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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三角形(정삼각형)
작가: 이은집
다실 『아데네』가 그 시장 입구에서 생화(生花)의 축하를 받으며 문을 열은 것은,
나에게 있어서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고 있었는데 이것을 발견한 순간 야릇한 호기심의 유혹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실명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부 장치로 증명하는,
이오니아식의 세번째 기둥 옆자리에서 나는 적당히 가열된 커피를 마셨다.
실내는 개업이란 어휘가 과시하는 시위와는 달리 대여섯 명의 손님이 듬성히 자리잡고 있을 뿐 한산한 편이었다.
『개업 써비스예요.』
굽 낮은 접시에 맵시있게 깎인 풋사과 세 쪽이 가지런히 놓여 나왔다.
나는 이때 엉뚱한 사태에 당황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레지의 분명히 미소지었을 얼굴을 그만 보지 못하고 말았다.
바로 나의 의자옆에는 모래와 괴석과 수초와 실지렁이를 각기의 적당한 위치에 잘 배치한
一OOX三OX五〇㎝정도의 꽤 큰 수족관이 형광등의 하얀 인조광선을 강렬하게 받으며 있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유선형의 납짝한 얼룩 열대어 세 마리가 묘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자까지 투명하게 내비치는 암놈이 알을 내깔기자,
숫놈 두 마리가 부지런히 뒤를 쫓아다니며 뿌연 뜨물같은 것으로 알의 주위를 오염시켰다.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으나 왠지 그것은 나를 곤혹으로 몰고갔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뜻밖의 질문이 없었던들 그 곤혹에서 내가 풀려날 가망은 영영 없을 뻔 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살며시 그 낮은 음성의 진원(震源)을 따라 시선을 모두었고,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아주 치기어린 소년의 표정을 한 채 나를 빤히 내려다 보았던 것이다.
『무엇을 말씀인가요?』
어이없게도 처음의 그에게 나는 왜 미소를 보였을까?
『지금 보신 저 열대어들의 일에 대해서….』
그는 여전히 치기어린 얼굴이었으며 뱃장좋게도 내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사과 한쪽을 성큼 집어다가 기세좋게 먹어치웠다.
나는 그 사과 쪽에 나의 일부가 딸려간듯한 착각과 함께 나의 마음 한 구석이 섬광처럼 찔려왔다.
『먼저 대답해 주신다면….』
나는 차라리 신음하듯 지꺼렸으나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나머지 사과의 두 쪽마저 유유히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짓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속삭이듯 말해왔다.
『지금부터가 나의 대답이니까….』
나는 『아데네』를 나왔고 나일론 실로 망뜨듯 엮은 한 줌도 못되는 찬가고를 핸드빽에 쑤셔 넣은 후에,
당황과 경이(驚異)의 두 단어속에서 석양의 엷은 햇살을 받고 지쳐있는 도시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 나갔다.
퇴근시간인 탓으로 차도에는 좌석버스, 급행버스, 일반버스, 자가용, 영업용, 오토바이가,
인도에는 사람들이 꽉 차서 마치 방앗간의 피대위에 묻은 쌀겨처럼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사이에서 잡초처럼 무성하는 마음의 갈등을 속아내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어쩌면 혼자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앞장서 나아갔다.
한번쯤 나를 확인하는 것이 내가 기대하는 일인 줄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하는 것일까?
허지만 나는 그가 조종하는 연처럼—아니 그것은 내가 얼래를 틀어 쥐었고
그가 연이래도 좋을—그러한 혼란한 심정에 빠져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정확히 J극장의 매표구에서 두 장의 입장권을 받아내기에
좋은 위치였으며 동시에 나를 돌아다 본 것도 그곳이었다.
나는 좀더 평온하여 졌으며 푸로가 무엇인지 미쳐 보지 못했지만 확인할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층계를 여섯개 돌아 있는 삼층의 극장안에는 네번째의 상영이 진행중이었다.
나는 안내양의 빈약한 후랫쉬의 인도를 받아 그와 함께 상층의 뒷 좌석에 앉았다.
<초만원 사례>니 <개관이래의 최고 관객동원>
이라는 신문지상의 선전과는 달리 어둠이 차츰 눈에 익자 빈 자리가 여기저기 띄었지만,
나는 그러한 사실에 관심을 쏟아야 할지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의 억센 손길이 벌써부터 나의 손을 포로로 억류한 채 전혀 석방할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지만 그것은 나에게 비참한 쾌감을 불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을 끄기에 여름날 시골에서 경험했던
모깃불의 방법대로 쌩쌩한 이성의 풀을 베어다가 덮어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는 짓궂은 동네 아이들이 모깃불의 불티를 날려 화재를 낼 위험도 모르고
자꾸 덮은 풀을 거두어 내듯이 나의 불꽃을 덮은 이성을 헤집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숙달된 동작으로 나의 가장 민감한 신경이 집중된 요소를 향하여
잔인한 침략자의 기세로 점령해 들어왔던 것이다.
나는 기어히 방어력을 상실했으며 백기를 들고 나갈 마지막 병사의 차출에 부심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저 화면의 패망한 왕과 같이….
이때에 왜 그 추억이 나의 망각으로부터 화살처럼 날쌘 바람을 일으키며 가슴에 와 박혔을까?
조그만 소읍에서의 국민학교 일학년이었을 때였고, 산길을 돌아 학교에 가던 어느 봄날이었다.
너무 일찍 집에서 떠났으므로 지금 전혀 생각은 안나지만 무슨 놀이를 했었다.
그때 내가 제일 꼴찌를 했을 때 녀석은 정말이지 생각잖은 요구를 했었으며 끝내 나로부터 관철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관철은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후였다.
내가 백기를 준비했을 때 영화는 끝이 났고, 그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으며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등에 불을 켠 코로나가 그의 손짓에 앞으로 다가와서 멈추었으며,
이윽고 그와 나를 준비의 실습장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가로등은 길을 밝혀 주었고,
대문은 열려 있었으며, 주인 역시 대기상태인듯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사각형의 종이상자같은 좁은 방안에 들어섰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아데네』에서 이후로 처음 입을 열었다.
『이것이 나의 대답이야….』
나도 비로소 대꾸를 했다.
『저도 같아요.』
나는 결코 패배하기가 싫었고 나의 의식속에 도사린 저 생의 무의미를 거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분명히 역전되는 전황을 파악한 듯 낭패의 한숨을 깨물어 삼키며 다음 순간 나에게 차겁게 건네왔다.
『어둠이 고마운 때란 언제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전등의 스윗치를 향하여 몸을 일으켰다.
『지금을 제외한 모든 경우….』
단호히 부르짖으며 나는 그를 막았다.
그는 주저 앉았으며 갑자기 곡식을 퍼낸 자루처럼 기세가 꺾였다.
나는 찬찬히 그를 살폈다.
그리고 시각의 부정확성에 대하여 새로운 발견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는 결코 정상의 표준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하얀 목덜미와 기름진 머리칼과 너무도 균형잡힌 얼굴 구조로 해서,
얼마전에 백기를 들고 나갈 마지막 병사의 차출에 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여자로서 어느 정도 자부심을 만족해 온 나였지만 그와 바꾼대도 손해는 없을 것이었다.
나의 마음은 이제 잔잔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가져다 대며 부르짖었다.
<대답을 주세요. 왜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제야 그는 나를 향하여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나는 향기로운 바람과 보드라운 풀잎이 깔린 벌판을 거니는 환상을 마련했다.
나는 마구 달리고 있었으며 벌판은 한없이 넓었고, 하늘에선 이름모를 새가 우짖었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세찬 소낙비가 나의 온몸을 때렸다.
나는 흠뻑 비를 맞으며 한없이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결정적인 절망속에 내 자신이 서있다는 확증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벌써 나로부터 저 만큼에 물러나 있었고,
그의 왼편 손가락 사이에는 파고다의 뽀얀 연기가 권태롭게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오원짜리 주화가 그의 하숙집 전화기 벨을 두드렸을 때 그는 기다리기나했던 것처럼 곧 나와 주었으나,
주인 여자의 신경질 섞인 친절을 감안하여 통화는 단 한마디로 절약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구면이 된 다실 『아데네』의 이오니아식 세번째 기둥 옆자리에 앉았다.
그날과 다름없이 손님은 듬성했고 수족관의 내용물도 화목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모터장치에 의해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방울을 헤아리며 그와의 재회시간을 단축시켰다.
십분쯤 지났을 때 그가 거친 숨을 내뿜으며 도착했으니까 당연하지만
내가 공기 방울을 헤아린 것도 십분쯤 되었음에 틀림없었다.
『용케 잊지 않았었군?』
나에게 누적된 기억 한 조각을 찾아내는데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면서 그의 옅은 음성이 닥아왔다.
여인들의 수다처럼 깜박이는 네온싸인 아래에서 헤어지며,
그는 여섯자의 숫자로 이루어진 그의 하숙집 전화 번호를 일러주었던 것이다.
『네가 이것을 기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평행선처럼 영원히 교차할 기회를 잃게 되는거야.』
허지만 이 열두개의 단어가 구성하는 내용처럼 그의 어감은 감정을 내포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아직 파고다의 그 권태스런 연기에서 마취가 덜 풀렸음에 틀림없었다.
그 때문으로 하여 나는 이 무의미한 여섯 숫자를 단번에 외워버렸지만,
왜냐하면 새로운 시도가 가능성을 동반한 채 언젠가는 나를 방문할 것이라고 단정지어졌던 것이다.
『잊었으리라고 생각하셨나요?』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처럼 긴장된 나의 질문에, 그러나 그는 너무도 싱겁게 언도를 내렸다.
『그렇지 않아. 나만큼은 똑똑한 여자라 생각했으니까…. 훗훗훗!』
그의 웃음소리는 폐정을 알리는 방망이처럼 나의 머리를 때렸다.
『그보다도 그날 집에 가서 별일 없었나?』
결국 그는 초보적인 화제로서 서로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그리고 나는 어이없게도 교통비 상령의 보행위반에 걸려
파출소 순경아저씨한테 즉심 일보전에의 훈계설교끝에 풀려나왔다는
임기응변으로 어머니의 고지식한 의심을 분쇄했다는 전과를 보고했다.
허나 그것은 참으로 흥미없는 대화였다.
그의 저조해가는 눈빛에서 서론이 유도되었고, 나의 하품은 본론을 채우기에 충분했으며,
엽록소의 결핍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저 수족관의 수초는 결론을 채찍질하기에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내부의 절박한 분쟁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으며 아마 그도 폭발 일보전이었다.
결국 二五℃정도의 알맞은 기온과 촉감좋은 잔디와 너그럽게 감싸줄 숲과
조금은 슬픔을 유발시키는 달빛이 있는 곳이란 이 도시의 어디에도 없는 탓으로 해서,
또 한번 코로나와 가로등과 주인과 사각형 종이상자의 전철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러나 두번째의 시도는 좀 더 깊은 배려와 가벼운 여유속에서 설계도에의 충실을 기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처참한 환희를 감당해야 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것은 가을날 마지막 잎새의 절실한 염원과 같았다.
그의 신선한 나상(裸像)이 거리를 가까이 하고 나의 전부가 과감하게 노출(露出)되었을 때 까지만 해도
그것은 필연적인 사실로서 구체화될 것이었다.
미로에서의 탈출을 터득해버린 나였기에 또한 그도 세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츄어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는 기교로 해서 관능은 돌연히 눈을 뜨고 그 건강한 모습을 과시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의 몸에서 발산하는 땀방울이 나의 가슴을 거쳐
몇 줄기로 퍼져나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을 실감으로 확신했다.
허나 단정은 보류를 신청했으며 또 새로운 시도를 제출하며 그와 함께 나를 방문했다.
『미안! 또 실패야.』
그는 구멍뚫린 낙하산처럼 맥없이 나의 위에 불시착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자극을 주면 터져버릴만큼 나는 팽창한 고무풍선과도 같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처음이 아니지?』
이윽고 그는 전혀 내가 예기치 않은 질문을 요구해왔다.
그 순간 나는 구름속에서 비쳐 나오는 한 줄기의 햇살같은 그의 밝은 눈빛을 보았다.
그것은 이 세상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순간의 저 찬란한 보석이었다.
나는 그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참으로 오랫만에 나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오늘에 대해서까지 가능하다면 보상을 하고 싶었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는 웃음띤 얼굴로 일어앉으며 소리쳤다.
『그 얘기가 듣고 싶다!』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무수한 섬광이 여름밤의 반딧불처럼 파랗게 반짝였다.
그것은 십수년을 땅속에서 견디고 며칠 혹은 몇 달을 살기 위해 벗는
매미들의 껍질과 같은 나의 아프고도 달콤한 비늘조각이었다.
나는 국민학교때부터 읍내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끝없는 항전을 계속하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좋아하던 사람한테는 끝내 손목 한번 못잡혀보고 그 반대한테 강제로….』
『알겠어. 말하자면 너 역시 몸도 마음도 벌써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그는 오랜 방랑끝에 동지라도 만난듯 기쁨을 참지 못하며 나지막히 환성을 질렀다.
『…「아데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어.』
나는 그가 이같이 외갓집에라도 가는 소년처럼 수선스러워지는 일에 유쾌한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깊은 산속에서 한 뿌리의 산삼을 캐기 위하여 몇 날 몇 밤을 맹수와 허기와 절망과 싸우다가
뜻밖에 발견했을 때 느끼는 그러한 짜릿한 통쾌감이랄까?
확실히 그와 나는 저 안개속에 가리워 있으나 공동의 광맥을 찾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젠 내 얘길 할까?』
그는 예외적인 높은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
『난 고아야. 허지만 지나온 과거 같은 건 말하지 않겠어. 너무나 시시해.』
그의 말이 아니래도 그가 이야기하려는 촛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나로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이제껏 남성의 배역에 출연해 보질 못했어.』
허나 이것 역시 나는 스스로 해득할 수 있었고 구테어 그를 경멸의 과녁에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저 나약한 용모와 비참하리만큼 순수한 데가 있는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몰랐다.
『처음엔 무서웠지. 그러나 지금은 내 쪽에서 헤어날 수 없어.
이만하면 내가 너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나는 나를 찾고 싶어. 나에로의 탈출을 음모하려는거야.』
갑자기 그가 울상이 되는 바람에 나는 약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다음 순간 맹렬한 감동이 날개를 푸득이며 떼를 지어 의식의 조롱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때 내가 맨드라미가 시들기도 전에 철새는 허물어진 빈 집만 남기고 날아가버리듯이,
감동의 껍질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러기에 또 하나의 시도를 예비하고 다시 한번 여인들의 수다처럼 깜박이는 네온싸인 아래서
그와 나는 자연스럽게 웃음으로써 헤어졌던 것이다.
나는 오늘이 토요일이며 그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한 주일의 여섯번째 날로 기록되어 있는데도
실제로 달력에는 일곱번째로 나열돼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채 다실『아테네』의 그 자리에 나와 있었다.
나는 다만 이날의 오후 6시마다 그와 여기서 만나기로 지난 수요일에 전화조약을 체결했고
그 효력을 금주부터 발생시키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사실은 그런 이유를 골치썩이며 궁리할 의무는 없었다.
따라서 나의 시선은 구테어 예정에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수족관을 또 한번 관찰한대서 나쁜 일은 아니었다.
一OOX三OX五O㎝ 정도의 꽤 큰 직륙면체의 유리로 만들어진 안에 모래와 괴석과 수초와 열대어와 실지렁이가
사열을 받는 병사들처럼 잘 조화된 배치로 그들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첫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전기 모터에 의한 공기방울 역시 젯트엔진에서 분사하는 기체모양 꾸준한 지속으로
일말의 차질도 일으킴이 없이 호조의 콘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약속시간의 일분전에 내가 도착했으므로 분침과 시침이 일직선을 긋는 6시는 일분후에 있을 것이었다.
그는 이 시각에서 육상선수가 하얀 횟가루를 그어놓은 금에서 화약총이 터뜨려 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초조하나 현란한 긴장을 즐길 수 있다며 조약의 이유로서 나에게 제안했다.
나는 일방적인 그의 논리의 타당도(受當度) 유무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나는 항상 고적 답사의 경우에도 어느 장소에 무엇이 있다는 관광안내소의 선전에 유의하지 않고,
먼저 가서 관광하는 호기심의 유혹을 동반의 반려자로 삼아왔던 것이다.
『무얼 드시겠어요?』
대체로 이 도시의 시민들이 물밀듯 밀려다니는 수많은 차량과,
계획량의 초과달성을 획책하는 공장들의 굴뚝에서 왕성하게 뿜어내는 가스로 오염된 대기를 마셔,
허파의 산소흡수작용이 약화돼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레지는 나를 위해서도 역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커피나 홍차가 단순히 목을 추겨줄 뿐 아니라 각 세포에 그들의 게으름을 꾸짖고 좀 더 민활하게 직무를 수행하도록
공문을 전달하는 상급기관의 전통과 같은 위력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커피로….』
허지만 나에게 있어서 지금, 보다 더 큰 위력으로 압박해오는 것은
이미 시간은 6시로서 화약총이 바야흐로 공기의 진폭을 수천 싸이클로 고조시켜서
그가 출발을 위하여 『아데네』의 입구 계단에 들어서리라는 사실이었다.
레지가 예의 적당히 가열된 커피를 날라왔을 때까지,
나는 수초나 괴석의 일부처럼 미동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열대어에 시선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가 만일에 정말로 센스나 위트가 있다면 오늘은
『어떻게 안생각하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질 것이라 단정하면서….
그 이유로 나는 수족관에 묘한 작업이 중지되었으니까라면 충분한 답변이 된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예측은 충실하게 예측으로서의 의무를 마치고서 물러가고,
정반대로 시침과 분침이 포개지는 6시 32분에서 33분으로 올라가도록 그는 조약의 첫번째를 스스로 파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꼼짝도 하지않는 열대어 때문이었다.
결코 나는 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저 열대어의 미동을 확신했던 것이었다.
허나 끝내 그가 오지 않았듯이 그들도 미동을 거부하고 완강한 자세로서 나의 도전에 백기를 들 것을 권유해왔다.
『시마이 시간이 됐는데요. 그분은 아마 오늘 무슨 일이 있으신 모양이죠?』
세번째이나 조금 낯이 익어진 레지가 비극영화의 끝장면을 보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닥아왔던 것이다.
결국 나는 J극장에서 그에게 백기를 들었던 것처럼 또다시 열대어들에게도 월계관을 수여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네온싸인과 전등불이 애원하듯 떨고 있는 거리로 나왔다.
계절은 살며시 바람에 실리어 어둠을 틈타고 나의 얼굴에 와서 멈추었다.
나는 이제 가을이 짐을 꾸리고 그의 발차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떠나는 것을 전송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마치 문단속을 점검하는 주부처럼 깜박 잊었던 자신의 빗장을 잠그며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나는 바로 보도옆에서 홍등가 여인의 모습으로 서있는
공중전화 복스를 발견하자 기어이 그의 유혹에 이끌리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오원짜리의 주화는 그의 하숙집의 전화기 벨을 두드려 주었으며,
마침 오늘이 그가 하숙비를 지불하는 봉급날인 때문이라는 추측이 틀림없다면
그가 집에 부재하지 않는 한 전화를 받게 되어질 것은 명약(明若)했고 과연 관화(觀火)했다.
『많이 기다렸지? 갑자기 친구가 찾아와서…. 미안해! 내 나중에 말 할게.』
그의 약간 술에 취한 듯한 음성이 황급히 나를 찾아 왔지만 나는 싸늘하게 뿌리쳤다.
지금 제가 거기 버스종점까지 가면 통금시간이 다 될거예요. 나와주….』
미쳐 말을 맺기도 전에 저 만큼에 마침 공차임을 알리는,
등에 불을 켠 택시 한 대가 나를 재촉했으므로 나는 황급히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낮잠을 자다 놀란 토끼 모양 뛰어 나왔다.
이윽고 내가 예고를 이행했을 때 그 역시 차질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와 나는 통금시간을 충실히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양옥 이층의 그의 하숙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가 침묵을 견지한 채
형광등의 스위치를 틀지않는 이유를 깨닫는 비참한 궁지에 빠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잔인한 음모가 그의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뱀처럼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삼면의 벽과 유리창으로 차단된 방안의 공기는 그 대류의 현상에 차츰 열도를 가하기 시작했고,
나의 성감세포는 불꽃을 갈망하며 끊임없이 연소의 조건을 갖추었다.
허나 그는 끝내 부싯돌을 켜는데 또 실패하고야 말았다.
발화점에 미달된 연료는 꺼뭇하게 그을린 채 그 흉한 꼴로 나를 괴롭혔다.
그러기에 또 하나의 그가 원병의 깃발을 흔들며 정중한 조의를 표해 왔을 때,
내가 사양하리란 기대는 그 역시 전혀 고려한 바 없었음에 분명했다.
내가 뒤웅벌떼같은 그의 공세에 완전히 함락되어 처참한 비명을 지를 때에도,
그는 오히려 가장 편안한 수면을 즐겼던 것이다.
그것은 어느날 아침의 예고없는 행사였는데,
아직은 빨강 색소가 곱게 남아있는 마당가의 시들은 백일홍에도,
근대화를 채찍질하는 빌딩 공사장에도 백설은 그 정교한 장식을 유감없이 자랑했던 것이다.
나는 이 겨울의 전령(傳令)이 가져온 흐뭇한 선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요즈음 돌연한 미열과 터무니없는 음울에 잠겨 공연히 짜증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그와 나와 또하나의 그가 이루는 삼각의 묘한 교차때문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삼각형은 면적을 이루는 최소각형이었고 나의 세계란 거기에서 창조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그와 한 부대에서 근무한 전우로서 최근에 제대했다는 사실외에 더 이상 아는 바가 없었다.
허나 나는 계속해서 이 돌연하고 터무니없는 미열과 음울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토요일 6시이면 나는 『아데네』에서 그를 만났고 또다른 그와는 하숙에서 셋이 함께 만났다.
오늘도 역시 달력은 토요일임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다.
나는 이정교한 장식을 감상하며 열시간쯤으로 박두하고 있는 그와의 시간을 상기했다.
순간 나는 또 하나의 경악을 깨닫고 공포스런 환희의 전률에 가슴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미열과 음울이 마치 병사가 보초교대를 하듯 구토(嘔吐)에게 의무를 이양시켜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약보다 한시간이나 이르게 나는 『아데네』의 이오니아식 세번째 기둥 옆자리에 와 앉았다.
실내는 역시 몇 사람이 듬성했고 수족관도 그자리에서 계속 같은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헌데 나는 두 눈을 부비며 오늘의 세번째 경악을 맞이하는 불운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래와 괴석과 수초와 실지렁이는 여전한 배치로 있었는데,
열대이가 전혀 생소한 놈으로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
내가 정신없이 수족관을 응시하고 있을 때
이제는 완전히 낯이 익어진 레지가 엽차를 날라오며 상냥하게 속삭여 왔다.
『날이 추워진 걸 온도를 맞춰주지 않아 그만 몽땅 죽어버렸지 뭐예요. 새로 사왔는데,
어때요? 더 예쁘죠?』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적의 함정으로부터 필사의 탈출을 하는 환각에 눈을 감아야 했다.
이윽고 내가 눈을 떴을 때 그가 나의 옆에 와서 있었는데, 맞은편의 벽시계는 정확히 일직 선을 긋고 있었다.
『낯빛이 좋지 않은데…? 어디 불편해?』
그의 옅은 음성이 조용히 다가왔지만 나는 다시 한번 수족관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때 나는 또 한번의 경악에 강타당해야 했다.
방금 알에서 튀어나온 듯한 두 눈이 툭 불거진 새끼 열대어를 나는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법 날쎄게 물을 헤치며 수초 사이를 누볐다.
나는 이 새끼 열대어의 부유(浮游)에서 새로이 탑을 쌓는 불멸의 종교를 보았다.
생각컨대 암흑을 견디고 모색한 그것은 이제 신비의 은총을 입어 찬연히 빛나고 우쭐대고 소리치지 않는가!
나는 갑자기 섬광처럼 찔려 오는 현란한 자각에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후 나는 『아데네』를 나와서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저녁 찬거리를 사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전혀 새로운 기분으로 발을 옮겼을 때 생활과 현실이 들끊는 시장은 저 만큼에서, 언제나처럼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