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에 기대어
뜨거웠던 올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도 무르익어 저물어 갈때쯤..나는 올해가 다 가기전 마무리 해야할 숙제 하나가 생각났다. 그 숙제란 바로 요양원 실습!
.실습을 시작한 곳은 주로 치매 어르신들과 누워 지내시며 거의 거동을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었다. 이주동안 이곳에서 요양사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들을 지켜보고, 배우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요양이라는 것은 나와는 정말 상관없는 직업과 일들이었는데, 아픈 가족이 생기니, 낯선 환경과 일들이...어느 순간 내 삶으로 불쑥 들어와 버렸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시간 날 때 요양사 자격증을 따두면 나중에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일상생활에서 교육과 실습을 받기위해 시간을 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습생으로 출근하여 어르신들에게 먼저 인사드리고, 청소를 시작한다. 어깨를 주물러드리거나, 말벗을 해드리다 보면 시간이 흘러 오전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여러 가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게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요양사 선생님들이 늘 하시는 말씀은 어르신들을 소중한 애기 다루듯이 넘어지시지 않도록 최선껏 돌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식사를 도와드리고, 어르신들의 틀니를 씻는 일을 하였다. 엄마의 틀니를 씻어 본 적은 있지만...이름만큼이나 모양이 다양한 수십 개의 틀니를 씻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실습생인 우리가 깨끗하게 씻은 틀니들을 이름이 쓰여진 칫솔과 함께 컵에 담아놓으면,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는데, 그곳에 계신 요양사 선생님들은 틀니의 모양만을 보고 바로 제 주인을 찾아드리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부분이 치매 어른들 이시다보니 몇 번이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며칠을 봤는데도 누구냐고 매번 물어보기도 하고, 비 올거 같으니까 빨리 옥상 가서 빨래 걷어오라는 분도 계셨다..ㅎ 거실 소파에는 편안히 기대 쉬실수 있도록 여러개의 쿠션들이 있었는데, 어느 한 어르신은 유독 그것들에 집착하셔서 틈만 나면 죄다 방안으로 가져다가 이리저리 숨겨놓기도 하셨다. 처음엔 정말 당황스럽던 어르신들의 행동이 시간이 갈수록 정스럽고, 순수하기도하고 귀여운 면이 있어 혼자 웃은 적이 많이 있다. 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초등생 두 딸들에게 엄마의 실습내용을 얘기해 주곤 했는데, 아이들은 매일 할머니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묻기도 했다.
100세가 넘으신 한 할머니 생각이 난다. 연세는 많으시지만 치매는 심하지 않은 한 할머니가 처음에 ‘방에~방에’ 하셔서 얼른 방으로 모셔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방에서 나오면 무조건 다시 들어가려고 하신다고 한다. 치매는 있으셔도 ..아늑한 기억속의 할머니 집을 그리워하시는 걸까...
어르신 중 또 기억나는 몇분이 계신다. .낮에도 늘 말씀이 없으시고, 소파에 앉아 계실 때는 거의 잠만 주무시는 할머니에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오셨다.
시골에서 왔다는 그분은 할머니의 동서지간이라고 하시며, 식혜와 고구마를 삶아서 보자기에 담아오셨다. 동서라고 하셨지만, 그 할머니도 허리가 많이 굽고 연로하셨는데 요양원에 계신 형님 드리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오신 거 같았다. 그런데 손님이 오시니 치매 어르신은 정말 기억이 한꺼번에 돌아왔는지 한눈에 알아보시고, 곧 다정하게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이 보였다. 두 분은 젊어서부터 한집안에서 만나 함께 일을 하시고, 오늘처럼 저렇게 앉아 도란도란 새참을 드셨겠지.. 힘든 집안일을 함께 할 때도 저렇게 앉아서 서로 좋으셨겠지..
그런데 고구마를 함게 나눠 드시던 할머니가 식혜가 든 병을 가지고 한사코 방에 장롱에다 넣어 두시려한다. ‘이거 ..우리 아들 오면 줄거야..!’ 밖에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들 오면 드린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기어이 식혜를 장롱에 넣으신다. ..바빠서 자주 오지도 않는 아들이 언제 올지 알고...
한 시간도 채 안되어 다정하게 앉아 있던 동서 할머니가 집에 간다고 일어서자,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치매 할머니가 좀 더 있다가라고 투정을 부리시기 시작했다, 손아래 할머니도 바쁜 사위차타고 와서 어여가봐야 한다며 몸을 빼신다. ‘또 오께요. 형님~밥 잘 잡숫고 있으소~’ 갑자기 할머니가 바닥에 앉으셔서 아기같이 울기 시작하셨다. ..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이래 올거 뭐하고 왔노! 이거 다 뭐라고 이런거 가지고 뭐하러 왔노.. 좀 더 있다가.. !!!
마침 어르신들 점심 식사 전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있던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날은 조용하던 할머니가 말씀도 많이 하셨지만, 가장 많이 우시기도 한 날이다.
거실에서 어르신들의 잔잔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평소에 기운이 없고, 피곤해 하시다가도 가장 기다리고 즐거워하시는 시간이 노래교실이다.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하며 무료함을 달래는 시간인데, 이 시간에는 치매 어른들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만큼 노래가사부터 음정, 박자가 정확하시다. 민요 같으면서, 트롯트 같으면서...그동안 한번도 듣지 못했던 옛노래를 듣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친근함이 들게 하는 노래들에 젖어 나조차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하며 그 어려운 시대를 보내고, 결혼해서도 가족들 먹이고 입히느라 본인의 삶은 뒷전이었던 어르신들의 삶이 노래가사마다 가락마다 묻어난다. 비록 현재의 기억은 멈추어 있을지 몰라도 삶의 희노애락의 굴곡마다 함께했던 이 노래들은 어르신들의 삶을 기억하고 또 이렇게 한참을 위로해 주나보다. 잠시나마 이 시간들에 기대에 어르신들이 행복했으면....!
이렇게 짧은 이주간의 실습을 마무리하고 나는 겨울을 맞이한다.
꼭 다시 놀러오라는 할머니에게 또 올게요 라고 너무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가수왕 할머니는 또 새로운 실습생에게 매일 물으시겠지? ..새댁이 여기 왜 왔냐고...ㅎ
깊고 추운 겨울밤, 어르신들 따뜻하게 잘 보내세요..밥맛 없어도 식사 꼭 많이들 하세요!
첫댓글 글이 두서없이 정리가 안되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매번 늦어 죄송해요
..고생하신 모든 분들...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집사님~~정말 대단하셔요..하시는 일도 많으신데 요양사 자격증 까지...
덕분에 요양원의 풍경을 감상하게 되네요..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남일 같지 않은 일들을...
좋은 글 감사합니다...밑에서 5번째 줄 기대에...기대어 아닌가요??
집사님..기대어가 맞습니다
ㅋ
뭐 이래저래 바쁘긴한데..뭐하나 제대로 하는거 없는게...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