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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난데없는 손님
서울 손님들이 떠나간 다음 날 아침은 아름다웠다.
날씨가 깨끗하면서도 호수에서 오르는 안개가 산 허리를 덮어, 그들이(예를 들어 구 병태가) 있었다면 탄성을 올리고도 남음직한 아침이었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기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기는 하지. 특히 자연에서는......' 하면서,
카메라까지 꺼내, 사진을 두어 컷 찍어둘 정도였다.
그런데 세월은 또 어느새 흘러, 이제 여름 곤충들이 활개를 치려고 하는 시절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여름이 아닐 텐데도, 시골이라 그런지... 파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오후에 지나가던 반장에게 기로가,
"여긴 왜 이리 파리가 많아요?" 하고 묻자,
"저, 뒷집에 개가 많아서 그럴 걸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마을 전체적으로 그 집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것까지 기로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파리와의 싸움도 시작된 것인가? 앞으로 머지않아 모기도 나올 텐데......' 하면서 기로는,
'그러고 보면, 따뜻한 계절이라고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아. 추울 때는 그런 곤충을 보지 않아서 좋았는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오후, 기로는 오랜만에 서울에 사는 누님의 전화를 받았다.
통나무집에서 점심을 챙겨먹고 '夢想?'에 막 돌아왔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서 받았더니, 기로의 누님은 대뜸,
"너, 무슨 돈벌이라도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 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에요?"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니,
"오전 내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나는 니가... '어디, 돈 벌러 나간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 뭐." 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경제적인 문제로 가라앉아 있던 기로의 마음이 결코 나아지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로는 기분도 달랠 겸, 뒷밭에 올라가 배추씨앗도 좀 뿌려보았다.
토마토 심은 옆에 조금 땅을 파낸 다음 씨앗을 뿌리고 살짝 덮어주었던 것인데,
'내일 비가 온다는 말이 있으니... 잘 나겠지?' 하다간, '그나저나, 앞으론 어떻게 살아간다지?' 하고,
손님들이 떠난 뒤 부쩍(아니, 그들이 있는 상태에서도), 기로는 더욱 우울한 상태였다.
# 개를 키우는 맛
요즘 '격'에게 한 가지 바람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언제부턴가 똥오줌을 가리기에, 하도 신통해서... '하! 이 녀석 봐라?' 하고, 좋은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또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이 몸에 익어가고 있습니다.
여기는 시골이라 군데군데 밭이 많아서, 개가 뛰어다니면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동안은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차츰 똥오줌을 가리면서는, 개가 몸부림을 치며 낑낑댈 때는 뭔가 그런 낌새가 있는 듯해서... 내가 개줄을 묶어서라도 데리고 호수둔덕에 나가곤 했거든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거기서 두 가지 용변을 다 보더니,
호수의 물이 불어 나면서는(똥 누는 곳이 물에 잠기면서), 오줌만 누고 똥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처음엔 거기가 어딘지 잘 몰랐는데, 정미네 집 쪽으로 가다보면 공터가 있는데, 거기다 누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거리 상으론 몽상에서 조금 멀어서.. 아침 저녁 두 차례나 다니기가 쉽지 않고, 내가 바쁠 때는 가기가 영 곤란했는데,
그렇다고 개줄을 풀어주면 개가 좋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에게(특히 뒷집에) 야단을 듣게 되어서 곤란한 상황이곤 했었습니다.
게다가, 일단 용변을 보고 나면 개가 다시 개줄을 묶으려는 나에게 오지 않으려고(내가 부르면 나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오긴 하는데, 휙 지나쳐 버리면서 나를 흘끔 쳐다보곤(눈치를 보곤) 합니다.), 이리저리 피하면서 나를 약 올리곤 하드라구요.
그래서 나도,
어서 집에 가서 내 일도 해야 하는데, 이 놈의 개가 지 멋대로 날뛰니... 약이 올랐던 나는, 나중에 집으로 들어온 개를 두어 번 혼냈습니다.
그래서인지 또, 언제부턴가는... 내가 부르면 나 있는 곳으로 뛰어와서는, 그대로 뒤집어 지는 겁니다.
그래서 분석해보니(?),
내가,
"격!" 하고 부른 뒤 땅 쪽으로 손을 대면서 오라고 하면,
개가 멀리서 보다가 뛰어와서 몸을 낮추는 겁니다.
마치 우리 둘만의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요......
그래서 이제는 개 줄을 풀어 놓아준 뒤, 지 스스로 용변을 보게 하고... 다 본 것을 내가 확인한 뒤, 땅에다 손을 대면서 부르면,
한 번 나를 슬쩍 보고는, 쏜살같이 뛰어와 엎드리니...
"하, 요놈! 영리한 것 좀 보게......" 하고 나는 감동까지 했답니다.
그러니 나는, 개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는, 내가 불러도... 도망가기까지 했었잖았습니까?
그러던 개가, 언제 그랬냐 싶게... 내 부름에 응해주는 게, 너무 신통하고 이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지가 말썽을 안 부리니, 내가 편할 수밖에요. 그러니 더 이뻐할 수밖에요.
그럴 때마다 쓰다듬어 주거나, 목 밑을 주물러 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있거든요.
그렇게, 버릇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진돗개' 혈통이라, 주인과의 컴비네이션은 맞추면서... 서서히 굳혀갈 머리(지능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놈은, 성격이 주인을 닮아서인지(?) 차겁습니다.(내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좀 차거운 편이거든요.)
개가 순한 건 좋은데(거의 짖지 않으니까), 주인인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냉정하더라는 겁니다. 상당히 자주, 그리고 많이 보아 온 내 친구(상범)에게까지도......
엊그제도 손님들이 와서, 고기를 주면서 한 이틀을 그렇게 친해지려고 하는데도, 고기만 받아먹고는 자기 몸에 손도 못 대게 경계를 하거나, 뒷걸음 질 치면서 피하곤 하더라구요. 그런데도 손님들은,
"야, 이름이 '격'이라서 그런가? 개가 격조가 높은 거 같지 않아?" 하거나, "나도 나중에 개가 생기면, 이름을 '우아'라고 붙일까? 우아하라고?" 하자, 한 사람이 "차라리 '품위'라고 붙이는 게 어때? 하 하 하... " 하면서 웃기까지 했거든요. (개 이름의 내막도 모르면서......)
그런 반면, 나는 귀찮다는데도(내가 원래 개를 썩 좋아하지 않았음) 개가 눈을 맞출려고 난리거든요.
평소의 나는 가능하면 개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개와 놀아줘야 되거든요. 시간도 없는데......
그래서 집안에서는 가능하면 개와 외면하면서 무슨 일이든 한답니다.
'그래서 개가 냉정해진 건가?'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요......
아무튼, 개 한 마리가 식구로 와서는... 처음엔 하도 멍청해서, 내가 때리기까지 했었는데... 어느새 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여기로 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방문만 열면 오픈된 공간이라... 처음에 개가 없을 때는,
'밤에 누군가 갑자기 문을 확! 열고 들어온다면?' 하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의 관문(?)은 통과해야만 누군가는 나와 대면할 수 있으니까요.
낮에는 아무 소리 없던 개가 밤에는 인기척이 나면 여지없이 짖어대거든요.
근데요, 더욱 신통한 것은,
우리 '격'은, 이 마을의 다른 개처럼 내내 시끄럽게 짖어서 짜증나게 하지도 않거든요?
그렇게 조용히 있으면서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면... 제법 묵직한 짖음으로 나에게 신호를 하는 겁니다.
그 것마저도 얼나나 이쁜지 모른답니다.
이 마을 사람들도, 낮에는 짖지도 않던 개가 밤에는 약간의 경계의 빛을 내는 것을 보면서,
'격'을 마을의 다른 개들에 비해 영리하다거나 신통하다고 말하곤 하거든요.
몇 년을 한 마을에 살아도, 산장집 개와 뒷집 개들은... 사람만 보면 짖어대서, 모두들 짜증을 내는데요,
(나 역시도 그렇게 산장집에 드나들어도, 그 놈의 개들이 짖어대면, 짜증스럽기 짝이 없고요......)
'주인은 안 그런데, 멍청한 개들이, 사람도 못 알아보고... 매일 봐도 짖어댄다.'면서요.
그런데 '격'은, 사람을 잘 따르지 않아서 그렇지...
마을 사람들이 '夢想?'에 거의 매일 드나들어도, 전혀 소리조차 내지 않으면서, 가끔 밤에 뭔가 이상이 있어야만 묵직하게 두어 번 짖으니... 나도 이쁘게 생각하고, 주민들도 신통하다고 할 수밖에요.("이 집 개는, 주인 닮아서 그런가... 순혀......" 하는 소리도 몇 차례 들었거든요.)
내가 봐도 그러니, 기분 나쁠 일은 없습니다. 아니, 자랑스럽기까지 하거든요......
그런 맛에 개를 키우나 봅니다.
5 . 6
*
오늘도 비다.
진종일 쉬지도 않고 비는 이어진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비가 조금 갤 듯했다.
호수 표면이 움직임 없이 잠잠한 모습이어서, 나는 얼른 우비를 걸치고 장화를 신고 배 있는 곳으로 갔다.
비가 와서 배는 물이 많이 차 있었다. 서둘러 물을 퍼내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비가 막 갠 상큼한 바람이 호수를 감싸고 있었고, 구름도 찢어져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시원 상쾌했다.
'아, 이대로 멀리 떠난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좋으니(그러고 싶지도 않으니), 어딘가 멀리 떠나버린다면......' 하고 있었는데,
호수는 정말 잔잔하기만 했다. 그 위를 배만 미끄러져 갔던 것이다.
"비 오는데 어디 가세요?" 하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소리에 나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정미 엄마가 멀리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냥요......" 했는데,
'그런 말이 있나?' 생각이 들면서도, '대답 같지 않은 대답을 하는 건지, 나 혼자 중얼거리는 건지......' 그러고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졌다.
그래도 많은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늘의 한 쪽은 말갛게 개인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아래로 노를 저었다.
배에서 내려오기가 싫었다. 그러나 빗방울은 점점 그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비는 끈질기게도 내리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정말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5 . 7
# 배를 타려는 마음
아, 이제야 확실히 알았습니다.
내가 왜 배를 타려고 하는지를......
처음엔 남들의 배타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 부러움에다, 또 내 스스로도 배를 타는 즐거움을 만끽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보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남들도 내가 배를 타는 모습에 부러워할 것 같기도 했고 또, 나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한 달여), 이제 그런 들뜬 마음은 많이 걸러진 편입니다.
배에 올라 노를 저어 물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순간,
나는 마치, '이 세상에서 어디 다른 먼 곳으로 떠나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그러니까 이 세상 일로부터도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 홀가분함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이 세상의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고 있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맛을 느끼기 위해 나는 배에 오르려 합니다. 특히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할 때는 더욱 더...
날씨의 좋고 나쁨을 떠나, 내 상황에 따라 배를 타려고 호수의 물결을 보며 애를 태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모하게 배에 오르는 만용을 부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출발하는 순간엔(땅에 박혀있던 배끈을 풀어 배 안으로 옮겨 놓으면서), 마치,
'누군가, 아니면 뭔가 날 잡으러 쫓아오지 않나?' 하며, 뒤를 돌아보거나,
마음이 바빠져서 뭍에서 빨리 벗어나려 하는 나를 자주 느껴왔던 것입니다.
그러다 배가 뭍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호수 바람을 맞게 되는 쌀랑하면서도 맑은 순간엔,
내 마음도 편해지면서 그만큼 깨끗해지는 걸 느끼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이제는 쉽사리 날 쫓아오지 못할 거라는 안도감과, 그리고 이제 나는 그런 위험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편안함... 그런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내가 배를 타려고 허둥대는 것도... 결국은 현실 도피성이라는 거지요.
조금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즐기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도망가기 위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니......
내가 그렇습니다.
겨우 뭍에서 몇 발짝 벗어나 호수 위를 떠다니면서라도, 마음을 달래보려고... 배를 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뭍에서 벗어난 게 얼마나 될 것이며, 호수 위에 있다고),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닌데......
5 . 7
그렇게 최근의 기로의 생활이 많이 위축된 상태였다.
그러니 날마다 업로드해야 할 홈페이지에는, 그런 구체적인 얘기는 감춘 채... 겉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 '어버이 날' 스케치
오늘이 '어버이 날'이랍니다.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어제 전화 통화로, '내일은 쉰다.' 는 말을 들어서 알게 되었음), 마치 남들의 얘기인 양...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내 자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만 해도 어디선가 자식들이 부모님을 찾아오느라(아무래도 시골이라 주민이 노인 위주라) 차가 몇 댄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옆집의 할머니께도 두 아들이 찾아왔다 가는 것 같드라구요.
그런데 나는 별 감흥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도 비는 구질게 내려, 이따금 밭에도 나가보고 마당의 풀도 뽑아내고, 축대 돌 사이 흙에 야생초 '달개비'를 뽑아다 심어 놓기도 하면서요.
그런 틈새에 배를 타고 호수 건너까지 가서 하모니카도 불고 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야릇한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찾아 뵐 어버이가 안 계십니다. 그리고 내 나이로 보면(친구들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직은 어려서 어쩌면 카네이션이라도 사들고 찾아와 가슴에 꽂아 주지도 못할, 그런 자식간의 사이조차 단절된 사람입니다.
나에겐 이미 부모가 안 계시고, 누군가의 부모이기는 해도, 그 권리마저 포기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쩌면, 위로도 아래로도 부모 자식이란 단어와는 해당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서글픈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걸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무슨 '어버이 날' 운운하겠습니까마는......
아무튼,
그렇게 오늘은 남들에게는, '어버이 날'이라는데,
찾아갈 부모도 안 계시고, 또 나를 부모라고 찾아올 자식도 없는(?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괜스레 심각한 척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컷 홈페이지에 올릴 것처럼 딴에는 심사숙고해서 이 '편지글'을 시작했던 기로는,
글이 점점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는 식으로 흐르면서는,
'에이, 이런 글을 뭣땜에 쓰고 있는 거야?' 하면서, 또... 전처 송 선희를 원망하려는 생각이 나서,
'오늘 글을 올리지 않는다고, 무슨 큰 일이 나는 건 아니니......' 하고 쓰다가 중단하면서는,
고개를 흔들면서까지 하모니카를 꺼내 '바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떠나가는 배' '불꺼진 창' 등을 부르다,
갑자기 괜히 심사를 부리기라도 하듯, 달력의 8일을 검은 매직 팬으로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는,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스스로도 미덥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했지만,
마음 같아선 누군가에게 실컷 화풀이라도 하고 싶기만 했다.
그러다가 드로잉이라도 하려고 스케지북을 펴놓고 앉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뭔가 잡힐 리가 없었다.
그렇게 두 시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지만, 단 한 줄의 선도 그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다음 날은 조금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일단 통나무집에 가서 요로법을 한 뒤,
기로는 지난 어린이 날에 서울 손님들이 왔을 때 쪄 먹었다 남아있던 산장 할머니네 고구마 하나로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는,
사과를 깎아 먹으려고 이쑤시개를 꺼낸 뒤 다시 선반에 올려놓으려다가... 이쑤기개 통의 문이 열리는 바람에,
바닥에 다 쏟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씽크대 설거지 통으로 많은 이쑤시개들이 흐트러져 떨어져, 치우기도 곤란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한심하다 못해, 앞이 캄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순간적으론,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씽크대 바닥에 물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긴 한숨을 내 뱉고는, 천천히 쏟아진 이쑤시게들을 다시 주워서 통 속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夢想?'에 다시 돌아와 홈페이지만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11시가 넘어가자마자 점심을 서둘러 챙겨 먹고는, 스케치 도구 등을 챙겨 정미네 언덕 너머로 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니 정미네 배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식구들 모두가 호수 건너 밭에 일하러 갔을 터였다.
그래서 그 집 옆으로 언덕 밭을 지나 무덤 있는 곳에 오르니, 호수 건너엔 몇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깨를 심는지 고추를 심는지, 반장 부부와 정미 할머니가 검은 비닐을 땅에 씌우고 있었다.
기로는 감나무 앞 밭에 앉아 간단하게 수채로 풍경 드로잉을 했다.
산들은 이제 여름으로 향해 힘차게 가는 듯, 연보라 색의 오동나무 꽃이 줄을 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날마다 푸르러 가고 있다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기로는 장소를 옮겨 거기 무덤가 잔디에 앉았다.
그 곳에선 마을은 물론 언덕 너머 호수도 보이는 곳이라, 가슴이 확 트이기도 했지만,
무덤가의 몇 포기 할미꽃도 어느새 꽃은 지고 씨앗만 풍선처럼 둥그렇게 부풀려 놓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니, 처음엔, 꽃 보다 큰 둥근 덩어리가 몽실거리기에, '이게 뭐지?' 하면서 자세히 보니, 그게 바로 씨앗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기로는 그 순간, '할미꽃의 씨앗도 민들게 하고 같구나!' 하고, 스스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약간 바람이 부니, 그 씨앗의 일부도 바람에 날아가는 것이 보여,
'아, 얘들도... 번식마저도 민들레와 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 같네?' 하고 신기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로는 하모니카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오늘은 ‘얼굴’이 저절로 불어졌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으린 얼굴......
하모니카를 불면서도 기로는 그 노래의 가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도 그리워 할 얼굴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하필이면 그 때, 한 줄기 조금 센 바람이 불어오면서 때 아닌 먼지가 날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뭔가 그 느낌이 이상했다.
물론 처음엔 그게 먼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앞에 널찍이 퍼져있는 소나무 한 그루엔 노란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고, 바람에 날리는 것은... 먼지가 아니라 바로 그 소나무의 꽃가루였던 것이다.
그 가루들이 그렇게 먼지처럼 날아가 호수 표면에 떨어져, 호숫가가 노랗게 덮여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산골에 와서, 참... 여러가지를 보고 배우는구나......' 하면서도,
'아, 송화 가루와 할미꽃, 그리고 민들레 씨앗이 날리는 언덕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베짱이' 같은, '빚쟁이'......' 하고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스쳐,
얼른 일어나고 말았다.
그렇게 일어서는데, 마을 모퉁이에 빨간 옷차림의 정미가 보였다.
'학교가 끝나서 돌아오는 것이리라......'
기로가 터덜터덜 걸어서 정미네 집 쪽으로 내려오는데, 정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따라 기로는,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정미네 집을 그냥 지나쳤다.
'夢想?' 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미국인 S한테서 메일이 와 있었다.
내일 온다던 그는, 프랑스인 처가 감기에 걸려 어쩌면 못 올지도 모른다는 짧은 메일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하겠다고 한 줄을 덧붙인 메일이었다.
기로는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사실은, 비록 누추하긴 해도 기로 자신이 사는 이런 산골에까지 미국인 친구가 온다고 해서,
(그가 여기 '夢想?'에서 잘지, 아니면 가까운 어딘가의 호텔로 갈지 모르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침대보까지 빨아 놓는 둥,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래라. 차라리 오지 말아라. 내 입장에서도 조금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내가 손님을 마다하는 사람은 아니다만, 한국 사람도 아닌 외국 사람이라... 이 시골 생활이 서로에게 불편하기도 하던 차니, 어쩌면 그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기도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이혼 직후에 기로가 미국행을 염두에 두고 한동안은 서울 종로에 있는 외국어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회화'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던 미국인 강사 S, 서로 대화가 잘 통해 수업과는 관계없이 거의 친구 수준으로 가까워진 사이가 되어, 상호 집을 방문해 식사도 하는 등... 교류를 이어오던 친구였다.
그런데 기로가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간다는 사실에 열광을 했던 S는, 처음부터 기로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자신도 학원강사 신분이라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가, 어린이 날 연휴를 맞아 오려고 했다가... 구 병태 등의 방문으로 뒤로 밀려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프랑스 인 처가 아프다니,
이래저래 시골까지의 방문이 어려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기로는 서울에서 했던 대로, 자신이 음식을 해서 대접을 해도 그들 부부가 잘 먹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만 대접을 해도 되리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내심 걱정스런 점도 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여기에 오면, 무엇보다도 '온수'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기에(통나무집에 화장실이 있지만, 좁기도 하고 음침한 건 물론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이라), 그 점이 걸리던 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S가 워낙 오고 싶어 하기에, 오라고는 했던 것인데... 그들로부터 사정이 생겨 못 온다고 하니,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몰라......' 하게 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심란했던 기로는,
'배라도 탈까?' 했는데, 바람이 스산하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해 조금 춥다는 느낌까지 들어... 관두기로 했다.
그래서 저녁이나 일찍 먹고 일을 하자며 밥을 준비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김 선생님이었는데,
"나, 이 근방에 와 있는디... 사는 디가 어디여?" 하는 거 아닌가.
"예에?" 하고 놀랐지만, "아, 그러세요? 어디신데요?" 하면서도, "아이, 선생님! 오시기 전에 전화를 주셨어야지요?" 하고, 한편으론 반가운 마음에, 그러면서도 기로는 언뜻 투정까지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군산의 조각을 하는 후배 부부가 선생님 집을 찾아갔었는데, 하룻밤을 자고 군산으로 돌아가려는데, 선생님께서 은근히 여기에 오고 싶어 하셔서(후배 왈)... 모시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온 거라, 그리고 또 후배 부부도 군산으로 곧 돌아가야 한다며... 그저 '夢想?'의 구경만 살짝 하고, 돌아가는 길에 선생님을 또 모셔다 드려야 한다면서, 잠깐 저녁이나 함께 먹자고 해서...
그들은 정말, '夢想?'에 오자마자 그저 집 주변을 한 바퀴 돈 것으로,
"다음에 시간을 내서, 정식으로... 다시 와야겠네......" 하면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에,
기로도 일단 그 차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 뒤, 후배 차로 전주 방향의 한 음식점에 들러, 매운탕을 먹으면서(기로는 민물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설렁탕을 시켰다),
"어떻게 맹숭맹숭하게 밥만 먹겠어?" 하면서, 소주도 한 잔을 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차의 운전대는 후배 처가 잡았고,
그들은 기로를 마을 입구까지 데려다주고는 다시 정읍 쪽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난데없는 손님을 맞았다가 기로가 천천히 '夢想?'으로 걸어 오니,
기로의 발걸음도 아는지 내내 아무 소리도 없던(짖지도 않던) 격이 기로를 보자마자, 펄쩍펄쩍 뛰면서 어쩔 줄 모르고 몸부림을 치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썰렁하게 지만 남겨놓고 가버렸으니, 아무리 개라지만, '웬일인가?' 했을 터였다.
"나 오기를, 그렇게 기다렸냐? 격?" 하고 기로가 쓰다듬자,
개는 신음소리까지를 내면서 기로를 반겼다.
# 난데없는 손님
오늘, 예고도 없이 '정읍'에 사시는 김 선생님께서 오셔서... 또 생각지도 않았던 술 한 잔을 했답니다.
그 분이야 워낙 찾아오는 사람들이(나를 포함한 '군산' 출신의 (주로)예술인들. 군산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정읍으로 이사를 하셨음) 많은데, 그 분도 마찬가지로 요즘 날이 풀리는 봄이다 보니 이런저런 손님들이 드나드는 중에, 내 고등학교 미술반 후배 하나가 부부나들이로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김 선생님은요, 내 대학의 선배님이자... 군산 지방 예술인들의 '대모'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인데, 그 분도 교직에 계셨다가 최근에 정년을 맞으셔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정읍의 한 산아래에 자리를 잡고 사시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내가 여기 '둔터니'로 이사오자마자 난방이 안 되는 바람에 거기에 가서 자고 오는 등(내 친구 부부와 함께), 여기에 살면서도 자주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그 뒤로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셨던 선생님께서, 후배가 돌아가는 차편에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오셨던 건데요,
물론 여기 '夢想?'을 한 바퀴 둘러보신 뒤,
"상상은 했었지만, 호숫가에서 신선처럼 살고 있네! 잘 혔어, 잘 혔어!" 하시기는 했지만,
운전을 했던 후배의 일정에 쫓겨, 우리는 곧 전주 방향의 한 식당을 찾아갔던 겁니다.
그 자리에서 김 선생님은 날더러(물론 내 상황을 짐작은 하고 계셨었기에),
"이 세상에 태어나, '진정한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십자가를 짊어졌다' 생각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강조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한 눈 팔지 말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라."고도 하시더군요.
"남들과 똑같이 편히 먹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면서 어떻게 예술가의 길을 가겠느냐?"는 것이지요. "물론, '부와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예술가)도 있다'는 걸 잘 안다."면서, 예술가인 척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며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이름 만으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미술계의 몇몇 특정인을 거론하면서 말입니다. "자기 생에서는, 겉으로 누리며 살아갈지 모르지만, 작품으로 언제까지 남을 것인가는... 본인 스스로가 잘 알 거야."라면서, "그런 부류를 부러워하는 것 자체가... 예술가로서는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 하는 얘기셨습니다.
그리고 '몇몇 거장들은 자기 생에 많은 걸 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는 걸 언급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상태로 이 세상에서 작품만 하다가 간,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남겨주고 있는 예술가' 몇 몇 예술가들도 거론하면서, "하늘은 그런 예술가들에겐 물질적으로 풍부하도록 많은 것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애를 태우게도 하고, 배도 고프게도 하고, 절대적인 고독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면서 시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지면, 진정한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는 의미니, "지지 말고 굳건히 자기 길을 가라." 고도 하셨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나를 염두에 두고(나에게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내 스스로는 멀뚱멀뚱 그 말씀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어찌, 그런 사람들에게 나를 갖다 대시나?' 하면서요......
물론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들까? 더구나 이 삭막한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부대낌을 겪으며 살아가게 될까?' 하는 우려가 절로 들더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듯, 편한 것과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려면 굳이 예술가로의 길로 갈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만큼의 노력과 고통과 아픔이 있음으로 해서 그만한 향기가 나오는 작품이 탄생할 테니까요.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에겐 전혀 새로운 사실일 리가 없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다 보니, 나 역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말이자, 또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런 얘기를 다시 한 번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더구요.
그러면서 인간의 양면성(이중성)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요,
"그 갈등 속에서 얼마나 자신을 지켜내느냐가 승패의 갈림길이야."라고, 선생님은 새삼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씀도 이미 알고 있고 또 공감하고 있었지만,
'허긴, 그래서...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중간에 이런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났겠고......' 하면서 그런 사람들 두엇을 떠올리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나는?
글쎄요......
젊었을 땐, 그런 허황된 꿈도 꿨습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엔 그런 마음(그런 예술가가 되리라는...)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진정한 예술가'요?
......
그런 단어가 사람의 얼굴에 씌여 있습니까? 차라리 그렇게라도 표가 난다면 좋겠습니다. 가부(可否) 확신이라도 가져 볼 수 있게요......
우습군요.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내가......
어쨌든 이제는, 그런 허황됨에서는 많이 후퇴해 있고, 또 상당히 자유로워진 상태이기는 한데요,
그렇다면, 왜?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이 일을 하느냐구요?
이 세상에 살아있으니, 뭔가 내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길로 가겠답시고, 부모님의 심한 반대에도 고집을 피워... 끝내 이 길로 들어왔으니, 기왕에 그럴 바엔... 열심히 하자는 겁니다.
사실 나는 천성이 부지런하고, 뭐든 마음 내키면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딴에는 열심히 한답시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다가, 한 눈을 팔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깨끗한 마음으로... 또는 그런 상태로 내 일에 매달려보자는 것이지요.
그 마음만큼은 늘 변함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근데, 그게... 말이 쉽지(그러다 보니)......
아, 내 생활은 말이 아니지요.
그러면서도 내가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일이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을 것 같고, 더 중요한 건... 사는 의미가 없어서지요.
그렇다고 내가 뭐, '거창한 예술가'라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주장은커녕,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는 처진데요?
왜냐면, 그저... 내 개인적인 일을 하면서 살 뿐이니까요.
아니, 그렇잖습니까?
누구라도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있게 마련이고, 게 중에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그나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잘 된 일 아닐까요?
그러니, 못 살아도... 할 말이 없는 거지요. 지가 좋아서 그렇게 산다는데 누가 뭐랄 사람 있겠습니까?
'예술가'요?
글쎄요......
나도 그림을 그리니 '화가'일 수 있고(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미술을 전공했고 내내 작업도 하면서 전시도 마다하지 않아 세 번의 개인전도 한 사람이니), 글 나부랑이도 끄적이니... '문필가'일 수도 있나요? 그런데 그런 단어마저도 생소하기만 합니다. 비록 책을 내기도 했다지만, 단 한 번도 내가 문필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거든요.
아무튼 그 것도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니 그렇다 치자구요. 그리고 맘이 내켜서, 뭐, 잡다한 입체 작품도 해온 건 분명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관심이 있고, 또 영화 쪽에도 관심이 많아... 허황되게도, 돈이 많으면 재밌는 영화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망상에 젖어있는 사람이 바로 납니다.
어쨌거나, 참으로 웃기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결과적으로는(우리 부모님께서 우려하셨던 대로), 이렇게 이름도 없이 가난하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삽니다.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물론, 김 선생님께서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겠지만,
정작 나는,
술이 들어가는데도 술기운은커녕 머릿속이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께 술을 적게 드려야겠다'고 술병을 상 아래에 감추는 행동도(?) 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이래저래 심란하기만 한 요즘인데, 예고도 없이 몇 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왔고,
나는 생뚱맞게도(?) '예술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답니다.
마음은 어둡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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