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함께 떠나는 중국 산동성 배낭여행 2016년 7월 27일 - 8월 1일 ( 5박 6일 ) 칭다오(靑島) - 타이산(泰山) - 취푸(曲埠) - 공묘(孔廟) 인민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떠나는 것이 배낭여행이라고 생각 한다. 동양 삼국에 아니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공자(孔子) ! 그의 발자취를 찾아서 칠순의 할애비가 이제 갓 중학을 입학한 손자 녀석과 함께 배낭여행을 떠난다. 산동반도 칭다오靑島, 타이산泰山과 취푸曲阜의 공묘孔庙를 요약해 본다.
* 칭다오 가는 방법 ✓인천공항 - 청도공항 T'Way 왕복 164,120원 * 청도공항 → 청도 기차 : 청도공항에서 702번 셔틀버스를 타면 청도역으로 바로 간다 (20元) 버스 : 청도공항 근처에 베이쟌(북부터미날)이 있다. 택시는 너무 가깝다고 승차 거부 할 듯. 입국장에서 나와 좌측으로 걸어 나오면 버스 장류장 나오고 917번 버스(1元) 타고 5정거장 정도 가면 북부 터미날이다.
* 청도에서 숙소잡기 중국에서의 배낭여행, 출발과 종착지가 칭다오靑島 일 때 기차이동을 해야 하므로 청도역에서 멀지 않는 곳, 도보이동이 가능한 곳에서 정할 것. 청도역에서 직선거리 200m에 있는 貝蒙特宾馆 3인실에 120元, 2인실에 150元주었다는 배낭여행자도 있다 8층에 10元짜리 朝餐 自助食堂. 일찍 가지 않으면 반찬그릇이 비어 있을 수도 있다. 청도에도 곳곳에 유스호스텔이 있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다. 천주교당 오르전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2인실에 160元을 달라고 한다. 혼자 하는 배낭여행,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면 40元하는 숙소도 많다.
*청도역 부근에서 먹기 하루 식비는 60元씩, 아침은 10元, 점심은 20元... 한끼는 밥을 먹도록...
新龙源大酒店 건너편에 있는 죽집은 10元 정도로 아침식사를 하고 좌측에 보이는 澳兴快餐집은 20~30元에 요리주문이 가능한 식당. 百盛백화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130년 역사의 春和樓에서 참고로 9명이 74元 하는 白酒 2병과 8가지 요리를 주문하고 낸 돈은 420元이다. *청도→태안(태산) 먹고 자기 청도(09:36)에서 태안(12:40)가는 고속철 (G290)은 2등좌가 149元 泰安高速站 →bus 20min,2元 → 火車站광장 火車站광장에 招待所 간판들이 많은데 모두 숙박업소 3인칸 388元으로 게시된 숙소에서 120元으로 흥정 가능하다.
* 태산 오르기 火車站광장에서 태산을 갈려면 3번 버스를 타야 한다. 로터리에서 2元짜리 3路버스가 紅門으로도 가고 天外村으로도 간다. 청소년궁에서 3路버스를 탈 경우 紅門으로 갈 때는 오른손편이고, 天外村으로 갈 때는 길 건너편이다. 다섯 정거장만 가면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오를 수 있는 天外村입니다. 태산 입장료는 싸지 않습니다. 2월에서 11월까지는 홍문에선 125元, 학생과 60에서 69세 반액, 70세이상 면제 天外村에서는 157元, 셔틀버스 편도비용 30元이 포함된다. 입장료만 비싼 것이 아니라 중천문에서 대남문에 이르는 索道 비용도 편도 100元, 중천문에서 대남문까지 도보로 1시간 30분, 오를 때는 걸어 오르고 하산할 때 삭도 이용하면 좋다.
* 태안 → 취푸(曲阜) 태산을 등지고 태산역을 바라보는 왼쪽에 취푸가는 버스 있다. 철로가 지나가는 육교 아래로 200m쯤 가면 시외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출발시간은 08:50/ 09:30/ 10:40/ 15:10/ 15:50/ 15:40 버스비는 22元으로 고속철 2等座 29.5元에 비하면 비싸다. 고속철로 20분 거리인데 버스는 그보다 1시간이 더 걸립니다. * 취푸(曲阜) 공묘(孔庙) 남문쪽 숙소 정하기 취푸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K01路(2元)를 타고 6정거장 지나면 공묘 남문이다. K01路는 高铁站까지 간다.. * 공묘 남문에서 내려 로터리 길 건너에 있는 숙소 3인실 120元으로 투숙하였다.. 이 숙소에서 왼쪽으로 가다 만나는 4거리에서 우측으로 걸어가면 공묘에 도착 孔庙입장료는 90元,학생과 60세 이상은 半票, 70세 이상은 免費 孔庙와 孔府 그리고 孔林 이 세군데 통합입장권은 150元 모두 걸어서 이동 가능
* 취푸(曲阜) → 칭다오(靑島) ✓曲阜東站 고속열차는 하루 6편이 있다 曲阜東역 청도역 曲阜東역 청도역 G246 09:10 12:36 G288 14:49 18:19 G276 16:08 19:37 G242 16:33 20:00 G226 17:38 21:12 G316 17:43 21:19 최고시속 300Km로 주행하는 열차, 2等座의 179元,1等座는 244元 공묘남문에서 K01路를 타고 종점인 高铁站까지 가면됩니다. ✓취푸에서 칭다오로 가는 일반열차는 하루 한번 있습니다. 5037次 09:47 취푸(曲阜)역 출발, 16:57 청도북역에 도착, 硬座 56元. 7시간이라는 시간 때문에 고속열차를 타게 됩니다.
* 짐꾸리기 배낭은 생수 3병 무게 정도 옷은 여벌로 하나, 속옷 양말 수건 하나씩, 운동화에 모자와 선글라스 썬크림, 우산 세탁비누, 지퍼팩, 귀지개, 대일밴드, 물티슈 작은 것 앞가방에 필기구,충전기, 수저, 물컵 ☞ 작은 배낭 하나로
❶ 청도 1.청도안내 청도는 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청도 시는 중국동부 산동반도의 남쪽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중국에서 몇 안되는 경제 중심도시의 하나이며. 국제해운 및 해군, 관광도시로써 국내외에 이름있는 역사문화도시 이기도 하고, 산동성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하여, 청도 시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으며, 청도시정부 또한 더 많은 한국기업들이 이곳에 투자하기를 희망하면서, 관계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하고 있다. 청도시는 한반도 와도 깊은 역사적 인연이 있는 도시중의 하나이다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 하고 나서, 세 번이나 다녀간 곳으로서, 제주도에서 구해온 불로초를(산삼) 진상 받았다는 양야대 (량야타이; 청도시의 위성도시인 교남 시 양야진에 있으며: 청도지역에서 알아주는 술의 상표명)가, 지금은 국가급 관광휴양지로 지정되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위성도시인 교주시에는 고려 때 개성상인들이 송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묵었던, 고려정관이 있었던 곳으로, 2000년 12월 한국의 역사교수들과 청도대학 조선족 교수들이 교주시의 협조 하에 고려정관 기념비를 세워놓았으며, 교주시는 시중심 동부지역의 한국인과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상가건물을 지어 ”한국성” 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중국의 지방행정기구가, 한국을 상징하는 공식명칭을 사용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청도시는 10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젊은 도시로써, 청나라말기인 1891년(청나라 광제17년)에 이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공식 행정편제로 출범하였다. 1897년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산동에서 피살되는 교안사건을 구실로, 독일군에 의하여 점령되어 통치되었으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독일이 일으키면서, 이 지역을 관할하던 독일군을 대신하여, 일본군이 점령하여 통치하다가,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1919년 “5.4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22년 12월 10일, 중국은 청도지역을 수복하였으나. 7년 후인 1938년 청도는 다시 일본에 강점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1945년 국민당정부에 접수되어 특별시로 되었다가,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가면서, 1949년 6월 2일 청도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고, 1986년부터는 국가단독계획시로서 성급 경제관리권한을 행사해오고 있다. 청도에는 한국기업의 투자가 1989년부터 시작되었고, 1992년 한중수교이후 투자업체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여, 2003년 5월 현재 4,000여 한국업체가 진출하여있으며, 유학생을 비롯하여 한국인 장기거류자가 10만여명에이른다, 그 동안 한국인들이 이곳에 진출하였다가, 실패하고 돌아간 경우도 많았지만, 이곳에서 성공적인 기업운영을 하고 있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수교 이후 한국이 중국과 경제교류협력을 하는데 있어서, 청도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한국기업 또는 한국인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청도를 발판으로 삼는다면, 광활한 서부내륙에로의 진출에 있어, 실패의 확률을 훨씬 줄 일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과의 거리, 항공교통, 해운교통, 한국과 유사한 기후, 청도 시정부의 적극적인 한국기업 유치활동 등등에 기인한다.
2. 지리위치와 자연환경. 산동반도의 남쪽과 황해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청도는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기후가 좋은 특색 있는 해변도시이다. 청도에는 많은 섬들이 있으며, 해안선의 총 길이가 870여Km에 달하는데, 그중 대륙 해안선이 730여Km로 산동성 해안선의 1/4을 차지한다. 한반도의 서해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들이 이곳에서 모두 나오며, 가격 또한 저렴하다. 청도시는 산하에 7개 구 (시남구, 시북구, 사방구, 이창구, 노산구, 성양구, 황도구)와 5개의 현급위성도시 (교주시, 교남시, 평도시, 즉묵시, 래서시)가 있다. 총면적은 10,654 ㎢로 한국의 경기도와 면적이 비슷하고 총 인구는 710만 여명이다. 그중 시내면적은 1.102 ㎢이고 시내인구는 237만 여명이다. (2005년 12월기준 총인구 790만명 시내인구 280여만명으로 추정) 청도는 군산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 온대 계절풍 구역에 자리잡고 있어, 날씨는 온대 계절풍기후에 속한다. 시내구역은 해양환경과 동남계절풍 및 해류 등의 영향을 받아 현저한 해양성 기후특징을 가진다. 공기가 습하고, 기온은 생활하기에 적당하며, 4계절의 변화가 있으나 한국처럼 뚜렷하지는 않다. 봄에는 기온이 회복되는 속도가 완만해서 봄이 내륙보다 한달 가량 늦게 온다. 여름에는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리지만 혹서가 없다. 가을에는 바람이 선선하며 강수량이 적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며 기온이 낮으나 혹한은 없다. 청도의 지형은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하강하는 경사를 갖고 있다. 청도의 총 면적 중 고지대가 15.4%, 산언덕이 25.1%, 평지가 37.8% 그리고 저지대 가 21.7% 이다. 또한 3개의 주요 산악지대가 있으며, 북쪽으로 연대시(연타이)와의 경계지점에 해발 736.3m의 대택산(따저산)이 있고, 남쪽으로 해발 724.9m의 교남(죠난)산맥이 있으며, 동남쪽바닷가로 해발 1,132.7m이며 도교의 발상지인 노산(라오산) 이 해안절경을 뽐내며 자리잡고 있다. 3, 역사 와 문화. 청도는 역사문화도시 로서 중국 도교의 발상지이다. 2500 여년전 老子가 창시하고, 莊子가 체계적으로 이론을 정립한 道敎의 발원지가 노산이다. 6000 여년전부터 인류가 이미 여기서 거주해왔으며, 東周시기 (770-256 BC)에는 산동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던 즉묵(卽墨: 지금의 지모시) 이 만들어졌다. 진시황(秦始皇)은 중국을 통일한 후 지금의 교남(膠南: 죠난)시에 위치한 양야대(瑯牙臺: 량랴타이)에 세 번이나 왕림한 적이 있었으며, 진나라 때 서복(徐福)이 함대를 거느리고, 양야대(瑯牙臺)에서 출항하여 한반도, 일본까지 항해한 사실이 역사기록으로 남아있다. 4. 경제와 발전. 청도는 중국의 중요한 방직, 경공업 및 화학공업 기지의 하나이다. 가전제품, 전자, 고무, 자동차 제조 및 식품 가공능력이 우수하다. 청도는 양곡, 과일, 축산, 수산물 생산 기지로서 농업자원 또한 풍부하다. 그중 평도(平度)의 대택산(大澤山:따저산: 품질 좋은 건축용 석재 ) 포도가 국내외적으로 유명하며, 평도의 명산 품인 고추, 생강 등은 일본, 한국 등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청도는 포구가 많고 간척지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미생물이 풍부하다. 도미, 농어, 생복, 굴, 소라, 황어, 왕새우, 해삼, 참게, 말린 조개관자 등 수산물 또한 풍부하다. 중국에서 명성이 높은 하이얼(海爾)그룹(가전제품), 청도맥주 주식회사, 하이신(海信)그룹(가전제품), 오크마(澳柯瑪)그룹(가전제품), 쌍성(雙星)그룹(신발), 이중그룹(담배), 화동(璜)포도주 주식회사, 대양(大洋)식품그룹 등 저명한 기업이 있다. 독일이 세운 청도맥주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맥주축제에서 금상을 받았다. 하이얼(海爾)그룹은, 개혁개방 후 급속하게 부상한 신흥기업 으로써, 2002년 세계 500대기업 에 들어간 가전제품 제조회사로, 청도에 본사가 있으며, TV, 냉장고, 세탁기 등은 한국의 삼성, LG 와 세계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청도는 25개의 해양과학연구, 교육 및 관리기구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양대학이 있다. 청도는 중국해군의 중요도시중의 하나이며, 해양 과학자의 50%이상이 있고, 해양과학연구,국제학술교류와 인재배양에 힘을 쏟는 해양과학도시 이다. 청도는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써 가발, 전자, 섬유, 봉제, 식품, 완구, 기계, 가구, 자동차부품 등등 거의 모든 품목의 제조업체들이 진출하여, 청도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등 IT산업분야의 기업들까지 청도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세계제일의 철강회사인 포항제철이 진출하였다. 청도에는 한국음식점을 비롯하여, 사우나, 미용실, 중국어학원, 한글학교, 세탁소, 한글신문, 광고잡지 등 한국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편의시설 들을, 한국인 또는 조선족들이 경영하고 있어, 한국사람들이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5. 교통과 통신 청도는 항구도시로서, 중국 황하유역과 환태평양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4대 항구 중의 하나이며, 세계 130여개국가와 지역의 450여개 항구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 년간, 컨테이너 물동량이 263.9만 TEU에 달하며, 세계 20대 항구의 대열에 진입하여, 중국대륙의 최대 컨테이너 수송항구가 되었다. 청도항은 중국에서 석탄,원유,광석,컨테이너, 4개 품목의 통과량이 모두 1500만톤을 초과한 항구이다. 한국과는 인천, 부산, 평댁, 군산, 등과 화물선이 통항을 하며, 여객선이 인천과 군산으로 주 2-3회 운항되고 있다. 육상교통은 제남-청도, 청도-은천, 환교주만등의, 고속도로를 통해 외부와 긴밀히 연결하여 사통오달의 육상교통망을 이루고 있어, 철도와 함께 여객 및 화물 수송이 매우 편리하다. 청도국제공항은 일본의 동경, 오사카, 후쿠오까, 한국의 서울, 부산, 대구, 태국의 방콕, 그리고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 10개의 국제 및 지역항로와 56개의 국내항로를 개설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하여 신공항 청사는 완공, 활주로확장공사를 하였다. 청도는 국내각지 및 세계 각국의 대도시와 통화하고, 전송할 능력을 갖추었고, 자동무선장거리 전화, 시내자동전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수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인터넽 전용선이 시내 전 지역에 구축되었고, 해저광케이블이 충남 태안에서 청도로 연결되면서, 태평양의 광케이블 망에 연결되었다. 인터넷 정보통신기술이 계속 보급 발전되고 있으며, 한국의 정보통신업체들도 청도에 독자 진출하여, 통신 산업발전에 기여하고있다. 6. 문화와 관광. 청도는 중국 내에서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은 1920년대부터 청도를 관광도시, 여름 휴양지로 만들었다. 산과 바다와 도시의 조화로운 풍경, 그리고 굴곡진 해안선, 섬들, 독일사람들이 유럽풍으로 지은 빨간색지붕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초록의 나무숲들과 어울려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하며, 청도시가 보존하고 있는 팔대관(빠다관) 지역은, 갖가지 유럽식 건축양식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이 각각 다른 모양의 저택들이 들어서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유명인사들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고있다, 건축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건축학도 들이라면 꼭 한번 가볼만하다. 청도는, 서남부지역에 유럽 스타일의 구시가지가 있는가하면, 90년대 중반부터 본격 개발하기시작한 동부신시가지는, 고층건물들로 숲을 이루어, 현대식도시로서의 면모를 갗추어 가고 있다, 국제회의 및 대규모 전시회를 열수 있는 컨벤션센타(산동전람중심)를 위시하여, 샹그리라, 리젠시등 최고급 호텔들이 진출해 있는가하면, 세계각국의 굴지의 기업들인, 미국의AT&T, 휴렛팩커드, 코카콜라, 일본의 미쓰비시, 마쓰시다, 한국의 포항제철, 대우자동차부품 등이 독자 또는 합자 형태로 진출했거나 진출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신구도시의 조화는, 명실공히 청도로 하여금 유럽과 아시아의 특성이 공존하는 국제적인 문화도시, 산업도시로써의 위상을 굳히고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구청도시정부청사로 쓰였던 독일총독부건물, 지금은 영빈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독일총독관저. 중국에서의 천주교 건축물로는 이름있는 천주교당 독일총독 사저로, 한때 국민당정부 장개석총통의 별장이기도 했던 화석루 독일 고대 성보식 건축물인 기독교회당 해안절벽에 붙여 지은 성보식 건축양식의 해양생물 수족박물관 등은 대표적인 유럽스타일의 건축물들이다, 7. 해변 과 공원. 청도에는 많은 공원과 해수욕장이 있다 한국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가볼만한곳 해상선박호텔 과 해상관광유람선. 청도시, 시남구 남서쪽 바닷가에 해상관광 유람선 선착장이있다. 배를 타고 구시가지의 남단을 돌아오는 코스를 택하면, 해상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청도시가 자랑하는 푸른바다와, 신호산줄기의 녹색의 짙은숲, 그리고 그사이사이에 어우러진 빨간색 지붕의 유럽식건물들은, 잘그린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하다. 선착장 근처에는, 퇴역선박을 개조하여 간이호텔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저녁 무렵 이곳에서 연인과 함께 칵테일 잔을 나누며, 밤바다를 구경하는 멋도 경험 해 볼 만하다. 도로변 무도장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한국사람들 에게는 도로변 무도장을, 가까이서 한번쯤 구경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사람들의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시도하기 힘든, 남녀노소가 길거리에서 한데 어우러져, 클래식 음악에 따라 사교춤을 추는 모습을 보노라면, 중국인들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십명 또는 수백 명이 가로등 밑에서, 왈츠, 탱고, 룸바, 등등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 이라고나 할까. 한번쯤 같이 어울려 보고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봄부터 가을 까지는, 청도시 곳곳의 공터가 저녘 무렵부터 21시경까지 노천무도장으로 변하지만, 특별히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은, 시남구 남서쪽 해변가에 있는 청도시해관(세관)건물 옆의 도로공원(잔교에서 보이는 반 원형의 해상식당건물 앞)이다 잔교(잔쵸) 잔교는 청도의 상징이다. 청나라 때 이홍장이 큰 배를 정박시킬 항구가 없어 임시로 지은 부두가 지금까지 사용 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잔교의 원형이다. 현재 잔교는 전시관으로 개조되어 그림전, 사진전. 서예전 등 전시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구 시가지의 중심거리인 중산로 남단에 있다. 소청도 소청도는 “금(琴)도”라고도 한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누워있는, 누에고치 와 같다고 해서 이같이 불린다. 면적이 12,000㎡의 작은 바위섬으로 정상에 등대가 있고, 나무숲이 우거져 매우 아름다운 섬이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긴둑을 쌓아 섬과 연결하고, 바위 밑에 방공호를 파서 포대를 설치했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어 간이휴게실로 이용되고 있다. 1987년부터 소청도 공원으로 개발되었으며, 섬안에 까지 차량이 진입하여 주차할수 있다. 진입로 우측에 중국 유일의 해군박물관이 있어, 잠수함과 구축함의 겉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더 할수있다. 소어산공원 구 시가지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꼭 한번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공원 정상의 8각정 관망 발코니에 나서면, 남쪽으로 확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서쪽으로는 소청도,잔교가 멀리보이고, 동쪽으로는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옛날에 봉화가 피어 올려졌다는 신호산 정상의 관망대를 볼 수 있고, 그 아래 독일총독의 관저로 쓰이다가, 지금은 영빈관으로 쓰여지고 있는, 중세유럽의 성체를 본딴 석조건물이 숲속에 들어서있다. 북서쪽으로는 천주교성당, 기독교당 등이 있어, 100여년전에 건설한 유럽풍의 시가지모습을, 그대로 볼수있는 유일한 곳이다. 청도를 상징한다는 붉은 기와지붕, 초록의 짙은숲이 푸른바다와 한데 어우러진 그림 같은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이다. 팔대관(빠다관) 독일 귀족들의 여름별장 지대로 건설되었다는, 팔대관은 청도시가 보존지역으로 지정하여 지금은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지역내의 모든 도로는 잘 정비되어있고, 도로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가로수를 심어놓았으며. 수백채의 저택들이 각각 다른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독일총독의 사저로 지어져, 국민당정부시절 장개석 별장으로 사용 되었었다는, 화석후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결혼시즌에는 젊은 신혼부부 들이 찾아와, 기념촬영을 하는 단골장소 이기도하다. 오사광장과 음악공원 동부 신시가지의 시 정부청사 앞에 있는 5,4광장에는 청도를 상징하는 5,4운동 횃불 탑이 있다, 중국근대사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던 5,4운동은, 1919년 5월4일 북경대학생들이 천안문광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항일시민 학생운동으로, 1911년의 신해혁명과 함께,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 야할 역사적 중요사건이다. 1914년 독일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세계 제1차 대전의 시작으로, 청도를 통치하고 있던 독일을 대신하여, 일본군이 청도를 점령하였다. 1918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1차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의 청도점령이 기정 사실화된다. 이시기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창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은 식민지 지배하의 나라들이 독립을 주장하였으며, 일제 지배하에 있던 한반도에서는 1919년 3월1일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같은해 중국에서도, 일본의 청도점령이 빌미가 되어, 5,4운동이 시작되었으며, 1922년 일본군이 마침내 청도에서 물러났다. 5,4광장은 1997년 시 정부청사가 이전해오면서, 만들어졌고, 청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번씩 찾는 명소가 되었다. 5 4광장의 서쪽해변에는 음악공원이 있다. 공원을 거니는 동안 땅밑에 설치해놓은 스피카에서는, 클래식음악이 쉼없이 흘러나온다. 군데군데의 잔디밭에는 세계유명음악가 들의 초상이 동판에 세겨져있어, 학생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는 훌륭한 공원이다. 현대미술관과 해변조각공원 동해로를 따라 돌고래쑈장을 지나고 석노인해수욕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해변으로(금해만 빌라단지 앞) 현대미술관이 있다, ` 미술관 동쪽으로 해변을 따라 조각공원이 펼쳐진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조화를 이루는 조각품들이, 잠시둘러 볼만하다. 석노인 해수욕장과 관광휴가 구 석노인 국가관광휴가구는 청도시고급과학기술단지 남쪽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여름 국제해양 축제가 열리고, 곧이어 열리는 국제맥주축제 또한 이곳에서 진행된다. 이 관광 휴가구 안에는 산동전람중심(콘벤션쎈타)이 있어, 국제가전제품 전시회등 국제행사가 매년 열리며. 고급빌라단지, 해수욕장과 해변, 해양 오락센터, 돌고래 수족관, 청도 국제 맥주성, 국제골프클럽, 문화 전시센터, 센츄리 광장 및 스포츠 센터 등이 있다. 청도의 노산 노산은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바다에 인접한 산으로는, 가장 높은 산으로써, “해상절경의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정상은 해발 1132.7m이고, 1800km 중국 해안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이다. 노산 의 남쪽은 절벽을 이루며 바다에 접해있고, 숲 과 온천 및 폭포가 어우러진 국가급 공원이다. 노산 은 또한 노자가 창시하고, 장자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도교의 주요 근원지 이다. 당나라(신라 때), 송나라(고려 초), 원나라(고려중기), 명나라(조선 초), 청나라(조선중기) 때도 청도의 노산 에는 도원(道院)이 많이 지어졌는데, 노산 북동쪽에 위치한 태평궁 위쪽의 관천동(굴)은 도인들의 수련장으로 쓰였다고 하며,꼭대기의 천원바위 에서 바다를 향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절벽과 어울려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풍광이, 가슴을 확트이게하는 절경이다. 노산 동남쪽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대청궁은 전진파(全眞派)도교의 두 번째로 큰 승지로 장자가 제자들을 길러냈다는 곳으로써, 도교의 삼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고, 사당 한곳에 쓰러져 있는 비석에는, 도교의 기본 학설이며 풍수지리의 기초이론에도 나오는, 주역의 기본문양인 태극무늬와 8궤의 도형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태극기가 이 문양에서 발췌되어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한국사람이라면 한번 더 눈 여겨 볼만하다. 서쪽에서 들어가는 북9수 지역은, 외9수 내9수를 합하여 18담의 계곡이 연연히 이어지며,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듯한, 계곡의 주변경관이 일품이다. 북9수 입구에서 매년 봄에 열리는 앵두 축제도 기억해 둘만하다. 마산 (국립자연보호구) 1992년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지정 되었으며 청도 즉묵(지모시) 서쪽 4㎞에 위치하고 있다. 청-은고속도로 서쪽 마지막 출구를 빠져나와, 좌회전하여 가다보면 우측으로 진입로가 보인다. 산중턱의 절벽이 석주군으로 이루어 졌으며, 규화목인 각종동물화석과 고대 유적들이 많아 지질학자들이 소규모 지질 박물관 이라고도 한다. 보호구내에 지질 유적들이 많고 아주 독특하고 다양한 화석들은, 고대 지질과학 연구에 큰도움을 주고있다. 화산이 폭발 했을 당시에도 자연 그대로 잘 보호 되어있으며, 화산암 지역에있는 대리석등 각종 암반들로 구성된 석주군은, 영국, 미국 등과 함께 세계 3대 석주군에 속한다고 한다. 전횡도(田橫島: 텐황도) 와 온천 지모시 동쪽 해안에 있는 전횡도는 20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고대 유적지 로써, 한왕조가 무너지면서 그곳으로 피난 가서, 끝까지 항복하지않고 저항했던 이들의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다, 청도에서 자동차로 선착장까지 2시간여 걸리며, 도착하면 차량은 주차해두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섬안에는 숙박시설이며 위락시설이 있고, 밭데리로 운행하는 미니 셔틀카도 있다. 주말에 가족들이나 직원들과의 단합대회 장소로 추천할만하다. 돌아오는 중간에 온천장에 들러 볼 수도 있다. ❷ 중국 태안(泰安 타이안) 태산(泰山 타이산 1,545m) 중국의 오악은 중국 대륙의 동·서·남·북·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산들로 동악(태산, 1,545m), 서악(화산, 2,160m), 남악(형산, 1,265m), 북악(항산, 2,052m), 중악(숭산, 1,512m)을 말한다. 태산은 오악 중에서도 으뜸이라 하여 오악독존(五岳獨尊), 오악독종(五岳獨宗), 오악지장(五岳之長) 등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오랜 시간동안 중국인들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세계자연유산으로 두 부분이 동시에 지정된 곳은 태산이 유일하다. ● 태산(A코스) 대묘→일천문→홍문→매표소(만선루)→중천문 →오대부송→남천문→천가→옥황정(1,545m,정상) 21:50 태안역 도착,제남의 대표음식(돼지고기 조림)이라는데 맛은 좋은데 엄청 짜더라고요. 23:25 택시 출발(15위안) 23:38 태산 입구 도착 23:55 매표소(만선루) 도착(입장료 127元) 매표소 앞에 백여 명이 훨씬 넘게 줄서있었다. 00:15 매표소(만선루) 등반 시작 00:50 재검표,표를 안 끊고 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표를 다시 확인하는 곳이라네요. 01:45 중천문 중천문까지는 케이블카와 버스가 올라온다는군요. 02:20 오대부송 02:32 간식&휴식 후 출발 03:40 제법 빗줄기가 거세다. 04:35 남천문 05:10 옥황정,간밤 비바람 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짓말처럼 먼동이 튼다. 06:10 하산 시작 06:25 벽하사 12:25 매표소(만선루) 12:40 대묘 도착 13:20 졸려서 간단하게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나서 태안으로 출발 15:10 곡부(曲阜, 취푸) 도착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마다 만원 ~ 이런저런 일로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행과 합류해 차를 전세내서 곡부까지 왔다. 자리는 좁고 차 안은 덥고 거기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무거워진 눈꺼풀은 어찌할 수 없다. 이름난 산들도 많지만 유독 태산을 오르려고 했던 이유는 일출도 보고 소원도 빌고 기도 좀 받으려고 치 인상적인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약7,736개)과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서체로 새겨져 있는 비석과 석문이었다. 야간 산행이라 경관을 볼 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래도 일출을 봤으니 만족. 태산엔 맑은 날이 연중 며칠 안 된다고 한다. 간밤의 비바람 때문에 기대하진 않았지만 해는 솟았다. 구름에 가려 일출의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 구름이 걷힐 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❸ 취푸 Qufu , 曲阜(곡부) 산둥성(山東省) 지닝(濟寧)북동부에 위치한다. 주(周) 초기에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다스렸는 노(魯)의 옛 도시로, 속한서, 군현지(續漢書郡縣志)에 실려 있는 “曲阜在魯城中 委曲七八里”라는 기록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다. 취푸라는 명칭은 수(隋) 때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진푸(津浦) 철도 취푸역(驛)의 동쪽 10km 쯤에 있는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으나 예로부터 공자의 탄생지로서 유명하다. 징후철도[베이징~상하이]가 시 서쪽에서 지나간다. 북쪽 1km 지점에 공자의 무덤인 공림(孔林)이 있다. 현재의 시가지는 한(漢)나라 때 성벽의 남서쪽 일부분에 해당한다. 공자 옛집 유적에는 대규모의 문묘(文廟)가 세워져 있고(주 때 창건), 예로부터 중국 예교(禮敎)의 중심으로서 존경 받아왔다. 1986년에 시(市)로 승격되었다. 공업으로는 석탄, 기계, 면방직, 화학, 제주 등을 산출하며, 부근 농촌에는 밀, 수수, 땅콩 등을 위주로 산출한다. 교육기관에 6개의 직업학교와 48개의 중학교가 있으며, 문화재에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 안묘(顔廟) 주공묘(周公廟) 소호능(少昊陵:中國金字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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