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쉼표, 디카시
"대패질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작가 황순원의 말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은 대패질하는 시간에 대한 준비이며 그 실전을 위한 휴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작가로서의 창작 방식에 대한 비유적 언급이었으나, 세상을 살아갈수록 우리 삶의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날 선 교훈이라 여겨진다. 벌목장의 인부가 열심히 도끼질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쉬는 시간을 갖고 도끼날을 갈며 기름을 바르는 것이 훨씬 더 일의 능률을 올리는 길이라는 사실과도 같다.
필자가 포항 해병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때의 일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부대 내 휴게실을 새롭게 꾸미는 임무가 맡겨졌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온 전우 한 사람과 여러 날을 고민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면 벽면에 어떤 구호를 내걸까가 중심 화두였다. 우리는 해병대의 진취적 정신과 휴게실의 본질적 기능을 조합하여 이렇게 정했다. “오늘의 휴식, 내일의 전투력." 지금 생각해 보면 휴식이 전투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어리바리한 사병들로서는 썩 잘된 아이디어였고, 그래서 그런지 그 콘셉트로 완성된 휴게실은 부대 내의 칭송을 받았다.
쉬지 않고 높은 산을 오를 수는 없다. 일본의 혼다 기업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는 "휴식은 대나무에 비유하자면 그 마디에 해당한다"고 했다. 마디를 맺어가며 성장해야 키 큰 대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기업도 중간중간에 쉬는 구간을 가져야 강하고 곧게 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의식주 자체가 어렵던 옛날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으나, 지금은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전혀 다른 조어가 일반화되어 있다. 휴식이 곧 생산성의 요람이라는 개념의 실상이 거기 있다.
톨스토이 소설 중에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이 있다. 어느 농부가 동이 튼 후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 동안 발로 밟고 표식을 해둔 땅을 모두 주겠다는 약속, 그러나 해지기 전까지 출발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모두 무효라는 규칙을 함께 받았다. 결과적으로 농부는 그날 출발선으로 돌아왔으나 기진맥진해 죽었다. 그에게는 쉼표가 없었다.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은 하루 사이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동한다. 이는 욕심을 버린 자리의 휴식, 그 쉼표가 선사한 최상의 복원력을 말한다.
분주하고 복잡한 우리 삶에, 가장 효율적이고 매혹적인 쉼표 하나를 소개한다. 동시대 생활문학의 아이콘 디카시다. 자투리 시간이나 틈새 시간을 최대한의 부가가치로 치환하는 새로운 유형의 문예 장르다. 디카시 한 편을 완성한 그 충일한 보람을 수시로 누릴 수 있으니, 다른 일에도 자신감과 활력을 불러온다. 2022년에서 2023년에 걸친 겨울 24일간 미국 강연 여행을 다녀오면서, 필자는 틈틈이 13편의 디카시를 썼다. 그 경험을 성공사례로 하여, 아직 디카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한 분들에게 강추한다. 여기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문학적 쉼표, 디카시가 있다!
김종회교수의 디카시 강론 [디카시, 이렇게 읽고 쓴다] 중에서
2024. 10. 1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