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1일, 그 동안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오모테산도힐즈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와 모리빌딩(森ビル, Mori Building Co., Ltd)의 만남이라는 것 만으로도 이미 세상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충분했다.
1959년에 설립된 모리빌딩은 시가지 재개발 사업과 엔터테인먼트, 교육, IT등 10여 가지의 사업영역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유명한 기업이다. 그 중, 비너스포트나 롯본기힐즈는 외국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혹시 ‘XX힐즈’ 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면 모리빌딩의 작품이 아닐까 한번쯤 의심해 보아도 좋다.
이번 오모테산도힐즈는 먼저 만들어진 롯본기힐즈와는 대조적이다. IT업계들이 모여있는 롯본기힐즈가 성장, 발전을 품은 수직적인 느낌이라면, 오모테산도힐즈는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럼 이제부터, 그토록 떠들썩 했던 오모테산도힐즈로 여행을 떠나보자.
취재 ㅣ 문주영 도쿄통신원(mm00nn@naver.com)
전차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오모테산도힐즈를 알리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반드시 쇼핑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행인을 유도하는 그래픽 덕분이었을까. 발걸음은 빨라지고 마음은 그곳에 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먼저 이것이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오모테산도 일대는 루이 뷔통, 크리스챤 디올, 토즈, 등의 건축물과 다양한 디자인 샵들로 이미 디자이너와 건축학도들에게는 길 위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곳이다. 또한 그 주변은 패션과 아트의 거리인 하라주쿠와 아오야마가 자리잡고 있어, 하루에도 수많은 외국인들과 아티스트들이 찾아 드는 문화의 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表參道(오모테산도)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일본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 메이지 일왕 부부의 덕을 기리기 위해 1920년에 세워진 메이지진궁을 위한 참배길이었다.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이 곳에, 1927년 간토대지진 이후 내진과 내화성이 강화된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집합주택인「도쥰카이(同潤会)아파트」가 세워졌다. 지은 지 80년이나 되었지만 도시를 향한 훌륭한 경관과 디자인, 당시만해도 생소했던 소재인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일본 건축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도쥰카이 아파트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의 주소로 들어가 보시기 바란다. http://www.apartment-photo.gr.jp)
주거지로서의 기능은 점점 떨어졌지만 최근까지 핸드메이드샵을 비롯한 작은 공방, 그리고 신인 작가들의 갤러리로서 마지막까지 그 역할을 다했던 역사적인 아파트는 이후, 노후화라는 불가피한 이유로 재건축에 들어갔고,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의 오모테산도힐즈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곳은 80년 된 추억이 고스란히 묻힌 역사적인 곳이기에, 지금도 그곳을 그리워하며 추억에 젖어 있는 이들이 많다. 일본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설계를 맡은 안도 타다오씨는 작업 과정에서 주민들과 수 차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쳤으며, 그에 따른 설계변경을 반복해야만 했다. 많은 주민들은 운치 있는 모습으로 주변과의 조화를 꾀했던 과거, 도쥰카이 아파트의 모습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도시의 기억을 어떻게 남겨갈까.’ 설계를 맡은 안도 타다오씨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그는 이 프로젝트의 컨셉을 재생과 조화로 결정지었다. 여기서 재생이라 함은 도쥰카이 아파트와 과거 오모테산도에 대한 기억의 재생이며, 조화라 함은 주변환경(자연)과의 조화, 옛 것과 새것과의 조화를 의미한다.
사연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그 고민의 흔적들을 살펴보자. 오모테산도 역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두껍게 쌓여진 유리판이다. 빌딩모양과 같이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그 유리판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빌딩의 끝까지 계속되었다. 물이 흐르면 상가로의 접근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상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접근이 어려울 만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콘크리트건물의 삭막함을 중화시켜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쌓여진 유리판 옆으로 병풍처럼 세워진 콘크리트 벽은 동쪽에서 봤을 때는 빌딩의 시작인 동시에, 빌딩내부로부터는 출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하라주쿠로 가고 싶다면, 그 콘크리트 벽을 통과하도록.
서서히 콘크리트 벽 뒤로 도쥰칸이 보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기 힘든 추억의 아파트. 지금, 그것을 물리적으로 재생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대한 기억만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한 동을 원래의 도쥰카이 아파트 형태로 복원하고 그 이름을 도쥰칸이라 지었다.
또한, 원래 아파트에서 사용되었던 나무창틀을 그대로 재사용하여, 빌딩 내부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은 그때의 모습과 같다고 한다. 한 동을 새로이 복원하는 것에 대해 일부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안도 타다오는 도시가 가진 기억이 상실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나름대로 그렇게라도 보존했다고 한다.
도쥰칸의 내부는 갤러리와 아트샵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으며, 오모테산도힐즈 관련 상품들과 도쥰카이 아파트에 대한 건축서적이 판매되고 있었다. 정말 당시의 목재가 그대로 사용된 창틀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느낌은, 당시 그곳에 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잠시,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갤러리 도쥰칸 : http://www.gallerydojunkai.com)
이제 오모테산도의 길과 함께 250m로 뻗어 있는 빌딩을 보기 위해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도무지 한 컷에는 들어오지 않는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자로 잰 듯한 느티나무와 빌딩의 높이였다.
안도 타다오는 과거 도쥰카이 아파트의 내부에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빌딩의 높이를 가로수의 높이로 제한했다고 한다. 그것은 또한 주변 자연과의 조화로 도시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도쥰카이 아파트의 그것을 담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빌딩의 높이가 느티나무 높이로 제한된다면 내부 공간이 좁아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지상에서 확보할 수 없는 공간을 지하에서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지상6층, 지하6층, 총 12층의 건물이 탄생하였고, 그 중 상업공간은 지상3층, 지하3층까지이며, 나머지는 주거공간과 주차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건물의 절반이 땅속으로 묻힌 셈이다.
또한 느티나무로 둘러싸인 주변의 모습을 건물의 옥상까지 연장하기 위하여, 정확히 가로수와 같은 높이로 옥상 녹지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항상 거리와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자연에 둘러 싸인 도시 복판의 집합주택을 실현한 것이며, 동시에 거주자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자, 드디어 입구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위를 올려다보자.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된 주택의 일부가 튀어나와, 흡사 빌딩 위에 상자를 올려 놓은 듯 하다. 총 38채에 해당하는 주거공간은 느티나무라는 뜻의 영문 zelkova 에서 따온zelkova terrace라고 이름 지어졌다.
‘임대료가 시세의 두 배(월세가 원화로 5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라고 하는 저 방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에 들어서자 마치 큰 유람선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내부에는 기둥도 없고, 각 층마다 천장이나 마루를 따로 두지 않아 6개의 층이 모두 그대로 뚫려 있는 구조였다.
이것은 기존의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느끼게 되는 갑갑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과, 원하는 매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총 93개나 되는 상점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각 층이700m의 나사모양으로 된 플로어 방식으로,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각층을 모두 관람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안도 타다오는 사람들이 오모테산도의 길을 걸으며 가졌던 느낌과 기억들을 빌딩 내부에 똑같이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오모테산도의 길이 가진 너비와 경사를 같은 너비와 각도로 내부에 똑같이 표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오모테산도의 길을 걸으며 로드샵을 구경하는 느낌으로 빌딩 내부를 걷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다소 복잡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과거의 길이 그랬던 것처럼,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 까지도 모두 오모테산도의 일부인 셈이다. 비탈길을 걷다 보면 이곳이 빌딩 안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내부는 모두 콘크리트 마감에 절제된 디자인으로 안도 타다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었다. 크게 도쥰칸과 상업공간인 본관, 그리고 주거공간인 서관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해, 주거자의 불편을 덜고 있었다.
콘크리트뿐만 아니라 안도 타다오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빛이다. 누구보다도 건축에서 빛을 잘 활용하는 그의 특기는 오모테산도힐즈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우선, 자연채광을 살리기 위해 천정을 유리로 마감하였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어둡게 변하면 내부도 함께 어둡게 변한다.
삼각형 모양의 천정에서 내려오는 자연광은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져 바닥을 파랗게 물들인다. 지상 3층에서 지하 3층까지 그대로 자연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지하로 내려가더라도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게다가 천장에 설치된 프로젝터와 조명들은 빌딩 내부를 마치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실제 나무는 없지만 바닥에는 나무 그늘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빛의 사용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삭막하고 단조로운 콘크리트를 생동감 있게 연출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조명들은 해가 지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하여 낮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삼각형의 유리조형물이 밤이 되자 도시를 밝히는 근사한 조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또한 빌딩 외관의 경우, 상가가 있는 아래쪽으로는 조명을 밝히고 위쪽으로는 조명을 꺼두어, 주거공간으로 들어가는 빛을 차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빌딩을 자연스럽게 어둠과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공공장소에서는 자칫 소홀해 지기 쉬운 화장실과 휴지통 또한 조명으로 활용하여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있었다. 특히 휴지통의 금속부분을 위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반사시켜, 밋밋한 콘크리트 벽면에 하나의 멋진 벽화를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건축가의 센스를 엿볼 수 있었다.
지상 3층, 지하 3층으로 펼쳐지는 상업공간에는 총 93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입생 로랑, 하리원스턴, 던힐, 포르쉐디자인 등, 업계에서 최고를 지향하는 브랜드샵들로 93개의 샵들 중 절반 이상이 일본 내, 첫 리얼샵들이다. 어른들을 위한 무선조종자동차인 코쇼와 독일의 문구, 애견 전용샵, 일본 전통술이나 전통과자, 벨기에 최고의 초컬릿,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들어선 오픈 레스토랑도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지하 3층에 마련된 이벤트 홀은 메인홀로 향하는 큰 계단과 연결되어 패션쇼와 같은 규모 있는 이벤트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반드시 구매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만나기 힘든 상품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즐거웠다.
오모테산도힐즈는 ‘마이너스 10세의 마인드를 가지는 어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신힐즈족’ 이라고 불리 우는 최고의 브랜드를 지향하는30~40대 여성들을 코어타켓으로 하고 있다. 물론 남성복과 아동들을 위한 샵들도 있지만, 레이디스샵에 비하면 비중이 약하다.
오모테산도힐즈의 로고를 맡은 Tycoon graphics는 일본최고의 그래픽회사이다. 심볼은 오모테산도의 한자표기인 ‘表參道’ 중에 가운데 글자인 ‘參’ 를 응용한 형상인데, 그 글자의 가운데 부분은 오모테산도힐즈 내부에 있는 나선형의 플로어를 의미한다고 한다.
보는 순간, 가로의 두 획에서 느껴지는 건물의 수평적인 느낌과, 양쪽으로 뻗은 느티나무와 상가들,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나선형의 플로어. 이 세가지 느낌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參’자는 참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길의 역사와 캐릭터 또한 잘 포함하고 있었다.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게다가 응용까지 쉬운 훌륭한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런던 출신의 Julian opie가 그린 그래픽이다. 주로 사람과 자연을 단순화 시킨 그래픽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중인 디자이너이다. 오모테산도힐즈를 따라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 그래픽은 픽토그램처럼 단순한 선과 모노톤의 간결함이 콘크리트 벽과 아주 잘 어울려 역동적인 느낌마저 든다.
특히 밝은 컬러의 그래픽은 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 속에 묻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사람들,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오모테산도힐즈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지금까지 오모테산도힐즈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공식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http://www.omotesandohills.com
모리빌딩의 189억엔짜리 프로젝트, 안도 타다오의 설계, 고급스러운 부티크와 브랜드샵들, 시부야의 오모테산도라는 지리적인 위치.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모두 일본 내 최고라는 것이다. 그 최고들이 모여 만들어 낸 작품이기에 충분히 훌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최고의 디자이너들은 놓여진 숙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찾은 답이라면, 그들은 작은 목소리에 귀기울 일 줄 알고, 주변의 가까운 것에서부터 문제를 풀어 나간다는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자제할 줄 아는 지혜,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의지는 옛 것을 잊지 못하는 주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억 속의 과거와 그것을 이어나갈 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이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 된 것을 보고 비평하기는 쉽지만 無에서 有를 창조해 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과거를 담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기 위해 노력했던 고민의 흔적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이번 기사를 쓰면서 필자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참 재미있었다.
지금 내 앞에 놓여진 복잡하고 어려운 숙제가 있다면,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디자인정글에서 펌] | |