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벽에 새겨진 이야기 –조지아 트빌리시-
요즘 동네를 걷다 보면 벽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린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한 단지의 커다란 외벽 전체가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떨까. 난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버스 창밖으로 그 풍경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단조로운 아파트 건물 사이로 그림들이 보였지만, '벽에 그림을 그려 놓았네'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나 버스가 모퉁이를 돌고 거리를 지날 때마다 아파트 벽면에 이어지는 거대한 그림들은 무심히 넘기기엔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결국 나는 목적지로 가려던 계획을 잠시 미루고, 근처 정류장에 내려 천천히 걸으며 그림을 보기로 했다.
그 많은 그림 중에 눈에 들어 온 첫 번째 그림은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참 애잔한 기운이 풍겼다. 헬멧을 쓰고 장갑을 낀 남자의 차림새는 전장으로 떠나는 군인을 떠올리게 했다. 파란 원피스를 휘날리며 남자의 품에 안긴 여인은 뒷모습만 그려져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슬픔을 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떠나는 순간인지, 아니면 겨우 다시 만난 순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안아주는 손길에 이별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또 하나의 그림은 어린 소년이 해지는 노을, 먼 곳을 응시하는 그림이었다. 소년의 시선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막막하고 그리움 섞인 눈빛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두 그림이 왠지 하나로 엮어져 가족처럼 느껴졌다. 떠나는 남편을 포옹하는 아내와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서 있는 아들. 어느 한 가족의 잘려 나간 일상이 그 벽에 서 있는 듯했다.
조지아를 여행하며 알게 된 이 나라의 역사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배를 받고, 소련 시절의 가혹한 시련을 견뎌내며 1991년에야 비로소 재 독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곧이어 찾아온 내전과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은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을 다시 전장으로 불러들였다.
이 역사적 비극 앞에 전장으로 나간 젊은이들은 특정한 영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젊은 남편이었고, 어느 집의 소중한 아들이었다. 이 벽화의 그림은 집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남편, 그리고 홀로 남아 아이를 키우는 아내와 돌아올 아빠를 그리워하며 시선을 먼 곳에 두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트빌리시의 아파트 외벽을 메운 그림들은 결국 이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실제 삶의 조각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또 한켠에 그려진 지휘하는 사람은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듯, 유쾌하기만 하다. 손을 저으며 음악을 지휘하는 사람의 모습은 지나온 어두운 시간을 툭툭 털어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향해 경쾌한 박자를 맞추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슬픔과 고통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길을 계속 걸으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소년들과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아줌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덤덤하게 제 할 일을 하며 평범한 하루를 건네는 사람들, 지난날의 아픔을 외벽에 묵묵히 품어둔 채, 조지아 사람들은 그렇게 오늘을 살아간다. 벽에 그려진 것은 지나온 아픔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지만, 진짜 조지아를 움직이는 것은 그 아래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현재 일상이었다. 아픔은 기억하되 오늘을 웃으며 살아가는 조지아 사람들에게, 이 거대한 벽화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그들이 지나온 이야기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힘 그 자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