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29회 ― 바람과 나무의 첫 가봉
최종평가 사흘 전.
아침 일찍부터 의상디자인과 실습실에는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드르르르륵―
탁.
드르르르륵―
창밖에는 늦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 몇 장이 창문을 스치며 떨어졌다.
실습실 한가운데.
커다란 작업대 위에는 강인과 미송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바람과 나무」.
두 벌의 옷.
하나는 바람.
하나는 나무.
서로 다른 옷이었지만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풍경이 되도록 디자인한 작품이었다.
강인은 남자 의상의 소매를 살피고 있었다.
미송은 여자 의상의 허리선을 정리했다.
소희는 재봉틀 앞에서 마지막 시접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윤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어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다시 물었다.
"나 지금 모델 같지?"
소희가 말했다.
"원래 모델이잖아."
"그런 뜻 말고."
"그럼 무슨 뜻인데?"
도윤은 턱을 조금 들었다.
"세계적인 모델."
소희는 잠시 도윤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한국에서도 유명하지 않아."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습니다."
"누가?"
"제가요."
소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송도 웃었다.
강인만 웃지 않았다.
도윤이 강인을 바라봤다.
"강인아."
"왜."
"너는 왜 안 웃어?"
"재미없어서."
"너는 미송 선배가 웃으면 따라 웃잖아."
강인의 손이 멈췄다.
미송도 강인을 바라봤다.
도윤이 씨익 웃었다.
"봐. 또 멈췄다."
강인이 낮게 말했다.
"가봉이나 해."
"내가 모델이지 재단사냐?"
"네가 입어야 가봉하지."
도윤이 잠시 생각했다.
"그렇네."
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입이 미싱보다 빠르다니까."
도윤은 활짝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그때 미송이 여자 의상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여자 모델은?"
순간.
모두 조용해졌다.
도윤이 말했다.
"혜린 선배가 하기로 했잖아요."
미송의 손이 멈췄다.
강인도 고개를 들었다.
소희가 도윤을 바라봤다.
"그래. 원래 혜린 선배였지."
강인이 짧게 말했다.
"부르면 됩니다."
미송이 강인을 바라봤다.
"그래?"
"네."
"아무렇지도 않아?"
강인은 잠시 생각했다.
"뭐가요?"
미송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희가 작게 말했다.
"끝났다."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인아."
"왜."
"네가 지금 뭘 잘못했는지 알아?"
"몰라."
"나도 몰라."
소희가 도윤의 등을 때렸다.
"악!"
미송은 아무 말 없이 여자 의상을 정리했다.
강인이 물었다.
"화났습니까?"
"아니."
"그런데 왜 말투가 그렇습니까?"
"내 말투가 어떤데?"
"화난 것 같습니다."
"안 화났어."
강인은 미송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화났습니다."
미송이 그를 노려봤다.
"아니라니까."
강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혜린 선배가 모델입니다."
미송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알아."
그때.
실습실 문이 열렸다.
또각.
또각.
장혜린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혜린에게 향했다.
혜린이 걸음을 멈췄다.
"왜 다들 나를 봐?"
도윤이 말했다.
"선배, 가봉해야죠."
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원래 내가 모델이잖아."
미송이 조용히 말했다.
"응."
혜린은 자연스럽게 여자 의상을 집어 들었다.
"준비됐어?"
강인이 짧게 대답했다.
"네."
잠시 뒤.
탈의실 문이 열렸다.
혜린이 나왔다.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바람을 표현한 여자 의상.
가볍게 흐르는 실루엣.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리고 도윤은 나무를 표현한 남자 의상을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미송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됐다."
강인도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하지만 곧 표정이 굳었다.
"이상합니다."
미송이 물었다.
"뭐가?"
강인은 혜린의 옷을 바라봤다.
"허리선."
미송도 자세히 살폈다.
"왜?"
"왼쪽이 내려갔습니다."
소희가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이었다.
아주 조금.
하지만 분명히 왼쪽 허리선이 내려가 있었다.
미송의 얼굴이 굳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강인은 무릎을 굽혀 옷의 선을 확인했다.
"패턴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
강인은 옷자락을 살폈다.
그리고 손을 멈췄다.
"원단이 늘어났습니다."
미송의 얼굴이 굳었다.
"얼마나?"
"이대로 두면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최종평가까지 사흘.
다시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도윤도 웃음을 멈췄다.
소희가 물었다.
"고칠 수 있어?"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옷을 바라봤다.
미송이 조용히 불렀다.
"강인아."
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미송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강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뜯겠습니다."
모두가 놀랐다.
미송이 물었다.
"지금?"
"네."
"거의 다 완성했잖아."
"그래서 지금 해야 합니다."
강인은 옷의 허리선을 가리켰다.
"조금 틀어진 걸 그냥 두면 마지막에는 더 크게 틀어집니다."
미송은 작품을 바라봤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 만든 옷이었다.
다시 뜯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혜린이 말했다.
"해."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혜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입어보니까 더 티 나."
"……."
"무대에서는 더 보일 거야."
미송은 한동안 작품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인을 바라봤다.
"뜯자."
강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괜찮습니까?"
미송이 웃었다.
"우리 작품이잖아."
강인은 잠시 미송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송의 눈이 커졌다.
도윤이 즉시 말했다.
"방금 응이라고 했다."
소희도 웃었다.
"들었어."
강인의 귀가 붉어졌다.
"가봉이나 합시다."
그날 밤.
실습실의 불은 아주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강인이 마지막 실밥을 정리했다.
미송이 숨을 죽였다.
강인은 천천히 옷을 들어 올렸다.
허리선은 완벽하게 맞아 있었다.
미송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됐다."
강인도 아주 조금 웃었다.
"응."
이번에는 아무도 놀리지 않았다.
모두가 웃었다.
그렇게.
바람과 나무는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 설 준비를 마쳤다.
― 제29회 끝 ―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