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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부님은 탐정》
## 제30화 ― 「무인 꽃집의 검은 리본」
새벽 여섯 시.
은솔성당 제대 위에는 촛불 두 자루가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는 제의를 단정히 갖춰 입고 제대 앞에 섰다. 천천히 허리를 숙인 뒤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맑음 신부는 미사를 집전할 때만큼은 어떤 소리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독서가 봉독될 때에는 고개를 숙여 말씀을 들었고,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성당의 맨 뒷자리에 앉은 교우에게도 한 구절 한 구절이 또렷하게 닿도록 천천히 읽었다.
그날 복음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이웃과 화해하라는 말씀이었다.
김맑음 신부가 교우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다음으로 미루고, 미안하다는 말도 다음으로 미룹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음 날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당 안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오늘 전할 수 있는 마음은 오늘 전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건네야 할 말을, 떠난 뒤에야 꺼내는 슬픈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찬 전례가 시작되었다.
김맑음 신부는 빵과 포도주를 정성스럽게 봉헌하고 감사기도를 바쳤다. 축성된 성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박복례 마리아도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미사가 끝난 뒤에도 김맑음 신부는 서두르지 않았다.
성작을 정리하고 제의를 가지런히 걸어놓은 뒤 감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우들이 모두 성당을 떠난 뒤에도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제의방 문밖에서는 오미자 안나 사목회장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마지막 기도를 마치고 나오자 오미자가 재빨리 다가왔다.
“신부님, 빨리 가보셔야 해요.”
“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꽃집에 또 검은 리본이 나타났대요.”
“꽃집에 리본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장례미사 카드도 같이 있어요.”
김맑음 신부의 표정이 달라졌다.
“누구의 장례미사 카드입니까?”
“그게 이상해요. 카드에 적힌 사람이 아직 살아 있대요.”
“확인하셨습니까?”
“한서윤 기자가 직접 통화했대요.”
“그런데 왜 저를 기다리셨습니까?”
“신부님께서 미사 중이셨잖아요.”
“잘 기다려주셨습니다.”
오미자가 성당 시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 미사는 끝났죠?”
“그렇습니다.”
“그럼 빨리 가요.”
박복례가 사제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신부님, 아침식사는요?”
“잠깐 다녀와서 먹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신 날은 국을 세 번씩 데우게 되더군요.”
김맑음 신부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두 번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오미자가 먼저 성당 문을 나서며 말했다.
“복례 씨, 안전하게 세 번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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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솔시청 앞에는 작은 무인 꽃집이 있었다.
유리 온실을 개조한 가게로, 손님이 직접 꽃을 고르고 계산함에 돈을 넣는 방식이었다.
낮에는 주인 백수연 로사가 꽃을 정리했지만 밤에는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김맑음 신부가 도착했을 때 꽃집 앞에는 경찰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이도현 형사는 출입문 앞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있었고, 한서윤 세실리아 기자는 유리창 너머의 흰 장미를 촬영하고 있었다.
이도현이 김맑음 신부를 발견하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신부님께서는 또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제대에 놓을 꽃을 사러 왔습니다.”
이도현이 오미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오 회장님과 함께 오셨습니까?”
오미자가 대답했다.
“저는 사건을 보러 왔고, 신부님은 꽃을 사러 오신 거예요.”
“두 분의 목적이 상당히 잘 맞는군요.”
김맑음 신부는 꽃집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진열대 한가운데 팔리지 않은 흰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장미 줄기에는 검은 리본이 단정하게 묶여 있었다. 꽃병 아래에는 빛바랜 장례미사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카드에 적힌 이름은 서정민 베드로.
한서윤이 취재수첩을 펼쳤다.
“서정민 씨는 일흔두 살이고 은솔시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 전 직접 통화했습니다.”
이도현이 말했다.
“한 기자님, 살아 계신 분에게 본인의 장례미사 카드가 발견됐다고 바로 말씀하시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건강부터 여쭤봤어요.”
“그것도 충분히 놀랄 만한 질문입니다.”
오미자가 장례미사 카드를 보고 성호를 그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미사 카드라니, 기분이 좋지 않네요.”
꽃집 주인 백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늘로 닷새째입니다. 매일 밤 팔리지 않은 흰 장미에 검은 리본이 묶여 있어요.”
“장례미사 카드도 매일 놓였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네. 모두 같은 사람의 카드예요.”
“꽃값은요?”
“계산함에 정확히 들어 있었습니다. 장미를 훔친 것은 아니에요.”
이도현이 검은 장갑을 내밀었다.
“신부님, 먼저 이것부터 끼십시오.”
“아직 만지지 않았습니다.”
“만지시기 전에 드리는 겁니다.”
“제가 늘 증거물을 함부로 만지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떨어진 금고 손잡이를 직접 들어보신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김맑음 신부는 더 대답하지 않고 장갑을 꼈다.
그는 검은 리본의 매듭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양쪽 고리의 길이가 정확히 같았다. 매듭 뒤에는 가느다란 철사가 숨겨져 있어 리본이 꽃줄기에서 흘러내리지 않았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이 매듭을 알아보시겠습니까?”
백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외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방식이에요. 꽃줄기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리본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셨죠.”
“외할머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윤복자 마리아입니다. 십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원래 이 자리에서 꽃가게를 하셨습니다.”
“이 매듭을 배운 사람이 또 있습니까?”
백수연은 잠시 망설였다.
“저와 두 외삼촌이 배웠습니다.”
“두 분의 성함은요?”
“서정민 씨와 서정우 씨입니다.”
한서윤이 장례미사 카드를 바라보았다.
“카드에 적힌 서정민 씨가 수연 씨의 큰외삼촌이군요.”
“맞아요. 그런데 두 분은 이십 년 가까이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일 때문입니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꽃집과 집을 정리하는 문제로 크게 다투셨어요. 그 뒤로는 명절에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김맑음 신부의 시선이 꽃병에 멈췄다.
유리병 표면에 옅은 김이 서려 있었다.
그가 손바닥을 가까이 가져갔다.
“꽃병의 물이 따뜻합니다.”
백수연이 놀라 말했다.
“어젯밤에 제가 찬물을 채웠는데요.”
한서윤이 꽃병을 촬영했다.
“누군가 리본만 묶은 것이 아니라 물까지 바꿔놓은 거네요.”
이도현이 폐쇄회로 영상을 재생했다.
전날 밤 열 시, 백수연이 꽃집 문을 잠그고 나갔다.
그때까지 흰 장미에는 아무것도 묶여 있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도록 꽃집 정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새벽 한 시 삼 분, 화면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밝아지자 장미에 검은 리본이 묶여 있었다. 꽃병 아래에는 장례미사 카드도 놓여 있었다.
한서윤이 말했다.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는데 리본과 카드가 나타났어요.”
오미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꽃집 귀신 아닐까요?”
김맑음 신부가 꽃병을 들어 올렸다.
꽃병 받침 아래에 작은 물방울이 남아 있었다. 물방울은 진열대 뒤쪽 벽까지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귀신이 꽃병의 물까지 따뜻하게 갈아줄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흰 장미가 추울까 봐 그랬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상당히 세심한 귀신이군요.”
이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신부님까지 귀신 이야기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김맑음 신부는 물방울이 사라진 벽 앞에 멈춰 섰다.
벽은 넝쿨식물과 커다란 화분에 가려져 있었다.
장태식 관리장이 도착해 화분을 옆으로 옮겼다.
그 뒤에서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만한 작은 철문이 발견되었다.
백수연의 눈이 커졌다.
“저런 문이 있는 줄 몰랐어요.”
장태식이 철문의 경첩을 확인했다.
“아주 오래된 관리통로입니다. 이 꽃집이 시청 보일러실과 함께 지어졌을 때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도현이 문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꽃집 안으로 밀려들었다.
문 너머에는 은솔시청 지하 보일러실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꽃을 놓은 분은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보일러실 통로를 이용한 것이군요.”
“그리고 따뜻한 물도 그곳에서 가져왔을 겁니다.”
이도현은 곧바로 시청의 야간 근무자 명단을 확인했다.
닷새 동안 새벽 한 시 전후로 보일러실에 있었던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서정우 요셉.
장례미사 카드에 적힌 서정민의 친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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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서정우는 은솔경찰서가 아니라 은솔성당 사제관으로 찾아왔다.
꽃집 주인 백수연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도현은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박복례가 따뜻한 국화차를 내어놓았다.
“차가 식기 전에 드세요. 따뜻한 것은 따뜻할 때 마셔야 합니다.”
서정우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제가 먼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도현이 대답했다.
“시설에 허가 없이 들어간 부분은 확인할 겁니다. 하지만 조카분께서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우선 이유부터 듣겠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검은 리본과 장례미사 카드를 탁자 위에 놓았다.
“형님을 겁주려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살아 있는 형님의 장례미사 카드를 놓으셨습니까?”
서정우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낡은 카드 한 장을 손에 들었다.
“이 카드는 이십오 년 전에 만든 겁니다.”
이십오 년 전 겨울, 서정민이 탄 작은 어선이 폭풍을 만나 바다에서 연락이 끊겼다.
사흘 동안 수색이 이어졌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가족들은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은솔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카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장례미사가 열리기 전날 밤, 서정민은 다른 어선에 구조되어 살아 돌아왔다.
미리 만든 장례미사 카드는 모두 폐기되었다.
단 한 장을 제외하고.
“어머니가 한 장을 남겨두셨습니다.”
서정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형이 살아 돌아온 날, 어머니는 흰 장미에 검은 리본을 묶어 식탁 위에 놓으셨어요.”
오미자가 물었다.
“살아 돌아왔는데 왜 검은 리본을 묶으셨어요?”
“우리가 형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사흘 동안,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으셨대요.”
윤복자는 두 아들에게 말했다.
‘검은 리본은 죽은 사람에게만 묶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마음도 상중에 있는 것과 같다.’
그 뒤로 형제가 다툴 때마다 어머니는 흰 장미에 검은 리본을 묶어 두 사람 앞에 놓았다.
서로 살아 있을 때 화해하라는 뜻이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왜 이십 년 동안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형은 외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원비는 보내왔지만 한 번도 직접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정민 씨에게도 사정이 있었습니까?”
서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형의 사업이 어려웠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뒤였습니다.”
윤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두 형제는 꽃집과 집을 정리하는 문제로 다시 크게 다퉜다.
서정우는 형이 어머니를 외면했다고 비난했고, 서정민은 동생이 재산을 차지하려 한다고 화를 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한 번도 마주 앉지 않았다.
“지난달에 형이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정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십오 년 전처럼 또 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례미사 카드를 꺼내셨습니까?”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 카드와 검은 리본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형님께 직접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 만나달라고 청하지 않으셨지요?”
서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형님은 매일 새벽 시청 앞을 산책합니다. 꽃을 보면 어머니의 뜻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님께서 꽃을 보셨습니까?”
“매일 보셨습니다.”
“그런데도 가져가지 않으셨군요.”
“네.”
김맑음 신부가 검은 리본의 매듭을 바라보았다.
“이 꽃은 죽음을 알리기 위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한서윤이 물었다.
“그럼 무엇을 알리려는 겁니까?”
“누군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전해야 하는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서정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꽃은 마음을 전할 수 있어도 사과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형님이 저를 용서하지 않으면요?”
“용서는 형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정우 씨께서 해야 할 일은 용서받을 만한 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직접 전하는 것입니다.”
서정우는 오랫동안 검은 리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께서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옆에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직접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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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미사가 끝난 뒤였다.
김맑음 신부는 제의를 정리하고 감실 앞에서 마지막 기도를 바쳤다.
그가 성당 마당으로 나오자 이도현이 경찰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도현이 물었다.
“또 두 사람을 만나게 하러 가는 거냐?”
“사건의 방법은 밝혀졌지만 두 분의 마음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잖아.”
“경찰은 사람의 마음까지 수사하지 않아.”
“그래서 네가 아니라 내가 함께 가는 거지.”
“그런데 저녁은 먹었어?”
김맑음 신부가 잠시 침묵했다.
이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먹었네.”
그때 사제관 문이 열리고 박복례가 보온 도시락을 들고 나왔다.
이도현은 즉시 말투를 바꾸었다.
“제가 차에서 드시도록 하겠습니다.”
박복례가 도시락을 건넸다.
“이 형사님도 같이 드세요. 두 사람분 넣었습니다.”
“제 몫도 있습니까?”
“신부님 혼자 드시면 사건 생각하느라 씹지도 않으시잖아요. 옆에서 같이 드셔야 천천히 드실 겁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제가 그렇게까지 식사를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다.”
박복례와 이도현이 동시에 신부를 바라보았다.
김맑음 신부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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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은 은솔강 산책로의 작은 정자에 앉아 있었다.
서정우는 흰 장미 한 송이를 들고 형에게 다가갔다.
이번 장미에는 검은 리본이 묶여 있지 않았다.
서정민이 차갑게 물었다.
“꽃집에 장례미사 카드를 놓은 사람이 너였구나.”
“네.”
“내가 죽기를 바란 것이냐?”
“아닙니다.”
서정우는 장례미사 카드를 형 앞에 내려놓았다.
“형님이 살아 계실 때 해야 할 말을 더 늦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서정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형님을 원망했습니다. 형님에게도 힘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 제 억울함만 붙잡고 살았습니다.”
“이십 년 동안 그 말을 못 했느냐?”
“무서웠습니다.”
“무엇이?”
“형님이 용서하지 않을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그동안 붙잡고 살아온 미움까지 놓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서정민은 한동안 강물을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꽃집을 차지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형님.”
“나도 어머니께 가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너에게 화를 냈다. 네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 내가 너무 나쁜 아들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두 형제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서정우가 검은 리본을 꺼내 형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리본입니다.”
서정민은 리본을 받아 천천히 매듭을 풀었다.
“왜 직접 오지 않고 꽃만 보냈느냐?”
“형님이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네가 직접 오기를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나도 미안하다.”
두 사람은 곧바로 웃지도, 서로를 끌어안지도 않았다.
이십 년 동안 쌓인 서운함은 말 몇 마디로 모두 사라질 수 없었다.
그러나 서정민은 정자 한쪽을 비워주었다.
서정우가 형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같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첫날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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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미사.
김맑음 신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성을 다해 미사를 집전했다.
전날의 사건도, 잠이 부족한 피로도 그의 기도를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그날 강론은 짧았다.
“화해는 아팠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함께 걸을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미사가 끝난 뒤 은솔시청 앞 무인 꽃집에는 검은 리본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흰 장미 두 송이가 한 꽃병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꽃병의 물은 차가웠지만 장미는 전날보다 더 생생했다.
두 송이 아래에는 짧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살아 있을 때 다시 만났습니다.’
한서윤이 장미를 촬영하며 물었다.
“신부님, 결국 검은 리본은 죽음을 뜻한 것이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검은 리본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김맑음 신부가 나란히 놓인 두 송이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전해야 하는 말이 제시간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미자가 계산함에 꽃값을 넣으며 말했다.
“신부님, 이번에는 정말 제대에 놓을 꽃을 사러 오신 것 맞죠?”
“맞습니다.”
“그런데 왜 경찰차를 타고 오셨어요?”
꽃집 밖에 서 있던 이도현이 대답했다.
“신부님께서 다른 꽃집의 관리통로도 확인해봐야 한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돌아보았다.
“확인해야 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비슷한 구조인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신부님께서 궁금해하시면 결국 확인하시지 않습니까?”
“관찰과 수사는 다른 일입니다.”
“신부님께서는 그 둘의 경계가 상당히 좁으십니다.”
한서윤이 웃으며 취재수첩을 덮었다.
“기사 제목이 떠올랐어요. ‘미사에는 정성을, 사건에는 관찰력을.’”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저었다.
“한 기자님, 신부가 사건을 해결한 것처럼 쓰시면 안 됩니다. 이 형사님께서 정식으로 조사하셨고, 두 형제는 스스로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신부님은 언제나 사건 현장에 계시잖아요.”
오미자가 말했다.
“그러게요. 사건이 신부님을 찾아오는 건지, 신부님이 사건을 찾아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도현이 대답했다.
“저도 그것을 오래 조사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흰 장미 두 송이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저는 제대 꽃을 사러 왔을 뿐입니다.”
“신부님.”
이도현이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꽃값은 내셨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잠시 멈췄다.
오미자가 계산함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안 내셨네요.”
“지금 내려고 했습니다.”
“사건은 잘 보시면서 계산함은 왜 못 보세요?”
꽃집 안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날 은솔성당 제대에는 흰 장미 두 송이가 나란히 놓였다.
한 송이는 끝내 전하지 못할 뻔한 사과를 위해서였고, 다른 한 송이는 그 사과를 받아들일 용기를 위해서였다.
김맑음 신부는 미사를 시작하기 전 두 송이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검은 리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을 마침내 직접 전했기 때문이었다.
― 제30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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