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5.
인연
해남군 농업기술센터 교육장이다. 굴착기, 트랙터, 이앙기에 이어 드론을 배우고 있다. 모두 무료 지원 교육이다. 흔히 드론이라 부르는 무인멀티콥터는 병충해 방제에 활용된다. 벼 병충해 방제 시기인 7월과 8월에는 가장 중요한 농기계가 드론이라고 한다. 조종자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지만 최소의 노동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니 꼭 배워 두어야 할 기술이라 생각된다.
해남 최고의 드론 조종자다. 정확한 위치에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회전하여 후진한다. 8kg 무게의 옥타콥터를 조정하여 농지를 평정해 버린다. 그 와중에 건네는 말이 친절을 넘어 다정다감하다. 무심히 던지는 말들이 가슴에 담긴다. 시골살이가 먹고 살기에는 편하다는 말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부담 없이 손 내밀라고 한다. 무엇보다 손에 흙을 묻히자면 못할 게 없다는 말과 늘 도와주겠다니 울컥한다. 꼭 나를 기다렸을, 나를 위한, 내 사람으로 느껴진다. 느지막이 만났으나 끝까지 갈 사람같이.
해남으로 귀농한 지 7년이나 된 부산 사나이다. 굴착기 교육 동기생이었고 트랙터도 같이 배웠다. 그는 이미 여러 농기계의 고수지만 강화나 보수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어리바리한 초짜를 못 본채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고 두어 주일 후에 자신의 농장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7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실패하지 않을 정보들을 낱낱이 예 들었다. 귀농 귀촌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눈빛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대파, 감자, 마늘과 겨울을 이겨낸 배추 세 포기까지 담아주었다. 고마워서 어깨가 무거웠고 미안함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시원한 수박 한 덩이 들고 찾아가 파안대소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왕건이 탐낸 쌀’은 처음 들었다. 최고급 쌀을 생산하는 남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보였고 부부는 비닐하우스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한다고 했다. 우리의 인연은 뻘낙지 주산지인 영암 독천 오일장 낙지 맛집 앞에서였다. 대기 번호 2번과 3번인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옆자리에 앉아서 식사했다. 더구나 처형과 이름이 같아서 말머리를 트기가 무척 쉬웠다. 휴대폰에 나주 언니로 저장하고 가까운 날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 서글서글한 그녀의 웃음은 차후를 기억할 만큼 후덕해 보였다. 아마도 나주를 지나갈 일이 생기면 인사차 들릴 것만 같다.
벚꽃엔딩이 시작되었다.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는 백리벚꽃길로 유명하다. 숱하게 낙하한 꽃잎이 하얗게 쌓였기에 두 손 소복이 모아들고 아내에게 던졌다. 격하게 좋아하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있었다. 자기에게도 던져 달라고 했다. 휴대폰을 건네며 사진도 찍어 달라는 성격 좋은 사람이었다. 고마우니 진도로 놀러 오라며 명함을 쥐여준다. 바닷가에 50평짜리 집을 짓고 쉬는 퇴직자라며 꼭 놀러 오라고 당부했다. 인연이란 봄바람 스치듯이 고운 향으로 온다고 했다. 진도 세방낙조를 직관하는 날에 그를 찾아갈 예정이다.
팔방미인을 만났다. 우수영 마을에서 18년 동안 이장으로 마을 발전에 이바지하다가 손을 놓은 지 겨우 두 해째라 했다. 그는 마을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전히 온갖 아이디어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법정 스님 생가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벽화 사업으로 아름다운 마을로 탈바꿈하는 데 앞장섰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마당발인 그는 해남 각 읍면의 일꾼들을 거의 꿰뚫고 있는 듯했으며 내 궁금증은 곧장 담당자와 통화하고 도움을 청했다. 해남으로 귀촌한 이들의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을 넘게 이어졌으나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떠날 즈음에 조도와 관매도 여행을 추천했다. 동행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도타운 정을 이야기하면 어불성설이겠지만 마음 씀이 고마웠다.
모두가 인연이다. 우연이란 없다. 지금의 만남은 과거에서 비롯되었기에 필연적 인연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항상 감사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인연이란 머무르는 법이 없고 만남은 반드시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고 하지 않던가.
첫댓글 인생 말년에는 이렇게 살아야지
사람 냄새 좀 내면서 말이야
우연이 아닐테니 한 번씩 찾아가고 웃고..
그래야 인연이 되는데, 피천득의 수필 인연이 퍼덕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