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의음어, 의태어와 문장
수수께끼에
“따끔이 속에 빤빤이, 빤빤이 속에 털털이, 털털이 속에 오드득이가 뭐냐?”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밤(栗)을 가리킨 것인데 모두 재미있게 감각들로 상징되었다.
또 옛날 이야기에
이차떡을 눌어옴치래기,
흰떡을 해야반대기,
술을 올랑쫄랑이,
꿩을 꺼꺽푸드데기
라고 형용하는 것도 있다. 이런 데서도 우리는 감각어가 얼마나 풍부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감각은 오관(五官)을 통해 얻는 의식이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이 다섯 신경에 자극되는 현상을 형용하는 말이 실로 놀랄 만치 풍부한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시각에서 적색(赤色) 한 가지에도 붉다, 뻘겋다, 빨갛다, 벌겋다. 벌겋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불그스럼, 빨그스럼, 불그레, 빨그레, 볼그레, 볼그스럼, 보리끼레, 발그레 등 동물이 뛰는 것을 보고도
깡충깡충, 껑충껑충, 까불까불 꺼불꺼불, 갑신깝신, 껍신껍신, 껍실렁껍실렁, 호닥닥, 후닥닥, 화닥닥 등, 의태(擬態)용어에 퍽 자유스럽다.
청각에서도 그야말로 바람소리, 학 우는 소리(風聲鶴唳),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鷄鳴狗吠), 모든 소리에 의음(擬音) 못할 것이 없다.
바람이 솔-솔, 살-살, 씽-씽, 솨-솨, 쏴-쏴, 앵-앵, 웅-웅, 윙-윙, 산들산들, 살랑살랑, 선들선들, 휙, 홱……
미각에서도, 감미(甘味)만 해도 달다만이 아니요,
달다, 달콤하다, 달큼, 달크므레, 달착지근……
층하가 있고
후각에서도, 고소하다와 꼬소하다가 거리가 있고 고소와 구수, 꾸수가 또 딴판이다.
촉각에서도, 껄껄하지 않은 하나만이라도
매끈매끈, 반들반들, 번들번들, 반드르르, 번드르르, 반질반질, 반지르르, 번지르르, 빤지르르, 어른어른, 알른알른, 알신알신 등,
얼마나 자세하고 꼼꼼한가? 음악이나 회화에서처럼 얼마든지 느껴지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말해낼 수 있다.
정확한 표현이란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다. 삑- 하는 기차소리와 뚜- 하는 기선소리를 삑―과 뚜―로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표현일 수 없다.
살랑살랑 지나가는 족제비의 걸음과 아실랑아실랑거리는 아낙네의 걸음을 ‘살랑살랑’ ‘아실랑아실랑’으로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수한 표현일 수 없다.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 무슨 소리든 소리를 그대로 따라 내는 의음어(擬音語)와, 바람, 물, 달리는 새 등 무슨 움직임이든 움직임 그대로를 흉내 내는 말이 많은 것은 언어로서 풍부함은 물론, 곧 문장으로서, 표현으로서 풍부함일 수 있는 것이다.
……원산(遠山)은 첩첩 태산(泰山)은 주춤하야 기암(奇巖)은 층층(層層) 장송(長松)은 낙락(落落) 에이 구부러져 광풍(狂風)에 흥(興)을 겨워 우줄우줄 춤을 춘다. 층암절벽상(層巖絶壁上)에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루루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코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屛風石)으로 으르렁 꽐꽐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巢父) 허유(許由) 문답(問答)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이 아니냐.
-「유산가(遊山歌)」에서
바다 2
정지용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라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루 몰아다 붙이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 쓴 해도(海圖)에
손을 짓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굴르도록
회동그란히 받혀들었다!
지구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
콸콸, 주루루룩, 솰솰, 으르렁, 꽐꽐 등의 의음(擬音)과 주춤, 우줄우줄, 찰찰, 돌돌, 회동그란 등의 의태(擬態)가 얼마나 능란하게 글뜻의 구체성을 돕는가?
운문인 경우엔 더욱 물론이지만, 산문에서도 특히 묘사인 경우엔 이 풍부한 의음. 의태어를 되도록 많이 이용할 필요가 있다. 표현효과를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 문장의 독특한 소리 울림의 아름다움(聲響美)을 살리는 것도 된다. 황진이(黃眞伊)의 노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여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를 신위(申)가
截取冬之夜半強
절취동지야반강
春風被裏屈蟠藏
춘풍피리굴반장
燈明酒煖郎來夕
등명주난낭래석
曲曲舖成折折長
곡곡포성절절장
이라 번역한 것이 좋은 번역이라 하나 ‘곡곡(曲曲)’ ‘절절(折折)’로는 원래 시의 구체성은 둘째 치고 소리의 울림만으로라도 ‘서리서리’ ‘굽이굽이’의 말맛을 도저히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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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떡 인절미.
수정렴(水晶簾) 수정구슬을 꿰어서 만든 아름다운 발.
소부(巢父) 허유(許由)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 고대 중국의 요(堯) 임금이 허유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기산으로 숨은 뒤 영수라는 강에 가서 귀를 씻었다. 친구 소부가 왜 그러는지 물어 이유를 대답하자, 소부는 더러운 말(言)을 들은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자신의 말(馬)에게 먹일 수 없다면서 말을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데서 나온 고사(故事).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2025.3.16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