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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의 고명한 의뢰인 입니다.
고명한 의뢰인 - (The Adventure of the Illustrious Client )
"이제는 괜찮겠지."
이 말이 그 때 셜록 홈즈의 의견이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에 이제부터 이야기할 사건을 공표하게 해 달라고 적어도 열 번쯤은 졸라서 겨우 승낙을 받게 된 것이다. 이라하여 가까스로 나는 어떤 뜻에서는 그의 생애 최고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는 때에 일어났던 이 사건을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홈즈나 나나 터키 탕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는 편이었다. 욕실에서 나와 휴게실에서 땀을 식히는 동안 기분좋은 피로 속에 잠겨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는 그도 얼마쯤은 입이 가벼워져 꽤 인간미를 띠게 된다.
노섬벌랜드 거리의 터키 탕 위층에 다른 곳과 묘하게 동떨어진 장소가 한 군데 있는데, 침대의자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1902년 9월 3일, 이 침대의자에 나란히 누워 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요즘 무슨 색다른 문제가 없는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뒤집어쓰고 있던 시트 사이로 길고 가느다란 신경질적인 팔을 쑥 내밀더니 옆에 걸려 있는 웃옷 주머니를 더듬어 편지 봉투 한 장을 꺼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공연히 떠들어 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생사가 걸린 문제인지 지금으로서는 여기 쓰여 있는 것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하고 말하며 홈즈는 나에게 봉투를 건네 주었다.
받아 보니 칼튼 클럽에서 쓴 것으로 날짜는 전날 밤으로 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셜록 홈즈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아직 선생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만, 편지로 나마 경의를 표합니다.
당돌한 말씀입니다만, 아주 신중을 요하는 중대사에 대해 의논드릴 일이 있어
내일 오후 4시 30분에 찾아뵙겠으니 꼭 뵐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시간을 내주실수 있는지 여부를 칼튼 클럽으로 전화해 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제임스 데멀리 경-
"물론 승낙한다고 대답은 해 놓았는데." 홈즈는 내가 돌려 주는 편지를 받으며 말했다.
"자네는 이 데멀리라는 사람에 대하여 뭔가 아는 게 있나?"
"사교계에선 꽤 이름이 나 있다는 사실뿐이지, 뭐."
"그럼, 내가 좀더 많이 알고 있는 셈이군. 신문에 나기를 꺼리는 골치 아픈 사건을 교묘하게 해결하는 데 명망이 있네. 자네도 기억하고 있을런지 모르겠네만, 해마포드의 유언장 사건에 대하여 조지 루이스경과 협의한 것이 바로 이 사람이었어. 상류 사회에 출입하는 사람치고는 타고난 외교의 재질이 있지. 그래서 오늘 의논하러 오겠다는 일도 공연히 혼자서 떠들어 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군."
"우리?"
"응. 물론 자네도 협조해 주겠지?"
"그거야 내가 부탁하고 싶은 일일세."
"그럼 4시 30분이야. 그때까지는 이 문제를 잊어버리도록 하세."
그 무렵 나는 퀸 앤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약속한 시간이 되기 전에 베이커 거리에 와 있었다. 정각 4시 반이 되자 제임스 데멀리 경이 나타났다.
제임스 경에 대해서는 새삼 여기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도량이 넓고 시원스러우며 정직한 인품에 수염이 없는 큰 얼굴, 특히 그 여유있는 쾌활한 목소리는 누가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일 테니까. 아일랜드 인다운 잿빛 눈에는 담백함이 넘쳐흐르고,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는 계속 쾌활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윤이 나는 실크햇, 검은 프록코트를 비롯하여 검은 비단 나비 텍타이에 꽂은 진주 핀, 번쩍거리는 구두 위에는 보랏빛 각반 등 세밀한 곳까지 빈틈없이 갖추었으며, 그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기에도 위대한 귀족이 들어왔으므로 우리의 작은 방은 압도되는 듯 했다.
"아아, 역시 왓슨 박사도 함께 계셨군요." 그는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홈즈 선생, 상대방은 폭력쯤은 예사로 알고 어떤 일에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므로 왓슨 박사의 협력이 많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이 넓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인물은 달리 없을 겁니다."
"말씀하시는 대로 그렇게 유쾌한 인물이라면 나도 몇 사람 상대로 한 경험이 있습니다." 홈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으십니까? 그럼, 실례하고 담배를 좀 피우겠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인물이 죽은 모리어티 교수나 아직 살아있는 세바스찬 모런 대령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면 분명히 상대로 삼을 만 합니다.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구르너 남작 이라는 이름을 들으신 일이 있으신지요?"
"오스트리아의 살인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데멀리 대령은 웃으면서 염소 가죽 장갑을 낀 두 손을 들고 말했다.
"무슨 일이고 당신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홈즈 선생은 그 사람이 살인지라는 것도 이미 아시고 있군요?"
"대륙의 범죄 사건을 상세히 조사해 두는 건 내가 꼭 해야 할 일이지요. 그 프라하 사건의 기록을 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범행이라고 믿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겨우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쟁점이 순수한 법률적 기술 문제였다는 것과, 증인 중의 한 사람이 의문을 남기고 죽었기 떄문입니다. 그의 아내는 쉬프뤼겐 고개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 때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가 손을 써서 죽인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 눈으로 본 거나 다름없이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가 영국에 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머지 않아 내가 그 사람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 구르너 남작이 무슨 짓을 했다는 말입니까? 설마 옛날의 비극 문제를 여기서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더 중대한 문제입니다. 어쨌든 범죄는 일어난 것을 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미리 방지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홈즈 선생, 끔찍한 문제-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진 것을 보면서, 더구나 그 결과를 명백히 내다보면서, 그것을 방지할 수 없다면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대리로 온 어떤 인물에 대하여 호의를 가져 주시겠지요?"
"당신은 중개자로 오신거로군요? 본인은 누굽니까?"
"홈즈 선생, 그 점만은 너무 책망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명얘있는 이름은 이야기 도중에 나온 일이 없노라고 돌아가서 보고하게 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제가 난처해집니다. 그 사람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훌륭하고 의협적인 것이지만, 이름은 알리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렇다고 보수에 대해서 번거롭게 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행동의 자유를 조금도 속박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의뢰자는 누구이건 상관이 없다고 보는데요?"
"참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나는 비밀은 한쪽 끝에만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양쪽에 있게 되면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됩니다. 죄송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사건을 맡을 수 없습니다."
손님은 몹시 당황했다. 그 크고 예민해 보이는 얼굴이 곤혹과 실망으로 어두워졌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당신은 모르시는 것 같군요. 덕분에 나는 중대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어쨌든 여기서 내가 사실을 털어놓게 되면 홈즈 선생으로서도 기꺼이 받아 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허용된 범위 안에서 사정을 말씀드리겠으니 들어 주시겠습니까?"
"듣고말고요, 그로 인해 내가 아무 구속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우선 먼저 선생은 드 멜빌 장군을 아시겠지요?"
"카이버 고개로 유명한 드 멜빌 장군 말씀입니까? 그 사람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딸이 하나 있습니다. 바이올렛 드 멜빌이라고 하면, 돈이 많고 젊고 아름다우며 재치가 있어서 어느점으로 보나 나무랄 데없는 아가씨입니다. 우리가 지금 악마의 손아귀에서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이 사랑스럽고 순진한 아가씨입니다."
"그럼, 구르너 남작이 그 아가씨의 약점이라도 잡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여성에게 있어선 가장 강력하게-사랑의 힘으로 이끌고 있는 겁니다. 이미 듣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은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호인인데다, 로맨틱하고 달콤한 면을 갖추고 있습니다. 듣는 바에 의하면 그 사람은 어떤 여자건 마음대로 자기 일에 이용할 수 있다더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어떻게 바이올렛 드 멜빌 양과 같은 신분의 여자를 가까이 할 수 있었을까요?"
"지중해를 요트로 여행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회원은 모두 가려뽑은 사람들이었지만, 회비는 각자 부담하는 것이었으므로 말하자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주최자는 물론 남작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참가를 받아들였는데,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지요.
그 악한은 그 아가씨를 따라다니며 마참내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열중한 모습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할까요, 무엇에 정신을 빼앗긴 듯 그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형편입니다.
나쁜 평판이 나돌고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도무지 듣지 않는 겁니다. 마치 미친 것 같은 상태라서 어떻게든지 눈을 뜨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아무튼 요점만 말하면, 다음달에는 그에게 결혼 신청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 아가씨도 이제는 성년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니까 도저히 손을 쓸 도리가 없습니다."
"그 여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남작의 사건을 알고 있나요?"
"어쨌든 교활한 사람이니까 좋지 않은 과거 중에서 세상에 알려진 부분만은 숨김없이 아가씨에게 털어놓은 모양인데, 다만 어느 것이나 다 자기에겐 죄가 없으며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교묘하게 말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그 말을 완전히 믿어도, 옆에서 뭐라고 말해도 전혀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거 참, 난처하겠군요. 하지만 덕분에 의뢰자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다름 아닌 드 멜빌 장군이군요?"
방문객은 의자에 앉은 채 망설이는 듯 몸을 움찔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긍정하여 선생을 속이기는 쉬운 일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드 멜빌 장군은 반쯤 병자입니다 .강직하고 씩씩한 군인도 이번에만은 기가 죽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인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만은 낙심을 하여 한낱 늙은 노인이 되어 버려서 그 오스트리아 인처럼 재치있고 유력한 악한을 밀어 낼 힘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나에게 의뢰한 이는 장군과 오랜 친분을 맺어 온 사이일 뿐만 아니라, 그 아가씨가 어렸을 때부터 친자식처럼 귀여워해 주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일과 같은 비극을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둘수는 없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경시청을 찾아갈 문제도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께 부탁하자고 말을 꺼낸 것은 그분입니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자기 이름은 절대로 밝히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인지는 물론 선생의 위대한 실력을 발휘하면 문제없이 알아 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만, 이것은 명예에 관한 문제이니 부디 그것만은 입 밖에 내지 말아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바입니다."
홈즈는 들뜬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일이라면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사건 그 자체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게 되었으니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연락을 취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저는 늘 칼튼 클럽에 있습니다. 만일 급한 일이 있을 때는 X31이 저의 전화 번호이니 연락해 주십시오."
홈즈는 기록 노트를 무릎 위에 펴 놓더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구르너 남작의 현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킹스턴에서 가까운 배든 롯지라는 큰 집에 살고 있습니다. 좋지 못한 데 투기를 해서 한몫잡은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적수로 삼으면 아주 골치아픈 사람입니다. "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 외에, 그 사람에 대해 해 주실 말은 없습니까?
"사치를 좋아하는 사나이로 승마가 취미입니다. 한때는 헐링검의 폴로에 몰두했었는데, 그 클럽 사건으로 소문이 자자해지자 물러나야만 했으므로 지금은 고서와 그림 수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예술적인 재질로 상당한 모양입니다. 중국 도지기에 대해서는 정평있는 권위자로, 그 방면에 대한 저서도 있습니다.?
?복잡한 성격이군요. 대범죄자는 모두 그런 법입니다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찰리 피스는 바이올린의 명수였고, 웬라이트도 가볍게 보아넘길 수 없는 예술가 였습니다. 그밖에도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만....그럼, 이만 돌아가 보시지요. 내가 구르너 남작을 상대로 뛰어 보겠다목 하더라고 의뢰인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밖에는 지금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나도 문의해 볼 만한 곳이 몇 군데 짐작이 가니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손님이 돌아가자 홈즈는 오랫동안 나의 존재마저 잊어 버린 듯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더니,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왓슨, 자네 의견은 어떤가?"
"글쎄, 우선 그 여자를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군."
"무슨 말인가. 병자가 되다시피한 늙은 아버지가 설득을 해도 안된다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아 가서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다. 하기야 다른 방법이 다 소용없게 된다면 자네 말대로 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처음에는 아무래도 다른 방향에서 손을 대야겠지. 우선 신웰 존슨이 도움이 될 것 같군."
나는 홈즈의 사회 활동 중에서 후기의 것은 지금까지 그다지 붓으로 옮긴 일이 없었으므로 시누엘존슨의 일을 회상록에서 취급할 기회가 없었다. 이 사나이는 금세기(20세기) 첫 무렵부터 홈즈에게 있어 아주 유력한 조수였던 것이다.
존슨은 유감스럽게도 최초에는 아주 위험한 악한으로 이름을 날렸고, 파크허스트 감옥에도 두 번이나 들어갔었다. 그런 뒤 개심하여 홈즈와 손을 잡은 것이며, 런든의 암흑 사회에 그의 하수인으로 파고 들어가 정보 수집을 해 왔다. 이렇게 하여 얻은 정보가 치명적인 효과를 올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것이 만일 경찰의 첩자 였다면 곧 탄로가 났겠지만, 그가 관계하는 것은 언제나 직접 법정에 올려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료들도 그의 활약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두 번이나 감옥에 들어간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는 어떤 나이트 클럽이나 싸구려 하숙집이나 도박장등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관찰력이 날카로워서 머리의 움직임이 빠르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해 오는 첩자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셜록 홈즈가 지금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인 것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본업인 의사일이 바빠서 곧바로 활약하기 시작한 홈즈와 행동을 같이할 수 없었으나, 미리 약속을 하여 그날 밤 심프슨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바깥 창문가에 있는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스트랜드 거리를 흘러가는 사람들의 무리를 내려다보며 그는 그 날의 경과를 말해주었다.
"존슨은 지금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암흑 사회의 한 구석에서 뭔가 알아 내 올지도 몰라. 남작의 비밀을 알아 내려면 무엇보다도 죄악의 근본을 찾아야 하니까."
"하지만 이미 알려진 남작의 나쁜 소행도 바이올렛 양이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비록 자네가 아무리 새로운 사실을 알아 냈다 하더라도 그 여자의 결의를 번복시킬 만한 힘은 없을 걸세."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여자의 마음은, 감정이나 이성이나 모두 남자로서는 풀기 힘든 수수께끼야 .살인자를 용서하는가 하면, 하찮은 일에 마음을 아파하는 일도 이거든. 구르너 남작도 말한 일이 있지만...."
"뭐라고! 남작과 말해 본 일이 있나?"
"응. 나의 계획을 아직 말하지 않았었군, 왓슨. 나는 그 사나이하고 직접 부딪쳐 보고 싶었었네. 마주앉아 눈과 눈을 마주보며 어떤 재료로 이루어진 사나이인지 친근감을 갖고 살펴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존슨에게 지시를 한 뒤 마차를 알려 킹스턴으로 찾아갔는데, 남작은 아주 상냥한 사람이었어."
"자네라는 것을 알던가?"
"알고말고가 없지. 명함을 내놓고 면담을 부탁했는걸. 상대방에게 부족한 점은 없었네. 얼음같이 냉정하고, 목소리도 아주 점젆더군. 꼭 자네와 같은 의사들에게서 인기있는 사람들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코브라처럼 독기있는 녀석이야. 그는 소질이 있더군. 겉으로는 오후의 차라도 마시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속에는 지옥의 잔인성을 간직하고 있어. 그야말로 진짜 범죄 귀족이지. 나는 아델버트 구르너 남작에게 주목하기를 잘했다고 기뻐하고 있는 참일세."
"상냥하다고 했지?"
"잡힐 듯한 쥐를 보고 골골 소리를 내는 고양이 같다고나 할까. 그런 사나이의 상냥함은 우악스러운 사람의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지. 우선 인사법부터가 특색이 있더군. '조만간 뵐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야. 그리고는 '아마 드 멜빌 장군의 의뢰로 바이올렛양과 저의 결혼을 막으려고 오셨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고 말하더군.
그래서 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그랬더니 미리 말문을 탁 막으려는 듯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것은 애써 얻은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게 될 뿐입니다. 이것만은 당신에게 맞는 문제가 아닙니다.헛수고일 뿐 아니라 오히려 어떤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곧 손을 떼도록 강력하게 충고드리는 바입니다.'
'그거 참, 묘한 일입니다. 그것과 똑같은 말을 나도 당신에게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당신의 두뇌에는 이미 탄복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처음 뵙는데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겠군요. 그래서 남자 대 남자의 이야기로 말씀드리는데, 지난일을 들춰내서 부당하게 당신을 불쾌하게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 끝난 일이고, 당신 역시 발 밑이 어두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이 끝까지 이 결혼을 고집하신다면, 유력한 반대자가 사방에서 일어나 당신은 결국 영국에 있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버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경우엔 잠자코 그 여자에게서 손을 떼는 것이 현명합니다. 당신의 과거를 그 여자가 알게 되면 좋지 않을 테니까요.'
그 남작은 코밑수염-포마드를 발라 빳빳하게 만들어 마치 곤충의 짧은 더듬이 같았는데-을 쫗긋거리며 자못 재미있다는 듯이 듣고 있더니, 마침내 조용히 웃으며 말하더군.
'웃어서 미안합나다만, 당신이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마치 손에 카드도 쥐지 않고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우스워서 못 견디겠군요. 이것만은 교묘하게 해낼 말한 사람이 없으리라고 보고는 있지만, 어쨌든 다소 비장한 데가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렇다할 비결은 없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주 하찮은 카드뿐이잖습니까.'
'진심으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사실을 분명히 말해드리지요. 나는 좋은 방법이 강구되어 있으니까 보여드려도 상관없습니다. 다행히 나는 그 여자의 사랑을 완전히 얻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과거의 불행한 사건을 다 털어놓고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또 머지 않아 어디서 심술궃은 마음이 있는 자가-자신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나타나서 그 말을 과장해서 지껄이게 될 테니, 그 때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면 되리라는 것도 다 말해두었습니다.
당신은 최면술의 후속 암사에 대한것을 들으셨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아시겠군요 .개성이 강한 사람은 비속한 안수(按手)나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아도 최면술을 걸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당신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면 틀림없이 만나 줄 겁니다. 왜냐한면 그 여자는 아버지의 말씀에 아주 고분고분하니까요-단 한가지 작은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런 식이었네, 왓슨. 이렇게 되면 도저히 말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되도록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 없이 물러나려고 했는데, 문고리에 손을 대는 순간 남작이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런데 홈즈 씨, 프랑스의 탐정 르블랑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도?'
'몽마르트르에서 아파슈(파리 시내의 건달)의 습격을 받아 평생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상한 우연의 일이지만, 그 사람은 1주일 전부터 나의 신변을 조사하기 시작했었습니다. 홈즈 씨도 그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는 것을 안 사람도 한둘이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는 대신 나에겐 나의 길을 택할 수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이것이 당신에게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말히지 뭔가.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네."
"험악한 사람 같군."
"굉장히 험악한 사나이야. 위협적인 말에 꼼짝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입으로 말하는 그 이상의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자니까."
"꼭 간섭을 해야 할 일인가? 그가 바이올렛 양과 결혼하면 그렇게 난처해지는 일이 있는가?"
"그가 전처를 죽인 것이 사실이라면 결혼하게 되면 큰일이지. 그리고 의뢰자가 부탁 하는 일이니만큼 왈가왈부할 것이 못되네. 자아, 커피를 마시고 함께 우리 집에 가보세. 틀림없이 기운이 펄펄한 신웰이 보고를 가지고 와 있을 테니까."
가보니 과연 큰 몸집에 천해 보이는 불그레한 얼굴의, 마치 괴혈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사나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생기 있는 검은 눈만이 교활한 속마음을 얼굴에 나타내고 있었다. 자신있는 세계에 숨어들어 갔다온 듯, 그 증거를 옆의 소파에 앉혀 놓고 있었다.화사하고 불타는 듯한 젊은 여자이다. 파리한 정열적인 젊은 얼굴이긴 하지만 죄악과 비탄의 생활에 지쳐서 문둥병을 앓은 듯한 흔적마저 남아있는, 오랫동안 거친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이 여자는 키티 윈터 양입니다." 하고 신웰은 두툼한 손을 흔들며 소개했다. " 이 여자가 글쎄-아니, 그건 본인이 말하겠지요. 나는 지시를 받은 지 한 시간되 못되어서 이 여자를 찾아냈습니다."
"나를 찾는 일이야 누워서 떡먹기지요. 이 지옥 같은 런던에서 나간 일이 없는걸. 그 점은 뚱뚱이 신웰과 마찬가지예요. 나는 이 뚱뚱이하고는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예요. 안 그래요, 뚱뚱이? 하지만 나는 말하겠는데, 세상에 정의 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보다 더 깊은 지옥으로 빠져야 할 사람이 있어요. 바로 그 사람이지요? 홈즈 선생이 뒤쫓고 있는 사람은?"
홈즈는 싱긋이 웃으며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줄 의향이 있는 모양이지요?" 하고 말했다.
"그놈을 제 갈 곳으로 쳐넣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일이든 기꺼이 하겠어요." 여자는 아주 무서운 기세로 말했다.
그녀의 결의에 찬 흰 얼굴롸 번쩍이는 눈초리에는 무서운 중오가 깃들어 있었다. 남자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물어볼 것도 없어요. 아니, 이 자리에서만이 아니예요.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아델버트 구르너 떄문이니까요. 그놈을 요절낼 수만 있다면!!" 여자는 허공에 덤빌듯이 쥐어뜯으며 두 손을 들고 계속 말했다. "그 녀석이 계속 여자를 밀어 넣은 그 지옥 속으로 쳐넣을 수만 있다면!"
"사정은 알고 있겠지요?"
"뚱뚱이 신웰에게서 들었어요. 또 바보같은 여자의 뒤를 쫓아다니며 결혼하자고 한다면서요? 그것을 못하게 하고 싶은 거지요? 즉 선생은 그 귀신 같은 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양가집 딸이 제정신으로 그놈과 목사님 앞에 서려는 것을 막아보자는 말씀이지요?"
"제 정신이 아닙니다. 사랑에 빠져 거의 미치다시피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일에대해서 거의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도 개의치 않는 겁니다."
"살인자라는 것도 말인가요!"
"네, 알고 있습니다."
"어머나, 강심장이군요!"
"헐뜯는 말인줄 알고 상대하려 들지 않는거지요."
"증거를 들어대어, 눈을 뜨게 할 수 없나요?"
"그렇게 할테니, 도와주시겠습니까?"
"바로 내가 좋은 증거가 아니겠어요? 내가 만나 어떤 꼴을 당했는지 직접 말해 주면......"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해주겠느갸고요? 물론 해야지요!"
"분명히 해볼 만한 값어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나쁜 짓을 이미 다 고백하고 그 여자의 용서를 받고 있는 터이므로, 그런 이야기는 믿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말입니다....."
"그놈이 아직 하지 않은 말을 알려주겠어요. 살인자라고 세상에서 떠든 일도 그 한가지이겠지만, 그밖에도 내가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고 있는 일이 한두 가지 있어요.
언젠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간지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더니 시치미를 뚝 떼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 자의 목숨도 한 달 밖에 안 남았군' 하고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어요-어쨌든 그 무렵은 그에게 푹 빠져 있었으니까요. 지금의 그 어리석은 여자처럼 그가 하는 일이 모두 좋게만 보였었지요.
그러다가 그만 그가 실수를 하고 말았지요. 그 때 그의 거짓말에 속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그 밤 안으로 도망쳤을텐데.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책-갈색 가죽표지에 자물쇠가 달려 있고 겉에는금으로 그의 문장이 들어있는 책이예요. 그날 밤은 술이 좀 취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는 그런 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을 리가 없어요."
"그게 무슨 책입니까?"
"홈즈 씨, 그는 여자를 수집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나비나 나방을 수집할텐데 그는 여자 수집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던 거예요. 그 수집첩이었어요. 스냅 사진을 붙여 놓고, 이름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상세히 써넣었더군요. 정말 더러운 놈이예요.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도 어찌 그런 것을 만들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아델버트 구르너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어요. 구르너 때문에 몸을 망친 영혼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할 만한 거예요. 하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책도 아니고, 비록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구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 남자와 헤어진 지 1년이 넘었어요. 그 무렵엔 그가 늘 놓아 둔 곳을 알고 있었지만....모든 일에 아주 훌륭하고 깔끔한 남자라 어쩌면 지금도 안쪽 서재의 헌 책상위에 놓여있는지도 모르지요. 그 사람의 집을 알고 계신가요?"
"서재에 들어가 본 일이 있습니다."
"어머나, 그래요? 오늘 아침에 일을 시작한 셈치고는 수배가 그리 느린 편은 아니군요. 아델버트도 이번엔 마음을 놓지 못할 거예요. 바깥쪽 서재는 중국의 도자기르 장식한 방으로 창문과 창문 사이에 큰 유리 선반이 있는데, 그곳 책상뒤의 문 속이 안쪽 서재지요. 그곳은 작은 방이지만, 그는 여러가지 서류를 거기다 넣어 둔답니다."
"도둑을 두려워하고 있나요?"
"아델버트는 그렇게 겁쟁이가 아니예요. 아마 사이가 나쁜 상대방이라도 그 말만은 부인하지 않을 거예요.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수 있어요. 밤에는 경보기가 있고, 그리고 도둑이 노릴 만한 물걸도 없어요. 있는 것은 진기한 도자기 정도이니까요. "
"그런 것은 함부로 훔칠 수 없지." 신웰 존슨은 자못 전문가답게 말했다. "녹여 버릴 수도 없고, 그대로는 물론 팔릴 것 같지도 않은 그런 물건을 어느 장물아비가 사 주겠어!"
"그건 그래." 홈즈가 말했다. "그럼, 윈터 양. 내일 저녁 5시에 다시 한 번 이리로 와 주지 않겠습니까? 그때까지 당신이 말한 그 여자들을 만나 볼 방법을 강구해 볼까 합니다. 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의뢰자도 사례해 대해....."
"그만두세요, 홈즈 씨. 나는 돈이 필요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를 진창 속에 빠뜨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진창 속에 빠진 그의 보기 싫은 얼굴을 구두로 짓밟아 주고 싶어요 .그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내 일만이 아니라, 선생님이 그를 상대로 하시는 한, 언제든지 도와드리러 오겠어요 .내가 있는 곳은 이 뚱뚱이가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하고 헤어진 뒤 다음날 밤까지 나는 홈즈를 만나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스트랜드의 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그 자라에서 내가 그녀와 만난 데 대한 이야기를 묻자 그는 목을 움츠리며 이야기 해 주었다. 단 그의 말투가 아주 무미건조하여 실제 대화에 맞지 않는 점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부드럽게 옮겨 쓰도록 하겠다.
"쉽게 만날 수는 있었네. 왜냐하면 이번 약혼으로 빚어진 현재의 불화를 메우기 위해 모든 것을 2차적인 일로 돌리고 자식으로서의 절대적인 복종을 기꺼이 이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장군으로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있었고, 윈터 양도 약속대로 와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노장군의 집이 있는 버클리 거리104번지에서 마차를 내린것은 5시 반이었어. 아주 낡아 보통 교회는 발치에도 가까이 못 올 정도의 저택이었지. 사람이 나와서 노란 커튼을 친 큰 객실로 안내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 여자가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군. 아름다운 모습의, 파리한 얼굴을 한 가까이 하기 어려운, 마치 산 위에 있는 눈사람처럼 사귀기 힘든 여자야.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나로서는 그녀의 모습을 분명히 설명할 수 없지만 사건이 처리될 때까지 자네도 만날 기회가 있을 테니까 모든 것은 자네의 글재주에 맡기겠네. 분명히 미인은 미인인데, 계속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는 광신자적이고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아름다움이었어. 중세의 명인이 그린 그림에서 가끔 본 일이 있는 얼굴이야 .그처럼 짐승 같은 자가 어떻게 그런 여자에게 마수를 뻗쳤는지 짐작도 안 가지만, 신성한 것과 가축류, 야인과 천사라는 식으로 극과 극은 서로 끌어당기는 데가 있는 모양이지.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극단적인 것은 없다고 보네.
그녀는 물론 우리가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었네. 그 악한이 일찌감치 우리에 대해서 말해두었기 때문이야 .윈터 양이 찾아온 데는 조금 놀란 모양이었는데, 마치 경건한 수녀원 원장이 문둥병 환자를 맞이하듯 우리를 각기 자리로 안내하더군. 자네도 거만해지려면 바이올렛 드 멜빌을 보고배우면 될 걸세.
'잘 오셨습니다.' 그녀는 마치 얼음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차갑게 말하더군. '성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찾아오신 것은 약혼자 구르너 남작을 비방하기 위해서이겠지요? 내가 여러분을 만나 보기로 한 것은 아버지의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려둡니다만, 무슨 말을 들어도 나의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가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 더욱이 딸 같은 생각까지 들었네. 나는 그다지 웅변적인 편은 못되잖는가. 감정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머리로 말을 하지. 그러나 이때민은 나의 성격으로 보아서 최대한의 다정한 말로 그녀를 설득했네. 결혼한 뒤에야 비로소 남자의 성품을 깨닫게 되는 여자의 입장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가를, 피로 더럽혀진 손과 호색적인 입술로 달래는 대로 참고 살아 가야 하는 여자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아듣도록 말했네.
무슨일이건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네. 모욕, 공포, 고민, 절망-이 결혼이 지니고 있는 모든 예상되는 바를 말해 주었지. 그러나 아무리 입이 아프게 말해도 그녀의 상아 같은 볼에는 핏기조차 비치지 않았고 꿈을 꾸는 듯한 두 눈에는 아무런 감동도 나타나지 않더군. 나는 새삼 그 악한이 말한 후속암시가 얼마나 강한지에 놀랐네. 그녀는 높은 하늘에서 황홀한 꿈 같은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더군. 더구나 그녀의 대답은 분명한 것이었네.
'꽤 참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나의 마음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델버트는 상당히 변화가 많은 길을 걸어왔으므로 남들에게서 심한 미움과 부당한 악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사람의 욕을 하고 갔습니다만, 그것도 이젠 당신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신은 돈으로 고용된 탐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에 따라서 남작 편을 들 수도 있는 분이겠지요.
어쨌든 나는 그 분을 사랑하고 있고, 그분도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세상에서 뭐라고 한들 창문 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주세요. 그분의 높은 품성이 비록 한때나마 흐려지는 일이 있다면, 그 구름을 몰아내고 참된 진가를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데리고 간 여자 쪽을 바라보며 "이 젊은 부인은 누구이지요?"
하고 묻더군.
재가 그 말에 대답을 하려고 하자 윈터 양은 마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퍼부었네.
'누구냐고요, 그것은 내 입으로 말하지요." 그녀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격정으로 입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남자의 정부였어요. 그 남자에게 걸려들어 마음껏 희롱당한 뒤 쓰레기통에 버려진 몇백 명의 여자 가운데의 한 사람이지요. 보다마나 그렇게 될 터이지만. 당신은 쓰레기통 속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무덤 속이 되겠지만, 그러는 편이 좋을 거예요. 내가 말해 두지만,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날이면 그로서 마지막이예요. 틀림없이 죽게 될 거예요. 가슴이 빠개지게 하든가, 목뼈를 부러뜨리든가, 그것은 그 남자가 결정해 주겠지요.
이런 말을 하는건 당신이 좋아서가 아니예요. 당신 같은 사람이 죽든 살등 내가 알 바가 아니지요. 다만 남자가 미울 뿐이예요.화풀이로나마 그가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해서 꺠닫게 해주고 싶을 뿐이예요.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당신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 없어요. 아가씨, 당신도 어느 날 문득 눈을 뜨고 보면, 지금의나보다도 훨씬 타락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그러자 드 멜빌 양은 '여기서 그런 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하고 냉정하게 말하더군. '단 한 마디만 말해 두겠는데, 그 분의 생애에는 세 시기가 있어, 어떤 시기에 음모가 있는 여자와 관계를 가졌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만일 무슨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습니다.'
'흥, 뭐가 세 시기야! 정말 구제할 수 없는 바보로군!' 이렇게 외치는 윈터 양의 말에 '홈즈 씨,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하고 그녀는 점점 더 쌀쌀해졌네. '당신을 만나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습니다만, 이 부인의 광란된 소리까지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듣지 윈터 양은 무섭게 덤벼들었네. 그때 내가 손목을 잡아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미운 상대의 머리를 미친 듯이 쥐어뜯었을 것일세.
나는 다행히도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전에 그녀를 마차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었다네. 정말 행운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지. 왜냐하면 그녀는 화가 나서 미친사람 같았기 때문이야. 나 자신도, 동요하지는 않았지만 꽤 분개했어. 애써 구해 주려는데 드 멜빌양은 아주 쌀쌀하고 무관심하게 굴었으며, 얕잡아 보는 듯한 공손한 태도를 보인 것이 말할 수없이 불쾌했기 때문이야.
이젠 자네도 지금까지의 경과를 다 알았겠지만, 말할 것도 없이 이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지. 그런데 왓슨, 아무래도 필연적으로 자네의 도움을 받아야 할테니까 자네와 연락을 취해야겠네. 특히 이번에는 저쪽에서 승부를 겨뤄오리라고 보니까."
과연 그러했다. 저쪽에서-설마 비밀리에 그녀가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아델버트 구르너가 승부르 걸어 왔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신문팔이가 들고 있는 플랭카드를 볼고 영혼까지 공포에 떨던 그 지점을, 지금도 이곳이라고 분명히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랜드 호텔과 체링 크로스 역의 중간에 외다리 신문팔이가 저녁 신문을 팔고 있는 장소가 있다. 날짜는 앞서 적은 그 대화가 있은 지 이틀 뒤의 일이었다. 노란 종이 위에 시커멓게 무서운 말이 적혀 있었다-
셜록 홈즈 씨 괴한의 습격을 받다.
그것을 보고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 멍청히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빼앗듯이 신문을 낚어챘던 일, 값도 치르지 않고 빼앗았으므로 신문팔이에게서 좋지 않은 말을 들었던 일, 돈을 치르자마자 약국 앞에 서서 신문을 펼쳐들고 그 기사를 정신없이 읽었던 일 등을 두서없이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때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사립 탐정 셜록 홈즈 씨가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아직 상세한 소식은 알 수 없으나, 어젯밤 12시쁨에 일어난 사건으로, 장소는 리벤트 거리의 로얄 카페 앞이다.
가해자는 단장을 든 2인조의 사나이로 홈즈 씨는 머리를 비롯해 여러 군데를 구타당하거나 찔렸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부상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한다.
사건 직후, 홈즈 씨는 곧 챠링 크로스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본인의 희망으로 베이커 거리에 있는 자택으로 옮겨 치료중이다. 목격자에 의하면, 가해자는 차림새가 수상쩍은 사나이였다고 하며, 모여든 구경꾼들을 헤치고 로얄 카페 뒷거리인 글래스하우스 거리 쪽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범인은 평상시 홈즈 씨의 명민한 활동에 괴로움을 받던 일당일 것으로 경찰은 짐작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읽고 내가 곧 영업용 마차를 집어타고 베이커 거리를 향해 달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가보니 유명한 외과의사 레슬리 옥쇼트 경이 홀에 있고, 그 사람의 마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말살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칼에 찔렸고, 머리에 열상이 두 군데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군데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몇 바늘인가 꿰맸습니다만 모르핀 주사를 놓았으니까 그대로 안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몇 분 동안의 면회라면 구태여 금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그의 허락을 받은 나는 어둑한 방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환자는 완전히 눈을 뜨고, 가라앉은 듯한 낮은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해를 가리는 커튼을 4분의 3쯤 드리웠는데, 햇살 한줄기가 비슴듬히 흘러들어와 붕대 감은 홈즈의 머리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머리를 감싼 붕대 사이로 빨간 피가 스며나왔다. 나는 머리맡에 걸터앉아 그를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괜찮아, 왓슨. 그렇게 겁먹을 것 없어. 눈에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아."
그는 힘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군."
"자네도 알 듯이 나는 봉술을 얼마쯤 하네. 방위에만 한껏 힘을 기울여 왔지만, 둘이서 덤벼드는 바람에 당한 거야."
"내가 해줄 일이 있으면 사양 말고 말해 보게. 물론 그 녀석이 한짓이야. 자네가 괜찮다고만 하면 나는 그를 찾아가 낯가죽을 벗겨주고 싶네."
"왓슨,고맙네. 그러나 경찰이 개입해 주지 않는 한 우리의 힘으로만은 어쩔 수가 없네. 가해자의 도주로는 아주 잘 준비되어 있었네. 그들은 미리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 기다려 주게. 나에게도 생각이 있네. 우선 먼저 할 일은 나의 부상을 과장해서 1주일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라느니, 뇌진탕이라느니, 의식이 없다느니 하고 터무니 없는 말을 퍼뜨리는 것일세. 왓슨, 더 심하게 말해도 상관없네."
"하지만 레슬리 옥쇼트 경이 있잖은가."
"그 사람은 괜찮아. 그 사람에세는 나의 나쁜 면만 보일 걸세. 그 점은 내가 잘할 테니까 걱정 말게."
"그 밖에는 더 할 일이 없나?"
"글세, 신웰 존슨에게 말해 주게. 그 여자를 찾아 몸을 숨기도록 전하라고 말이야. 그들은 지금쯤 윈터 양을 찾고 있을 걸세. 왜냐하면 그 여자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나에게 폭행을 가하는 형편이니까 그 여자를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걸세. 급한 일일세. 오늘밤 안으로 전해주게."
"지금 곧 갔다오겠네. 또 다른 일은 없나?"
"내 파이프를 테이블 위에 내놓아 주게, 담배통도 그래, 됐네. 그리고 매일 아침 이리로 와주게. 전략을 짜기로 하세."
그날밤 나는 존슨을 만났다. 존슨에게 나는 윈터 양을 조용한 교외로 데리고 가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숨겨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6일 동안, 세상에서는 홈즈가 생사의 경지를 헤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용태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으며 신문기사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찾아가는 나로서는 그처럼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의 강한 체질과 의지력이 놀라운 작용을 보였던 것이다.
회복이 너무 빨라서 그는 나에게도 감추려는 듯했으며, 사실 나로서도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빨리 좋아지는게 아닌가 하고 때로는 의심을 해보기도 했다.
7일째 되는 날 실을 뽑았다. 그날 저녁 신문에는 홈즈의 상처가 재발했다고 나와 있었다. 같은 신문에 그의 용태야 어찌되었든 관계없이 꼭 알아야 할 기사가 있었다. 금요일에 리버풀을 출범하는 큐너드사의 루리타니아 호의 선객 속에 아델버트 구르너 남작의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다가온 드 멜빌 장군의 외동딸 바이올렛과의 결혼식 전에 꼭 정리해야 할 경제문제가 미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것이었다. 셜록 홈즈는 차가워 보이는 창백한 얼굴로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이 소식에 몹시 충격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뭐, 금요일이라고? 사흘밖에 안 남았군. 위험하다고 여기고 도망치는 게로군. 내가 놓칠 것 같은가! 천만에 절대로 놓치지 않아! 그런데 왓슨, 자네에게 꼭 부탁할 게 있네."
"무슨 말이든 다 하게."
"앞으로 24시간 동안 중국 도자기 연구에 몰두해 주게."
거기에 대해 그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고 또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오랜 동안의 경험으로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게 현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와 어째서 이런 이상한 일을 수행해야 하는가 생각하며 베이커 거리를 걸어갔다. 나는 센트 제임스 거리에 있는 런던 도서관으로 마차를 달려 부사서로 일하고 있는 친구 토머스를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두툼한 참고서를 빌려 가지고 왔다.
변호사가 월요일에 전문가를 증인으로 세우고 심문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암기한 지식을 토요일이 되자 잊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도자기의 대가인 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때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줄곧 책을 읽어 지식을 흡수했다.
내가 외운 것은 위대한 장식 예술가의 각인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연호와 홍한(紅汗)의 기호, 옹로(雍路)의 아름다움, 당인(唐印)의 문체, 송과 원의 상고시대에 있어서의 융성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다음날 밤에 홈즈를 찾아갔을 때는 이런 지식을 머릿속에 잔뜩 넣은 뒤였다.
신문의 정보만을 믿고 있는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가보니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었는데 붕대투성이의 머리를 팔로 괴고 있었다.
"뭐야, 홈즈 신문에는 자네가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쓰여 있어."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일세. 그런데 왓슨, 연구는 다 되었나?"
"글세, 해보긴 했는데."
"그거 잘했군. 그 문제에 대해 남과 이야기를 해도 이해되는 대답을 할 수 있겠지?"
"뭐, 그럭저럭 할 수 있겠지."
"그럼,맨틀피스 위에 있는 저 작은 상자를 이리 좀 갖다 주게."
그는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고 안에서 동양의 비단으로 정성껏 싼 것을 꺼냈다. 그것을 풀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짙은 청색의 정교한 접시가 나왔다.
"조심해서 다루어 주게. 이것은 명 시대의 진짜 연자(軟磁)야.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취급한 일은 없다네. 한 세트가 완전히 갖추어진다면 볼모로 잡힌 국왕의 몸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것일세. 사실 북경의 왕성 이외에 완전히 갖추어진 것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진짜 감상가는 한 번 보기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 댈 거야."
"이것을 어떻게 하려는 건가?"
홈즈는 <하프 문 거리 369번지, 힐 버튼 박사>라는 명함을 내게 건네주었다.
"구르너 남작의 일상생활에 대해 좀 조사해 보았네. 그는 8시 반이면 볼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을 걸세. 미리 편지를 내어 오늘밤에 찾아가겠다는 것과, 그때 명나라 시대의 훌륭한 도자기를 한 세트 가지고 있는데 그 견본을 가져가겠다고 전하도록 하게. 자네를 의사라고 한 것은 그러는 편이 본성대로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편리할 것 같아서일세. 다만, 자네가 수집가라는 것, 우연히 이 연자를 입수한 일, 남작도 역시 동호인이라는 말을 듣고 왔으며 값에 따라서는 양보해도 좋다는 뜻을 밝혀야 하네."
"얼마라고 할까?"
"그거 말 잘했군. 자기가 가지고 온 물건값을 모르면 그야말로 오리발을 내놓은 셈이 되니까. 이 접시는 제임스 경이 입수한 것인데, 아마 그 사람의 친구가 모은 수집품인 것 같아. 세상에 다시없는 물건이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닐 걸세."
"그럼, 한 세트로 갖추어 전문가의 감정을 받겠다면 어떻게 하지?"
"좋아! 오늘은 이상스럽게 머리가 잘 도는군, 자네. 그러면 크리스티라든가 소더비의 이름을 대면 돼. 자네가 먼저 값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만일 만나주지 않으면?"
"염려 없어. 만나줄 거야. 수집에 대해선 아주 병적인 편이니까. 더욱이 도자기라면 남들도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정도라네. 자, 앉게나 왓슨. 편지 글귀를 말할 테니. 답장은 받지 않아도 돼. 다만 방문한다는 것과 목적만 말해 주면 되네."
간단하고도 정성이 담겼으며 감상가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아주 멋진 편지였다. 곧 심부름하는 사람을 통해서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힐 버튼 박사의 명함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그 귀중한 접시를 들고 나는 혼자서 모험에 나섰다.
구르너 남작의 아름다운 저택은 제임스 경의 말대로 그가 아주 부유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양쪽으로 아름다운 나무를 심은 활처럼 굽을 길로 들어가 조상을 여러개나 장식한 자갈이 깔린 광장으로 나왔다. 이것은 남아프리카의 왕이 호황시대에 세운 것으로, 건물의 네 귀퉁이에 작은 탑이 섰고, 전체가 나직하게 옆으로 퍼져 있었다. 건축학상으로 봐서는 이상했지만 크기나 튼튼한 면으로 보면 아주 당당한 것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추기경의 자리에 앚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집사가 나와서 플라시덴(빌로도처럼 생긴 천)제복을 입은 하인을 앞장세워 주어 나는 남작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남작은 창문 사이에 설치한 중국 계통의 수집품 일부로 장식해 놓은 큰 선반장 문을 열고 그 앞에 서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작은 갈색 항아리를 손에 든 채 돌아다보았다.
"거기 앉으십시오. 마침 나의 귀중한 수집품들을 둘러보며 더 좋은 물건은 구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작은 당대의 참고품은? 이것은 7세기부터 전해 내려온 것인데, 당신도 흥미를 느끼시겠지요. 세공도 그렇고 광택도 그렇고 이만한 것은 여간해서 구하기 힘듭디다. 그런데 말씀하신 명나라 시대의 접시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나는 조심조심 꾸러미를 풀고 작은 접시를 꺼내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책상 앞에 앉더니 램프 불을 끌어당겨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밖은 꽤 어두워져 있었지만, 노란 램프 불빛을 얼굴 가득히 받고 있으므로 나는 마음껏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과연 그는 아주 잘생긴 사나이였다. 유럽에서 미남으로 이름을 날렸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몸집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생김새가 아주 우아하고 발랄해 보였다. 얼굴빛은 거의 동양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가무잡잡하고, 꿈을 꾸는 듯한 커다랗고 검은 눈은 뭇 여성들을 뇌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새까맣고 가는 수염은 하늘로 뻗쳐 있었는데 포마드를 발라 빳빳하게 세워져 있었다. 단 한 가지 얄팍한 입술을 일자로 꽉 다물고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얼굴 모습은 단정하고 애교가 있어 보였다. 살인자다운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입매일 것이다. 얼굴 속에 푹 파인 자국이라고 할까, 꽉 다물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무서운 입이었다. 거기에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희생자에게 보내는 자연스러운 위험신호가 되는 셈이니, 그로서는 너무 생각이 없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 목소리는 매력적이고 태도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이는 30살쯤 되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42살이라고 했다.
"아름답군. 정말 아름다워!"
내가 가지고 간 물건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그가 탄성을 질렀다.
"이것과 같은 것이 여섯 개가 있단 말이지요? 이 정도의 일품이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일도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군요. 이것에 버금갈 만한 것이 영국에 꼭 한가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팔려고 내놓을 물건이 아니지요. 이런 것을 물으면 실례되는줄은 압니다만, 이것을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힐 버튼 선생?"
"그거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나는 되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물건이 확실하다는 것만은 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격은 전문가의 평가에 맡기겠습니다."
"아무래도 납득이 안 가는데요...이처럼 값진 것이라면 거래하기전에 상세한 것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야 물품이 진짜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조금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이것의 권리가 당신에게 있지 않다면 나로선 큰 봉변을 당할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그는 검은 눈에 의혹의 빛을 띠며 말했다.
"그런 문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글쎄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당신의 보증이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그 점은 나의 거래은행이 책임을 집니다."
"그건 그렇겠군요. 그래도 나로서는 이 거래가 심상치 않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억지로 사시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일부러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 방면에서는 권위 있는 감상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냥 한번 보여 드렸을 뿐입니다. 살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내가 도자기를 좋아한다는말을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그 방면의 저서까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읽으셨습니까?"
"아니오"
"아니, 점점 납득이 안 가는 말씀만 하시는구요! 당신은 감상가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귀중한 물건까지 구할 정도의 수집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을 참조하려 하지 않았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는 몹시 바쁜 몸입니다. 나는 개업의랍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취미가 있는 사람은 다른 일이야 어떻게 되든지 끝까지 그것을 추구하는 법입니다. 편지에는 감상가라고 되어 있던데요."
"네,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시험삼아 몇 가지 질문을 하게 해 주십시오. 이야기를 들을수록 납득이 안 가는 일뿐이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은 의사라고 하셨지요. 우선 묻겠는데, 중국 은나라와 당송 시대에 걸친 청자기에 대해서 아는 바를 말해 보십시오. 아니, 그만한 것도 모르십니까? 그럼, 북왜와 그 왕조가 도기 사상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나는 화가 난 체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것은 그냥 듣고만 넘어갈 문게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좋은 것을 보여 드리려고 찾아온 것이지, 학교 학생처럼 시험을 치르러 온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에 관한 나의 지식은 당신을 따르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례한 질문을 받고서야 어디 대답할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잔인해 보이는 얄팍한 입술 사이로 흰 이가 드러났다.
"뭣하러 왔소? 스파이로군! 홈즈가 보낸 밀사지. 감히 나를 속이려고 하다니. 그 녀석은 죽어 간다면서, 그래도 나를 감시하기 위해 이런 앞잡이를 보냈군. 흥, 멋대로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개 같은 자식! 들어올 때처럼 쉽게 돌아갈 수 있을 줄 알면 큰 오산이야."
그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면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고 있었으므로 무슨 짓을 할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반대 심문에 의해 진상이 탄로나고 만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사나이를 계속 속일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책상서랍을 열고 뭔가를 급하게 찾고 있더니 문득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그가 앗!하고 외치며 뒷문을 통해 안쪽에 있는 방으로 급히 뛰어들어갔다.
나는 활짝 열린 문 앞까지 한걸음에 뛰어갔다. 그때 본 방안의 광경은 언제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창문이 활짝 열리고, 그 옆에서 무서운 유령처럼 보이는, 피투성이의 붕대를 머리에 감은 셜록 홈즈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고, 그는 벌써 창문을 뛰어넘어 바깥 월계수나무 앞으로 사뿐 내려앉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은 무섭게 화를 내며 창문으로 내달렸다.
그때였다. 힐끗 보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여자의 팔이 하나 월계수 가지 사이에서 쑥 튀어나왔다. 그것을 본 순간 남작은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도 귓속에 남아 있을 만큼 무서운 목소리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친 듯이 방안을 이리저리 뛰며 벽에다 머리를 꽝꽝 받았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깔개 위에 쓰러졌고 집이 떠나갈 듯이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물, 물을 줘! 나 좀 살려줘! 물!"
나는 탁자 위에 있던 주전자를 들고 달려갔다. 동시에 집사와 몇 명의 하인이 홀에서 달려왔다. 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부상자의 무서운 얼굴을 램프 쪽으로 돌렸을 때, 그를 보고 한 하인이 기절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얼굴은 유산으로 말미암아 짓물러 있었다. 조금 전에 내가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얼굴은 마치 화가가 아름다운 그림을 더러운 걸레로 닦아낸 것처럼 되어 있었다. 엉망이 된 얼굴은 잔인했고 소름을 끼치게 했다.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하인 하나가 창문을 뛰어 넘어 잔디밭으로 나갔다. 그러나 밖은 어두웠으며 비까지 내리고 있어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작은 무섭게 울부짖으면서 복수자에게 욕을 퍼부었다.
"키티 윈터! 악마 같은 년...! 두고 봐라. 꼭 복수를 할 테니까! 아아, 이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그의 얼굴에 기름을 바른 다음 허물이 벗겨진 곳에는 탈지면을 대고 모르핀 주사를 놓아주었다. 이 충격으로 이제는 나에 대한 의혹도 느슨해진 모양이었다. 나에게 눈을 뜨게 할 힘이라도 있다고 여겼는지, 나의 손을 붙잡고 죽은 물고기 같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라면 크게 동정하겠지만, 이렇게 애처롭게 된 것도 도리에 벗어난 일을 거듭해 온 결과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타는 듯이 뜨거운 손으로 잡고 늘어지는 데는 나도 얼마쯤 난처했는데, 단골 의사가 전문의를 데리고 왔으므로 가까스로 풀려나왔다.
그때 경감이 찾아왔으므로 나는 진짜 명함을 내놓았다. 경시청에서는 홈즈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만큼 다른 하나의 명함을 내보인다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뒤 나는 그 무섭고 불길한 집을 나와 한 시간 남짓 걸려 베이커 거리로 돌아갔다.
돌아가 보니 홈즈는 지친 듯 창백한 얼굴로 여느 때처럼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기가 다친 상처는 그만두고라도, 오늘밤의 소동에는 그도 신경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남작의 모습이 전혀 달라졌다는 나의 말을 듣고 잇던 그가 "죄를 받은 거야. 머지않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렇게 죄를 거듭해 왔으니 안 그렇겠나"라고 말하며 테이블 위에서 갈색의 노트를 집어들었다.
"왓슨, 이것이 그 여자가 말하던 노트일세. 이것으로 결혼을 막을 수 없다면, 달리 방법이 없네. 그러나 이제 이것으로 잘될 걸세. 반드시 막을 수 있네. 자존심이 강한 여자니까 참을 수 없을 거야."
"그 사람의 연애일기로군?"
"정욕일기라는 편이 옳겠지. 뭐,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그의 일을 그 여자에게서 듣고, 그것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훌륭한 무기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지. 그때는 잘못하다 그 여자가 떠들어대면 난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눈치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난 몰래 궁리를 하고 있었네. 그러던 차에 습격을 받았으므로 기회가 찾아온 셈이지. 덕분에 남작은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된 거야. 순조롭게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어.
사실은 좀더 대기 상태로 있고 싶었으나 미국에 간다고 하므로 서두르기로 한 걸세. 그런 위험한 기록을 남겨 놓고 갈 리는 없으니까 곧 행동을 개시해야만 한 거지. 그도 조심은 하고 있을 테니까 도둑의 흉내는 낼 수 없었네. 그러나 밤에 그의 주의력을 밖으로 쏠리게 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기회가 있는 셈이지. 그래서 그 파란 접시를 준비한 걸세. 그러나 나로서는 이 노트가 있는 장소를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고, 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자네의 도자기에 관한 지식에 의해 제한을 받게 되니까, 몇 분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생각한 끝에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이용하기로 했네. 하지만 외투밑에 아주 소중한 물건처럼 들고 있던 작은 꾸러미가 그런 것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나는 그 여자가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만 가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자신의 목적도 있었던 거야."
"그는 내가 자네가 보낸 앞잡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네."
"나도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스러웠다네. 하지만 자네가 잘해 주었기 때문에 도망칠 여유는 없었지만 문제의 노트를 찾을 만한 여유는 있었어. 아, 제임스 경!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홈즈는 이 친절한 친구에게 와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 놓았었던 것이다. 그는 홈즈가 이야기하는 사건의 경과에 주의깊게 귀기울이고 있더니, 그 이야기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
"대단한 활약이었군요, 홈즈 씨. 하지만 그 상해가 왓슨 씨의 말대로 무서운 것이라면, 이 무서운 노트를 쓰지 않더라도 결혼을 막는 목적은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홈즈는 머리를 내저었다.
"드 멜빌 양과 같은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해를 받은 수난자로서 점점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남자를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파멸시켜야 합니다. 이 노트가 있으면 그녀도 틀림없이 마음의 눈을 뜨게 될 겁니다. 달리 이만한 힘을 지닌 것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그 남자의 자필로 되어 있으니까 아무리 그녀라도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제임스 경은 그 노트와 귀중한 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나도 꽤 오래 앉아 있었으므로 그 기회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제이스 경의 자가용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임스 경은 가볍게 뛰어 올라타더니 제복을 입은 마부에게 행선지를 대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때 경은 창문으로 외투자락을 반쯤 늘어뜨려 문 바깥쪽에 붙어 있는 문장을 가렸으나, 그래도 나는 홈즈의 집 문 위의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으로 흘끔 그 문장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뜻밖이라 깜짝 놀라서 그대로 발길을 돌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 홈즈의 방으로 뛰쳐들어 갔다.
"의뢰인의 정체를 알았어! 의뢰인은...."
놀라운 뉴스를 전하려고 하자, 홈즈는 한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으며 말했다.
"충실하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이야. 지금은 이쯤 해두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 확고한 증거인 노트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어쨌든 제임스 경이 어떻게든 조처했을 것이다. 문제가 매우 미묘하므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보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는 바라던 대로 되었다.
사흘 뒤 모닝 포스트지에 아델버트 구르너 남작과 바이올렛 드멜빌 양의 결혼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키티 윈터 양의 유산세례에 대한 재판 내용도 실려 있었다. 심리가 진행됨에 따라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으므로 선고는 범죄의 형질에 비교해 아주 가벼운 것이었다.
셜록 홈즈는 절도죄로 고발하겠다는 위협을 받았으나, 목적이 분명하고 의뢰자가 고명한 사람이었으니만큼 그토록 엄격한 법률도 인간미와 탄력성을 발휘하여 홈즈는 아직 법정의 피고석에 서는 일 없이 무사히 지내고 있다
간첩과 산업스파이연계세력 척결.
첫댓글 뭐야? 이런 쓸데 없는 책 복사글은?
저작권 풀린 자료라서 읽고 싶은 분들 읽으시라고 올려둡니다.
피해자분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