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이 1975년 저술한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는 1986년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어 21쇄까지 발행하였다가, 34년이 지난 2020년 다시 문학과지성사에서 단권으로 출간되었다.
가공(架空)의 땅 '유리'를 배경으로 어느 뱃사공과 창녀의 자식인 주인공이 40일 동안 겪는 삶과 죽음의 대하(大河) 서사시가 곧 이 소설의 줄거리라고 하겠지만, 장장 700여 페이지에 걸쳐 담긴 내용은 우리들이 이해하기엔 그리 녹녹치 않은 게 사실이다. 작고하신 문학평론가 김현님은 일주일만에 독파했다고 하시던데, 하긴 뭐 그 분은 문학작품을 읽고 평하는 일로 먹고 사는 일이었겠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하고 넘어가자.
관념소설의 거작이라 일컬어지는 이 소설의 전편을 관통하는 관념적·사상적 원류는 불교와 기독교라고 할 것인 바, 전자는 중국의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사상이요, 후자는 재생한 예수가 광야에 내쳐져 40일간의 시험을 거친 뒤 마침내 천사들의 수종(隨從)을 받았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마른 늪에서 고기를 낚는 주인공의 행위를 통하여 불모(不毛)의 지경에서 생명을 탐구하는 구도(求道)의 방법론을 제시하지만, 주인공은 이전에 이미 스승과 샘물을 지키는 존자, 그리고 그의 종자승을 죽임으로써,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는 선종계 임제록(臨濟錄)의 가르침을 실현한 터였으니... 이로 볼 때, 소설의 주인공은 중국 당나라 시대 선종의 제 6조 혜능(慧能)을 가리키고,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 촛불승은 제 7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소설 속 어디에도 그런 단서는 없다.
또한 소설은 서른 세 살의 주인공이 '유리'라는 가상의 지역에서 40일간을 살면서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예수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읍내 유지인 장로가 주인공을 세례 요한으로 비교한 것이나, 몸과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는 수도부와 장로의 손녀는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수도부의 죽음에 임해 주인공이 외는 경의 내용은 단테(Alighieri Dante)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베아트리체만큼이나 그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담고 있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더워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에서의 모든 아픔 훌훌 떨쳐버리고 다음 생에선 부디 행복한 가정의 일원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곧 이 소설 작가의 바람이자 주인공의 비원(悲願)이라면, 죽음은 결코 자신에게는 그닥 슬퍼할 일도 아니고 죽이는 자 역시 성불(成佛)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닐까?
여담이지만, 쭉 찢어진 눈을 가진 잡범의 형은 공인회계사이자 세무사였다는데(하튼 형제가 두뇌 명석한 건 인정해야지만), 우연히 찾은 그의 블로그에서 그는 소설 속 읍내 장로가 주최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 연사로 초빙된 주인공이 설파하는 내용이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간 통합을 지향하였다고 적고 있다. 거의 100페이지에 이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한 이재선님의 이해력이 놀라웠다(blog.naver.com/jsleecpa 블로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