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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수) : 6시에 바르에 내려가 오늘도 토스트에 커피 마시고 6시 30분에 전지 켜 들고 출발했는데 알베르게 쪽에서 오는 길로 접어 들자 10 여명의 순례자가 앞서 가는 뒷 모습이 보이는데 억양으로 보아 어제 보았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안내서에 오늘 가는 구간은 루트가 단순하다고 했는데 평탄한 지형을 보면 단순할것 같다.
안내서에 오 뽀루뚜 바르를 지나 멀지 않은 길 오른쪽에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6미터 짜리 순례자 복장의 싼띠아고 입상이 있다고 했다. 이 상은 최근의 聖年이었던 2010 년에 세워 놓은 것으로 그 앞에서 기념 사진 찍기가 좋을 것 이라고 했는데 내 똑따기 카메라 후레쉬가 약해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리고 이 부근에 더 괴상하게 생긴 조각품(more bizarre scuptures)도 몇 개 만들어 놓았다는데 어두워서 사진을 찍을 수 가 없다.
8 kms 지점의 Buscas 마을에 들어서면 왼쪽에 쎈드위치 판다는 Bar Novo가 있고 오른쪽에 스페인에서 일반적으로 펜션 보다 비싼 숙소인 까사 루랄(Casa Rural) 도나 마리아(Dona Maria : 981 681 430)가 있으므로 비상시에는 이용할 수 있겠다.
13키로 지점에 있는 Cafe Bar O Cruceiro 는 다음 목적지인 시게이로 가기전의 마지막 바르라고 하며 이곳의 여주인 까로리나(Carorina)는 매우 친절해서 순례자의 물병에 찬물을 가득 채워준 다는데 오늘은 아직 바르를 열지도 않았다.
11시 30분 통과한 길(산림보호 방화선? : 스페인에는 이런 용도의 숲길이 많았다)이며 이런 길을 1시간이상 걸은 것 같다.
1시 30분쯤 오로소 꼰쎄요(Concello de Oroso)의 시게이로 마을에 도착하였다.
잠은 오스딸 미라스(The Hostal Miras)에서 35유로 내고 약간 누추해 보이지만 그래도 세면기는 방안에 있는 튄 룸에서 잤는데 안내서에는 이집의 음식이 맛있다고 했지만 불친절 했으므로 광고판에 나온 뿔뽀(문어) 전문점에 가서 먹었다.
거리풍경
내일 갈 길을 미리 답사 할 때 본 교회 로서 숲길로 들어 서기 직전에 있다.
9월 6일(목) : 까미노 걷기의 마지막날인 오늘도 바르에 내려가서 크롸쌍과 커피로 아침 먹고 6시 45분에 출발하였다. 주택 밀집 지역을 벗어나면 나타나는 위의 교회가, 싼띠아고 변두리에 도착 할 때 까지 물병을 채울 수 있는 마지막 장소라 하므로 물은 숙소에서 부터 준비해 오는 것이 좋겠다.
이교회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서 처음 1킬로미터 정도는 계속 오르막 길이며 숲길의 정상에 오르면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 되는데 숲길에서는 산불 방지용 도로를 따라가기 때문에 길이 직각으로 꺾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숲길을 3,5 킬로미터 쯤 가면 AP-9 고속도로 밑의 터널을 통과한 뒤 왼쪽으로 꼬부라져서 간다. 이곳의 까미노는 고속도로와 국도 사이에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또 이곳은 안내표지가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으며 큰 마을이 거의 없고 독립 주택과 교회만 가끔 나타나는 곳 이어서 호젓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오늘이 조금 더 즐거웠던 것은 그동안 우리 부부만 걸어서 조금 심심한 감이 들 때도 있었으나, 오늘은 고속도로 밑을 통과한 때부터, 어제 아침에 잠깐 보았던 스페인 청년 3명과 여자 1명 일행이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는 점이다. 물론 대화는 한마디도 못 했지만 “올라”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N-550 국도의 왼쪽을 잠깐 걸으면 지하도가 있는데 이곳부터 싼띠아고 교외에 도착할 때 까지 자동차 길은 없다. 그러나 높은 교각 위에 걸린 철길 밑을 지나 조금 가서 나타나는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를 때에는 얼마 남지 않은 순례의 마지막 고행이기를 바라며 힘겹게 올랐다.
9시 30분경 Telsys 로고가 걸린 현대적 건물이 나타나면 곧 이어 싼띠아고 외각의 산업지대로 들어서게 된다. 길 오른쪽에 있는 Poligono 바르를 지나고 로터리도 지나면 길 왼편에 높은 담장을 두른 공동묘지가 있다. 직진하면 길 양쪽에 민가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서서 가게 된다, 잠시후 길 왼쪽에 Mero 라는 바르를 지나치면 곧 좌회전 하여 Andega Bello 바르를 지나치고 노란 화살 표지를 따라 길의 우측을 따라 가다가 Rua do Tembre in Meixonfrio 59 번지 건물에 가면 우회전 표지가 보인다.
이제 2킬로미터 남았다. 이곳부터 표지를 잘 살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또 이곳부터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까떼드랄?” 하고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준다.
내가 안내서 내용대로 관찰해 본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까미노를 벗어나지 않고 영국길을 제대로 걸으면, 싼띠아고에 들어온 뒤에도 정확한 지점에서 옳은 방향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만 싼띠아고 대성당의 첨탑 상부를 잠깐 볼 수 있었고, 그때를 노치면 대성당의 북동쪽 광장인 임마꿀라다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첨탑을 볼 수 없었다.
11시 정각에 임마꿀라다 광장을 통하여 산띠아고 꼼뽀스텔라 대성당 전면의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도착하였다.
순례자 사무소 여는 시간 : 년 중 매일 09시 부터 21시 까지
11시 55분이 되어서야 순례자 사무소에서 꼼뽀스텔라 받고 가까스로 정오 미사에 참례했는데 오늘도 5년 전과 같이 보따푸메이로(향연을 내뿜는 대형 향로)를 좌우로 천장까지 흔드는 장엄한 강복 예절이 있었다. 우리 에겐 특별한 축복이었다.
미사 후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까사 마뇰로(Casa de Manolo)식당에가서 푸짐한 점심 먹고 나서
5년 전 휘니스떼레(땅끝) 갔을 때 집사람은 발 때문에 땅 끝에 오르지 못하고 이틀 동안 호텔에만 누워있다가 왔으므로 이번에는 땅끝까지 가보기로 하고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물어보니까 오늘 가는 것은 오후 7시에 떠나는 버스 밖에 없다 합으로 휘스떼라(땅끝의 갈리시아 식 발음)가는 것은 단념하고,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영어할줄 알고 여우같이 생긴 여자가 경영하는 오로나 바르의(Orona) 펜션에 50유로 주고 묵었다. : Rua do Home Santo 49 Tel:981 580 876
다음날은 늦잠자고 펜션에 짐 맞기고 9시쯤 나와 주로 성 스잔나 성당이 있는 언덕과 숲에서 보냈다.
소형 켐코터로 촬영하고 있는 외국 영감님께 내 카메라를 주며 모처럼 부탁해서 찍은 내 꼬락서니.
저녁 먹고 9시 30분 마드리드행 밤 버스를 탔다. 요금은 1인당 44.95유로 이었다
버스가 마드리드 방향인 남동쪽으로 가지 않고 아꼬루냐까지 북쪽으로 한시간쯤 갔다가 동쪽의 루고(Lugo)와 뽄훼르라다(Ponferrada)를 경유한 것은 기억하는데 그 후는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새벽 6시 30분쯤 마드리드 남부 버스 터미널에 도착 하였다.
이후 마드리드와 세고비아(Segovia) 에서 3박4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 가서 3박4일,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1박하고, 두바이 경유하며 집 떠난지 22일 만인 9월 17일(월요일) 서울로 돌아왔으나 마드리드 이후 이야기는 싼띠아고 성지순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서 간단히 쓰는것이 옳겠다.
낮이면 인총으로 바글거리는 마드리드의 중심거리 그랑비아(Gran Via)의 새벽
뿌에르따 델 쏠 광장(Puerta del Sol)에 있는 마드리드의 상징 이라는 곰 동상
스페인의 도시 마다 있는 중심광장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
1725년에 개업하여 기네스북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기록 되어 있다는 Restaurante Sobrino de BOTIN 식당에는 헤밍웨이의 단골 자리도 있다는데, 점심은 1시부터 저녁은 8시부터 판다고 하므로 이곳의 유명한 음식인 새끼돼지 통구이(코치니요 아사도: Cochinillo Asado : Grilled Suckling PIg)는 이곳에서 못 먹고 세고비아(Segovia)에 가서 먹어 보았다.
알무데나 대성당 (Catedral de la Almudena)
왕궁(Palacio Real)
스페인광장에 있는 세르반테스 기념탑(Plaza de Espana : Monumento A Cervantes).
배경이 되는 큰 건물들 중에 왼쪽 빌딩은 마드리드 타우어(Torre de Madrid)라 하고 오른쪽 빌딩을 스페인 빌딩(Edificio Espana)이라고 부른단다.
동키호테 와 산쵸의 동상과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세르반테스 좌상 : 스페인 사람들은 세르반테스를 크게 받들고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듯 한 인상을 받았다.
요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른들도 아이들 같이 이상한 짓거리 하는게 유행인가 보다. 우리가 스페인 광장에 도착 했을때 관광버스에서 중국인들이 우루루 내리더니 너도나도 하나같이 동키호테와 산초 동상의 말고삐를 잡고 사진을 찍어 댔는데 이것을 보고있던 서양인들도 그대로 따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요즈음 하고있는 짓거리가 저들과 비슷해서 씁스름하다.
콩과 고기를 푸짐하게 넣은 스튜 같은 코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no)라는 마드리드 특선 요리를 잘 하는 곳으로서 1870년에 개업했다는 식당 La Bola Taberna(왕립극장 : Teatro Real : 부근의 Calle Bola 5번지에 있음)에서 점심을 먹어 보았지만 사진 찍을 분위기가 아니어서 음식 사진은 못 찍었다.
스페인어를 못함으로 전화로 예약할 수 없어서 문 여는 시간 보다 한시간 전에 직접 가서 스페인어 만 떠들어 대는 할머니에게 손짓 발짓으로 영업 개시 시간인 1시에 오겠다는 예약을 하고 이 음식을 먹어 보았다.
국수같이 생긴 것을 깔아놓은 접시에, 호리병 형태의 도기에서 딸아 주는 국물을 부어 만든 수프를 먹고 나면, 도기에 남아있던 건더기를 접시에 쏟아 주는 음식인데 먹는 방법도 재미 있었고 맛도 제법 좋았으며 유명한 곳으로 값이 비쌀 줄 알았는데 60유로 정도의 주문만 받았다. 테이블 쎗팅을 관찰해보니까 예약하지 않은 손님을 위하여 두 테이블(4명)정도는 남겨 놓는것 같았다.
스페인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체험하기 위하여 마드리드 에서는 위의 식당 외에 해물과 쌀을 주 재료로 만드는 삐에야(Paella)로 유명하다는 식당 La Barraca 와 119 년 전에 개업하였다는 츄러스 전문식당 Chocolateria San Gines 도 위치는 확인 하였으나 우리의 식사 시간과 맞지 않아 먹어 보지 못 했지만 좀더 싸고 대중적이며 최근에 생긴것으로 생각되는 Museo del Jamon 은 점심시간이 되어 이용해 보았는데 1층은 너무 복잡해서 먹어 볼 엄두도 못 냈지만 기다리다가 12시에 여는 2층 식당에 올라가서 식탁에 앉아서 상대적으로 싸면서 맜있는 음식을 먹어 보았다.
식물원 같이 꾸며놓은 아토차(Atocha)기차역에서 스페인 고속열차 AVE가 떠난다.
나는 이미 방문했던 곳 이지만 집사람을 위하여 열심히 마드리드의 미술관들을 순례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원본이 있는 쏘피아 왕비 미술쎈터(Centro de Arte Reina Sofia)에는 내가 이해할 줄 모르는 현대 미술만 있어서 이 미술관은 내겐 너무 지루하다. 다만 후레쉬 없이 사진을 찍게 해 주는건 고마운데 게르니카 전시실에서는 후레쉬 없이도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스페인의 자랑이라는 쁘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 미술작품을 이해하지 못 하더라도 미술관은 열심히 다녀야 문화인이 되는줄(?) 알고, 빠리의 르부르 박물관과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각각 네 번 씩이나 갔고, 기타 뉴욕, 바디칸, 모스코바 등 해외 도시들을 여행할 때도 가능한 한 미술관에 들려서 억지로 감상(?)해 보았지만, 빠리의 오르셰(Musee d'Orsay) 미술관 만 조금 지루하지 않았고, 대부분 의무적으로(?)들여다 보았는데, 남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쁘라도 미술관도 외관은 번듯하지만 전시품들은 무식한 나에게는 매우 지루한 부류에 속한다.
세고비아(Segovia)의 로마 水道橋(Acueducto Romano)는 사진에서 보던것 보다 웅장했다. 지도를 보고 대강 계산해 보니까 아직 남아있는 길이가 1.5킬로는 넘는것 같았다.
외관도 아름답지만 내부가 더 화려한 까떼드랄(Catedral)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을 구상할때 모델 이었다는 알까사르(Alcazar de Segovia)궁
알 까사르 전망 탑에서 바라본 끝없는 밀 밭 : 스페인 중부에 있으며 메세타라고 불리는 표고 1000미터 대의 고원 구릉으로 넓이가 300-400 km 에 달한다 : 스페인 사람들은 굶어 죽을일 없으므로 놀고 먹는 사람이 많은것 같다.
세고비아의 대표적 요리인 새끼돼지 통구이를 1898년부터 한다는 유명한 메손 데 깐띠도는 예약하러 가기가 귀찮아서 알까사르 궁전 다녀 오다가 '세고비아 전통요리 (Menu Tipico Segoviano) 정식' 이라는 메뉴판을 내 건 El Bernardino 식당에 들어가서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어 보았다.
돼지고기 냄새가 난다는 어느 여행자의 말과는 달리 돼지 특유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맛도 고소 하고 질감이 아삭아삭해서 술 안주로는 최고 라고 생각했으나 대낮에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실수가 없어서 많이 남겼다. 값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55유로)
아일랜드 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가장 비슷한 정서를 가졌다는 이야기.... 배고픔 때문에 대책없이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시카고 도살장의 쇠기름 끓이는 가마에서, 뉴욕의 브루크린 다리 건설 우물통에서 수없이 죽어갔다는 슬픈 이야기.... 걸출한 문학자를 수없이 배출한 문학의 고장.... 어릴때 보았던 흑백영화의 감동.... 등
나는 지금까지 아일랜드를 너무 감상적으로 만 동경하고 있던것 같다. 시내 거주 인구 50만명, 수도둰 전체인구 180만영 정도로 자그마한 더블린을 3박 4일동안 두 발로만 이구석 저구석을 쏘 다니며 내 눈으로 직접 살펴보니, 기네스 흑맥주, 펍(Pub)문화, 아이리쉬 위스키등 아일랜드의 특징을 가진 몇가지 외에는 유럽국가의 다른 도시들 보다 보편적인 관광 자원 면에서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자동차를 빌려서 독특한 지형인 아일랜드 해안의 풍광을 섭렵하며 따듯한 인심을 경험 한다면 더욱 좋을 것 이고, 문학등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보고 느끼는 것이 더 즐거울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파넬 스트리트의 개성없는 중국인 거리
도시중심을 흐르는 리피 강
더블린에서 제일 넓다는 오코넬 거리 중앙에 119 미터 높이로 세웠다는 밀레니엄 기념조형물 인 'Monument of Light' 일명 'The Spire of 2003'이라고도 한단다. 관광안내 책자를 보면 아일랜드 특산품인 스웨터를 형상화한 뜨게질 바늘 모양 이라고 한다.
더블린 방문객은 모두 가 본다고 자랑하는 기네스 맥주공장(Guinness Storehouse)에도 가서 기네스 맥주도 마셔 보았지만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있는 하이네켄 맥주공장 방문(Heineken Experience) 프로그램이 더 재미 있었던것 같다.
1979년 9월 2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때 일백만명의 카토릭 신도가 모여 미사를 드린 장소에 세웠다는 교황의 십자가(The Papal Cross) : 역사공원(National Historic Park)이라는 휘닉스 파크(Phoenix Park)에 있다.
그외에 아일래드가 권장하는 관광자원인 트리니티 칼레지, 템풀 바, 친절한 국민성 등 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 에서만 신기료 장수가 신을 깁는 일 외에 열쇄도 깎아 주는 줄 알았더니 더블린 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즐겁다.
어느 나라가 먼저 일까?
귀국길에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공항에서 12시간 이상의 여유 시간이 있었으므로 전철 1일권을 구입하여 2개 노선의 시점에서 종점까지 전철을 타고 다니며 두바이시를 훓터 보았다. 더위 때문에 건물 밖에서 걷는것은 거의 불가능 하였으므로 점심은 이름모를 전철역에서 보이는 제일 가까운 식당에 종종 걸음으로 가서 무조건 들어 갔는데 다행이 영어하는 인도인 부부가 하는 곳 이어서 겨우 얻어 먹었다.
왜 이 요란한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는 것 일까??? 사막생활에만 익숙했던 이 백성들 석유가 완전히 동난 뒤 저 많은 흉물을 어떻게 유지하려 하는가??? 나만 겁내는 걸까??? 아-멘
22일간 와인을 20병 쯤 마셨더니 지금도 가끔 와인이 마시고 싶다.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나는 일본 왕은 아니지만) "존경의 염"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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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부 사진을 보니 잉꼬부부가 틀림이 없네. 잘 읽었습니다. 나는 언제 갈 수 있을까?
마나님 사진만 보이더니 마지막 한컷이 보이는군.
감히 엄두도 못한 진기한 풍광을 보니 부럽기 한이
없소이다.
내외분이 다 건강하니 얼마나 좋을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강, 고이민현, 우양 세분이 모두 하나 같이 우리 마누라의 건강을 칭송하시니 송구스럽고 고맙습니다.
愚羊은 댓글에 사진 올리는 것 까지 얄려 주시니 존경하는 동시에 나는 어느 날에나 동키호테 경지의 자유인이 되어 보려나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