고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인을 진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려 했던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도록 합니다.
아달월, 12월 13일은 하만이 조서를 내려 유대인을 도륙하도록 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날은 유다인이 도륙당하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 이스라엘을 괴롭게한 하만의 민족 아말렉이 멸절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의 조서를 통해 상황을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 당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이 없을 것만 같은 페르시아 왕궁의 중심에서 많은 민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진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실 가운데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의의 길로, 그리고 완전한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주의 길로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4절입니다.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왕의 조서가 각 지방으로 전파되는 일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이는 아하수에로 왕이 이 일을 중요하고 긴급한 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전화나 문자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 의해서 왕의 명령이 전해지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왕의 메시지가 제때 전달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보면 당시 페르시아 전 지역에 왕의 조서가 도달하는데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사랑하는 에스더, 그녀의 민족, 유다인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왕의 마음은 조급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역졸들은 이 조서를 들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지체할 수도 없고, 지체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죄의 무게에 눌려 죽어가고 있는 생명을 구원해야 할 친지와 이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허락하신 복음이 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자신의 민족 유다인이 생명 얻기에 힘썼듯이 우리들도 죄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 생명의 소식 전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5절에서 16절입니다.
하나님의 구원(15-17)
(15-16)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역졸이 조서를 들고 페르시아 전 지역으로 떠난 후 이제 시선은 모르드개에게 집중됩니다. 에스더 4장 1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하만의 조서가 공포되었을 때 모르드개는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사,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이제 베 옷 대신 푸르고 흰 조복을 입었습니다. 푸르고 흰 조복은 페르시아의 관복으로 왕실에 속한 고위 관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큰 금관을 썼다는 것은 왕을 제외하고 관료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게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또한 그는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었습니다. 자색은 당시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왕이 모르드개에게 선물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모르드개가 페르시아에서 유력하고, 존귀한 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 옷을 입고 절망의 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고 돌아보시는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구원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슬픔과 절망의 자리에 있던 모르드개를 기쁨과 소망의 자리로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슬픔과 절망의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존귀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르드개의 모습을 보며 수산 성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도 함께 즐거워하며 기뻐했습니다. 에스더 3장 15절을 보면 하만에 의해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조서가 반포되었을 때 “수산 성의 민심이 어지러웠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반면 유다인을 살리는 내용의 조서가 반포되었을 때 유다인과 특별한 관계성이 없어 보이는 타민족 사람들도 이 일에 대해 자신의 일과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두 조서에 대한 수산 성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하만의 조서가 발표되었을 때 민심이 어지러웠다는 것은 평상시 하만이 불의를 행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불의는 비단 모르드개와 유다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잠언 11장 10절에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만과 모르드개의 삶의 모습과 그 결과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과 인애를 실천하며 의롭게 살아가기를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한편, 존귀한 모습으로 등장한 모르드개의 모습은 수산 성 사람뿐 아니라 유다인에게도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노예 신분으로 바벨론에 끌려와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핍박받는 소수 민족으로 존재하던 유다인! 대적의 손에 의해 민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유다인!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억압과 슬픔, 근심의 자리에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인해 영광과 즐거움, 존귀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구원과 영광, 존귀를 얻기 위해 애쓰고 힘쓰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원하심과 영광과 존귀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으로 일구어 가야 하겠습니다. 17절입니다.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왕의 조서가 각 지방으로 안전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왕의 조서를 받게 된 유다인은 조서의 내용을 확인한 후 너무 기뻤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조서를 받은 그날 잔치를 벌이고 그날을 명절로 삼았습니다. 죽게 되었다가 살아났으니 그 기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날 진행된 잔치는 이후 재정되는 부림절과는 다른 날이었습니다. 그저 너무 기쁜 나머지 잔치를 베풀어 축하하며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 것입니다.
반면 기쁨을 누리는 유다인과 달리 이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뿐 아니라 유다인이 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는 유다인인 모르드개가 나라의 실권자로 세워지게 된 것과 유다인에게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제국의 권력자가 교체되고 유다인의 위상이 달라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이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신적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다인이 믿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서를 통해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성실하게 돌보셨고 그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인해 유다인은 죽음의 공포에서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영광과 즐거움, 존귀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 아버지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다인만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공포에 눌려있는 온 인류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우리는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선한 청지기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도화지를 아름답게 채워나가면 좋겠습니다. 비록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당신의 백성을 신실하게 돌보시고 구원의 은총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기도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민족의 위기 앞에서 도우심을 구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그들과 그들의 민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셨으며, 수치를 떨쳐 버리고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도 당신의 백성을 신실하게 돌보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만의 계략에 의해 유다인은 멸절당할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2. 왕의 조서를 전달받은 역졸은 지체하지 않고 생명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페르시아 전 지역으로 달려 갔습니다. 우리도 역졸과 같이 생명의 소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주변에 죄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며, 생명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생명의 통로 되어 살아갈 수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슬픔을 나타내는 베 옷을 입고 통곡하던 모르드개가 얼마 지나지 않아 존귀함을 나타내는 푸르고 흰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에스더 8장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생각해 보고,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정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