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주제 :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
3장을 에베소서의 주제인 교회론적인
맥락으로 보면 중심점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한 사도의 기도에서 구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1장에서 교회 건설의 준비를 하고, 2장에서 연결하여 세워진 교회를 위해서,
3장에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5),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하는 문맥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기도를 드리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전(殿)에 충만하였듯이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전체 주제와 각 단원의 제목과 연결시켜서 3장 전체의 내용을 파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는 기도에 앞서서 “바울이 받은 계시”(1-6)와,
“바울이 받은 사명”(7-13)을 진술한 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4-21)고 간구한
후에, 송영(20-21)으로 마치는 것이 3장의 대의입니다. 이를 두
문단(1-13, 14-21)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3:1-13절 바울이 받은 계시와
사명
첫째 단원(1-6) 바울이 받은
계시
둘째 단원(7-13) 바울이 받은 사명
첫째 단원(1-6) 바울이 받은
계시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1).
1절을 개역본에서는,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 하고 끊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1절과 2절은 내용상으로 연결이 순조롭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주경가들은 2-13절을 삽입구(揷入句)로 보고, 1절이 14절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단원의 주제는, “그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4) 한, “바울이 받은
계시”입니다.
어찌하여 이 대목에서 자신이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언급하고 있는가? 자신의 사명을 말해줌으로 용기와 격려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옥중에서 이 서신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하고 기록을 하던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이 옥중에 갇힌 자신을 생각하고 낙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하기 위해서 2-13절을 첨부하게 되었다고 보는데, 13절은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씀으로 용기를 주고 있는가?
은혜의 경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2).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향하신, “은혜의 경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경륜”(經綸)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계획하여 이를 조직적으로 추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은혜의 경륜과, 비밀의 경륜”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비밀의 경륜”이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9), 하나님의 구원계획 전반을 가리키고,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란 바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을 가리킵니다. 이런 “은혜의 경륜”은 바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의 경륜” 가운데 부름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점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1:4-5)한 말씀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내 어머니의 태로 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갈 1:15)라고 진술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자부하던 사울을 다메석 도상에서 특별하신 방법으로 부르신 일이 결코 즉흥적인 일이 아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신,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창세 전”부터 작정이 된 “은혜의 경륜” 가운데 되어진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3:7절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은혜의 경륜”이 소명(召命)이라면 “은혜의 선물”(膳物)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맡겨진 사명(使命)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은혜의 경륜 중에 부르셔서, “계시로 비밀을 알게”(3) 하시고, “비밀을 깨닫게”(4)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밀이라는 말이 2번(3, 4) 등장하는데, “비밀을 알게 하시고, 비밀을 깨닫게” 해주신 목적은
이를 드러내어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워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에게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신 비밀이란
무엇인가?
비밀을 깨닫게
하심
첫째로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5), 즉 구약시대에는 알게 하지 아니하신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 그 내용이 무엇인가?
둘째로,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6), 즉 영원히 소외되고 소망이 없어 보엿던 이방인들을 구원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내용이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의아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방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도는,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5) 하는가?
그것은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과, “알게, 즉 깨닫게 하셨다”는 차이를 알면 됩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방인들도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 여러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깨닫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자들이 그리스도를 배척을 했다는
데서, 아는 것과 깨닫는 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고 진술합니다.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6)고 자부했으나, “계명이 이르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점을 다윗은,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시 40:6)고 “귀를 통하여”, 즉 뚫어 깨닫게 해주셨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깨닫는 일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하신 성령으로만이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알았다 해도 이방인들이 할례를 행하여 유대교에 입교함으로 참여하게 되는 정도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둘로 새사람을 지어”(2:15), 동등하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6)가 된다는 점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구약시대는 알게하시지 않으셨다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이방인들을 자기들과 같은 모양으로 지으신 것은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데 혐오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을 하던 자들입니다. 바울이 수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했을 당시 가는 곳마다 누구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습니까? 다름 아닌 같은 동족 유대인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선민의 표시인 할례도 소용이 없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될뿐 아니라, 함께 은혜의 보좌 앞(지성소)에 나아가,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전파하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에 얼마나 격분했을 것
인가 하는 점을 짐작할만 합니다. 이 비밀을 바울에게는 깨닫게 해주셨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받은 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