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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강 요한계시록 6-20장
백마를 타신 심판주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9장 1-21절 / 1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1. 요한계시록 6-20장에서 19장이 갖는 의미
요한계시록 6-20장에서 먼저 6-16장에서는 세 가지 일곱 재앙을 다루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17장에서는 세 가지 일곱 재앙에서의 화를 당할 자인 큰 음녀가 받을 심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그녀의 이마에는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큰 바벨론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으로서, 큰 음녀는 다름 아닌 큰 바벨론이었다. 18장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에서 보게 되는 큰 음녀의 결말적인 운명이 큰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 되는 구도인 것에서 이다. 곧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은 큰 바벨론이 받을 심판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9장은 앞서 세 가지 일곱 재앙의 결말에 이르는 내용으로 구약에서의 처절한 전쟁의 승패가 갈린 곳으로 이후로 상징적인 장소가 되고 있는 아마겟돈으로 전부 모여진 온 세상의 큰 군대, 곧 큰 성 바벨론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도둑같이 임하시는 어린양이신 주님에 의해 처참한 패배를 당함으로 패망에 있을 결과가 다루어지는 결말, 곧 결론이다.
2. 요한계시록 19장 : 큰 바벨론이 받을 심판
19장은 (1) 1-10절 :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알려주시고 있는 소식 (2) 11-21절 :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의 장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1-10절 :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알려주시고 있는 소식
본 내용은 다시 (1) 1-4절 : 큰 음녀를 심판하심에 대한 기쁨의 찬양 (2) 5절 : 하나님을 찬양할 것의 선언 (3) 6-10절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복 있음의 선언으로 구성된다.
(1) 큰 음녀를 심판하심에 대한 기쁨의 찬양을 전해 주시는 소식(1-4절)
1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큰 음녀, 곧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서 그리스도를 대적함에 있었던 세상은“울고 가슴을 치며”(18:9),“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18:19)해 하며“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18:10, 19) 라고 한 순간에 멸망의 잿더미가 되어 사라짐에 탄식에 있는다. 이로 인해서 큰 음녀요 큰 바벨론인 세상은 큰 맷돌 같은 돌에 묶여 깊은 바다에 던져진 것과 같으니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는 들리지 않으며,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는 보이지 않으며 또 잔치의 흥에 겨워 돌리는 맷돌 소리도 결코 다시는 들리지 않게 되니 등불 빛은 꺼져 있으며 신랑과 신부의 음성은 사라졌다(18:21-24).
이러한 환상 계시가 있은 후에 하늘에서 마치 군중이 외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요한이 들었다. 요한이 보고 있는‘하늘에 허다한 무리’는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엡 1:10)이 승리한 천상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에서 이다. 이들에 의하여 들리는 소리는“할렐루야, 곧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이며, 그 이유가 첫째, 구원과 영광과 권세는 오직 우리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므로, 음행으로 땅(세상)을 부패시킨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큰 음녀를 벌하시고, 이 여자에 의해 죽임 당한 주님의 종들의 피를 갚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의 군중을 이루고 있는 큰 무리는“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도다”라고 외치며, 다시 그들의 주님을“할렐루야!”하였다. 곧 그들의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었다. 여기서“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도다”는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를 것을 말해 주시고 있는 것인데, 개역(개정)한글성경이‘그 연기’로 번역한 것은 문자대로는‘그녀의 그 연기’이다. 즉, 큰 음녀의 연기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8장 9절, 18절에서 큰 성 바벨론의 처참한 멸망을 묘사하고 있는 어구인“그 불타는 연기”란 것으로 큰 성 바벨론이 불타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다. 이는 이사야 34장 10절에서 B.C. 587년 바벨론 침략으로 유다가 멸망할 때 에돔 족속이 기뻐하며 이익을 취한 것에 대한 심판의 계시적 예언으로 에돔 땅에 약속되고 있는“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동일하게 이 심판에 큰 음녀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에돔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이 큰 음녀요 큰 성 바벨론으로 말해지고 있는 온 세상에 임할 것에서 종말적 성격으로 확대됨으로‘세세토록’피어 오르는 연기는 끊임없이 영원히 지속될 성격의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에돔(Edom)은 그 조상이 야곱의 형제인 에서이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현 이스라엘 남쪽 지방 사해 주변과 현 요르단의 산악 지방에서 살았다. 이 에돔은 에서의 형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대적 관계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늘 괴롭혔다. 에돔은 이스라엘 왕국의 사울 왕과 전쟁을 벌였으나, 그 뒤를 이은 다윗 왕이 가나안을 정벌할 때 함께 정벌당하여 8000명이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에 속한 신하가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이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단되자 에돔은 유다 왕국의 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후 여호람 왕 때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으로 에돔 족속의 땅은 40년 동안 소강 상태에 빠졌고 아먀사 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그 지역을 회복했으나 곧 다시 반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전 736년경부터는 앗수르의 조공 국가가 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유다 왕국과 전쟁을 벌이다가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멸망당하면서 유다 왕국에 대한 에돔의 대적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약 시대에 이르자 에돔은 유다의 남쪽을 침공해 이두매 사람들이 되면서 에돔인의 유다에 대적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신약 시대에 이두매의 안티파트로스가 로마 제국의 행정관이 되었고 그의 아들을 훗날 로마 제국의 명령 하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인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는 헤롯 대왕이 되어 유대인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주후 70년에 있은 로마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에돔인들의 역사도 종결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안고 있는 에돔은 이스라엘 주변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었다. 하나님은 환상 계시에서 하나님의 예언에 있는 에돔의 멸망을 다루면서, 에돔 땅에 임할 멸망에 있는 하나님의 큰 권능이 큰 음녀요 큰 성 바벨론이 처하는 멸망으로 나타날 것에서 최종적이고 총체적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붙이 꺼지지 않는 것으로 임할 것에서‘세세토록’피어 오르는 연기는 끊임없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큰 음녀요 큰 성 바벨론이 멸망으로 처해지는 것은 지옥, 곧 게헨나의 불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음녀요 큰 바벨론의 결말적인 운명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지옥불에 내던져진다.
하늘의 큰 무리들이 이러한 찬양에 있자 24장로들과 4생물들이 화답하였다.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였다. 이는 경배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아멘, 할렐루야!”여기서‘아멘’은 앞서 진술되고 있는 승리한 천상교회가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있는 송영에 대해 동의하여 화답하고 있는 것으로“과연, 그렇게 될 것이다/ 그대로 될 것이다”를 뜻한다(참조. 대상 16:36; 느 5:13; 시 106:48). 24장로들과 4생물은 이렇게‘아멘’하고‘할렐루야’하였다. 즉, 승리한 천상교회의 송영에 있는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같은 찬송에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구원과 영광과 권세는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므로, 음행으로 땅(세상)을 부패시킨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큰 음녀를 벌하시고, 이 여자에 의해 죽임 당한 주님의 종들의 피를 갚아 주셨음에 믿음을 두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요한이 환상 계시에 의해서 본 바인 하늘에서 불려 온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는 찬송은 지상의 교회가 천상교회를 바라봄에 있으면서 부를 노래의 내용이다. 이 찬송의 노래는 우리가 믿음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는 것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참으로 놀라운 큰 일을 겪는 것에서 이를 온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한다. 이 찬송에는 대중가요이니 민요이니 클래식이니 따위의 노래에서는 담고 있지 않은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결코 세상의 노래로서는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찬송이다. 찬송은 하늘에서 울려 퍼질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을 이야기 하며 이를 말해주고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상에서 하나님의 참된 교회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고서 이 찬송을 하는 것에 있는 행복함이 어찌 큰지요! 이 찬송을 하는 것에 있는 입에 있으며 그 노래를 하는 것에 있는 혀는 참으로 복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음의 주님이 되시지 않으셨으면 우리의 입과 그 혀로 할 수 있는 노래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대중가요이고 민요이고 클래식뿐이지 않는가? 이것을 즐김이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으로서는 육체가 존재하는 한에서 육체가 즐기는 즐거움에 한정한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와 우리를 즐겁게 하는 찬송은 천상의 찬송과 연속성을 갖는다. 우리가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의 생각에 있는 시간이 지배적일 때 그분을 노래함에 있는 찬송을 하게 된다.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함에서 그들이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가질 때 그들에게서 가져지는 생각은 그리스도이며 그분을 위해서 움직인다. 우리가 어찌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시간이 주어져 가질 수 있다면, 그 기회와 여건을 가볍게 여기며 무관심으로 지나쳐 허비할까? 깨어 있어, 세월을 아낄 것이다!
(2) 하나님을 찬송할 것의 선언(5절)
5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하늘에서의 큰 무리와 24장로, 그리고 4생물의 찬송이 있자, 하늘의 보좌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라고 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종들’에서‘종’은 노예, 종, 일꾼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곧 그(하나님)를 경외하는 자들’과 동격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낮은 자나 높은 자나1) 무론 대소하고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총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은 그들 모두에게“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라고 들려주었다. 이때 보좌에서 들리는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다.‘우리 하나님께’라고 하는 1인칭 복수형이 사용된 때문에 음성의 주인공은 그리스도가 아닌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한 천사의 음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24장로나 4생물 가운데 하나의 음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만약에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의 주인공이 그리스도이시다면 1인칭 복수형이 사용되는 것이 아닌 단수형이 사용되어서‘나의 하나님께’라고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의 출처가 명백히 보좌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며, 그 음성의 주인공이 1인칭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으나 1인칭의 주인공(단수형)인 그리스도께서‘나의 하나님을 찬송하라’를 무론대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해 주고 있는 말씀으로서 그리스도 자신을 포함하여서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고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을 향하여‘우리 하나님께’라고 표현하여 1인칭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의 주인공은 그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나님께 찬송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론대소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는 자들 모두는 다 이 찬송을 부름에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시는 것에서 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낮은 자나 높은 자나 예외 없이 또 차별이 없이 그 찬송을 부름에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세상이 이전에 구별하였던 낮은 자나 높은 자는 하늘예배에 있는 천상교회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인종,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계급과 같은 구별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존전에 있는 자들은 그들이 누구이든지간에 하나님을 경외함에 하나 된 자들이다.
그런데 보좌에서 들리는 음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무론대소하고 찬송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은 1-4절에서 알려주시고 있는 찬송해야 할 이유와 함께 6-10절에서 알려주시게 될 그로 말미암은 복을 누림에 있기 때문이다.
(3)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복 있음의 선언(6-10절)
6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하늘 보좌에서 들리는 무론대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것은 큰 음녀를 멸망시키실 것에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신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갚으심이 되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하늘의 신부 삼으시는 혼인 잔치에 함께 할 초대를 받은 복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보좌에서 들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의 음성을 들은 요한은 그의 귀에 들리는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많은 군중이 외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나 큰 우렛소리, 그러니까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큰소리였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그 소리는 하늘의 허다한 큰 무리의 음성일 것으로 할렐루야, 곧 주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며, 그 이유로 전능하신 분이 통치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에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다스림에 놓여 있는데, 이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연결되어 있다. 즉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주어지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7장 9절, 14절에서“어린양의 피로 씻어 의롭게 된 것”인데, 본문 13-14절에서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다.“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 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여기에서 하늘에 있는 군대는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큰 무리로서 궁극적으로는 승리한 천상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표현인데 이들이 입고 있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어린양의 피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인 것으로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 그래서 신부에게 주어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려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를 위해 그에게 있게 할 것으로 예비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심으로써‘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성도의 옳은 행실’이 그리스도의 신부될 자에 의해서 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부 삼으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임을 알려주시고 있다. 이 성도의 옳은 행실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어디로 가시든지 그 뒤를 따름에 있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고 거룩한 자는 더욱 의롭고 거룩할 것이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어디로 가시든지 그 뒤를 따름에 있는 옳은 행실에 있다. 이는 마태복음 5장 11-12절인“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하는 것에서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이러한 자인 것에서 말해지고 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음성이 있었다. 개역개정성경은“천사가 내게 말하기를”이라고 하고 있어서 음성의 주인공이 천사라고 밝히고 있으나, 사실 성경원문에는 천사란 말은 없이 다만“그가 말하다”를 뜻하고 있는 것을 개역개정성경은‘천사가 (내게/요한에게)말하기를’이라고 의역한 것이다. 이렇게‘그’를 천사라고 번역하는 것은 요한에게 말하고 있는‘그’는 비록 문자적인 직접적인 의미에서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나 10절인“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에서 보게 되는‘그/종/천사’에로 이어지고 있는 문맥의 흐름에서 볼 때는 천사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때문이다. 그 천사는 18장 1절에서“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라고 언급하고 있는 천사일 것으로 여겨지는데 요한에게 말하기를,“어린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기록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9절, 현대어성경)라고 하였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은 우리네 혼인잔치에서 보게 되는 광경인 하객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분과의 혼인을 이루는 기쁨의 잔치에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광경 또한 우리네 혼인잔치에서 보게 되는 혼인의 식순에 따라 진행되고 이와 함께 잔치상이 벌어지는 혼인잔치의 모습이 아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자신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의 신랑으로 자신의 신부된 자를 맞이하러 오시는 것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신부된 자신들의 신랑을 맞이하러 그분에게로 나아가는 것에서,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게 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함으로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심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하신 데 따라(요 17:22-23) 아버지의 나라를 이룸에 있는 것을 혼인잔치로 표현하는 것이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2-3)
그러한 것에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혼인잔치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있는 것으로 그분의 나라인 천상의 나라에로 연결되는 것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이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참으로 복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분이 베푸시는 혼인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에서 보게 되는 바인 그리스도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이 씻겨져 이제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니 그 모든 것은 영원히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바인 조상 대대로부터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잔치가 베풀어지는 때를 기다려온 데 따른 것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베푸시게 될 잔치에 대해 받은 계시의 성취로 있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6-8)
선지자 이사야의 잔치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망이 되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말을 들으면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잔치와 연관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을 것이다. 구약에서 약속되어 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를 조상 적부터 기다려오던 요한이 듣고 감격했을 것은 자명하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의미하는 바가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믿는 그의 감격 때문이었다.
구약에 예언되었고, 신약에서 요한이 본 바인 예언이 성취되는 것에 있는 까닭에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르심을 받음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혼인잔치에 참여 받은 복에 있다. 사람 간의 혼인에는 그 과정에 파혼도 있고 혼인 이후에는 이혼도 있으며 사별도 있어 부득불 갈라서게 된다. 사람에게서 혼인을 통하여 같이 있는 것이 가장 오랜 것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육체에 한에 한정해서 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에서 영원하니 영원히 갈라섬이 없다.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도록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 제하여 버리심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으니 분명히 그렇다. 그러기에 “어린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이 복을 누림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2) 11-21절 :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의 장엄한 심판이 있을 것임
본 내용은 다시 (1) 11-16절 :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천군이 치르는 전쟁 (2) 17-18절 : 한 천사의 예언적 선포 (3) 19-21절 : 그리스도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는 악한 짐승과 그 추종자들의 결말로 구성된다.
(1)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천군이 치르는 전쟁(11-16절)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본문에서 11절은“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어서 하늘의 광경으로 요한에게 보여주고 계신 환상 계시의 내용이 백마를 타신 분에게로 초점이 있음을 알려주시고 있다. 하늘에 백마가 늠름하게 우뚝 서 있는데, 그 위에 타고 계신 분은‘충신’과‘진실’2), 곧‘충성스럽고 진실한 분’또는‘신실하고 참된 분'이라고 불리는 분이 타고 계셨다. 백마를 타신 분의 이름이 이렇게 충신과 진실로 불리는 것은“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라고 하는 말씀에 의해서 설명해 주시고 있다. 백마를 타신 분은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정의로 싸우시는 분이신 것에서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시는 것이다. 백마를 타신 분이 공의로 심판하시며 싸우시는 것에 대해서는 2절에서“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용인하며 용납하시지 않으시며, 의로운 자기 백성이 당한 피 값을 고개를 돌려 외면함으로 모른척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어린양이 함께 하는 자들을 그들이 흘린 피에 있었던 생명을 어린양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찾아 주신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계시에 의한 백마를 타신 분이 악의 세력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시며 싸우시는 것은 창세 전에 가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입은 택하신 자들과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사시고자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성취하시는 것에서 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펼쳐 나가시는 구속의 역사는 그 언약의 성취를 향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어린양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는 믿음을 인하여서 겪는 싸움에서 어린양의 충신과 진실이 언약의 완성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은자신들에게 있을 일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죽음조차도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되어진 생명을 결코 헛되게 하지 못한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도 꼿꼿하게 그리스도를 시인함으로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충성스럽고 진실하신 분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그분의 눈은 불꽃같고, 그분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들이 있으며, 이름 쓴 것이 있으니 그분 외에는 아무도 아는 자가 없다. 그분은 피로 물들여진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다.”그분의 눈이 불꽃같다는 표현은 1장 14절에서“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라고 하신 것에서도 언급되었는데 2장 18절에서“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라고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는데, 본 절에서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것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므로 악의 세력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악한 면모를 드러내시며 제압하시는 신적 권위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양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는 면류관은 그 자체로 왕적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는 통치권을 상징한다고 보아3) 이 면류관이 많이 있다는 것은 마지막 심판을 행사하려고 하는 절대 주권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4)
그런데 19장에는 많은 면류관을 쓰신 어린양을 설명하여 그가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주는 것과 관련하여서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모두 4차례에 걸쳐 나타내시고 있다. 11-13절에서 각 절마다 언급되고 있고, 16절에서 다시 한 번 더 언급되고 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1절)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12절)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13절)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16절)
여기서의 어린양에게 불리는 이름은 우리가 통성명하는 것에서 불리는 이름, 곧 그리스도에게 불리는 이름인 예수에게서 보는 그런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시는 것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어린양, 그분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시다. 어린양,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어린양, 그분의 이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다.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는 어린양,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가 그분에게 주어진 이름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언급되고 있는 것에서는 어린양, 그분의 이름은 자기 밖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어린양, 그분 외에는 그분의 이름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5) 이렇게 그분의 이름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곧 자기 밖에는 아는 자가 없는 이 이름은 그분의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을 쓰고 계신 것과 관련하여서 언급되고 있다.
이 면류관은 어린양이 쓰고 있는 이 면류관을 일곱 머리에 열 뿔을 지닌 용이 쓰고 있으며, 또한 용의 사주를 받은 바다에서 나온, 역시 일곱 머리에 열 뿔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짐승이 모방하여서 쓰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12:3; 13;1). 그런데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머리에는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으니, 그 이름들은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짐승이 모방하고 있는 어린양이 쓰신 많은 면류관에 기록된 오직 어린양만이 아시는 이름은 무엇이겠는가?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서 생명의 주이심을 알고 그분을 따름에 있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어린양이 쓰신 많은 면류관은 어린양의 뒤를 따르며 그분과 함께 악의 세력과의 싸움에 있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오직 어린양만이 아시는 이름인 어린양의 피 뿌림을 받고 어린양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섬기는 자인 것이다. 백마를 타신 분이 쓰시고 계신 많은 면류관에 기록된 이름들은7) 2장 17절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에게“새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는”이라고 주어지는 흰돌에 기록된 이름, 그리고 3장 12절에서“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라고 약속하시고 있는“새이름”을 쓸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과 병행되는 것으로, 그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성 이름으로 불릴 것이니, 새예루살렘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이름인 것이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쓰신 많은 면류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쓸 이름을 기록하고 오직 그 이름을 기록하신 자신 외에는 알 수 없게 하신 이 이름으로 자기 이름을 삼으시는 것이다.
백마를 타고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름들이 기록된 많은 면류관을 그분은 피에 젖어 있는 옷을 입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으며, 그분 뒤에는 회고 깨끗한 옷을 입은 하늘의 군대가 역시 백마를 타고 따랐다. 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신다. 하늘의 큰 군대를 거느리고 계신 백마를 타신 분에서 나오는 날이 선 예리한 검으로 모든 나라를 쳐부술 것이며, 철장으로 모든 나라를 다스릴 것이니, 그분은 두 발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술틀을 밟으실 것이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13절을 연상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3-17절에서 하늘에 있는 악한 영, 곧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을 것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흉패/가슴막이)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골 3:5)
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교회에 이러한 권면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르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지휘 아래 있어 그분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휘두르는 검과 철장에 모든 나라는 패하여 무릎을 끓을 것이니 두 발로 술틀을 밟듯이 하여 짓이김을 받는 수치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2) 한 천사의 예언적 선포(17-18절)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이러한 하늘 광경을 목격한 요한은 또한 그러한 그들의 비참한 처지가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태양의 밝은 빛 안에 한 천사가 서서 큰소리로 새들을 부르며 말하는 것이었다.“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백마를 타신 분과 그의 군대와 싸워 패한 나라는 높은 자와 낮은 자 강한 자와 약한 자 남자여 여자 노인과 어린아이를 무론하고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천군을 대적함에 있는 모든 자들은 하늘의 새들이 잔치를 벌이는 풍성한 먹이가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 모방송 프로그램에서 모 종족은 가족 중에서 죽은 이들의 시신을 치르는 장례를 우리가 행하는 것처럼 매장이나 화장 등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있는 가장 높은 산에 올라 그 꼭대기에 있는 평평한 바위에 시신을 놓는 것이었다. 그러면 독수리와 같은 새들이 와서 그 시신을 쪼아 먹는다. 장례를 치르는 자들은 그러한 것을 통해서 다름대로의 종교적 의식을 가지며 의미를 갖겠지만, 새들에게서는 단지 풍성한 먹이를 먹는 잔치를 벌이는 것뿐이다. 그럼으로써 새들은 청소부의 역할을 하여 순식간에 깨끗이 처리가 된다.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그를 뒤따르는 천군을 적대하는 악의 세력은 이러한 최후에 있다는 예언을 한 천사는 선포하였다. 이 예언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나이 많은 노인, 힘없는 여자와 어린 소년들과 젖먹이들만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왕, 장군, 장수의 지위, 높은 자의 권세가 그들의 생명을 안전히 지키는 보호와 보장이 되지 못한다. 이들이 용으로 불리는 악한 마귀, 짐승으로 불리는 적그리스도, 예언자로 불리는 거짓된 예언자와 연결되어 있어 그들을 뒤따르며 큰 음녀의 음행에 있으며, 큰 성 바벨론의 세력에 있어 하나님께 적대감을 품고 대적하는 한에는 그들은 그들이 추종하여 따라간 결과에 의하여 그들의 추종자가 당하는 결말에 그들의 결말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들의 죄악을 말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에로 나올 것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있는 교회 밖에서의 외침에 있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교회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전함으로 전하며,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믿음으로 하나님을 진실히 믿어 나가야 한다. 그러한데,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이 없는 자들 위에서 군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며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인 믿는 자들까지라도 미혹하여 넘어뜨리려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가령, 서양 문화가 동양에 들어오면, 동양 사람들이 그 문화를 받아들여서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그대로 그 문화를 좇아 사는 것이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이 섬기며 뒤따르는 자를 숭배하여 그 경배에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은 이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음녀를 따라 하는 음행이 아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차지하고 의식을 지배하여 따르게 할 때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좋아하는 자를 사랑하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음녀가 하는 음행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 형상을 나타난 그림이나 조각인 신상(神像)에게 나아와 그 앞에 무릎을 끓고 엎드려 두 손 모아 얼굴에 대고 절하여야만 우상숭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22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분의 장례식을 국가에서는‘국가장’으로 치르며, 이를‘영결식(永訣式)’을 갖는다고 한다. 영결식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장례식장을 떠나는 발인을 할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교회의 장로이니까 기독교식으로 먼저 발인식을 하고 이어서 다른 세 종교의 의식도 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장례식을 모두 네 종교 의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국회와 상도동 자택을 지나 김영상도서관을 거쳐 서울국립묘지라고 하는 현충원에 안장된다. 그런데 상도동 자책을 지날 때 이곳을 잠시 머물며‘노제’를 치른다고 한다. 그리고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렇게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의 의식을 행하고, 노제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이 있다. 교회 장로의 장례식을 갖는 것인데 어떻게 기독교식으로만 발인식을 하지 않고 다른 종교로도 발인식을 하게 하느냐는 것이요 또한 노제를 치르느냐는 것이다. 무슨 종교 의식으로 행하든 그것이 죽은 자에게서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겠는가? 산 자가 이런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가치도 없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상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에게 절하든 무엇을 하든 생명 없는 나무 조각의 형상이나 돌 조각의 형상이 무슨 의미를 띠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우상을 숭배하며 그것에 절하여 경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의 배후에 있는 악한 마귀가 의도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며, 이는 곧 악한 마귀에게 절하여 숭배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며 섬김에 있는 성전과 같은 모습으로 도처에 신전으로 만들어 놓고 경배하는 행위를 하는 것에서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신을‘우상숭배’하는 행위에 있었다. 그러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하나님의 성전으로 있으면서 악한 마귀가 의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에 있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김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두 주인을 결코 섬기지 못한다. 한편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면 다른 한편은 미워하며, 한편을 미워하면 다른 한편은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섬김에 있으면서 육체를 신뢰하여 욕망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사는 것은 탐심에 의한 우상숭배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6-10)
라고 골로새교회에 권면하였다.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랬듯이 신약시대에서도 동일하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육체를 신뢰하여 땅에 있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게 한다. 이것으로 갖은 악한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도 탐심, 곧 지나친 욕심으로 그치지를 못한다. 그래서 이방종교에서 자행되는 기복신앙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끌고 가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에서 벗어나 잘못된 복관을 가지고 나가는 것으로, 악한 마귀가 의도하는 바이다. 그러니 그러한 그는 하나님을 따르며 그 경배에 있으면서도 우상숭배에 있는 행위를 하므로 음녀나 할법한 음행에 있는 악한 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계속해서 끌고 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자들의 결국에서 보게 되는 바인 그리스도의 군대에 패망하여 영원히 타는 불못에 내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곳에 내던져질 수 없는 자이다. 그러니 자신의 행보를 항상 관심을 갖고 되돌아보며 살펴 잘못된 신앙의 길로 간 걸음에서는 그때마다 속히 돌이켜 바른 길로 반듯하게 가고자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럴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 안에 성령이 함께 하시며 그분의 권능을 힘입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자신의 상황을 깨달아 알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의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
(3) 그리스도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는 악한 짐승과 그 추종자들의 결말(19-21절)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각 나라를 미혹시켜 이 전쟁을 충동시킨 악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마지막이 어찌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요한은 보았다. 악한 짐승이 땅의 통치자들과 군대를 소집하여 흰말을 타고 계신 분과 그분의 군대에게 대항해서 전쟁하려다가 붙잡혔는데, 악한 짐승의 도움을 받아 이적을 행하고 그의 낙인이 찍힌 자들과 그의 우상에게 절하던 자들을 현혹시키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붙잡혀서 모두 유황불이 타오르는 불못에 산 채로 던져졌으며, 그들을 따르던 군대는 백마를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날카로운 칼에 찔려 죽고 하늘의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요한은 큰 음녀를,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일망타진하여 심판하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백마를 타시고 천군을 거느리신 분으로 묘사되면서 이날이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혼인잔치가 될 것임을 보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복합적인 종말론적 양상을 띨 것임을 의미한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심판은 백마를 타신 그리스와 그분을 따르는 천군이 치르는 전쟁이 될 것이다. 이 전쟁은 앞서 16장에서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그리고 뒤에 언급되는 20장에서는 곡과 마곡과 치르는 전쟁이다.
요한은 환상 계시에 의해서 이 전쟁을 보았는데, 이 환상 계시는 요한에 의해서 교회에 주어지기 때문에 교회가 치를 전쟁이 된다. 교회는 백마를 타고 오실 심판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천군으로서 자신들을 지휘하시는 그리스도의 전쟁에 참여하여 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악의 세력이 패망하여 멸망의 터전에 떨어질 그날이 임할 때까지 전쟁은 치러진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전쟁터의 상황으로 묘사하면 승리의 깃발을 그리스도를 앞세워 들고 휘날릴 것에 있다. 이 전쟁은 패했다, 승리했다 하며 치러지는 전쟁이 아니다. 악의 세력에게는 단 한 번의 승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마귀는 성도들이 때때로 마귀의 시험에 걸려들어 넘어지는 것을 자신들이 승리한 양 여기겠지만,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서 보는 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이 작정하신 길을 가고 있다. 혹자는 의로운 피 흘림에 있겠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음에 있어 죽어도 죽음에 있지 않은, 죽으나 영원한 생명에 있으니 마귀는 언제이고 단 한 번도 성도의 생명을 건드려 무너뜨려본 적이 없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2)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이유를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계실 때 주신 말씀에서 보게 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28, 32-33, 39)나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서 찾는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죽은 나사로의 집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6)
라고 물으며,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라고 하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가진 신앙고백을 이끌어내셨다. 이 믿음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름의 믿음에 있는 교회이다. 그러기에 이 믿음으로 사는 교회로 있는 것이 우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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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낮은 자나 높은 자나’는‘낮은 신분에 있는 자나 높은 신분에 있는 자나’를 의미하는 관용어로서‘낮은 자나’와‘높은 자나’의 두 어구가 함께 사용됨으로써 모든 사회적 지위를 망라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2)‘충신’에 사용된 단어는 형용사‘피스토스’(pistov")로 그 뜻은‘믿을만한’,‘신뢰할만한’,‘진실한’ 또는‘충성스러운’ 이다. 그리고‘진실’에 사용된 단어는 형용사‘알레디노스’(ajlhqinov")로 그 뜻은‘진실한’,‘참된’이다. 개역개정성경이‘충신’과‘진실’이라고 함은‘충성스럽고 진실한’, 또는‘신실하고 참된’을 의미하는 것에서 이다.
3)‘많은 면류관’에서‘많은’은‘수(또는 양)가 많은’을 뜻하기도 하고,‘큰’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면류관’은 승리를 상징하는 것에서의 면류관, 또는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을 뜻하는 것에서는‘스테파노스’(stevfano")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나, 여기서는‘왕관’을 뜻하는‘디아데마’(diavdhma)의 주격중성복수형인‘디아데마타’(diadhvmata)가 사용되었다.
4) Philip E. Hughes는 많은 면류관을 마지막 심판을 행사하려고 하는 그의 절대 주권을 상징한다고 보면서 하나님의 많은 면류관을 쓰신 분에게 기록된, 그러나 그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 독특한 이름은 성육신 하신 아드님, 곧 그리스도로 이해한다. 그는 말하기를,“성육신 하신 아드님이 높아지셨을 때 받은‘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이며, 다른 아무 피조물이나 세상 권력에 - 그것이 얼마간 아무리 엄청나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 속할 수 없는 이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5)“자기 밖에”에 사용된‘에이 메 아우토스’(eij mhv aujtov")는 ‘만일~이면’을 뜻하는 접속사‘에이’와‘아니’를 뜻하는 부사‘메이’, 그리고 주격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아우토스’가 합쳐진 것으로,‘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자기 자신 밖에는’,‘자기 한 사람 밖에는’을 뜻한다.
6) Philip E. Hughes는 많은 면류관을 마지막 심판을 행사하려고 하는 그의 절대 주권을 상징한다고 보면서 하나님의 많은 면류관을 쓰신 분에게 기록된, 그러나 그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 독특한 이름은 성육신 하신 아드님, 곧 그리스도로 이해한다. 그는 말하기를,“성육신 하신 아드님이 높아지셨을 때 받은‘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이며, 다른 아무 피조물이나 세상 권력에 - 그것이 얼마간 아무리 엄청나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 속할 수 없는 이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David E. Aune도 높아지신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로서 있는 이름으로 본다. 이렇게 백마를 타시고 많은 면류관을 쓰신 분에게 기록된 이름을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는 국내 학자도 마찬가지이다. 위 견해들에서 보는 것처럼 백마를 타신 분에게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표현들은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것은 분명하며, 그러한 것에서 그분에게 기록된 이름들도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무엇으로서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필자는 백마를 타신 분에게 기록된 이름들이 다른 구절과의 병행과 문맥적 관점에 의할 때 어린양을 따름으로써 그분의 피 값으로 구원받아 깨끗함을 받은, 곧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로 면류관을 삼아 그 이름을 기록할 하늘의 새이름인 하나님의 도성 새예루살렘으로 불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견해를 갖는다.
7)“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에서‘이름 쓴 것’인 기록된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한글성경은 대체적으로 백마에 타신 분이 쓰신 많은 면류관에 기록된 것이란 견해를 갖는다. 반면에 한글성경 중에서 새번역성경, 현대어성경, 현대인의성경은 백마를 타신 분의 몸에 기록된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Philip E. Hughes는 하나님의 많은 면류관을 쓰신 분에게 기록된, 그러나 그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므로 알지 못한다고 본다. 필자는 문맥상에서 볼 때는 많은 면류관에 기록된 이름들이라는 견해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