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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0:12~13(278)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2024. 9 . 1
하루는 늙은 개 한 마리가 산보 삼아 길을 지나고 있는데, 젊은 개 한마리가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작은 개는 연신 왼쪽으로 돌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오른쪽으로 뱅글뱅글 계속 돕니다.
그래서 이 큰 개는 작은 개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뱅글 뱅글 돌면서 뭐 하는 거니?’ 작은 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행복을 찾고 있어. 누가 그러는데 행복이 꼬리에 있다잖아. 그래서 그 행복을 잡기 위해서 내 꼬리를 쫓아 도는 거야.’
그러자 큰 개가 말합니다. ‘나도 그런 소리를 예전에 들은 적 있어. 그래서 나도 너처럼 꼬리를 잡으려고 왼쪽 오른 쪽으로 엄청 뺑뺑이 돌았는데, 그 때마다 꼬리가 계속 해서 도망 가더라구. 결국 <나는 행복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으로 행복 잡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내 할 일을 찾아서 했지. 그런데 내가 할 일을 하니 그 꼬리가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지. 너도 행복을 잡으려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네 할 일을 하렴. 그러면 너가 행복을 가지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 행복이 그냥 너를 쫓아올꺼야.’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깨달으셨나요? 여러분들도 그 혈기왕성한 젊은 개처럼 행복을 가지려고 이리저리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지만 늙은 개가 한 말처럼, ‘행복이란 내가 쫓아간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가 행복해 지기를 원하고 행복을 누리고 찾으려면,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나에게 주어진 내 삶에 충실히 임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이 내 곁에 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였던 여러 인물들이나, 그리고 기독교 역사 2천년동안 하나님의 길을 걸어 갔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역시, 행복을 가지기 위해 행복만을 좇아가셨던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행복이란 내가 억지로 쫓아다닌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현실에서 많이 찾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돈이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하고 필수불가결인 대상입니다. 돈이 넉넉하게 있을 때에는 여유롭고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돈이 행복이다’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버립니다.
큰 목소리로 따라해 봅시다. “돈이 행복이다”. 비록 우리가 큰 목소리로 돈이 행복이라는 문구를 외쳤지만, 돈이 참되고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돈이 행복이라고 굳게 믿는 물질만능주의 신봉자들은 돈을 모으고 벌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불법한 일을 행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가지려고 합니다. 법에서 정해 놓은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사기꾼들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그렇게 돈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돈만을 따라가던 그들의 결말은 어떠한가요? 돈은 가졌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가정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소중한 인생의 삶을 다 날려 버리는 허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내가 행복의 꼬리를 잡기 위해 마냥 힘들게 쫓아가는 모습인가요? 아니면 행복이 내 뒤를 쫓아오게 하는 모습인가요? 마치 자기 꼬리를 쫓아 빙글빙글 도는 개처럼, 행복을 쫓아다니느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지만, 참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말로 소중한 것을 행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설교 서두 예화에서 젊은 개는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였는가요? 행복이 자기꼬리에 있다고 생각해서 하루 종일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행복이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만 좇아갑니다. 행복이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만 좇아갑니다. 행복이 술과 이성이라고 생각하면 술과 이성만 좇아갑니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마약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마약중독자들은 오로지 행복이 마약이라 생각하며 인생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참된 행복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12절 상반절에 보면,“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이스라엘’이란 명칭 대신에 나의 이름을 넣어서 이 본문을 읽어도 됩니다. “000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아니면,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읽어도 됩니다. 대상이 누구이든지 이 질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요구하고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요구하고, 건강이 필요한 사람은 건강을 요구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더 건강해 지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모양과 대상은 다를지언정,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요구가 다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키우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영특한 아이로 성장해서 부모의 얼굴을 빛내 주기를 원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체가 더 커지기를 바라고 있으며,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들은 자신의 월급이 더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상과 모습은 각각 다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그것이 달성될 때에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는 결국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건강과 행복한 가정과 풍족한 물질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이 12절 중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12)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성도가 하나님에게 이렇게 행동하기를 하나님이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을 잘 섬겨야 된다고 말합니다. 13절 보세요“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누구의 행복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너의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내가 올바르게 신앙생활하고 올곧은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을 즐겁게만 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내가 올바르게 교회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면,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나에게 행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순종하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도 택하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형통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걱정과 염려로 힘들어 합니다.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행복의 출벌점입니다.
1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라는 말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라(to fear the LORD your God)’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비워합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범죄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고로 성경 말씀대로 똑바로 살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도를 행하고’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도(道)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의 모든 길을 걸으라(to walk in all his ways)’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고로 이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과 규례의 모든 성경 말씀을 따르고 지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길을 걸으라’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부분만 순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형편에 맞춰 순종하라는 말고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활을 맞추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 행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입니다. 결국 불행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에덴의 행복이 깨어짐도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을 방해하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사탄의 전략은 지금도 변함 없이 역사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국의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설문 내용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입니다. 대영제국을 만든 엘레자베스 여왕도 아니고,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아주 심술 굳은 모습으로 찍은 사진만 연상됩니다. (극심함 위장병을 앓던 시기에 찍은 사진으로 알려져 있음)
윈스턴 처칠은 학창시절 생활기록부가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성적도 초라하여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습니다. 삼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Sandhurst Military Academy)에 입학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처칠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제치고, 영국인의 자랑거리인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 설문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말합니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 중 하나님에게 기도함으로 영국을 구한 인물이었다’ 심술궂고 옹고집 노인네 처칠이었지만,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을 먼저 찾았던 모습이 영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두려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시고, 나는 그의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의 생사화복을 결정하시는 분임을 알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행복의 출발점입니다.
12절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한글성경에서는 한 문장으로 이어져 있지만, 이 말씀의 원어 해석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그를 사랑하라(to love him).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는 내용입니다. 가장 먼저‘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바탕이 됩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고백과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리플레의 믿거나 말거나 (Ripley’s Believe It Or Not)’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쇠 덩어리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을 고물상에 가져가서 팔면 무게만 따져서 5달러(7천원) 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쇳덩이를 불에 녹여서 말굽을 만들면 50달러(7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그 쇳덩이를 녹여서 바늘을 만들면 500달러(70만원) 값어치가 되고, 그 쇳덩이로 비행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면 5,000달러(700만원)이 된다고 합니다. 똑 같은 재료이지만 어떻게 가공하고 무엇으로 사용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일까요? 어떻게 씌임을 받고 어떠한 용도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사람 또한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가치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어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 금세에 행복한 삶을 누리며, 내세에도 큰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하나님의 행복이 나에게 찾아옵니다. 하지만 육체의 욕망을 쫓아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진노로 불행의 늪에서 허덕이게 되며, 훗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 12절을 통하여 행복하기를 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섬긴다’는 말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설정됨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섬김을 받는 사람과 섬겨야 하는 사람으로 위치가 구분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있어서 ‘섬긴다’는 말은 잘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일하고 월급을 받는 회사의 사장이라고 해도, 내가 섬긴다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고로 섬긴다는 말은 순종과 복종의 의미가 들어 있는 말로서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서만 사용 가능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라’고 명령합니다. 섬겨도 되고 섬기지 않아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겨라’고 명령합니다.
왜 이렇게 강한 어조로 하나님을 검겨야 한다고 말씀하나요?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성도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해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행복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서 아끼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은 행복입니다. 부부간에 이런 섬기는 모습을 두고 노예의 굴종이니, 주인과 종의 관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섬기는 것이 바로 사랑의 모습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한다면, 반드시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이 행동의 모습이 섬기는 모습입니다. 어떤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항상 자신이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진실 되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냐 하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내를 존중하고 섬기는 모습이 없습니다. 집안에서 제왕적 모습으로 아내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람의 사랑은 거짓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선택받은 우리도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9월의 모든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